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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포트 : 슬픔의 케이팝 파티 ④ 필진 대담

‘그래서 슬케파 그게 뭔데?!’라는 의문에서 시작하는 ⟨슬픔의 케이팝 파티⟩에 대한 관점들. SMP와 ‘숨듣명’, 클럽 문화와 팬덤 문화, 케이팝과 ‘국힙’까지. ‘슬케파’에 참석했던 아이돌로지 필진이 의미를 짚어본다.

‘그래서 슬케파 그게 뭔데?!’

2018년 10월, 〈슬픔의 케이팝 파티〉라는 수상한 제목의 파티가 열렸다. 폭발적인 호응 속에 이어지는 이 기획을 아이돌로지가 들여다 보았다. 지난 5월 현대카드 언더스테이지에서 열린 〈슬픔의 케이팝 파티〉 참석 이후, 아이돌로지 필진 마노, 스큅, 심댱, 하루살이가 모여 이 행사의 인상적인 대목들과 의의를 짚어 보았다.

마노: 우선은 다들 수고 많으셨다.

스큅: 장렬히 빠개지다 왔다. 월요일 아침에 침대 밖으로 발 딛는 순간 종아리 아파서 주저앉았다.

마노: 진심 죽다 살아났다. (웃음)

‘그래서 슬케파 그게 뭔데?!’

마노: 우선은 각자 느낀 점을 자유롭게 이야기해보면 좋겠다. 스큅은 ⟨슬픔의 케이팝 파티⟩(이하 ‘슬케파’)라는 이벤트가 처음이셨던 것으로 알고 있는데, 소감이 어땠나.

스큅: 케이팝애티튜드에서 주최한 ⟨아이돌 케이팝 디제이 선수권 대회⟩(이하 ‘아디대’)라는 비교적 소규모의 케이팝 파티에 참여한 적은 있지만, 아시는대로 슬케파는 처음이다. 뭐랄까, 슬케파가 좀 더 ‘찐’으로 받아들여지는 분위기여서인지 관객들도 정말 이를 갈고 온 듯한 느낌이 있었고, 그래서 개인적으로 이전의 슬케파가 궁금해지기도 했다.

마노: 비장미가 엄청 느껴지긴 했다. (웃음) 나는 1, 2회 전부 참전했었는데, 당시는 그 정도까지는 아니었던 것 같다.

스큅: 확실히 현대카드가 주최를 맡으면서 판이 커진 듯 하다. 단순 장소 확대를 넘어서.

마노: 둘 다 장소도 그렇고 상대적으로 소규모였던 데다, 약간 다들 ‘즐파티~’ 하는 분위기였던 거 같긴 하다. 2회는 1회와는 또 조금 다른 분위기였지만. 아마 주최 측도 이렇게 판이 커질 줄은 몰랐을 거라고 본다. 처음에는 계정 이름이 ‘슬케파’니까 ‘그럼 진짜로 파티를 열고 도시전설로 남겨보자’ 정도였을 텐데. 1, 2회를 놓치고서 ‘그래서 슬케파 그게 대체 뭔데~!’ 하며 모인 관객들의 기대치가 집중되었다는 느낌도 들었다.

심댱: 2회 때 참석했었는데 확실히 느낌이 다르긴 했다.

마노: 1, 2회 베뉴는 모두 홍대에 위치한 ‘명월관’이라는 클럽이었고, 여기가 많아야 200명 안팎으로 수용 가능하다고 들었다. 그런데 그게 갑자기 4~500명 수용 가능한 규모가 되어버린 거다. 거기에 현대카드라는 자본까지.

스큅: 이번 슬케파가 이전의 슬케파와 달랐던 점은 커진 판과 커진 기대치로 인한 기대 이상의 폭발적인 반응과 화력인 셈인가.

마노: 그런 셈이다. 그런데 그 폭발적인 반응의 반작용이랄까, 부작용도 상당히 있었다고 본다. 이건 조금 나중에 이야기하기로 하고.

스큅: 나도 그 부분에 대해서 할 이야기가 많다.

