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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돌x힙합 (5) [대담] 로보토미x하박국x아이돌로지 (1)

프로듀서 로보토미와 영기획 하박국 대표를 미묘와 김영대가 만났다. 한국 힙합의 태동기의 정황을 비롯해 아이돌과 힙합의 이인삼각, 방탄소년단, 갓세븐, 그리고 원타임과 지누션으로 출발한 YG 등, 아이돌x힙합의 역사와 성취에 관한 대담.

아이돌에 관해 이야기할 사람, 힙합에 관해 이야기할 사람은 많다. 그러나 아이돌과 힙합이라면 어떨까. 7월 23일 심야, 아이돌로지의 필진 미묘(파리)와 김영대(시애틀)는 두 사람과의 대담을 진행했다. 충격적인 비트메이킹과 랩으로 신비한 카리스마를 내뿜다 일렉트로닉으로 돌아선 프로듀서 로보토미, 그리고 그의 음반을 준비 중이기도 한 촉망 받는 언더그라운드 미디어이자 레이블인 영기획(YOUNG, GIFTED & WACK)의 하박국 대표가 그들이다.

미묘 : 로보토미는 어떻게 지내나?
로보토미 : 지하생활 하면서 지내고 있다. Live 8이 내 친구다. 클리핑 없는 세상에서 살고 싶다. 인생의 역작 (……) “LEMON”을 준비하고 있고, ‘레프트필드 케이팝’이라고 공수표 뿌려 놓고 후회 중이다.
미묘 : 무척 기대된다.
하박국 : 그 전에 “protoLEMON”이 곧 나온다. 음반은 다 완성되어 있는데 내가 아직 보도자료를 못 써서… 나의 근황은 근 한 달째 “protoLEMON”의 보도자료를 쓰고 있다.
로보토미 : 티저 영상 받아온지가 언젠데 아직도 안 나오나.
하박국 : 음반이 좋으면 보도자료가 절로 써지는데 음반이 안 좋으면 보도자료로 어떻게든 좋게 만들어야 하니까 ^_^ 그리고 “protoLEMON”이 안 좋아야 “LEMON”이 상대적으로 좋다는 평가를 받을 수 있기 때문에.
미묘 : 정말 어려운 쇼비즈의 세계다.
하박국 : 오늘 다룰 힙합 아이돌들만 해도 얼마나 변화무쌍하던가.

로보토미
로보토미

미묘 : 빅뱅이 있었고, 블락비가 있었고, 올해는 방탄소년단도 성장을 보였다. 박재범이나 빈지노, <쇼미더머니> 같은 애매한 경계영역도 늘어간다. 그런 시점에서 아이돌 힙합, 혹은 힙합 아이돌, 혹은 아이돌x힙합을 이야기해보는 게 오늘의 주제다.
로보토미 : 그렇다. 몇 가지 각도가 있는데. 음악적 형태로서의 힙합 – 에티튜드로서의 힙합1(반항) – 에티튜드2(간지) – 진정성 같은 것들이다.
하박국 : 힙합 아이돌이라고 하는 용어에 가장 잘 어울리는 케이스는 슈프림팀이 아닌가 하는 생각도 했다. 원래 둘은 팀이 아니었는데 기획사에서 묶어서 팀으로 만든 것이잖나.
로보토미 : 그렇다. 어떻게 보면 그게 진짜 ‘힙합 아이돌’이다. 흥미로운 부분인 게, 언더 힙합 시장에서 몇몇 랩퍼들이 팔리는 방식이 아이돌 캐릭터가 팔리는 방식이랑 겹치는 영역이 있고, 그걸 가장 잘 보여주는 부분 중 하나가 슈프림팀이다.
하박국 : 쌈디와 이센스는 그때 가장 핫했던 MC다. 언더에서라면 각자 활동해도 상관 없는데, 가요계에서는 팬덤의 규모를 늘리거나 행사 시장에서 팔리는 면에서 팀으로 활동하는 게 더 유리하니까. 기획사에서는 성격 다른 가장 핫한 둘을 묶어 하나의 그룹으로 기획을 하고, 그 후 나오는 음악 역시 가요 쪽에 어울리게 만들었다.
로보토미 : 그렇다. 그리고 그 둘은 언더에서부터 ‘실력’ 면으로도 인정받고 있었지만 캐릭터로서 소비되는 측면이 상당히 컸었다.
미묘 : 그렇다면 아이돌이 결성되는 매커니즘이 힙합에 적용된다는 느낌이다. 차이가 있다면, 백지를 데려와 색칠해주느냐, 색종이를 데려와 ‘큐레이팅’하느냐의 차이겠다. 빅뱅이 약간, YG 소속 솔로 5명이 뭉친 드림팀이란 식의 느낌을 주는데, 어쩌면 그것과도 비슷할지 모르겠다.
하박국 : 그렇다. 연습생 생활을 거쳤느냐 아니냐, 즉 초기부터 투자를 했느냐 아니냐의 차이다. 그리고 아메바컬쳐는 진짜로 (아직까지) 정체성은 힙합 레이블이니까.
로보토미 : YG는 뭐랄까 백지를 색칠할 때 인공지능 같은 걸 부여해서 색을 알아서 만들어 가게끔 하는 느낌이랄까.
하박국 : 그리고 연습생 생활이라는 게 상하관계가 분명하게 규정되는 때다. 슈프림 팀이 연습생 생활을 거쳐 나온 팀이었다면 이센이 개코 디스곡을 만들지는 못하지 않았을까.

