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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돌x힙합 (6) [대담] 로보토미x하박국x아이돌로지 (2)

프로듀서 로보토미와 영기획 하박국 대표를 아이돌로지가 만났다. YG와 빅뱅, 그리고 지드래곤의 진격. 블락비와 군소 여성 힙합 아이돌까지. 아이돌x힙합의 역사와 성취에 관한 대담.

아이돌에 관해 이야기할 사람, 힙합에 관해 이야기할 사람은 많다. 그러나 아이돌과 힙합이라면 어떨까. 7월 23일 심야, 아이돌로지의 필진 미묘(파리)와 김영대(시애틀)는 두 사람과의 대담을 진행했다. 충격적인 비트메이킹과 랩으로 신비한 카리스마를 내뿜다 일렉트로닉으로 돌아선 프로듀서 로보토미, 그리고 그의 음반을 준비 중이기도 한 촉망 받는 언더그라운드 미디어이자 레이블인 영기획(YOUNG, GIFTED & WACK)의 하박국 대표가 그들이다. 1편에서 이어진다.

빅뱅 : 힙합 아이돌 vs YG 아이돌

하박국 : 빅뱅은 초기-중기-후기로 나눌 수 있다. 초기는 그래도 ‘우리는 힙합’이란 느낌이 있던, 단체복 입던 시절. 중기는 ‘거짓말’-‘마지막 인사’-‘하루하루’에 스트리트 패션으로 밀어붙이던 시절. 후기는 멤버 개개인 활동이 두드러지는 시절.
로보토미 : 태양이 콘로우 하던 시절 – 하이탑 신던 시절 – 지디 람보르기니 타는 지금.
미묘 : 초기와 중기는 시기적으로 매우 가깝다.
하박국 : 첫 싱글이 나온 게 2006년 8월이고 ‘거짓말’이 나온게 2007년 8월이다.
로보토미 : 그 기간 동안 ‘This Love’니 ‘Dirty Cash’니 많이 냈다.
하박국 : 저 당시가 YG에서 말은 무성했는데 뭐 하는지는 잘 모르겠던 일종의 암흑기라 더 길게 느껴지는 감도 있다. 빅뱅이라는 힙합 팀이 나와서 마룬5 노래를 부르는구나, 뭐 이렇게 보인 시기였다.
미묘 : 어쩌면 데뷔시켜놓고 보니 경로 수정이 필요했던 것은 아닐까? 아이돌적인 포텐셜을 살리는 방향은 좀 둘러서 가야겠구나, 라든지..
로보토미 : 한국 음악시장 자체도 답이 없던 시절이고. 그러니 마이너인 힙합-R&B가 되기는 정말 힘들었을 것이다.