마노: 하루살이도 이번 슬케파가 처음이었나.

하루살이: 아예 케이팝 파티가 처음이었다. 아무래도 댄스팝과는 거리감이 좀 있다보니.

마노: 그러다가 어떻게 슬케파를 가고 싶다고 생각하셨는지 궁금하다.

하루살이: 일단 트위터에서 화제였던 게 크다. ‘그래서 그게 뭔데?!’ 싶은. (웃음)

스큅: “아 그래서 대체 뭔데~?” 해서 오신 분이 바로 여기 있었네.

마노: 뭐랄까, ‘슬케파 하는 날=트위터 대명절’ 같은 느낌이긴 하다.

스큅: 정말로 대명절이었던 게 전국 각지에서 오셨더라. 슬케파 하나 참전하려고.

슬픔의 케이팝 파티

심댱: 디제이인 넷갈라는 ‘5월의 퀴퍼(퀴어퍼레이드)’ 같다고 하기도 했다.

마노: 실제로 참가해보니까 어땠나.

하루살이: 일단 확실히 재미는 있었다. 다 같이 소란하게 즐기는 분위기에 흥이 안 나긴 어렵지 않나. SMP를 이렇게 즐겨본 것도 거의 처음이었고. 전혀 모르는 곡도 분위기에 휩쓸려 즐길 수 있다고 할까. 중간중간 체력이 달려서 집중력이 좀 흐트러지기도 했지만. (웃음)

스큅: 5시간 스탠딩 공연이 보통 일은 아니다.

마노: 그것도 가만 서서 보는 것도 아니고.

스큅: 그런데도 다들 거의 사명감을 가지고 즐기시더라. ‘가면 오지 않는다!’는 일념 하에.

마노: 슬케파의 모토가 ‘갔어 오지 않아’기도 하고. 그래서 1회도 ‘갔어 오지 않아’를 표방했었는데, 그것이 번복 되고, 또 번복 되고…

하루살이: 그것이 바로 케이팝 아니겠나. (웃음)

광장으로 나온 ‘숨듣명’

마노: 현대카드와 손을 잡고 개최한다는 사실이 발표되고 직후에 좋은 쪽으로나 나쁜 쪽으로나 말이 많았던 거로 안다. 1일 차 토크 세션 진행과 더불어 2일 차 디제잉을 맡기도 한 음악기획자 조한나(manna)도 말했지만 이런 류의 ‘케이팝을 집단으로 광장에서 즐기는 문화’에 대한 갈증과 수요를 현대카드가 영리하게 읽었다고 생각하는 편이다.

스큅: 맞다. 각종 케이팝에 ‘숨듣명’이라는 이름이 괜히 붙은 게 아니다. 분명 다들 듣는 명곡인데 왠지 숨어서 들어야 할 것 같은 그런 곡들을 까놓고 광장에서 즐기는 자리라니.

심댱: 대체 누가 ‘초특가 야놀자’를 다 함께 부르는 자리를 만들 수 있을까 싶다.

마노: (폭소) 요한 일렉트릭 바흐(J.E.B, 이하 ‘요일바’)의 매시업 트랙 ‘생율 Bomb’을 다 같이 떼창하는 모먼트도 있었다.

하루살이: ‘썬연료’도 센세이셔널했다.

스큅: 사실 외국은 오히려 이런 자리가 훨씬 많지 않나. 랜덤플레이 댄스 행사도 꽤나 자주 열리고, 일본도 이런 파티가 몇 개씩이나 된다고 들었고.

마노: 맞다. 개인적으로 도쿄에서 개최되는 케이팝 파티 ‘Todak Todakk’에 다녀온 적도 있다.

스큅: 이번에 슬케파에서 디제잉을 한 에리카(e_e_li_c_a)가 주최하는 파티로 알고 있다.

심댱: 랜덤 플레이 댄스가 무엇인지 설명을 부탁드린다.