방탄소년단 : 반항의 애티튜드와 공감의 메시지

미묘 : 우선은 아이돌→힙합의 측면에서 먼저 이야기해보자. 힙합을 도입하거나 시도하는 아이돌 중에 인상 깊게 들은 것들 있는가?
로보토미 : 요즘 친구들 중에서는 방탄소년단하고 갓세븐이 있다. 방탄소년단의 경우는 레퍼런스 냄새가 아주 짙게 나지만 최소한 레퍼런스 선정과 그것의 구현은 아주 성실히 임했고, 사실 그게 되는 사람도 드물다. 예를 들어 “2 Cool 4 Skool” 앨범을 들어보면 비트는 소위 게토 트랩이라고 불리는, 요즘 가장 많이 나오는 스타일의 랩 비트에, 가요 냄새를 진짜 최소한만 묻혀서 쓰고 있다. 랩 레퍼런스나 훅 만드는 것도 (‘We Are Bulletproof pt.2’) 타이가(Tyga)나 퓨쳐(Future) 등 요즘 잘 나가는 래퍼들의 플로우를 참고한 냄새가 강하게 난다. ‘No More Dream’ 같은 경우는 심지어 트랩+’전사의 후예’ 느낌…
하박국 : 혹시 참고가 될까 싶어 이런 걸 ↓ 만들어 왔다. 평가에 동의할지는 모르겠지만 보면서 얘기하면 좋을 듯하다.