하박국 : 근데 빅뱅은 처음 멤버 뽑았을 때부터 뭔 생각인가 싶었다. 팀이 다섯 명인데 보컬이 세 명이고, 래퍼가 두 명인데 그 중 한 명은 보컬도 종종 한다. 결성했을 때부터 힙합 베이스로 가려고 한 것 같진 않다. ‘거짓말’ 같은 곡은 랩 파트가 훨씬 길고 보컬 파트는 짧은데, 그걸 세 보컬이 나눠서 한다.
김영대 : 아이돌이 랩을 하는 건 새롭지 않지만 YG 입장에서는 ‘우리가 하면 제대로야’ 하는 마인드가 있는 것 같고, 난 ‘힙합 아이돌’보다는 ‘차별화된 아이돌’을 만들려고 했다는 느낌이다. 그 도구로 본인들이 잘 ‘알고 있는’ 힙합 및 흑인 음악, 그리고 그 중심에는 전부 다 할 줄 알고 상업성까지 갖춘 지디가 있는 것이고. 킵식스에서 원타임으로, 다시 원타임에서 빅뱅으로 오면서 변화한 과정이 된다.
미묘 : 지금 이야기는 힙합의 세계가 음악 스타일과 나머지가 있다고 할 때, 그 ‘나머지’ 부분의 힙합을 가져온 팀으로 빅뱅이 설정됐다고 볼 수도 있을까?
하박국 : 별 생각 없이 만들었다가 ‘거짓말’이 빵 터지고, 그 다음은 통제할 수 없는 상황이 돼버린 건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든다. (웃음)
김영대 : 혹시 힙합으로 방향 설정을 했다고 해도 ‘거짓말’이 뜨는 순간 ‘이게 길이구나’ 싶었을 것이다. 아이돌이라는 게 장르적 진정성에서 가변적이라는 게 특징이다. “우리가 장르적 진정성이 없는게 아니라 ‘새로운 실험’을 했다”, “EDM과 우리가 좋아하는 힙합 사운드를 ‘우리만의 방식’으로 조합했다”, 이런 거 많지 않은가.
미묘 : 하나의 이야기로 출판 만화도 내고 애니메이션, 게임도 내고 관광상품도 만드는 것 같다.
하박국 : 서태지가 원래 록 베이스였는데 댄스 음악으로 우회상장해서 다시 록을 한 경우 아닌가. 지드래곤도 그런 감각이 좀 있을지 모른다.
김영대 : 이를테면 힙합을 내세워 데뷔했다가 EDM이 떠서 방향전환했는데, 다시 시장이 힙합 친화적이 되면 힙합으로 돌아오면서 우린 ‘원래 힙합이었다’가 가능하다.
하박국 : 지드래곤과 서태지의 감각에 차이가 있다면, 서태지는 그 후론 계속 록 베이스로 가는데 그래도 지디는 자신이 아이돌이라는 걸 잘 자각하고 있는 것 같다. 에고트립도 했다가 ‘우리 팬들 우쭈쭈’하는 곡도 부르고 발라드도 하고, 록도 하고.
미묘 : 서태지는 옛날 메탈 세대다운 연어의 회귀욕구 같은 게 있었다고 본다.
하박국 : 이번에 지디가 ‘삐딱하게’ 부른 거 보면서도 록을 하고 싶다기보다는 록스타를 코스프레하고 싶은 것 같다는 생각을 많이 했다.
로보토미 : 빅뱅으로, 솔로로 월드투어 돌아보니 ‘아 피날레에 손 들고 뛰는 곡이 있어야겠다’ 한 것의 결과라는 느낌일까?
김영대 : 힙합이 쫄딱 망했다면 지금의 YG가 어떻게 되었을까 좀 궁금은 하다.
미묘 : 아이돌이 기본적으로 다른 세계를 동경하는 존재인지라, 힙합이 한국에서 생겨나진 않았기 때문에 ‘제1세계’에 대한 로망의 중심에 있어서 어쩔 수 없는 부분도 있는 것 같다.
김영대 : 아이돌이란 건 기본적으로 마치 우리가 하고 싶은 걸 하는 것처럼 보이게 하는 기술인데, YG의 힙합이라는 것은 그런 면에서 메리트가 있는 게 아닐까 한다. YG라는 집단 차원에서 늘 추구하는 방향이다 보니 아이돌이라는 것에 진정성이 덧입혀지는 것이다. 실제로는 기획된 거라고 하더라도, 그 기획이 본인들의 관심사와 뿌리를 벗어나지 않으니까. 지디는 거기서 하나의 매개가 되는 거고.

지드래곤 : 통제권을 쥔 아티스트

하박국 : 나는 그 확실한 분기점이 되는 게 ‘One of a Kind’라고 생각한다. 솔로 1집만 해도 ‘Heartbreaker’를 불렀다. 2집에선 다른 타이틀이 받쳐주고 있으니 ‘One of a Kind’를 불러도 될 거라는 자신감이 있었다고 본다.
미묘 : ‘Heartbreaker’가 빅뱅의 ‘거짓말’ 같은 위치였다는 것인가?
하박국 : 나는 ‘Heartbreaker’가 확실히 흥행을 노리고 만든 곡이라고 생각한다. 그리고 영향이 있는지는 모르겠지만 1집과 2집 사이에 빅뱅이 재계약을 했다. 일단 GD 1집은 빅뱅보다 많이 팔렸다. 양현석 대표가 직접 나와 밝힌 사실이다. 게다가 빅뱅의 재계약과 YG의 상장, 둘 다 2011년이다. 스타를 갖고 있으면 상장한 회사 입장에서는 특히 좋은 카드 하나를 갖고 있는 셈이니까.
미묘 : 그럼 재계약 당시에, 지디가 하고 싶은 것을 하게 해준다는 면이 강해졌을 것이라는 이야기인가?
하박국 : 지금의 지디는 정말 대단하다. 밸런스 감각도 있으니 사전 공개곡으로 ‘One of a Kind’를 내놓고 그 후에는 ‘그 XX’로 활동한 것이다. 특히 ‘One of a Kind’는 그 해 <리드머>에서 ‘올해의 힙합 싱글’로 뽑힌 곡이다. YG 비판하던 힙합 팬들을도 입을 다물게 했다. 완성도도 높고 뮤직비디오의 ‘가오’도 장난 아니고, ‘우리는 돈도 있고 실력도 있어서, 남들은 흉내도 못 낼 이 정도의 힙합 곡을 얼마든지 낼 수 있다’ 이런 느낌이다. 지디는 아이돌의 포지션을 놓치지 않으면서 카녜(Kanye West) 같은 존재가 되려는 게 아닐까 싶다.