스큅: 쉽게 말해 ⟨주간 아이돌⟩의 랜덤 플레이 댄스 코너를 차용한 게릴라성 이벤트다. 케이콘에서 개최하기 시작했는데, 반응이 폭발적이어서 세계 각지 케이팝 팬들이 자발적으로 랜덤 플레이 댄스 행사를 열고 있다. 한국에는 최근에야 유튜버 ‘고퇴경’을 필두로 하여 랜덤 플레이 이벤트가 역수입된 상황이고.

마노: 아이러니하게도 해외가 이런 ‘광장에서 즐기는 케이팝 문화’가 잘 되어 있다는 생각이 든다. ‘케이팝 댄스 퍼블릭 챌린지’라든가.

스큅: 한동안 랜덤 플레이 댄스 영상을 찾아보면서, ‘저런 게 왜 정작 한국에서는 안 열리지?’라는 의문을 품었었다.

마노: 한국은 길거리 어느 곳에서도 케이팝을 들을 수 있는 반면, 이렇게 ‘다 같이 즐기는’ 문화에는 좀 인색하지 않았나 하는 생각이 새삼 들기도 한다. 그러니까 ‘숨듣명’ 같은 말이 다 나오는 거고. 몰래 숨어서 듣다가 (천상지희 그레이스-다나&선데이의) ‘나 좀 봐줘’ 같은 노래를 다 같이 떼창할 수 있는 이벤트가 있다고 하니 득달같이 달려가는 걸 거고. (웃음)

스큅: (웃음) ‘나 좀 봐줘’는 길거리 매장에서도 차마 틀지 못할 곡이니까.

심댱: 한국에서의 케이팝은 아티스트가 중심이 되어 있다는 생각이 든다. ‘걸어 다니는 중소기업’이니 ‘글로벌 슈퍼스타’ 같은. 팬덤에 주목할 수 있는 행사는 이전에도 있었겠지만, 가시화가 된 첫 번째 케이스가 슬케파가 아닌가 싶기도 하다.

마노: 슬케파가 케이팝 파티의 최초는 아니지만, 최초의 성공적인 사례인 것은 사실이다.

스큅: 일전에 엑소 팬덤에서도 비슷한 성격의 파티를 했다고 들었다. 그런데 이게 특정 아티스트 팬덤을 벗어나 범-케이팝으로 확산된, 이 정도 규모의 행사는 분명 처음이 아니었을까 싶다.

마노: ‘케이팝애티튜드’의 케이팝 파티나 아이돌로지의 ‘카라 나잇’ 등도 있긴 했다. 그러나 이렇게까지 규모가 크면서 성공적이었던 케이팝 행사는 아마 없었지 않나 싶다. 둘 다 비교적 소규모였으니까. 그러고 보니 나는 둘 다 참석했다. (웃음)

스큅: 보통 ‘고인물’이 아니다. (웃음)

마노: 생각해보니 ‘빠순이’는 바꿔 말하면 케이팝 시장의 소비자들인데, 그 소비자들을 너무 후려쳐오지 않았나 하는 생각도 든다.

스큅: 동의한다. 이런 노래들이 ‘숨듣명’이 된 데에는 ‘빠순이’에 대한 낙인의 영향도 없지 않았을 것이다.

마노: 요즘이야 많이 달라졌지만, 이전까지만 해도 어디 가서 케이팝 듣는다고 당당하게 이야기하기 힘들었던 게 사실이니까.

하루살이: 김윤하와 조한나의 11일 토크 1부의 내용과도 연결되는 것 같다. ‘아이돌팝이 대중음악을 흐려놓는다’는 인식. (웃음)

스큅: 90년대부터 끊이지 않는다던 그 얘기. (웃음)

마노: ‘가요계를 더럽힌 댄스 음악’. (웃음)

스큅: 90년대부터 현재까지 한국 댄스팝의 역사를 빠르게 훑는 기획이었는데, 90년대부터 그러한 수사가 나왔다는 걸 보면 ‘케이팝’이란 용어가 있기 전부터도 댄스팝에 대한 낙인이 강력하게 작용해왔고, 그게 현재의 ‘숨듣명’이라는 말로 이어지는 것이라 생각한다. 그래도 90년대의 댄스가요 같은 경우 ‘토토가’를 필두로 양지에 끌어올려졌는데, 기성세대가 아닌 현세대의 케이팝은 여전히 ‘숨듣명’의 자리에 남아있고.