by 하박국
by 하박국

하박국 : 결과적으로, 나오는 음악의 힙합 진정성만 보자면 방탄소년단이 최고인 듯하다.
로보토미 : 카녜의 드럼라인이나 소스를 가져다가 쓰기도 했고, 레퍼런스에 충실한데 가사 내용 레퍼런스는 또 H.O.T….
하박국 : 아예 학교 3부작이잖은가.
미묘 : 그렇다. ‘학원별곡’이 레퍼런스인가…
하박국 : 이게 10대에게는 통히는 정서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해본다. 사실 아이돌 그룹의 주 타겟층은 10대고, 힙합도 비슷하지 않은가.
로보토미 : 사실 이제 10대들도 빈지노니 스윙스니 하면서 언더 힙합 뮤지션을 쉽게 접하는 시대인데, 저런 힙합-반항 에티튜드가 아직도 소비된다는 게 그래서 놀랍다.
하박국 : 빈지노, 스윙스를 좋아하는 10대들과 방탄소년단을 좋아하는 10대들은 층이 좀 다를 듯하다.
미묘 : 힙합-반항을 좀 더 먹기 좋게 포장한 것이 아이돌이라 봐야 하지 않을까?
하박국 : 방탄소년단의 출발점은 ‘우리는 너희랑 같은 고민을 하는 10대야. 그리고 그걸 우리만의 자유의 언어 힙합으로 표현하지.’ 일 듯하다.
미묘 : 재밌다. 그게 말하자면 서태지부터의 공식 아닌가?
로보토미 : 그렇다. 정말 멀리 가면 전영록… 아 죄송하다.
미묘 : 내가 보기에 전영록-신해철-서태지까지는 ‘우리 맘 알아주는 오빠/형’이었고, 그걸 ‘같이 겪어서 아는 친구’로 끌어내린 게 H.O.T./젝스키스가 아니었나 한다.
하박국 : 애들도 대강은 알잖는가. 아이돌이란 게 기획사에서 콘셉트도 잡아주고 만들어 주는 거라는 것. 사실상 어른들이 만드는 세계라는 거다. 그래도 아이들은 여기에 판타지를 더 투영하고 싶어 한다. ‘저들이 우리의 이야기를 한다’고. 아이돌 힙합은 작사와 음악에 아이돌들이 더 많이 참여하니까, ‘우리 이야기를 더 제대로 한다’는 판타지가 입혀질 수 있는 부분이 많은 것 같다. YG에서 작사작곡 능력을 내세우는 것도, 실력이라는 포장지도 있지만, 이런 측면도 있지 않을까.
미묘 : 힙합 진정성에의 접근과 판타지 강화가 함께 가는 것이란 얘기군.

힙합의 진정성 vs 아이돌의 판타지

하박국 : 아이돌은 분명 기획사에서 만든 게 큰데, 팬들은 작은 단서 하나로 오빠들의 마음을 짐작하고 힘든 걸 이해하기도 한다. 그런데 요즘은 SNS를 통해 직접 커뮤니케이션할 수 있는 통로도 많아졌고, 게다가 그 오빠가 직접 자신의 노래를 만들고 가사를 쓴다고 하면 감정 이입하기 더 좋아지지 않겠나.
미묘 : 배경을 두어서 설득력을 높이기도 하고 말이다. 빅뱅의 ‘Dirty Cash’도 내겐 오디션 경험 수기처럼 들렸다.
로보토미 : 근데 그런 게 저연령층에게 좀 더 잘 팔리는 부분인가? 보다 보니 방탄소년단, B.A.P도 그렇고, 힙합은 아니지만 작사, 작곡을 하는 B1A4도 그렇고 다 상대적으로 저연령층 대상인 것 같다.
하박국 : 생각보다 저연령층이 아이돌을 포괄적으로 소비하더라.
미묘 : 인생을 포함하는 일종의 ‘종합 콘텐츠’로서 말인가?
김영대 : 100% 일반화할 수는 없는 것이지만 저연령일수록 판타지를 투영하는 공감도가 높다고 본다. 음악성과 정밀도를 따지는 비율도 더 적고.
미묘 : 연령에 따른 떡밥 분별력의 차이가 아닐까 싶기도 하다. 나이가 들 수록 이게 가면놀이란 걸 의식하면서 가면놀이에 ‘응해주는’ 방식으로 바뀌어가는 건 아닐까.
하박국 : 그럼 방탄소년단은 좀 더 저연령층에서, 빈지노나 스윙스는 그보다 높은 연령대에서 소비되는 걸까?
김영대 : 그 차이는 해외 팬들에게도 존재한다. 몇몇 만나본 해외 팬들을 중심으로 보면, 기획과 메시지를 ‘구분’하는 것에 저연령층일수록 무관심하다고 생각한다. 의식적으로 뭐 ‘내가 오빠들을 공감해줘야지’ 하는 게 아니라 진짜 공감이 되는 거라는 것이다. 단순히 나이라기보다는 음악을 듣는 경력? 그런데 혼자서든 힙합을 매개로 한 커뮤니티 안에서든, 나름 리스닝 경력이 올라갈수록 그 안에서 구분하려는 욕구도 좀 생기게 되고, 그런 경우를 좀 봤다.
미묘 : 차이를 알면서 무관심하다, 즉 몰라서가 아니다, 라는 것이군. 하지만 해외 팬들이 한국인들보다 나이브한 건 사실인 것 같다. 얼마 전 모 전직 아이돌의 게시판 질문 답변을 봐도 “작사 작곡 콘셉팅 다 기획사에서 해주는 거야” 하니까 멘붕하는 애들 속출하고… 우리는 사실 멤버가 했다고 해도, ‘뭐 프로듀서 손을 좀 탔을 수도 있지, 하지만 넘어간다’ 하는데 말이다. 이 문화에 덜 익숙한 사람들은 정말 몰라서 그러는 것도 있는 것 같다.
김영대 : 맞다. 산업이 그렇게 움직인다는 걸 알면 미쳤다는 반응이 속출하는데. 소셜 반응들을 보면 방탄소년단 등의 음악에 대고 외국인들끼리 “이런 건 진짜가 아니다, 한국에 진짜 힙합 있다” 이러면서 갑론을박하는 경우도 종종 본다.
미묘 : 네스호에 괴수가 있다 vs 없다 같은 것이군.
김영대 : 대개 진정성은 로컬이나 우리를 중심으로 벌어지는 거지만, 케이팝을 즐기는 외국인들에게도 그 ‘층위’가 충분히 존재한다는 거다. 하긴 뭐 우리도 메탈 들으며 그렇게 자란 것이잖은가. 다만 그 풍경이 한국인인 내 눈에 좀 낯설게 보일 뿐.
하박국 : 마술이 진짜인 줄 알고 보는 것과 쇼라는 걸 알고 보는 ‘층위’인 건가?
로보토미 : 그리고 진짜 마법사를 안다고 주장하는 층위까지?