미묘 : 그래도 모든 의사결정을 혼자 하진 않을지도 모른다. 전문가 인프라가 갖춰진 곳에 있으니, 간섭은 받지 않고 자문은 받는 형태일 가능성이 높겠다.
김영대 : YG라는 회사 전체로 본다면 지디의 존재는 소속 가수가 음악적인 통제력을 갖추고 있는 것, 그게 기회에 따라서 언제든 발휘되는 걸 과시하는 수단이 될 수도 있겠다. 그게 다른 기획사와의 큰 차이점일 테고.
미묘 : 미국에서 틴아이돌 출신이 그래도 어느 정도 통제권을 쥐는 시스템을 가져온 느낌도 된다. 음악도 본토, 시스템도 본토.. 같은 느낌?
김영대 : 그러니까 지디의 경우는 아이돌이라는 시스템 안에서 통제권을 쥔 뮤지션을 키워낸 것이다. ‘어찌 되었건 우리 안에서 해결한다’는 YG의 독특한 마인드라고 본다. 설령 퀄리티가 특A급이 안 나온다 하더라도, 다른 작곡가 이름이 찍힌 곡과 지디, 테디의 이름이 박힌 곡은 임팩트가 다를 수 있다 본다.
미묘 : 빅뱅 초기는 그래도 용감한 형제나 Choice37 같은 사람들이 옆에서 거들어줬지만, 이제는 실력도 많이 성장한 것으로 볼 수 있겠다.
하박국 : 그리고 특히 큰 성공을 거둔 아이돌은 음악에서 내수 뿐 아니라 외국도 고려하는 게 있지 않은가. 지디는 내수용으로 내는 곡도 있지만, 일단 해외에서 자기를 본다는 걸 많이 의식하고 있을 거라 생각한다.
김영대 : 이를테면 윌 아이엠(will.i.am)을 쓰고 싶다면 윌 아이엠이 ‘평소 지디의 곡을 좋아했다’ 이런 그림이 되는 거다.
하박국 : 지누션에 맙딥(Mobb Deep) 낄 때만 해도 사실 저런 그림은 잘 안 그려졌다. 그런데 지금은 가능하게 됐다.
김영대 : 피쳐링을 사온다는 느낌이 덜 든다. 오히려 반대로 ‘윌 아이엠이 궁색한가? 아시아를 노리려고 하네’ 같은 반응이 나와도 이상하지 않다. 뭐 꼭 국뽕까지 아니더라도 그 인식의 전환은 크다고 본다.
하박국 : 그렇다. 테디 라일리와 소녀시대, 프리모(DJ Premier)와 다이나믹듀오 같은 경우도 보지만, 저 부분에서 가장 ‘아티스트 대 아티스트’의 느낌이 큰 건 역시 지디다. 나는 남자 힙합 아이돌은 모두 빅뱅을 롤모델로 삼는다고 보는데 당연히 그럴 수 밖에 없다. 워낙 전무후무한 성공 모델이니까. 돈도 벌고 멋도 부리고 가오도 잡고 아티스트로 인정도 받고.
미묘 : 그러고보니 정말 사상초유다.