마노: 케이팝이 클럽에서 울려퍼지기 시작한 것도 생각 외로 얼마 안 되었다고 알고 있다. 일전에 조한나가 멜론에 기고한 기획 기사(“케이팝 in the 클럽”)를 읽고 알게 된 사실이다. 사실 한국이 클럽 문화에 있어서는 뭐랄까, 정말 납작하고 나쁘게 얘기하자면 ‘후진국’이라고 생각한다. 클럽은 사실 음악 듣고 춤추러 가는 곳인데 특히 한국에서는 ‘수작질’ 하는 곳으로 전락해버린 지 너무 오래지 않나. 작금의 ‘버닝썬 게이트’로 오면 심지어 클럽이 알고 보니 온갖 성범죄의 온상이라는 것을 모두가 알게 되어버리기도 했고. 나만 해도 홍대 클럽에서 가끔 케이팝 나오는 맛에 친구들이랑 같이 가곤 했었는데, 몇 번 불쾌한 일을 겪고 나니 안 가게 되더라. 슬케파 직후 게재된 경향신문의 리포트에도 있었던 말이고 다들 하는 이야기지만, 역시 가장 큰 것은 ‘안전하게 케이팝을 즐길 수 있는 클럽 문화’에 대한 갈증이 다들 있었다는 것이고, 그것을 슬케파가 적절히 파고들었던 것이 아닌가 싶다.

스큅: 동감한다. 최근 들어 클럽에서도 케이팝을 흔하게 들을 수 있게 되었지만, ‘클린하게’, ‘안전하게’ 케이팝을 들을 수 있는 공간은 정말 없었던 것 같다. 그러니까 방구석에서만 듣게 되는 거지.

심댱: 덕후에게는 안방 아니면 콘서트인 거다. 물론 아티스트가 없으면 방구석이지만. 아티스트 없이도 즐길 수 있다는 부분이 슬케파의 가장 조명할 만한 부분이라고 해야 할까.

마노: 분명 다 같이 모여서 소리도 지르고 떼창도 하고 해야만 해소되는 무언가가 있는 건 사실이다. 그게 자꾸만 팬들을 슬케파에 모이게 한다고 생각하고.

스큅: 케이팝을 즐기는 제3의 길!

마노: ‘숨듣명을 숨어서 듣지 않아도 된다! 나는 혼자가 아니야!’라는 느슨한 연대 의식도 작용하는 것이 아닌가 싶은 생각도 든다.

스큅: 본래 케이팝 씬이 ‘덕질’이라는 양태로, 다소 수동적인 포맷으로밖에 향유가 이루어지지 않았는데, 케이팝을 능동적으로 향유할 수 있는 길이 뚫린 느낌이다.

마노: 그렇다. ‘원웨이티켓’이 아니게 된 거지. (웃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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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MP가 남기고 간 것들’

스큅: 김윤하와 조한나의 대담으로 돌아오자면, ‘SMP가 남기고 간 것들’이라는 슬라이드가 있지 않았나. 나 같은 경우 ‘숨듣명’, 슬케팝의 코어에 SMP가 자리해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마노: 완전히 동감한다. (웃음) 그래서 일요일 헤드라이너였던 m3iji의 세트에 반응이 정말 어마어마했다.

스큅: ‘슴덕’이 아니더라도, SMP 특유의 터무니없고 뻔뻔하고 비장한 혼종적 성격이 케이팝의, ‘숨듣명’의 중추에 자리해있다는 생각이 든다. 그래서 외부로부터의 낙인도 있었지만 우리 스스로도 이게 얼마나 터무니없이 괴상한 혼종인지 인지하고 있기 때문에 알아서 숨어서 듣고 있던 것 같다는 생각도 들고. 가장 대표적인 곡이 ‘나 좀 봐줘’.