갓세븐 : 아이돌은 힙합을 무엇으로 바라보는가

하박국 : 로보토미가 방탄과 함께 흥미롭다고 했던 갓세븐에 대한 얘기도 좀 궁금하다. 나는 제일 애매하다 싶었던 게 갓세븐이었다.
로보토미 : 갓세븐은 신기했던 게, 이게 막 ‘힙합을 써먹어야지’하고 써먹었다기보다는 순수하게 엑소를 레퍼런스 잡고 간 것 같다.
미묘 : 그런가? 어떤 의미에서?
로보토미 : 엑소의 ‘으르렁’이 없었다면 나왔을리가 없었을 거라 보는 게, 박진영은 이상하게 이런 미드템포 R&B에 관심이 없었던 걸로 기억한다. 그런데 어느날 갑자기 이런 Hip’n’B를 가지고 나왔는데, 프로덕션이 뭐 로이드나 미겔 같은 걸 참조한 것은 아니고 딱 ‘으르렁’이 생각났다.
김영대 : 나는 엑소 최근 미니앨범(“중독”)하고도 많이 유사한 느낌을 받았다.
로보토미 : ‘으르렁’이 튀어나온 건 팝시장 흐름이 EDM을 지나서 다시 블랙뮤직 쪽으로 기울었기 때문이라고 본다. SM도 사실 미드템포 R&B는 별로 한 적 없다.
하박국 : 국내에서 소몰이 쪽을 제외하면 미드템포 R&B가 타이틀곡보다는 수록곡 채우는 역할 정도로 인지되는 감이 있다.
로보토미 : 굳이 그걸 선택한것은, 블랙뮤직(힙합과 R&B는 이제 거의 구분 불가)이 팔리는 흐름을 보고 한 거다. 근데 그걸 보고 또 JYP가 그리로 가고. 여튼 JYP가 SM 좇아서 뭔가를 했는데 그게 하필이면 R&B인 게 웃겼던 게 1번, 근데 그게 꽤 유려하게 나온 게 2번, 그리고 여전히 랩이 god인 게 3번.
미묘 : 그런 거라면 굳이 ‘으르렁’을 보고 가져왔다기보다는 ‘월드 트렌드’를 보고 가져온 걸로 볼 수 있진 않나?
로보토미 : 월드 트렌드랑 ‘으르렁’이랑 아주 직접 연관이 있느냐면 또 그것도 아닌 게, 요즘 흐름이 R&B이지만 미드템포는 아니라서.
미묘 : 근데 ‘A’ 같은 곡은 꽤나 박진영스럽다는 느낌이지 않나? 난 JYP와 ‘으르렁’과 ‘Girls, Girls, Girls’를 연결하라면 미쓰에이의 ‘남자 없이 잘 살아’ 같은 게 떠오르기도 한다. 원더걸스 ‘So Hot’의 템포를 낮춘 듯한 느낌도 약간.
하박국 : 템포가 좀 빠르긴 하지만 나도 미쓰에이의 ‘Bad Girl Good Girl’도 떠오른다.
미묘 : 내가 갓세븐에게서 받은 인상은 차라리 원더걸스 중기의 남자판이란 느낌도 있었다. ‘R.E.A.L.’이나 ‘Like This’ 같은 곡도 있었고.
김영대 : 블랙뮤직이 아이돌과 연관되는 지점을 엑소가 제품으로 잘 보여준 것이다. 박진영이 블랙뮤직의 대가긴(?) 해도 그 구체적인 레시피는 몰랐을 수도 있다고 본다.
하박국 : JYP는 흑인 음악의 영향을 받기도 했고 갓세븐은 멤버들 역량도 괜찮다. 그런데 JYP 특유의, 모든 걸 가요로 바꾸는 감각 때문에 그냥 좋은 대중가요가 된다. 그런 점이 애매하다.
김영대 : 난 그게 JYP의 변별점이라 보는데, 어쨌든 미디엄이나 슬로 풍의 R&B를 가요 타이틀 정도의 대중적 호소력으로 만들어 낼 수 있는 능력이다.
로보토미 : 랩이 곡의 2/3인데 랩이 god라서 말이다. 산이 데려가서 가르치게 해놓고 뭐하는 건지. (웃음)

