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요일 밤을 책임지는 저력의 드라마 <부부클리닉 사랑과 전쟁 2>는 한국 드라마의 모든 것이 1시간 이내에 압축적으로 들어가 있는 작품이다. 뿐만 아니라 한국인의 삶과 멘탈, 한국 드라마의 세계를 그 어떤 매체보다 리얼하게 담고 있어, K-컬쳐의 한 정점이라 부르기에 부족함이 없다. 이 드라마에 들어가 있는 ‘모든 것’은 물론 반전, 가족의 비밀, 불륜, 범죄, 음모, 화해, 애정 등에 국한되지 않는다. 아이돌도 포함되는 것이다. 일찍이 시즌 1(1999년~2009년)에서 티아라의 지연이 등장하였고, 시즌 2에서는 7화 “내 사랑 아이돌”이 아이돌에 빠진 부인의 사연을 다뤘으며, 이후로는 본격적으로 아이돌 특집을 구성하여 아이돌 컬쳐와의 접목을 꾀하는 와중, 역사에 남을 모 아이돌의 발연기와 같은 금자탑을 쌓기도 했다. 한국에 관심을 갖는 외국인 친구가 있다면 반드시 추천해 마땅한 작품이라 하겠다.
TV에서 아이돌을 보기 힘들어진 요즘, 모처럼 결방의 벽을 깨고 방영한 4월 25일 110화는 마침 스피카의 박주현이 주연으로 등장한다. 아이돌 리뷰할 것이 없어서 <사랑과 전쟁>을 리뷰하는 것처럼 보인다면 기분 탓이다.
이번 에피소드 “사위들의 전쟁”은 주인공 연수(박주현 분)가 부모님에게 약혼자(이재욱 분)를 소개하는 장면으로 시작한다. 과일 도매 사업으로 성공한 부모는, 차녀인 연수가 번듯한 화이트칼라 남편을 맞길 바라고 있다. 그러나 연수가 데려온 약혼자는 나이도 40줄로 지긋하고, 세련미와는 거리가 먼 과일가게 아저씨다. 자연, 대기업 사원이자 스마트하고 센스 있는 연하남 맏사위(민준호 분, 이하 형부)와 비교되지 않을 수 없다. 대놓고 둘째 사위를 탐탁지 않아 하는 부모님이지만, 무엇보다 성실한 사람이란 점을 내세워 연수는 결혼을 강행한다.
그런데 형부는 알고 보니 남편의 군대 후임이었다. 남편은 옛 추억을 떠올리며 넉살 좋게 형부를 놀리지만, 형부는 군대에서 남편에게 괴롭힘당한 것이 불쾌한 기억일 뿐이다. 안 그래도 남편이 성에 차지 않는 친정 부모님은 형부를 노골적으로 편애하고, 그런 권력구조 속에서 형부는 자연히 남편을 깔보며 은근 괴롭히기까지 한다. 형부는 남편을 위해주는 척하면서 남편의 과일가게에 업무상의 선물 주문을 맡겨, 두 사람은 직업적으로도 갑-을 관계에 처하고 만다. 형부는 일부러 배달처 주소를 잘못 전해줘 남편에게 손해를 입히기도 하고, 잘못된 주식 정보를 흘리기도 한다. 갈수록 심해지는 괴롭힘과 열등감에 남편은 복수의 기회를 노리는데…
“사위들의 전쟁”은 라이벌 관계와 음모를 능숙히 다루는 민성원 작가와 이승면 감독 콤비의 작품으로, 깨알 같지만 넘쳐나지 않는 병맛도 함께 제공한다. 또한 통상적으로 시댁을 중심으로 하여 며느리들이 대결을 펼치는 것과 달리, 친정을 중심으로 사위들이 라이벌 관계를 형성한다는 점도 이색적이다. 부인의 갈등에서 남편이 방관자적 역할을 하는 일반적 에피소드에 대응해, 이번 에피소드의 남편의 갈등에 있어 부인의 역할은 다소 제한적이다. 그런 만큼 숙련된 출연진들의 리드에 맞춘 박주현은 (그렇다, 이곳은 아이돌팝 웹진 아이돌로지다.) 어느 정도 위험부담을 덜고 연기를 해나간다. 어머니 역을 맡은 원종례와는 얼굴도 왠지 닮은 것 같은 모녀 필을 내며, 티격대는 모녀 연기를 제법 그럴듯하게 해낸다.
하지만 결혼 전 모습이 적당한 오글미를 남기며 넘어가는 것에 비해, 결혼 후의 생활연기는 어쩔 수 없는 듯 약점을 노출한다. 특히 <사랑과 전쟁>의 특성과 맞물리는 ‘부인의 실내복’과의 궁합은, 역전의 베테랑 고정 출연진들과 비교해 상당한 약세를 보인다. 또한 생활감이 뚝뚝 떨어져야 제맛인 바가지 연기는 아무래도 어색하다. 아이돌끼리 부부를 연기하는 것과는 달리, 구질구질한 너스레의 달인 이재욱을 상대하는 것은 무리였던 것일까. 그중에서도 <사랑과 전쟁>의 유구한 전통을 담은 “이 통장을 보아라” 씬은 내미는 팔의 각도마저 뻣뻣해 안타까움을 더한다.
그럼에도 박주현의 표정은 눈을 찌푸리거나 크게 뜨는 것만으로 나름 넓은 폭의 표정 연기를 해내는 것이 느껴진다. 또랑또랑한 목소리도, 후반부에 언니의 의견에 동의하며 “응!”을 외칠 때를 제외하곤 대체로 장점이 된다. 오프닝에서 보여준 당찬 캐릭터 연기는 다소 예능스러운 감은 있으나 적당히 애교 있는 캐릭터라 받아들이면 납득할 만한 자연스러움을 보인다. 원종례와의 호흡이 괜찮았던 것도 그 덕분일 것이다. 언니에 비한 상대적 박탈감과 살림 속에 분투하는 부인의 연기를 하기에는 역부족인 부분이 드러나지만, <사랑과 전쟁>이 요구하는 연기의 폭이 만만치 않음을 고려하면 실망할 일만은 아닐 것이다. 이 에피소드가 박주현의 미래에 좋은 양분이 되어주길 기대한다.
검수 : 사랑과 전쟁 위키
- 아이돌로지 10주년 : 아이돌로지는 사랑을 싣고 (미묘) - 2024-04-15
- 필진 대담 : 17회 한국대중음악상은 과연? - 2020-02-27
- 결산 2019 : 올해의 음반 - 2020-02-2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