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광엽서에 뉴올리언스를 납작하게 눌러 담은 듯한 버번 스트리트를 비추는 카메라는, 곧 거리에서 탭댄스를 추는 한 남자를 등장시키며 영화를 시작한다. 여주인공보다 요염하게 엉덩이를 씰룩이며 걷는 이 남자가 주인공인 도니다. 그는 가출소 상태여서 보호관찰 처분을 받았고, 왜인지 담당 경찰은 그에게 굉장히 적대적이다. 그러거나 말거나 도니는, 친형제처럼 여기는 닉이 브루클린에 차린 클럽이 잘되고 있으며 현재 클럽에서 공연할 댄서를 찾는단 소식을 듣고, 무작정 뉴욕으로 향한다. 친구는 도니에게 그가 보호관찰 처분을 받은 처지란 걸 경고하지만 그런 건 별 문제가 안 된다.
도니가 닉을 만나러 온 뉴욕에는 여자 주인공 아야가 있다. 보아가 연기하는 아야는, 탭 슈즈를 신고 일본 전통악기인 타야코를 두드리며 신비한 동양의 무술 같은 춤을 추는 퍼포먼스팀 코부의 리더이다. 아야는 친오빠 카즈하곤 한국어로 대화하고 팀 멤버들과는 일본어로 대화하는데, 아야의 증언에 의하면 한국에서 태어나 일본에서 자랐다고 한다. (아야의 유창한 한국어에 비해 심각하게 어눌한 오빠의 한국어 발음이 의아하긴 하지만, 남매의 “복잡한 과거사가 조금도 문제 되지 않는 자유로운 뉴욕”이라고 하니 그러려니 하고 넘기자.)
앞서 언급한 것처럼 도니와 아야에게는 각각 형과 오빠가 있다. 닉과 카즈는 한때 브루클린에서 함께 언더그라운드 댄스 클럽을 열었던 사이이다. 길거리 예술가였던 카즈의 감각과, 뉴올리언스에서 도니와 함께 날렸던 닉의 사업수완으로 두 사람은 큰 성공을 하게 되었다. 하지만 도니가 뉴욕에 도착했을 즈음에는, 분홍색 셔츠를 즐겨 입는 마이클 그리피스가 아야를 자신의 여자로 만들기 위해 둘 사이를 이간질하여 앙숙이 되어있는 상태다. (닉과 카즈과 주고받는 원망 어린 눈빛을 보고 있으면 우정이 깨진 건지 사랑이 깨진 건지 분간하기 힘들다.)
이쯤 되면 나머지 이야기는 대부분 쉽게 파악할 수 있을 것이다. 도니는 뉴욕에 도착한 지 얼마 안 되어 아야와 사랑에 빠질 것이고, 닉과 카즈의 갈등으로 인해 둘의 사랑은 시련을 겪을 것이며, 그리피스의 가세로 인해 사건은 더욱 꼬여만 갈 것이다. 허나, 어찌 됐든 도니와 아야는 키스를 하고 경쾌한 팝이 흘러나오며 영화는 막을 내릴 것이다.
이야기보다는 춤
<스텝 업> 시리즈를 비롯해 다수의 댄스 영화에 시나리오 작가로 참여한 이력을 가진 감독은, <메이크 유어 무브> 개봉 이후 인터뷰에서도 춤이라는, 육체로 전달하는 언어에 대해 지대한 관심을 표한다. 두 가지에서도 드러나듯, 감독은 이야기에 큰 관심이 없다. 때문에 플롯은, 밑바닥에서 시작해 스포트라이트 쏟아지는 무대로 향한다는 댄스 영화의 흔한 이야기에 <로미오와 줄리엣>을 더한 뒤, 매너리즘 가득한 MMORPG의 무성의한 퀘스트 같은 갈등들이 삽입되고, 그마저도 어린이 단막극처럼 쉽게 해결된다. 그렇게 벌어놓은 시간을 춤으로 채우고, 그 춤으로 인물들의 감정상태, 인물 간의 교감, 유사 성행위 등을 전달하려고 시도한다.
이러한 시도를 흥미 있게 받아들인 이들도 있을지 모르겠다. 하지만 빈곤한 플롯 이외에도, 춤이 중심인 영화들에서 봐왔던 장면들의 무성의한 차용, 안무가 주는 묘미에 둔탁하게 반응하는 카메라워크 등은 고루한 인상을 피하기 힘들다. 하지만 감독의 시선 말고도 이 영화에서 드문드문 흔적을 드러내는 시선 하나를 떠올리면 흥미로운 지점이 달라진다.
두 개의 시선
이 영화에는 두 개의 시선이 있다. 하나는 시나리오를 쓰고 영화를 연출한 감독 듀안 에들러의 시선이다. 그는 탭댄스란 것이 굉장히 날 것이면서도 도회적이기도 한 흥미로운 소재라고 판단해, 탭댄서를 주인공으로 한 시나리오를 쓰기로 마음먹는다. 동시에 평상시 관심 있던 타악기 연주 또한 영화의 한 요소로 넣기로 하고, 이 요소를 신선하게 전달하기 위해 아시아 컬쳐를 끌어다 넣기로 한다. 시나리오의 대략적인 상을 떠올린 후 그는 관련 정보를 구글링한다. 그러다 우연히 뉴욕에서 탭댄스와 일본 전통 북 연주를 결합한 퍼포먼스를 선보이는 코부란 팀을 발견하게 되고, 그들을 소재로 영화를 만들기로 결심한다. 그러니까 감독의 제작 동기에서 볼 수 있듯, 그는 다소 무성의한 태도로 어반 컬쳐(언더그라운드), 아시아 컬쳐, 탭댄스를 결합한다.