아이돌에게 랩이란…

미묘 : 사장님 빼곤 아무도 이해할 수 없는 ‘신비의 물질 X’가 JYP 경우는 그 랩인 걸까.
하박국 : 좋은 랩이 뭔지 박진영이 모르지는 않을 것이다. 다이나믹듀오 피쳐링 시켜서 막 칭찬하거나, 산이를 영입한 점도 그렇고.
김영대 : 근데 그게 힙합과 만나는 지점에서는 다시 애매해진다.
하박국 : 좋은 랩으로 장사를 하는 것보다, 장사를 하기에 적합한 랩이 있다고 생각하는 편이겠다.
미묘 : 앞의 얘기와도 닿지만, ‘Girls, Girls, Girls’에 “노래 가사라고 생각하지 말고 내 말 있는 그대로 믿어줘”란 부분이 나온다.
로보토미 : 그게 박진영식 랩의 핵심이 아닐까 한다. 랩이 아니라 ‘오빠가 얘기하는 것’인 부분.
김영대 : 사람들이 받아들이는 것과는 관계 없이 철저히 랩을 부속으로 생각하는 SM과, 진정성의 화신들이 수장으로 앉아 있는 YG나 JYP의 흑인음악이란 건 이미 출발이 다르겠다.
하박국 : 그러고 보니 세 기획사가 랩을 받아들이는 관점이 다 다르다.
로보토미 : 랩/힙합이 한국에 수입되면서 가요계에 많은 걸 줬는데 그중 하나가 노래 못하는 애들, 춤꾼이나 끼 있는 친구들도 데뷔할 수 있게 해준 거다. SM이 그걸 참 적극적으로 잘 써먹었다.
김영대 : 음악의 모든 디테일을 부속화하다 보면 어딘가에는 써먹을 수가 있다. 건조하지만, 역으로 보면 역할을 받을 여지가 생기는 셈이다.

