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돌리즘] 그것은 케이팝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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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악가에는 기량이 뛰어난 사람과 하고 싶은 이야기가 있는 사람이 있다고 생각한다. 글 쓰는 사람으로서 나는 후자였다. 말하자면 케이팝에 관해 하고 싶은 이야기들이 있고 그것을 발화하는 데 만족해왔다. ‘좋은 글’을 쓰는 데에는 별로 관심이 없었던 덕분에, 부족한 글을 뻔뻔하게 써내려갈 수 있었다. 내 글에서 재미를 노린 듯한 요소가 혹시 보인다면 ‘동물 이야기를 하면 (내가) 기분이 좋으니까 동물 이야기를 섞어보자’ 같은 단순한 동기가 대부분이었다. (지금도 동물 이야기를 해서 조금 기분이 좋다.)

그래서 무슨 이야기를 하고 싶었냐면, 이런 것이었다. 한번은 야외활동을 나온 여고생들을 보았다. 그들은 서로 손바닥을 교대로 치면서 2NE1의 노래를 부르고 있었다. “I don’t care-e-e-e.” 그것은 더할 나위 없이 케이팝이었다. 케이팝은 셀럽파이브의 ‘셀럽이 되고 싶어’에 나오는 “반지하에도 살았대”라는 대목 같은 것이다. 가사는 반지하에 살았던 게 화자인지, 화자가 부러워하는 셀럽인 아리아나 그란데인지 분명히 하지 않는다. 심지어 누군가가 반지하에 살긴 살았는지, 그 이야기를 왜 하는지도 알려주지 않는다. 케이팝은 부적절하고 부정확하며 비논리적인 것이다. 엉뚱한 것이 엉뚱한 곳에서 막무가내로 결합된 것들이 겉으로는 멀쩡해 보이도록 완성되어 우리의 가슴 속을 파고드는 것이다.

하고 싶은 이야기를 가진 음악가는 다시 둘로 나뉜다. 이야기를 하고 싶은 사람이 있고, 실은 이야기를 듣고 싶은 사람이다. 듣고 싶은 이야기를 아무도 해주지 않기 때문에 자신이 할 수밖에 없는 사람이다. 나의 경우가 그렇다. (조금 건방진 투로 말하자면) 내가 글을 쓰기 시작했을 때 사람들은 케이팝에 대해 글을 쓰지 않았다. 적어도, 음악 산업이나 팬덤 현상, 그리고 팬들이 기획사 PR 부서의 업무를 ‘자발적’으로 대신 해주는 경제효과를 제외하고, 케이팝이 무엇으로 이뤄졌는지에 대해서는 만족스러운 글을 찾을 수 없었다. 나에게는 너무나 흥미롭고 매혹적인데, 왜 사람들은 이것에 대해 글을 쓰려 하지 않을까. 친박연대의 선거 공보에도 ‘유튜브에서 검색’하라는 문구가 들어가는 시절이라고는 하더라도 말이다.

그래서 나는 글을 쓰기 시작했다. 케이팝에 대해서 ‘글처럼 생긴 글’을 쓸 수 있다는 걸 증명하고 싶기 때문이었다. 제3세계에서 시작해 영미권 대중음악을 추종하던 한국 대중음악이 어쩌다 산업적으로 웃자라 완성도를 획득해버리고 또 어쩌다 ‘한류’로 이어지게 되는 과정을 지켜보며 말하고 싶었다. 치를 떨면서도 한국인의 유전자를 이기지 못해 어깨를 들썩이게 되는 신파와 ‘뽕끼’를 통해 케이팝 아이돌이 우리의 현실을 반영하고, 구질구질한 현실에 지친 눈길을 돌려주는 이상향의 표현으로, 단지 몰입할 대상에의 필요로, 남에게 보이기는 한없이 부끄러운 ‘길티 플레저’로 제시되는 이유를 설명하고 싶었다. 여러 곳에 실렸던 이 책의 글들은 그래서 쓰여졌다. 셀럽파이브의 “반지하”가 어떤 의도로 쓰여졌는지 ‘정답’을 맞추지는 않더라도 그것이 왜 청자에게 느낌적 느낌을 주는지는 이야기할 수 있다고 생각해왔다. 결국 케이팝에서 의미를 찾을 수 있다고 주장하고 싶기 때문이었다. 케이팝에는 아무 의미도 없다고 말하는 사람들은 케이팝에 아무 의미도 없어야만 한다고 믿고 있다고 믿기 때문이었다.

