레드벨벳의 ‘Ice Cream Cake’는 여러 모로 독특한 곡이다. 뮤직박스 멜로디가 영롱하게 울리는 가운데 디스토션으로 찌그러진 비트가 공격적으로 몰아친다. 동요적인 색채와 난폭한 사운드 속에 기묘한 장면들이 쏟아지는 뮤직비디오처럼, 곡 또한 구석구석 묘하게 연출된 부분들이 있다.
뮤직박스가 A 코드의 기조를 잡아 놓은 위에 묘한 분위기를 내는 “랄랄라” 테마(이하 ‘테마 A’)가 아래와 같은 멜로디를 그린다. 반음 단위로 오르락내리락하는 이 멜로디는 화성과 충돌하기 쉬운데, 두 번째 음인 ‘레#’은 A 코드에 대해 #11이 되어 어떻게든 어울린다. 문제는 다시 쉬었다 진행되는 ‘도#’-‘도’-‘시’의 반음 하강 부분이다. ‘도#’은 A 메이저에, ‘도’는 A 마이너에 각각 해당하는 음정이기 때문이다.
도입부의 뮤직박스 멜로디는 이를 영리하게 피해가는데, 처음엔 A 메이저에 해당하는 ‘라-미-도#’을, 그 다음에는 메이저도 마이너도 아닌 ‘라-미-라’로 진행하는 것이다. 뮤직박스 사운드는 다소 음정이 불분명한 성격을 띠기도 해 기묘한 느낌을 강화하면서 화성적 충돌도 피해간다.
1절 버스(verse)로 들어서면 테마 A가 사라지고 첫 마디 두 번째 박자(“(오 햇살) 눈부신”)에서 A 메이저 코드를 찍어줘 곡의 불분명한 구석을 없애버린다. 이제부터 이 곡은 A 메이저 코드이다. “콧노래 나오지” 이후 테마 A가 다시 등장하는데, 흥미롭게도 여기서 A 마이너에 해당하는 ‘도’ 음이 등장하는 순간은 스네어 비트와 맞물린다. 유난히도 찌그러져 있는 이 곡의 스네어는 같이 등장하는 다른 소리들을 상당부분 잡아먹어버리는데, 그것이 마침 화성적으로 애매한 ‘도’ 음인 것이다. 우연일지 의도일지는 알 수 없으나, 믹스의 선명성을 떨어뜨림으로써 오히려 화성적 위험을 피해가는 결과가 된 것이다. (메이저/마이너 코드에 관해서는 “리스너를 위한 화성학 ③”을 참조하면 좋다. [바로가기])
“종소리가 울리지”에 이어 프리코러스(pre-chorus)는 다시 테마 A를 전면으로 가져온다. 아래쪽에서 플럭(pluck) 신스가 코드를 찍어주는데, 전체적인 코드의 진행은 F – D# – F – G를 거쳐 후렴으로 넘어간다. 가장조(A키)였던 곡은 후렴에서 나장조(B키)로 변화하는데, G 코드의 구성을 한번 뒤집은 ‘시-레-솔’이 B 코드의 구성인 ‘시-레#-파#’으로 이어지면서 제법 자연스럽고도 탄력적인 전조를 이룬다.
나장조라고는 했으나, 후렴의 조성은 보기에 따라 달라진다. “달콤한 그 맛”부터 “내게 다가오겠죠”까지를 C1, “It’s so tasty”부터 “Gimme that ice cream”까지를 C2라고 해보자. C1의 코드 진행과 멜로디는 라장조(D키)와 더 잘 어울린다. B7 – D – GM7 – Em은 VI – I – IV – ii에 해당해 전형적인 코드 진행이 된다. (B7이 마이너 코드인 Bm7이었다면 더 이상 생각해볼 것도 없었을 것이다.) 이 B7 코드의 질감은 버거킹 테마송이나 미국의 해맑은 고전 TV CM송을 연상시키기도 한다. 뮤직비디오의 배경이 되는 다이너의 풍경과도 맞아떨어진다. 이 곡이 CM송처럼 들리는 것은 가사와 소품 때문만은 아니다.
멜로디 또한 나장조에는 맞지 않는 음정들이 다수 포진해 있다. ‘라'(“Ice cream”), ‘솔'(“특별해질”) 등이 그것으로, 멜로디 속에서 강하게 지배적인 인상을 남기는 음정들이다. 이를 라장조로 표기하면 아래와 같이 임시표는 대거 줄어든다.
그러나 C2는 매우 강한 나장조의 성향을 보인다. 원코드로 진행되는 B는 토닉의 인상을 크게 주고, 멜로디 또한 B 코드의 음정을 안정적으로 따라가며, 멜로디가 해결되는 “(tas-)ty”, “me”, “어”는 모두 B 코드의 기반이 되는 ‘시’음을 눌러간다. 나장조라고 한다면 C1의 화성은 I – IIIb – VIb – iv가 되어 제법 변칙적인 진행이 된다. (토닉에 관해서는 “리스너를 위한 화성학 ①”에서 다룬 바 있다. [바로가기])
여기서 눈에 띄는 것은 C1의 “내게 다가오겠죠” 부분이다. 대칭을 이루는 “어울리는 맛으로”는 ‘파#’ 음정을 갖고 있는데, 이는 코드인 EmM7과는 나인스(9th) 관계이다. 나인스는 화성적으로 분명 사용할 수 있는 음정이지만 다소 긴장을 낳는다. (“못 참겠어”의 백업보컬에서도 B 코드의 나인스인 ‘도#’이 높은 음역에 섞여 있다. 이 음정이 주는 신비하고 청명한 느낌이란 대체로 이런 식이다.) 오로지 멜로디 라인이 밟고 지나가는 음정 때문에 Em7이 EmM7이 되었는데, 이 또한 매우 조심스럽게 사용해야 하는 코드이다. 이로 인해 “어울리는 맛으로”는 얼핏 그냥 지나가는 부분 같지만 매우 미묘한 인상을 남기게 된다.