충격! YG 과거 알고 보니…

미묘 : 여기서 SM 힙합 아이돌 얘기를 하면 좋겠지만 없으니까 넘어가고, YG로 가보자. 앞서 언급한 대로 사장님부터 ‘뤼일힙합’이신데…
로보토미 : 랩/힙합이 가요계에 해준 것 2번이 ‘반항’ 에티튜드인데, YG가 21세기 초에 참 잘 써먹었다. 그리고 그것에서 진정성이 빠져나갈 때쯤 대안을 내놓은 게 스왝인 것 같다.
하박국 : YG는 힙합 진정성이 정말 쩔었다. 무가지로 <바운스>를 내고 MF!, NB를 운영하고. 예전 YG 홈페이지에 있었던 “Message from YG”는 지금 봐도 “와…” 싶은 게 많다. 심지어는 CF 촬영도 철저하게 제한해서, 한번은 양현석이 직접 “우리는 CF 안 찍는데 이번 건 이미지가 잘 맞아서 찍는다” 같은 메시지를 내기도 했다. 지금은 지드래곤이 “팔로팔로미”도 하고 ‘지마켓 파티’도 부르지만.
김영대 : 본인이 힙합 (문화) 1세대라는 자긍심이 강할 거고, 그걸 늘 소속가수들에게 상기시키고 있을 거라 생각한다. 양현석이 <케이팝 스타> 나와서 늘 하는 이야기 중 내가 인상 깊은 게, “나는 신인을 볼 때 저 친구가 ‘힙합’이 있냐 없냐만을 본다”이다.
미묘 : 해외 팬들이 궁금해 한다는 힙합의 존재가 YG에 있었군.
김영대 : 저기서 힙합은 단지 음악만은 아니겠고, 광의의 ‘흑인 삘’이라는 뜻도 되겠고.
로보토미 : 뭐 ‘hustle’, ‘swag’ 이런 거겠다.
하박국 : 한국어로 ‘가오’ 정도가 적당하지 않을까.
김영대 : 그런데 이건 용감한 형제도 종종 하는 이야기다. <위대한 탄생> 심사평에서도 줄곧 했고. “다른 건 모르겠고… 힙합이 있네요~.”
하박국 : 사실 힙합 아이돌 1세대는 원타임이잖은가. 지누션은 아이돌이라 보기에 좀 애매한 부분이 있고.
김영대 : 지누션도 뭐 충분히 힙합적인 걸 다 써먹었다 본다.
미묘 : 그러고보니 96-97 시즌은, ‘가솔린’, ‘전사의 후예’, ‘컴백홈’, ‘1996 그들이 세상을 지배했을 때’… 이런 음악이 초 메이저이던 시대라니.
로보토미 : 힙합이네.
김영대 : 소위 게토랩의 전성시대군. (웃음) 미국에서 힙합이 정점을 찍을 때니. 한편 듀스는 애당초 베이스가 힙합이 아니라 테디 라일리(Teddy Riley) 류의 뉴잭스윙이었고, 처음 듣고 영향 받은 사운드도 허비 행콕의 ‘Rock It’ 같은 음악이었다고 한다. 이현도가 회상하길, 더 정통을 하고 싶어도 기획사 압력이 심했다고 한다. 타이틀 아닌 곡은 좀 제대로 테디 라일리스러운 게 많았다. 유독 타이틀곡들이 그 특유의 ‘이현도 멜로디’인데, 그게 원래부터 그랬다기보다는 나름의 적응 전략으로 가다가 본인 스타일로 굳어진 건지도 모른다.