하박국 영기획 대표
하박국 영기획 대표

국내 힙합 x 아이돌

김영대 : 나는 힙합을 매개로 한 아이돌이 이렇게 독자적 영역으로 있어 보이게 할 수 있는 게, 힙합이 ‘외힙’-‘국힙’으로 나눠진 게 크다고 본다. 빅뱅이나 지디가 로커였으면 안 될 법한 그림이다. 팝 장르중 유일하게 한국 것이 따로 팬을 갖고 있는 게 힙합 같다. 물론 여전히 까이지만 아예 국힙 빼곤 안 듣는다는 사람도 있으니까. 록이나 기타 장르는 그 비교대상이 늘 외국의 어떤 아티스트들일 가능성이 짙지만, 지디나 YG의 경우는 국내 힙합하고만 경쟁하면 된다. 그게 반드시 서로 경쟁도 아니고. 한국 힙합이라는 개별 카테고리가 어느 정도 힘을 받으니까 그게 아이돌에서 힙합 아이돌이라는 카테고리의 정당성 같은 것도 좀 더 생긴다.
미묘 : 지금 그래도 타 장르에 비해 로컬씬이 가장 탄탄한 셈 아닌가?
로보토미 : 사실상 이제 ‘국힙’이라는 장르가 따로 생긴 거나 다름 없다고 본다.
하박국 : 국힙은 확실히 씬이 있다. 커뮤니티도 타 장르에 비해 활발하고, 이제 한국에서 음악 장르 커뮤니티 남은 곳은 힙합 밖에 없다. 그 때문에 힙합 아이돌은 다른 아이돌보다 한번 더 얘기가 된다. 노이즈가 되었든 긍정이 되었든, 힙합이라는 장르로 데뷔하는 것만으로도 다른 장르보다 주목받을 수 있다.
김영대 : 아이돌 산업이라는 게 장르적으로는 씬의 기운만을 빠는 거니까 전체 파이는 커진다고 볼 수 있다. 그 안에서 구별 기제가 또 작동하기 시작하고, 그래서 아까 말한 ‘한국에 진짜 힙합 있다’ 같은 코멘트도 달릴 수 있는 거고.
로보토미 : 아이돌한테 록을 시키는 건 아무래도 모험인데 힙합을 시키는 건 할 만한 도전인거다.
하박국 : 힙합도 10대고 아이돌도 10대 시장이라 타겟이 겹치는 측면도 있다. 적어도 반에 힙합 듣는 애가 대여섯 명은 있을 거란 말이다. 즉 반에 국힙 듣는 애랑 방탄소년단 듣는 애랑 둘 다 있을 것이다. 그럼 국힙 듣는 애는 방탄소년단 듣는 애한테 ‘이런 거 있으니까 이것도 들어봐’하고, 그러면 방탄소년단은 ‘우리가 힙합을 소개하고 있다’라는 명분도 획득한다.
로보토미 : 보통은 싸우고 서로 무시한다.
하박국 : 그렇긴 하다. (웃음)
미묘 : 대마가 마약에 입문하는 ‘게이트웨이 드럭’이라 하듯, 아이돌 힙합은 ‘게이트웨이 힙합’.

블락비 : 힙합 아이돌의 리트머스

김영대 : 블락비는 외국에서도 헷갈려하는 지점이다. “이 정도면 힙합 아닌가염?”하는 반응도 있다.
하박국 : 블락비는 한국 힙합과 아이돌의 리트머스지로군. (로보토미가 노이즈 실험 음악과 국힙의 리트머스지였던 것처럼…)
미묘 : 로보토미는 어떻게 들었나?
로보토미 : 이미지 자체를 힙합보다는 ‘난장판 간지’로 잡고 가서… 블락비는 참 빅뱅을 가장 잘 계승한 그룹인데, 운이 너무 없다. 지난 곡 ‘Jackpot’ 공개일에 세월호 사건 터진 것 말이다. 어쨌든 블락비도 빅뱅처럼, 굳이 힙합 아니어도 상관 없었다.
하박국 : 근데 지코가 랩을 너무 잘 한다. 빅뱅만 해도 랩을 좀 대중적으로 필터링한다는 느낌이 있었는데, 지코는 랩을 살벌하게 한다.
김영대 : 그리고 힙합에서 중요한 ‘출신’ 같은 것도 있다. 언더에서 했었고 믹스테이프도 냈다고 하면 어쨌든 인정요소를 깔고 간다.
미묘 : 이렇게 되면 블락비에겐 힙합을 할 필요가 태생적으로 있었던 게 아닌가?
로보토미 : 빅뱅이 어떤 편견을 깨준 게 있어서, 굳이 힙합 안 해도 되게 길을 깔아준 것 같다. 빅뱅도 말하자면, 지디가 초딩 때부터 랩하고 YG 패밀리 하면서 어떤 ‘힙합전사’ㅋ의 그것을 갖고 있는 상황이었다. 그런데 빅뱅 하고 솔로 하면서 ‘종합 간지뮤지션’ 같은 걸 해버림으로써, 랩 하던 친구가 아이돌 할 때 꼭 힙합이 아니라 어떤 ‘간지 음악’을 하면 그냥 되는 것이라는 길을 뚫어준 것이다.
하박국 : ‘와장창’ 아이템을 얻은 거군.