마노: 아니나 다를까 사전에 공개된 m3iji의 대표곡 중 하나가 ‘나 좀 봐줘’ 였다.

“내가 그들에게 빚진 만큼 돌려주어야 한다는 생각”

심댱: SM에 국한하지 않더라도 팬이 바로 케이팝의 원동력이자 유산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마노: 케이팝도 산업이니까. 소비자 없이는 절대 굴러갈 수 없다. 그러한 면에서 2일 차 1부 토크 세션에서 있었던 정세랑 작가 말에 대해서도 얘기를 하고 싶다. 요는 여러분이 아티스트 편에 있어주어야 이 산업이 바뀔 수 있고 아티스트들이 하고 싶은 것을 할 수 있다는 말이었다. 산업의 원동력으로서 소비자들이 어떻게 소비해야 하는지를 가장 잘 역설한 순간이었다고 생각하고.

스큅: ‘내가 그들에게 빚진 만큼 돌려주어야 한다는 생각을 가지고 있다’는 말도 했다.

마노: 그 말 정말 좋았다. 나도 항상 하는 생각이라서.

스큅: 자본과 많이 결합한 산업일수록 아티스트가 자신의 생각을 관철시키기가 정말 어렵다는 걸 최근 들어 절감한다는 요지였던 것으로 기억한다. 케이팝 씬 가운데서 자신의 생각을 관철시키는 아티스트들을 지지하고 그들의 편이 되어주어야 한다는.

마노: 그래서인지 요즘 케이팝 시장이 조금씩이지만 변하고 있다는 걸 느낄 때 뿌듯하고 뭉클해지는 것 같다. 슬케파 역시 그런 변화의 한 부분이자 소비자들의 적극적인 의견 표출의 장이라고 생각할 수 있지 않을까 싶고. 온라인 반응 중에 ‘음악 틀어주는 시위 현장 같다’는 말도 있었다. (웃음)

스큅: (웃음) 종교 집회 같다는 말도 있었고.

심댱: 부흥회이긴 하지.

마노: ‘5월의 퀴퍼’, 케이팝 부흥회, 케이팝 궐기대회… (웃음)

하루살이: 그러고 보니 ‘5월의 퀴퍼’에 대해 이야기하고 싶은 게 있다. ‘케이팝이 퀴어 친화적인 장르인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혹은 퀴어가 케이팝 친화적인 건가.

마노: 아이돌로지에도 관련 기사가 있고, 작년에 퀴어 축제를 가서 봤을 때도 케이팝에 대한 반응이 뜨겁긴 했으니 퀴어가 케이팝 친화적인 쪽이 맞긴 할 거 같다.

하루살이: 토크 때 ‘케이팝은 개방이다’라는 이야기가 있었는데, 그 부분도 연결되는 것 같다.

스큅: 맞다. 케이팝만큼 수용적인 음악 씬도 없다고 했던 거로 기억한다. 실제로 해외에서 케이팝을 이야기할 때에도 혼종성을 중요한 특성으로 언급하기도 하고.

클럽 문화와 팬덤 문화의 충돌

스큅: 이쯤 해서 이번 슬케파에 아쉬웠던 점 내지는 한계점 이야기를 해야 할 것 같다. 우선 (특히 2일 차에) 조금 얘기가 많지 않았나. 관객들의 ‘사명감’이 사실 범-케이팝의 향유를 향했던 건 아니었다. 지독하고 본질적인 질문이지만, 계속해서 들었던 질문이 ‘(슬픔의) 케이팝’이란 뭘까? 였다. 관객들이 기대했던 슬케팝과 주최 측에서 준비한 슬케팝 사이 묘한 온도차가 있었다는 생각이 들고.

마노: 못되게 얘기하자면 ‘관객들이 기대했던 슬케팝=본인이 듣고 싶은 슬케팝’이라고 생각한다.

스큅: 동감한다. 그것은 대개 본인의 본진 그룹과 연관되어 있었고.