원타임 : 아이돌과 힙합의 2인3각 시대

미묘 : 이현도 발언도 그렇고 지누션을 지금 봐도 그렇고, 힙합 하고 싶은 사람들이 시장 적응을 위해 아이돌의 모델을 도입했다고도 볼 수 있겠다. 어차피 기획사 입김 없이 데뷔가 불가능하던 시장이었고 하니.
로보토미 : 사실 아이돌과 힙합이 출발할 때는 거의 2인3각 같은 느낌이 아니었나 한다.
김영대 : 서태지의 역할이 컸다고 본다. YG의 마인드도 그렇게 출발했을 거고.
하박국 : 한국에서 기획사가 제대로 양성한 아이돌의 시초로 치는 건 역시 H.O.T. 아닌가?
미묘 : 난 유영진이 서태지의 반항 이미지와 ‘요즘 애들 음악’ 도입을 위해 ‘전사의 후예’를 만들었다고 보는데…
김영대 : 당시엔 ‘힙합이다’ 그러면 소위 정통 힙합과 뉴잭풍 R&B가 헷갈리던 시절이라, 실제 듣는 음악은 아닌데도 힙합 팬인 것 같은 느낌이 있었다.
로보토미 : 그렇다.
김영대 : 서태지 힙합 듣고 좋아했던 애들은 90년대 중반에는 바로 랩메탈로 갈아탔다. 반면 이현도야 뭐 앨범 제목으로 “완전힙합”을 내세우신 분이라 내용을 떠나 애티튜드에서 완벽히 차별화 되었다고 본다.
미묘 : 그 시절에 생겨난 어떤 전통 같은 것도 있지 않을까. 요즘 힙합 아이돌들이 각설이타령 같은 거 종종 집어넣는데, 그게 와이지의 동요 삽입이나 원타임의 ‘쾌지나칭칭’, 서태지와 아이들의 ‘하여가’ 같은 식으로 혹시 이어지지 않나 싶기도 하다.
하박국 : 드렁큰타이거가 1999년, “완전 힙합”이 2000년이다.
김영대 : 서태지의 소위 ‘랩댄스’ 이후로 드렁큰타이거까지가 암흑기다. 힙합이 대중음악도 언더도 아니던 애매한 시절이다.
하박국 : 1999년도는 “대한민국” 시리즈가 처음 나온 해 아닌가.
김영대 : 그게 소위 피시통신 동호회 시절, 다들 뭔가 하려고 준비만 하고 있던 때다. 나도 그땐 랩을 했다. 마스터플랜(클럽)이 “푸른굴 양식장”이던 시절…
하박국 : 허니 패밀리 나오고, 마스터플랜에서도 컴필레이션 음반이 나왔다. SNP**에서는 ‘저 라임도 엉망인 녀석들’ 하면서 칼을 갈고, 소울트레인**의 우지(DJ Uzi)는 MP 본진에서 마스터플랜을 디스하고.
**SNP : 나우누리 흑인음악 소모임에서 출발한 동호회 및 크루
**소울트레인 : 하이텔 흑인음악 동호회

로보토미 : “1999년 대한민국”은 고영욱(룰라), 김성수(쿨), 김진표(패닉) 등등이 참여한 괴작이었다. 여튼 그걸로 엑스틴과 허니패밀리가 수면으로 올라왔다.
미묘 : 그러니까, 1999년부터 힙합이 어떤 흐름을 타기 시작했고, 그 이전의 힙합 전조기이던 시절에, 이미 아이돌x힙합 혹은 힙합x아이돌 같은 형태들이 시도되었다고 볼 수 있겠다.