‘씬 출신’과 진정성

미묘 : 블락비가 원래 조피디의 스타덤 엔터테인먼트 소속이었잖은가.
하박국 : 이블도 같은 소속사였다.
김영대 : 블락비 만들면서 조피디가 천명을 했다. 힙합 그룹 만든다고. 그래서 첫 미니앨범과 정규 1집 사이에 ‘힙합을 기반으로 하지만 다양한 장르로 실험을 넓힌다’ 같은 말도 나왔던 걸로 기억한다.
미묘 : ‘한국 랩 1세대’로서 조피디가, ‘아이돌 나부랭이’를 안 한다는 명분도 어쩌면 필요했을지도 모른다.
로보토미 : 데뷔곡이 ‘난리나’ 맞나? 그 곡 쓴 친구도 힙합 비트메이커기는 하다. 나는 그 곡을 국힙과 아이돌팝의 어떤 래디컬한 퓨전 느낌으로 받아들였던 기억이 있다.
김영대 : 지코랑 버벌진트 같이 녹음한 게 데뷔 전인가?
로보토미 : 그렇다.
김영대 : 조피디와 버벌진트의 ‘종의 기원’에도 참여했군. 그런데 외국에서 블락비를 설명할 때, ‘만들어진 아이돌인데 힙합하는 게 아니라 씬에서 등장한 것’이란 말이 꼭 나온다. 아까 말한 국내 힙합의 덕이라는 것도 그런 것이다.
하박국 : 블락비가 진짜 힙합인 게, 사고를 많이 치긴 했다. 발언 하나 잘못 해서 아이돌 커리어가 무너질 뻔하기도 하고. 아직 덩치가 크지 않긴 하지만, 어떤 면에서는 빅뱅보다 좀 더 힙합이다.
로보토미 : 빅뱅과 비교하면 블락비는 수도권 위성도시의 간지가 있다. 성북동, 세검정…
하박국 : 지드래곤이 아무리 무대에서 반항아 코스프레를 해도 예능 프로그램 나오면 되게 얌전하고 예의 바른데, 확실히 저런 이미지는 어떻게 해도 인공적으로 만들기는 어려울 거라는 점에서 좀 더 ‘진정성’ 있어 보이는 부분이 있을 것 같다.
김영대 : 지디는 ‘음악 천재 하나가 뭘 해도 너희들보다 더 잘해’ 이런 뉘앙스지만, 블락비 같은 경우는 드무니까. ‘씬 출신’이라는 이미지는 괜찮은 방식 같긴 하다.
미묘 : 그런데 결국 그 멤버를 모아서 결성하고 기획한 건 기획자본인지라, 말하자면 아까 얘기한 슈프림팀보다 확실히 더 ‘아이돌 출신’이지 않은가?
김영대 : 그렇다. 그래도 국내 팬들 사이에서의 변별점은 모르겠지만 미국에서 블락비가 호소하는 부분은 그런 것이다.
하박국 : 씬 출신이기도 하고 실력 또한 소구 포인트일 것이다. 다른 ‘아이돌’이 잘하는 것과는 다른 방식으로 잘하니까.
로보토미 : 국내에서 보면 진정성으로만 끌었다기에는 팬덤이 굉장히 큰데, 내가 봤을 때는 이 지점에서 힙합-반항-에티튜드가 묘하게 작용한 것 같다. “놀게 생긴 오빠들이 힙합 (잘) 하면서 난장판 부림”
미묘 : 아이돌 팬덤이 외부를 향해 꺼내드는 카드가 장르적 진정성일 순 있어도, 아이돌 팬덤이 장르적 진정성에 이끌려 들어오는 건 아니지 않은가?
로보토미 : 그렇다. 그 자체로 작용하진 않고 다른 거 하나 거쳐 들어오는. ‘멋짐 포인트’가 될 수 있는 것 같다. 장르 진정성이 있는데 그 장르가 반항아 장르 → “어머 오빠 생긴 것만 반항아인 줄 알았더니…”
김영대 : 블락비의 외국 잡지 인터뷰 중에 희한한 게 있다. 좋아하는 미국 아티스트를 묻는 질문에 재효는 마이클 잭슨, 피오는 퍼렐 윌리엄스, 태일은 스티비 원더, 지코는 아프리카 밤바타를 든다.
미묘 : 아프리카 밤바타라니 너무 쎄게 나온다. (웃음)
하박국 : 로보토미는 어디 가면 맨트로닉스 좋아한다고 해라.
로보토미 : 그 얘기는 원래 한다.
김영대 : 좋아하는 뮤지션이 아프리카 밤바타… 미치겠다. 너무 진정성 있어 보인다. 이런 인물 처음 본다.