마노: 검색해보니 많이 얘기하는 게 ‘○○가 안 나오다니 진짜 슬케파네’라고 하는 거였다. 사실 어느 날은 나왔고 다른 날은 안 나왔을 뿐인 경우도 있었는데. (쓴웃음)

스큅: 물론 그러한 바람 자체는 자연스러운 것이라 생각하지만, 조금 가혹할 정도로 의사표출을 하는 경우도 있었다.

마노: 아는 노래 나오면 신나고 모르는 노래 나오면 낯선 거야 어떻게 보면 당연한 거지만, 그렇다 치더라도 일부 관객들 반응은 좀 닫혀있었다는 생각이 어쩔 수 없이 들긴 한다.

스큅: 특히 주석, 기리보이, 김하온 등 힙합 아티스트들의 곡들이 나왔을 때 반응이 상당히 싸늘했었다. ‘슬케파 맞냐’는 얘기가 나올 정도로.

마노: 싸늘한 정도가 아니라 정말 잔인했다. 결국 이게 케이팝의 범주에 대한 각자의 이해 및 해석과, 클럽 문화와 팬덤 문화 간의 일종의 충돌이 원인이지 않았나 싶다.v

케이팝과 ‘국힙’

스큅: 나는 사실 노래들 자체만 놓고 보면 (2일 차에 m3iji가 튼) ‘비밀번호 486’이 통상적인 케이팝의 형태에서 가장 동떨어진 곡이었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반응은 가장 폭발적이었다.

심댱: 슬케파에 온 케이팝애티튜드의 띠오리아는, 가장 큰 호응을 이끌어낸 건 07년대 이후의 케이팝(특히 SMP)이었다고 말씀하신 바 있다. ‘비밀번호 486’은 관객 세대를 관통하는 곡이기 때문에 반응이 좋았던 것 같다.

스큅: 동의한다. 그래서 어찌 보면 ‘비밀번호 486’이 역으로 슬케파의 주된 향유자가 누구인지를 잘 드러내 주는 지표 같기도 하다. 90년대 초중반생의, 07년대 이후 소위 ‘2세대 아이돌’의 시대에 학창 시절을 보낸 여성.

심댱: 그게 바로 나라서 나는 즐거웠다. (웃음)

스큅: (여성이라는 조건에는 위배되지만) 그래서 나도 즐거웠다. ‘비밀번호 486’ 제일 열심히 따라부른 사람 나야 나…

심댱: 그렇다면 케이팝과 힙합의 접점이 아주 없는 건 아닌데, ‘국힙’에 반응이 적었던 이유는 뭘까?

스큅: 케이팝의 대척점에 놓인 장르가 ‘국힙’이 아닌가 싶기도 하다. 케이팝에서도 힙합을 적극 차용하기에 접점은 작지 않은 편이고, 그래서 ‘비밀번호 486’보다 음악적 코드는 더 맞을지 모르지만, 발화자와 메시지 면에서 케이팝과 완전히 반대되지 않는가. ‘국힙’은 남성 발화자의 자기과시가 주를 이루는 데다 심지어 여성이 자기과시의 수단으로 동원되기까지 하는 곳이고. 그래서 남성 지배적 ‘국힙’ 일반에 대한 생리적인(?) 거부반응이 표출됐던 게 아닌가 싶기도.

심댱: ‘생리적인 거부반응’이라 함은?

스큅: 뭐랄까. 개별곡에 대한 불만보다는 댄스가요도 아이돌팝도 아닌 ‘국힙’이 플레이되는 것에 대한 즉각적인 거부반응이 느껴졌다. 결국 ‘슬케파’라는 바운더리를 형성하는 데에는 어떠한 음악적 특성보다도 감수성이 핵심적인 역할을 한 듯 하다(너무 당연한 소리긴 하지만.) 그리고 이 감수성은 앞서 말했듯 ‘2세대 아이돌’ 시절을 보낸 이들 간의 공감대에서 나오고. “SMP가 남기고 간” 바로 그들.