하박국 : 원타임 1집이 1998년에 나왔다. 그런데 당시 피씨통신에서는 언더그라운드 힙합을 높게 쳐주던 분위기였다. 그래서 YG 쪽은 좀 배척하고 페리 사운드도 많이 욕했다. 원타임 1집 곡을 보면 랩을 스킬풀하게 한다기보다는 알아듣기 쉽게 한다는 느낌이니까.
김영대 : 당시 원타임 1집을 받아들이는 반응은, 미국 브롱스의 래퍼들은 녹음 계약 아무도 못했는데 메인스트림에선 블론디(Blondie)가 랩 들고 나와서 최초의 래퍼가 되었을 때 같은 분위기였다.
하박국 : 그래서 내가 위에서, 기획사에서 메이드한 1세대 힙합 아이돌이 원타임이 아니냐 하는 얘기를 했던 것이다. 테디 정도는 다들 인정했는데, 송백경과 진원 같은 경우는 포지션(프로듀서, 댄서)에 따라 끼워넣은 느낌이 있었다.
김영대 : 그런데 원타임은 힙합의 진정성이란 카테고리에 크게 집착했다는 느낌은 없다. 나름 포지셔닝이 유연했던 것 같다.
로보토미 : 힙합 진정성은 패션에서 보여주는 전략이었던가 싶기도 하다. 수건도 들어주시고.
김영대 : YG 출신이라는 점에서 많은 증명이 필요 없지 않았나 싶었던 건 있다. 비록 당시의 정통이란 곧 외국이었으니, ‘정통 힙합’ 팬들에게는 인정 못 받았지만.
로보토미 : 사실 힙합 매니아들의 인정이 굳이 필요 없었던 것이다.
김영대 : 맞다. 어차피 장르 음악이란 걸 내세운 팀이 아니었으니까. 아마 당시 팬들에게는 딱히 ‘힙합’이라 받아들여지지 않았던 거 같다. 언더에선 무시한 거겠고, 보통의 가요 팬들에겐 그냥 ‘흑인음악 그룹’ 정도로. 그 흑인음악이란 게 솔리드 식의 대놓고 보컬 R&B는 아니고, 랩도 섞고, 가요 풍도 하고, 세련된 R&B도 하는. 뭐랄까 코스모폴리탄적 ‘흑형’ 느낌은 두루 다 차용하는.
하박국 : 그때 분위기는 로커스(Rawkus)가 힙합의 미래였던 시절이다. 같은 흑인음악 통신모임 내에서도 팀바랜드를 좋아하는 모 MC의 경우는 이상하다는 얘기를 들었다. 반면 YG는 시작부터 “우리는 메인스트림 힙합”이었다. ‘가오’ 있는 힙합.
로보토미 : YG가 스왝을 나중에 도입했다고 하지만, 말만 안 했다 뿐이지 사실 처음부터 갖고 있던 에티튜드 아니었나 싶다. 어쨌든 돈을 버니까. 또 그것과 별개로 스스로의 음악에 자부심과 열정이 있었다고 본다. “언더가 아니라 우리가 진짜다”, 그리고 “우리는 가요계에서 힙합을 밀어붙인다”라는 느낌. 페리 앨범도 내고 말이다.
하박국 : 멋을 부리려고 했는데 생각만큼 그 멋이라는 게 한국에서 쉽게 받아들일 만한 성질의 것은 아니었다고 생각한다. YG의 멋이란 본토의 멋이잖은가. 로컬라이징도 되지 않은.
로보토미 : 나 YG 팬이다. 언더 힙합에서 처음으로 빅뱅 샤웃아웃하고 티도 입었다.

렉시 : YG 최초의 실험?

하박국 : 렉시를 짚고 넘어가야 한다고 생각한다. 내가 생각하기에 YG에서 최초의 실험은 렉시였다.
미묘 : 원타임은 경로설정이 돼있는 상태에서 나온 결과물이고, “되나 한번 해보자” 한 것은 렉시가 처음이었다?
김영대 : 원타임은 킵식스의 수정 보완작 아닌가? (웃음)
하박국 : 최초로 YG에서 일렉트로-합으로 나온 게 렉시 아닌가. 원타임이나 빅뱅은 팀인데 렉시는 솔로고, 센 언니 이미지는 좋은데 실력 어필은 애매했다. 근데 싸이가 만든 ‘애송이’는 어마어마하게 떠버렸다. ‘애송이’가 그렇게 뜰 줄은 YG도 몰랐을 듯하다.
미묘 : 그게 어떤 ‘가요적인’ 타협점이었던 건 아닐까?
하박국 : 지금 렉시 1집 피쳐링 진 보니까 휘성, 빅마마, 거미, 싸이다. 당시 YG에서는 엠보트(M-Boat) 라인 + 싸이인 건데, 2집은 YG 언더그라운드에 있던 스토니스컹크도 피쳐링 했다. 그러고보면 렉시는 원래 ‘YG 순혈’이 아니라 윤희중 쪽이다.
김영대 : 1999년이 뭔가 힙합 쪽으로 이상한 걸 다 해보던 시점 같다.
로보토미 : 우리 빅뱅 얘기 언제하나? 내가 빅뱅 팬이라서.
하박국 : 빅뱅의 히트곡이 ‘거짓말’이고 용감한 형제 곡인데 YG에서 이런 곡이 처음 나온 게 렉시의 ‘하늘 위로’니까 꺼내봤다.
김영대 : 렉시는 미씨 엘리엇(Missy Elliott)과 릴킴(Lil’ Kim)을 뭔가 뒤섞은 느낌이었다.
로보토미 : 힙합의 에티튜드만 남겨두고, 음악은 힙합을 버리려는 시도라고 해야 하나? 근데 또 버린 것 같지는 않고…

로보토미가 간절히 기다리는 빅뱅 이야기는 2편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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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dology.kr 에디터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