여성 힙합 아이돌

미묘 : 이번엔 여성 힙합 아이돌을 간략히 얘기해보자. 특별히 눈에 띄는 부분 있었는가?
하박국 : 여성 아이돌은 내가 작성한 표를 보면 공통된 특징이 있다. 기획자나 작곡가는 진정성이 높은데 정작 음악가와 나오는 음악은 거의…
로보토미 : 힙합은 거의 외피만 가져오는 느낌이다.
하박국 : 디유닛은 기획자가 DM, 와썹은 레드락이다. 마침 비슷한 거친 랩하는 분들이 하나 같이 여성 아이돌을 키우셨는데 (웃음) 와썹의 나다 정도를 제외하면 멤버들이 힙합을 좋아하는지조차 모르겠다.
로보토미 : 와썹은 그래도 TLC 느낌이 약간 드는데, ‘한국판 TLC’가 성공한 적이 없다.
미묘 : 옛날 O24의 사례를 봐도 시장은 거친 ‘힙합전사’ 소녀를 그리 원하지 않는 게 아닐까? 아직까지, 여자-힙합-아이돌의 포뮬러가 실험 중인 것이라고 봐야 할까?
하박국 : 유일한 성공사례가 하나 있다. 2NE1.
로보토미 : 그걸 돌파해버린 2NE1이 있어버리니 도전들을 하는 건데, 2NE1은 사실 전혀 다른 모델이다. TLC가 아니라, 레이디가가(Lady Gaga) 4명이 M.I.A.의 음악을 하는 모양새라고 보는 쪽이 맞는 듯하다.
미묘 : 이게 2NE1이라는 거대한 변종을 제외하면 국내에선 돌파구가 아직 없다는 것일까?
로보토미 : 2NE1 성공의 핵심은 고급화 전략이라고 본다. 쎈 언니를 여자들이 따라하고 싶게 하려면 고급스러워 보여야 하는데, 2NE1은 빅뱅-GD의 성공으로 정상에 오른 YG에서 나온 것만으로도 고급으로 비춰진다.
하박국 : 2NE1이 처음 등장한 건 ‘롤리팝’ CF에서 빅뱅과 함께였는데, 일단 첫 이미지부터가 매우 패셔너블했다.
로보토미 : 그렇다. 따라하고 싶게 만드는 게 핵심.
하박국 : ‘Fire’ 뮤직비디오를 두 가지 버전으로 찍었는데, 그 두 제목이 2NE1의 모든 걸 설명한다고 생각했다. ‘스페이스 버전’과 ‘스트리트 버전’, 스트리트 컬처에 기반을 두고 있는 미래 지향적인 이미지다.