미묘 - 아이돌리즘 (에이플랫, 2019)

1. 케이팝이라는 ‘장르’

  • 노래하는 이는 누구인가: 아이돌 컨셉 진화론
  • 손가락 하트가 케이팝이다
  • “장르는 포스트 케이팝입니다.” 등
  • 2. 아이돌 마인드맵

  • 방탄소년단과 아미의 유니버스
  • 아이돌의 시장 점령? 시장의 아이돌화!
  • <프로듀스 101>, 어떤 미래에 투표할까
  • 인디 아이돌은 가능한가 등
  • 3. 인사이드 아이돌팝

  • 아이돌 랩에서 대체 뭘 들어야 할까
  • 누구나 작곡을 할 필요는 없다
  • 싸이는 케이팝을 노래하는가 등
  • 4. 아이돌 에볼루션

  • 거인의 어깨 위로 날아오른 새
  • 걸그룹에서 싱어송라이터까지, 그런데 뭔가?
  • 레드벨벳 애티튜드
  • 아이돌 기대감소의 시대 등
  • 5. 평행우주의 케이팝

  • 케이팝 유토피아의 항구
  • 아이돌, 공공재와 직업인 사이
  • 빅뱅과 샤이니, 아이돌에게 ‘청춘’은 오는가
  • 다국적 아이돌, 보다 입체적인 고민이 필요하다 등
  • 6. 아이돌, 케이팝 그리고 음악비평

  • 아이돌 비평은 필요하다
  • 아이돌의 여성상은 지워지지 않는다
  • 보다 나은 챗봇이 되기 위해 등
  • 본 기사는 미묘 지음 <아이돌리즘 (케이팝은 유토피아를 꿈꾸는가)>의 서문 내용이다. <아이돌리즘>은 대중음악 평론가이자 아이돌로지 편집장인 미묘가 2012년부터 각종 매체나 개인적인 경로를 통해 기고해온 원고를 추려 묶은 선집이다. 저자는 케이팝 아이돌을 둘러싼 다양한 담론 중 무엇보다 아이돌이라는 콘텐츠에 집중하고자 한다. 이를 통해 다른 음악과는 다른 케이팝만의 특성을 살피고, 왜 우리 사회는 케이팝을 사랑하게 되었는지 설명하려 한다. 이를 출발점으로, 지금의 시장에는 존재하지 않는 다른 형태의 아이돌이나 새로운 모델을 상상하기도 한다. <아이돌리즘>은 에이플랫 출판사에서 전자책으로 출간되었으며, 주요 전자책 서비스에서 구매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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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추천사

    나 또한 평론을 업으로 삼고 있지만 그가 대중음악을 바라보는 시선에는 마니아적 지식을 뽐내는 기성 평론가들에게는 없는 참신함이 깃들어 있으며, 음악을 만드는 사람답게 신과 시스템에 대한 이해 덕에 생동감이 있다. 진부한 표현이 없는 글 자체도 물론 아름답다. 무엇보다 그의 아이돌에 대한 칼럼에는 이 일이 ‘중요한’ 것이라는 확신이 있어 듣는 이를 설득한다. 케이팝에 대한 담론이 무엇인지, 그리고 그 담론은 어떻게 만들어가야 할 것인지 고민하는 사람들에게 좋은 자극과 참고자료가 될 것이다.

    – 김영대(음악평론가)

    미묘의 글은 예민하다. 예리하고 정확한 것과는 결이 다른데, 나로서는 ‘글’이라는 결과보다 ‘쓰기’라는 태도에 대해서 더 생각하게 된다. 요컨대 지금이야말로 이런 글이 더 필요한 시대일 것이다.

    – 차우진(음악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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