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하돌 열전 : 시작하기에 앞서

예전 아이돌로지에 “인디 아이돌은 가능한가”라는 글이 있었습니다. 자본이 적어도, 혹은 자생적으로도 아이돌이 될 수 있는가 하는 재밌는 내용이었죠. 물론 한국에서 자생적으로 아이돌이 된 경우는 아직까진 없거나 있다면 아는 사람이 아주 극소수인 그룹일 겁니다. 대신 자본 규모가 작은 경우는 종종 발견할 수 있습니다. 연습생 기간이 평균 2년인 5인조 아이돌을 데뷔시키는데 드는 비용이 최소 15억 정도라는 모 신문 기사가 있었죠. 이를 기준으로 하면, 사실 많은 경우가 저자본일지도 모르겠다는 생각도 드네요. 근본적으로 자본집약적 산업인 아이돌 산업에서 기획사의 자본 규모는 활동과 직결이 됩니다. 대형 기획사도 투자유치 없이 아이돌을 제작하고 활동시키기가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니죠. 즉, 자본이 적을수록 미디어 노출 빈도가 낮고, 음반 발매도 적고, 행사 위주의 활동이 많은 식이 됩니다.

‘지하 아이돌’이란 표현을 들어보신 적이 있을지 모르겠습니다. 지하 아이돌은 미디어 노출 없이 라이브 하우스 혹은 공연 가능한 베뉴(venue)에서 공연 활동이나 팬 이벤트 위주로 활동하는 일본의 아이돌을 일컫는 명칭입니다. 지역을 기반으로 활동하는 경우가 많아 ‘로컬 아이돌’이라고, 또는 공연 위주로 활동해 ‘라이브 아이돌’이라 불리기도 합니다. 미디어 노출이 없는 경우가 대부분이라 머천다이즈 판매로 수익을 내는 구조인데, ‘체키’로 불리는 폴라로이드 사진이나 티셔츠가 대표적인 상품이라더군요. 남성 아이돌은 대형 기획사가 시장을 독점한 경향이 있어서, ‘지하 아이돌’로 구분되는 아이돌은 주로 여성 그룹이라고도 합니다. 지하 아이돌로 활동하다 인기를 얻어 메인스트림에 진입한 사례도 있는데 데뷔 초의 AKB48을 지하 아이돌로 본다면 가장 유명한 사례라고 볼 수 있겠네요. 퍼퓸을 꼽는 경우도 있고요. 두 팀 다 지하 아이돌에 정확히 부합되는지 확신하기 어렵긴 합니다.

한국에도 일본의 이러한 지하 아이돌과 약간 비슷한 형태의 그룹들이 있습니다. 미디어 노출이 적거나 없는 상태로 다양한 행사에 염가로 출연하거나 인터넷 방송으로 활동을 한다거나 하는 식이죠. 일본과 여러모로 다르지만, 가장 큰 차이점이라면 아무래도 라이브 하우스를 기반으로 활동하는 경우가 잘 없고 머천다이즈로는 수익을 기대하기 어렵다는 것이겠네요. 저자본 아이돌을 제작하는 JS 엔터테인먼트가 대표적인 사례인데, 직캠으로 유명해진 밤비노나 레이샤를 데뷔시킨 회사죠. 한국의 경우는 공연의 목적 자체가 행사를 위한 경우가 많아 음악 활동 자체를 중요시하지는 않는 편인 것 같습니다. 그 때문인지 적지 않은 그룹의 안무나 의상이 다소 선정적인 편입니다. 직캠 문화가 퍼지게 되며 선정성이 좀 더 심해진 것도 같습니다.

이 연재에서 다루고자 하는 그룹들은 제목에서도 알 수 있듯 ‘지하 아이돌’로 분류할 수 있을 그룹들입니다. ‘지하’라는 단어는 다소 부정적으로 인식될 수 있어 사용이 조금은 조심스럽긴 합니다. 하지만 일본과 같이 지역이나 활동반경이 특별히 정해져 있는 것도 아니라 ‘로컬 아이돌’, ‘라이브 아이돌’이라고 부를 수는 없을 겁니다. 혹은 일본에서 사용되는 다른 명칭인 ‘인디즈 아이돌’이라고 할까도 생각해봤지만, 한국에서 ‘인디’라는 단어가 사용되는 맥락을 보면 적절치 않은 단어 선택일 것 같습니다. 결국 ‘지하 아이돌’로 부르기로 했습니다. 케이팝 어딘가에 위치하는 듯하지만, 어쩐지 눈에 잘 띄지 않는 그룹들. 그런 그룹들은 어떤 음악을, 어떤 활동을 해왔을까요?

이 연재는 아주 천천히 비정기적으로 연재될 예정입니다. 하지만 연재종료 선언을 하기 전까진 다소 느릴지언정 연재가 중단된 것은 아니니, 관심이 있는 분들은 그때그때 올라오면 읽어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1화는 비운의 컨셉돌, 식스밤입니다. 연재 시작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