다른 시선은 SM-이수만의 것이다. 이 시선이 보기에 <메이크 유어 무브> 기획은 SM이 일궈낸 세계와 안전하게 결합될 가능성이 높다고 판단했을 것이다. 뉴욕을 배경으로 하고, 춤이 주가 되며, 아시아 컬쳐가 중요하다고 주장하는 기획이기 때문이다. 게다가 자신들이 수없이 차용하던 문화의 본거지에서 영화를 찍는다는 것에서, 좇을수록 멀어져만 가던 원본에 가장 근접할 수 있다는 판단이 들었을 것이다. 사실 SM-이수만이 원본이라 굳게 믿고 있는 이것은, 본토에서는 벌써 과거가 된 것이다. 하지만 SM-이수만은 이 시간차를 감지 못하고 원본이라 믿고 있는 것을 밀어붙인다.
감독의 시선과 SM-이수만의 시선, 이 두 시선은 서로의 단점을 전면에 내세우며 영화 안에서 힘차게 엮인다. 이 엉성함이 <메이크 유어 무브>를 재밌게 즐기는 포인트인데, 여기서 몇 가지 소개하자면 다음과 같다. 뉴욕에서 클럽을 운영하는 닉과 카즈는 LA에서 클럽을 운영하는 갱들처럼 총격전을 벌이고, 스트리트 아티스트로 날렸다는 카즈가 클럽에 그린 벽화는 00년 초에 발매되었을 어도비 포토샵 교재의 표지를 보는 듯하다. 닉의 클럽과 카즈의 클럽은 언더그라운드 컬쳐를 소개한다고 하지만 그들의 무대 위에서는 <태양의 서커스> 같은 것들이 선보여지고, 갑자기 한국에서 날아온 유노윤호가 무대 위에서 게이 댄서처럼 춤을 추기도 한다. 그러는 와중 썸을 타기 시작한 도니와 아야의 사랑이 싹트는 과정을 담은 몽타주 시퀸스는 도니와 아야가 뉴욕 각지를 떠돌면서 문자를 주고받는 모습을 보여주는데, 이는 마치 삼성의 스마트폰 광고처럼 찍혀 있다. 이렇게 광고를 찍듯 사랑을 주고받은 도니와 아야는 기어코 섹스 대신 춤을 추고, 결국 베드신이 시작될 지점에서 페이드아웃 된다. (원래 둘이 함께 침대에 누워 있는 장면을 촬영했지만 편집했다고 한다.) 형과 다툰 도니가 뉴욕의 거리를 떠돌다 노숙을 하는 곳은 지금은 사용되지 않는 교회이고, 이곳은 반나절 만에 공연에 적합한 무대로 꾸며져서 모든 갈등을 해소하는 장이 된다.
어디서 본 듯한…
이건 극히 일부분이다. <메이크 유어 무브>란 영화에선 이런 우스꽝스러운 요소들이 씬 단위로 튀어 오른다. 소재를 대하는 감독의 나이브한 시선과, 과거 특정 시점에 고정되어 현실과의 시간차를 무시하고 자신들이 원본이라 믿는 비전을 원산지에 욱여넣는 SM-이수만의 시선이 교차한다고 생각하면, 별수 없는 일이다. 어디서 본 아시아적인 것과 어디서 본 뉴욕적인 것이 영화 안에 투사됨과 동시에, 원본으로 추정되는 것과의 갭이 고스란히 드러난다. 별수 없이 민망함이 몽글몽글 피어올라, 할 일 없는 관객의 손은 부들부들 떨며 극장 의자 팔걸이를 움켜잡고 있을 수밖에 없고, 그때쯤 이 민망함에서 왠지 모를 익숙함을 느끼게 된다. 섹슈얼리티가 금지당한 아야는 결국 보아로만 보이고, 그녀를 통해 이 영화의 제작자이기도 한 SM의 ‘그분’이 떠오르면, 영화는 힘차게 재구성되어 “뮤직네이션 SM 타운”의 한 귀퉁이에 자리 잡게 된다.
그러니까 <메이크 유어 무브>를 보아의 뮤직비디오 중 하나, 드라마타이즈 뮤직비디오 정도로 생각하면 편하다. SM 뮤직비디오에선 흔히 볼 수 있는 일이다. 뉴욕이나 유럽의 거리와 문화의 몇몇 요소들을 세트 안으로 들고 와, 일부분을 과장하고 파편화하여 재조립한 세계 말이다. <메이크 유어 무브>의 세계는 이보다는 덜 과감하게 재조립된 세계다. 때문에 SM이 기존에 제시한 세계와 <메이크 유어 무브>의 세계를 비교해 보면, SM이 가지고 있는 팝의 ‘본고장’에 대한 판타지를 훔쳐볼 기회를 제공한다. 이러한 것에 관심이 있다면 한 번쯤 보는 것도 나쁘지 않을 듯 싶다.
메이크 유어 무브 (2014)
감독 듀안 에들러
주연 보아, 데릭 허프
- 음방분석 노동 : 2014년 5~6월 엑소 – 중독 - 2014-07-12
- 1st Listen : 2014.06.01~06.10 - 2014-06-16
- 1st Listen : 2014.05.21~05.31 - 2014-06-0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