노동요 = 숨듣명 = 슬케팝?

스큅: 그리고 사실 토요일 세트리스트에도 관객 다수가 모르는 곡이 꽤나 포함되어있었는데, 이때는 그런 불만이 많지 않았다.

마노: 모르는 곡이어도 ‘노동요’라는 형태로 풀어냈기에 상대적으로 거부감이 적었던 걸까. 아무리 모르는 곡이라고 해도 미친 듯이 빠르게 틀면… (웃음)

스큅: 띠오리아의 말을 다시금 불러오자면, 반응이 뜨거웠던 곡은 결국 ‘포 온 더 플로어 (four on the floor)’로 찍어대는, 소위 ‘빠개는’ 곡들이었다고 하더라. 이 ‘빠갠다’는 게 바로 관객들이 허용하는, 모르는 케이팝의 범주가 아니었나.

마노: 내가 첫날 디제잉을 했을 때, 오프닝이다 보니 소위 ‘빠개는’ 음악을 틀 수 없었는데 ‘안 빠개는’ ‘모르는’ 곡에 대한 반응을 몸소 느끼니 식은땀이 막 나더라.

스큅: ‘슬케팝=빠개는 곡인가?’ 하는 의문도 들었고. 사실 더 나아가 ‘슬케팝=숨듣명’이라고 생각지 않는다. 개인적으로는. 양일 걸쳐 슬케파를 완성했던 건 f(x)의 곡들이라 생각하는데.

마노: f(x)는 다들 대놓고 듣지 않나.

스큅: 왜냐하면 f(x)는 존재 자체가 슬픔이니까…

(단체 오열)

스큅: 화제성이 떨어져서, 혹은 케이팝 전반에 대한 ‘숨듣명’이라는 낙인 때문에 조명받지 못한 불운의 명곡도 슬케팝이 될 수 있는 거고. 그런 슬케팝을 트신 것이 에리카였다고 생각한다. 결국 ‘숨듣명’은 슬케팝의 부분집합인데 관객들의 기대치는 대개 (노동요를 위시해 발굴된) ‘숨듣명’에 초점이 맞춰져 있었던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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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마른 사람들이 늘어가는데 우물은 하나 뿐

스큅: 결국 이 모든 문제의 근원은 슬케파가 홀로 너무 많은 것을 떠안은 데에 있었다고 본다. 이런 부류의 행사가 더 다원화되어야 한다.

마노: 사실 주최자인 복길도 인터뷰를 통해서 그런 말을 했었다. 슬케파 파생 트위터 계정이 우후죽순으로 생겼듯이 파생 파티가 생기는 것도 환영이라고.

스큅: 이 정도로 메이저하게 길을 개척한 건 슬케파니까. 사람들이 저마다의 각기 다른 기대를 모두 슬케파에 투영하고 있었다.

마노: 슬케파는 혼자 너무 큰 짐을 떠안고 있다. 앞으로 슬케파에 자극받은 파생 파티들이 탄생할 것이고, 또 그래야 한다. 도쿄만 해도 결과 분위기가 다른 여러 케이팝 파티가 있다는데.

스큅: 노동요-숨듣명 식의 케이팝만 튼다던가 하는 테마별 파티도 있을 수 있겠고, (이미 시도한 곳도 있지만) 팬덤별 파티나 기획사별 파티가 있을 수도 있겠다.

마노: 앞서 말한 ‘카라 나잇’도 그 일환이었고, NCT 팬들이 주축이 되어서 진행한 파티도 있었다. 확실한 것은, 그런 향유 문화에 대한 근본적인 갈증은 언제나 있고 결국 그 갈증을 해결하기 위해 우물을 파는 사람들이 점점 늘어날 것이다. 목마른 사람들은 점점 늘어나는데 우물이 하나뿐이면 말이 안 되지 않나. 그렇게 늘어난 우물이 조금이라도 이 산업이 밝고 건강하게 바뀌는데 기여하지 않을까 하는 낙관론적인 이야기를 덧붙여본다. 물론 파티가 아무리 늘어나도 전부 ‘슬케파’이길 바란다면 이 역시 썩 바람직하진 않겠다.