디유닛 : “KPOP is swag”

미묘 : 그런 면에서 디유닛은 인트로에서부터 “KPOP is SWAG!”을 외치던데.
하박국 : 나는 디유닛도 곡은 괜찮았다고 본다.
로보토미 : 심지어 멤버들 보컬 캐릭터도 좋다. ‘과연 YG 연습생 출신’이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이미지가 ‘그냥 후발주자’ 이상을 못 보여줬다.
하박국 : 쿠시가 워낙 팝적인 곡을 잘 만들기도 한다. YG에서 나온 뒤 발표한 곡들이 다 좋은데, 이상하게 다 히트를 못 쳤다.
로보토미 : 뭐랄까 역시 비주얼적으로 눈에 빡 박히는 뭔가가 없어서.
김영대 : 다른 귀여운 그룹과 차별되는 강한 이미지다, 그 배경이 힙합과 일렉트로닉이다, 라는 식.
하박국 : 중소기획사라서 확실하게 푸시해주지 못한 감이 있다.
로보토미 : 잘 풀렸으면 하는데, 전환점이 크게 하나 있어야 반등 가능할 것 같은데 활동이 없..
하박국 : 지금은 프로듀서가 바뀌었다. 원래 하던 쿠시가 다시 YG에 들어가면서 최근 음반은 지코가 프로듀스했다.
미묘 : 차라리, ‘힙합 좋아하는 소녀의 로망 실현기’ 같은 느낌으로 가는 게 어땠을지.
로보토미 : 음악을 ‘몹시 힙합’으로 가던가 했으면… 그래도 안 됐으려나? (웃음)
미묘 : 아무래도 생짜 힙합으로 걸그룹은 힘들다는 생각에 그런 것 같은데, 그 밸런스가 안 좋았던 게 아닌가 싶기도 하다.
하박국 : 그러니까 여성 힙합 팀들의 기획자는 진정성이 쩌는데 멤버들은 대부분 거기에 못 미친단 말이다.
김영대 : 하나의 이미지로 가는게 모험이기도 하다. 변신을 해줘야 하니까. 힙합과 걸그룹의 조화는 이미지가 상당히 고정적일 수밖에 없다. 귀여우면 에러고…

와썹 : ‘힙합 디바’?

하박국 : 와썹은 제작자의 취향도 있겠고, 나다를 믿고 좀 과감하게 나온 것 같다. 하지만 다른 멤버들은 기대에 못 미치기도 했을 뿐더러, 한국 정서상 안 맞는 게 컸다. 기획자들이 아무것도 모르는 여자애들 데려다 놓고 <프린세스 메이커> 하는 기분도 든다.
로보토미 : “TLC 키우기”는 힙합하시는 분들의 로망 중 하나다.
김영대 : ‘힙합 디바’라는 개념 있지 않은가. 그걸 와썹이 차용하는 걸 보고 좀 재밌었다.
하박국 : 나다는 좀 가능성이 있다고 생각한다.
김영대 : ‘힙합 디바’라는게 노래 잘 하는 디바랑 전혀 관계 없고, 쉽게 이야기 하면 ‘야한 검은 언니들’이다. 트워킹 하고, 야한 포즈 취하고, 성인 잡지 촬영하고.
미묘 : 근데 그런 게 한국 상황에서 가능할까? 안 그래도 섹시 콘셉트 하면 싸보인다고 모욕 주는 현실에서 말이다.
하박국 : 한국에서 먹히기 힘든 캐릭터기는 한데, 힙합 씬에서는 랩 실력만 늘면 충분히 소구할 수 있는 캐릭터다. 다들 비치 흉내만 냈지 제대로 된 비치가 없었기 때문이다. 물론 힙합 바닥이 남성중심적이라서 욕할 사람도 많겠지만.
로보토미 : 보통 언더에서 하면 본인 멘탈이 못 견디고, 메이저에서는 수위 조절하다가 이도 저도 아닌 츄리닝 누나 되고, 그런 테크다.
미묘 : 한국에선 무리, 라는 생각도 들지만, 그런 걸 꾸준히 하나씩 격파해나가고 있는 것이 이 바닥이기도 하니 모르는 일이겠다.
김영대 : 한국 걸그룹이 점점 노출이나 태도에 관대한 방향으로 가고 있으니, 어느 정도의 접점은 만들어낼 수 있지 않나 보긴 한다.
미묘 : 근데 그게 아이돌판에서 가능했던 건, 아이돌이 기본적으로 가면놀이라서 ‘섹시하지만 조카라니까, 조카라구요’ 같은 느낌으로 된 건데, 그게 다른 루트를 타면서도 가능할진 잘 모르겠다.
로보토미 : 나는 소비자 구성상 어렵다고 본다.
김영대 : “이건 문화야!”하고 레이블링으로 무마하는 방법도 있다. 그냥 흔들면 천박한 거지만 “이건 트워킹이라는 거다” 하는 식으로 말이다.
로보토미 : 본격적인 이식은 나는 불가능하다고 보고, 포지셔닝을 위한 어떤 템플릿 역할 정도라면 모르겠다.
미묘 : 하긴 트워킹이 일본에선 좀 문화로 받아들여지는 부분이 있다. 갸루가 수용되는 사회기도 하지만.
하박국 : 일본은 댄스홀 퀸이 있는 나라니까. (웃음)
김영대 : 웃긴 게 와썹이 하는 트워킹이 별 다르지 않다. 그래서 이름으로 퉁칠 수도 있다고 보는 것이다.
하박국 : 나는 가요 시장에서는 정말 어려울 것이라고 생각한다.
김영대 : 아이러니한 게 걸그룹은 주인공 위치인 데 반해 힙합 디바는 약간 종속적인 위치다. 주류가 되긴 어려울 수밖에 없긴 하다.
미묘 : 한국에선 주류시장에서 안 되면 어디서도 안 된다.
김영대 : 그렇다. (웃음)
로보토미 : 갑자기 생각났는데, 여자 아이돌 래퍼들의 현재를 보면서 맘에 드는 점이 하나 있다. 이제 윤미래는 안 따라한다. 역시 2NE1의 은덕인지…