반면 “내게 다가오겠죠”는 똑같이 흐르던 코드 진행을 E7으로 바꿔놓는다. 마이너에서 메이저로 변화하고, “특별해질”에서 “어울리는”으로 하강하던 멜로디 역시 “네 가슴 두근”에서 “내게 다가오겠죠”의 상승구조로 변한다. 이로써 곡은 갑작스레 매우 밝은 색채를 띠게 된다. 뿐만 아니라 나장조의 맥락에서 E7은 IV에 해당해, 이어지는 I(B코드)을 매우 안정적으로 이끌어내는 역할까지 한다. 이로써 지금까지 다소 방황하는 듯 기묘한 분위기로 흐르던 소리들이 순식간에 집중력을 갖고 C2로 쏟아져 들어가면 긴장이 해소되는 쾌감을 선사하는 것이다.
다시 시작되는 버스는 가장조로서, 후렴의 나장조보다 한 음 낮다. 별다른 조치 없이 급작스럽게 이어붙이는 형태도 흔하지만, 이 곡에서는 의외로 후렴과 버스의 연결에 신경을 쓴 듯한 모습이다. 1절에서는 악보와 같이 B – Bb 진행으로, 버스의 A 코드를 향해 반음씩 차근차근 평행진행해 내려간다. 반면 2절에서는 Bb 없이 B를 그대로 이어간 뒤 “Ice cream Ice cream”을 다시 한번 반복할 때 반주에 비트만 남아 화성감을 지워버린 뒤 A 코드로 이어진다.
한편 가사가 바뀌면서 후렴이 두 번 반복되는 3절에서는 또 다른 변주를 보인다. 처음엔 “Ice cream Ice cream” 대신 “녹아버리기 전에 내게 입맞춰줘요”(1절의 “네 가슴 두근거려 내게 다가오겠죠”)와 동일한 멜로디를 덧씌웠다. (“달콤하게 녹아요 나는 눈을 감아요”) 그런데 코드는 B를 페달처럼 유지한다. 이로 인해 “달콤하게 녹”의 ‘솔’ 음정이 B 코드와 충돌한다. 이 부분이 혼란스럽게 느껴진다면 이 때문이다. 그리고 마지막 반복에서는 “Ice cream Ice cream Gimme that Gimme that ice cream”에 코드 변화를 둔다. 이 코드는 “달콤하게 녹아요 나는 눈을 감아요” 멜로디와 결합되었다면 딱 좋았을 GM7 – E7 진행이다. 물론 여기선 보컬이 랩이기 때문에 화성적으로는 아무 무리가 없다. 그러나 앞에서 이미 들었던 화성의 충돌을 기억하며 이 부분을 듣게 되면 훨씬 명쾌하게 들리고 긴장이 해소되는 느낌을 받게 된다.
‘Ice Cream Cake’는 복잡하게 쓰여진 곡은 아니다. 메이저 코드 위주로 마냥 긍정적인 후렴이 명쾌하게 뽑히기만 하면 큰 줄거리는 직관적으로 시원하게 완성에 도달했을 것이라 상정할 수 있다. 그러나 멜로디와 테마 A가 반음씩 섬세하게 움직이면서 기묘한 공기를 자아내기 때문에 이를 설득력 있게 하나의 작품으로 꿰어내기 위한 디테일에는 신경을 많이 쓴 흔적이 엿보인다. “It’s so tasty”로 시작하는 선명한 후렴 후반을 향해 에너지가 크게 집중되는 효과는 그런 작은 배려들이 낳은 근사한 결과라 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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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 replies on “음원분석 노동 : 레드벨벳 – Ice Cream Cake”
ㅎ ㅏ 미묘님 너무 좋으신,,,,,아이돌로지는 사랑입니ㄷ ㅑ,,,,,,,☆★
만국의 아이돌팬들이여 단결하라. 이거슨 숭고한 노동입니다….!!
대박입니다….. 진짜 너무 잘 보고 갑니다 감사합니다 ㅠㅠ
죄송하지만 모티브 A의 4번째 음은 레#이 아니라 레입니다
#11 텐션으로 갔다가 다시 내추럴 해서 돌아오는 것이라고 할 수 있겠네요
딴지 거는거 같아 죄송하지만 모티브 A의 4번째 음은 레#이 아니라 레입니다
그리고 프리코러스에서 코러스로 넘어가는 부분에 D#코드는 어디서 나온건가요? 아무리 다시 들어도 F 1마디 F 2박 G 2박인데…
딴지는 괜찮습니다. 레 맞군요! 제가 그때 왜 그리 들었는지 모르겠네요.; 지적 감사합니다.
D#는 플럭 신스가 첫 마디 마지막 반 박자를 장2도 내려 연주하는 게 있어서 굳이 표기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