심댱: 이제는 팬덤이 조금 더 적극적으로 개척해야 한다는 게 결론이 되는 걸까?

스큅: 꼭 특정 아티스트의 팬덤이 아니더라도 되지 않을까. 이번만 해도 케이팝 전반을 즐기는 사람들이 분명 있었다. 물론 주도적인 역할을 하는 건 결국 코어 팬덤(경험이 있는 사람들)이 될 것 같긴 하지만. 여하튼 다양한 시도가 이곳저곳에서 일어났으면 좋겠고, 일어날 것 같다.

마노: 역시나 ‘다양성’으로 귀결된다.

스큅: 이번 슬케파에도 다양성의 미덕이 분명 있긴 했다. 애초에 언제 또 이렇게 갖가지 응원봉들이 한 관객석에서 어우러질 수 있겠는가. 우주소녀 ‘부탁해’가 흘러나올 때 들고 있던 응원봉을 불문하고 모두가 탄식하던 광경을 잊지 못한다. 물론 포용적 태도는 여전히 숙제로 남아있다.

마노: 이벤트 간은 물론 이벤트 내 플레이리스트의 다양성 역시 중요하다. 이미 다양한 음악을 틀기는 했지만, 난 솔직히 좀 더 다양해도 될 것 같았다. 생각해보면 케이팝 자체가 다양성을 빙자한 혼종이지 않은가. 우리 좀 더 관대해집시다 여러분(메아리).

스큅: 디제이가 아는, 원하는 곡 틀면 분명 신나지만, 조금 더 열린 마음을 가졌으면 하는 바람이다. 퍼스널 슬케팝 리스트에 몇 곡 더 추가해갈 수 있으면 얼마나 좋은가.

심댱: 나도 덕분에 좋은 곡과 시선을 얻었다.

마노: 디제이는 단순히 음악을 틀기만 하는 게 아니라 음악을 큐레이션 해서 들려주는 일도 하는 거니까. 그래서 좋은 곡 알게 되어 감사하다는 반응이 개인적으로 가장 기뻤다. 결국 클럽 문화와 팬덤 문화 양자에 대해 서로 이해하고 있어야 앞으로 이런 행사가 지속적으로 열릴 수 있지 않을까.

스큅: 이번 슬케파의 아쉬운 점은 결국 클럽 문화와 팬덤 문화의 충돌에서 빚어졌고 앞으로 이러한 복잡한 니즈를 헤아려가며 다양한 파티가 기획되어야 할 것이다, 정도로 정리할 수 있을까.

마노: 적절한 총평인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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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국 슬케파만큼 작금의 케이팝 씬 흐름을 잘 짚어주는 이벤트가 또 있나 싶다”

심댱: 이번 참여진이 여성 위주였다는 것도 짚어볼 만한 지점이다.

마노: 그렇다. 기획진은 전부 여성이었고, 디제이도 8할이 여성이었다. 게스트도 전원 여성!

스큅: 게스트와 함께 진행했던 코너도 각계각층 여성의 플레이리스트를 짚어보는 것이었다. ‘나의 친구들’과 ‘나의 영웅들’을 주제로.

마노: 결국 슬케파만큼 작금의 케이팝 씬 흐름을 잘 짚어주는 이벤트가 또 있나 싶다. 그래서 다들 슬케파에 기대를 하는 것도 있겠고. 슬케파에 케이팝씬의 흐름이 전부 다 들어 있어서?

심댱: 그래서 역시 ‘올콘’이 옳았다는 결론.

마노: (웃음) 가면 오지 않는다!

심댱: 개인적으로 전체 일정을 따라가야 슬케파의 그림이 더 잘 보인다고 생각했다.

하루살이: 역시 일요일도 갔어야… (후회공)

스큅: 그러한 면에서 ‘케이펄스’라는 크루에서 파티를 열고 있던데, 가보는 게 어떠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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