마무리

미묘 : 정리하자면, 힙합의 애티튜드가 아이돌의 판타지와 결합하는 공감의 형태, 아이돌이 힙합/랩을 바라보는 방식을 이야기했으며, YG와 관련해… 아무튼 많은 이야기를 했다. 유치원 동창 사이처럼 2인3각을 이룬 아이돌과 힙합의 동반성장기도 훑어보았다. 그리곤 국내 힙합과 힙합의 진정성이 아이돌, 아이돌 팬덤과 연결되는 방식을 얘기했고, 여성 힙합 아이돌의 난관과 전망에 관해 이야기했다. 뭔가 덧붙이고 싶은 이야기가 있다면 들려주기 바란다.

로보토미 : 음.. 여성 힙합 아이돌의 정착을 위해 YG에서 한번만 더 총대를 짊어져주시길 바란다는 말씀을 드리며, 지코+피오 유닛 만들어 주시면 감사히 듣겠다.
미묘 : 그리고 로보토미의 앨범 “protoLEMON”을 잘 부탁한다는 말씀을 해주셨다.
김영대 : 나는 일단 당장 며칠 뒤에 있을 케이콘에서 방탄소년단에 대한 반응이 궁금하다. 그리고 미국 씬에서의 흐름과 국힙이 아이돌씬과 가로지르는 부분을 계속 지켜보고 싶다.
미묘 : 다음은 하박국 대표.
하박국 : 나는 힙합 아이돌이라는 게 생기는 이유, 지디가 자신이 하고 싶은 음악을 할 수 있는 이유, 그리고 언더 힙합 MC들이 발라드 랩이란 걸 하면서 욕을 먹는 이유도, 결국 한국에 음악 팬이 없어 그렇다고 생각한다. 정작 새로운 음악이 나와야 할 언더그라운드 판은 그러한 음악을 지지하는 팬덤이 없어 타협을 해야 하고, 아이돌 그룹은 ‘우리 애들은 예뻐서 뭘 해도 되니까’ 새로운 실험을 보다 과감히 시도한다. 그래서 나는 한국에서 가장 재미있는 음악은 케이팝이라 생각한다. 반면 인디 차트의 인디 음악은 심심한 경우가 많다. 그냥 리스너라면 이것도 나름 재미있는 상황인데, 어쨌거나 나는 언더그라운드 바닥에서 먹고 살아야 하는 사람이니까 음악 팬이 많이 생겨 좀 더 음악적으로 많이 이야기 나누고 언더 힙합이든 힙합 아이돌이든 그 음악 안에서 할 수 있는 것들이 많아지면 좋겠다. #훈훈
미묘 : 대담에서는 편집했으니, 앞서 양싸께 보내는 메시지는 영상편지로 찍어서 보내주기 바란다. 다들 늦은 시간까지 고생 많았으며, 대단히 감사드린다.

By Editor

idology.kr 에디터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