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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돌 코드 : 퀴어도 아이돌을 좋아해

지난 28일 서울시청 앞 퀴어문화축제에선 많은 아이돌 곡이 들려왔다. 퀴어도 아이돌을 좋아한다. 아이돌은 대체로 모두에게 행복을 주는 존재니까.

지난 28일, 시청 앞 서울 광장으로 나섰다. 퀴어문화축제 중 무대행사와 부스행사, 퍼레이드가 있었다. 시청 앞은 많은 사람으로 가득했고 부스 행사도 즐거웠다. 예쁜 게 워낙 많아서 돈을 펑펑 쓰기도 했다. 어느덧 유명해진 마크 리퍼트 주한 미국대사도 봤고, 홍석천, 김조광수부터 트위터 스타들(?)까지 많은 사람을 봤다. 퀴어 친구들도 한 자리에서 만날 수 있었고, 여러모로 행복한 시간이었다.

그러한 행복함을 키워준 것은 역시 신나는 행사였다. 덕수궁 쪽 광장 정문 방향과 구 시청 자리에서 기독교 단체가 반대시위를 하고 있었는데, 북소리나 구호 외침이 생각보다 신나는 바람에 많은 사람이 그 근처에서 놀기도 했다. 문화축제 무대 행사도 워낙 알차고 즐거웠으며 프로의 모습이 보였기에 보는 이들도 더욱 즐겁게 맞이하지 않았나 싶다.

반대시위는 이런 패러티를 낳기도 했다. by 이준행

이러한 행사에는 역시 음악이 빠질 수 없다. 무대나 퍼레이드에서는 다양한 음악이 흘러나왔다. 비욘세(Beyoncé)의 ‘Crazy In Love’, 레이디 가가(Lady Gaga)의 ‘Born This Way’부터 브루노 마스(Bruno Mars)의 ‘Uptown Funk’, 엄정화의 ‘배반의 장미’ 등 다양한 음악을 접할 수 있었다. 개중에는 아이돌 음악도 포함돼 있어서, 씨스타의 ‘Give It To Me’, ‘Lovin’ U’, 보아의 ‘Kiss My Lips’, 엑소의 ‘으르렁’, 레드벨벳의 ‘Ice Cream Cake’, 가인의 ‘피어나’, ‘Paradise Lost’, 현아의 ‘빨개요’, 소녀시대의 ‘다시 만난 세계’ 등 꽤 많은 곡이 흘러나왔다. 덕분에 즐겁게 따라 부르기도 했다.

아이돌은 이성애중심주의로 보일 수 있는데, 이들의 곡을 퀴어퍼레이드 안에서 즐기는 것은 재미있는 일이다. 단순하게 생각하면 신나는 분위기 자체를 즐기는 것이기도 하고, 워낙 모두가 좋아하는 유명한 노래이니 쓰는 것일 수도 있다. 하지만 이는 동시에 전복의 장면이자 또 다른 재현의 순간이기도 하다. 아이돌 음악에서 의미를 찾거나 다른 의미로 받아들이기도 하는 것이다.

그렇다면 아이돌 음악을 어떤 식으로 해석해야 퀴어퍼레이드에서 이를 ‘의미’로 즐기는 것이 가능할까? 방법은 의외로 간단하다. 퀴어의 관점에서 아이돌 음악을 들어보는 것이다. 소녀시대는 누가 봐도 ‘슈퍼 헤테로’지만, 이들의 곡 중에서도 ‘다시 만난 세계’는 다르게 들리기도 한다. 퀴어가 자신의 정체성을 만난 뒤 다시 접하는 세계에 대한 감정을 이야기할 때 더없이 적절한 가사를 가지고 있다. f(x)의 ‘Nu 예삐오(Nu ABO)’의 경우는 사랑의 대상과 “언니”란 호칭이 겹쳐지기도 한다. 이렇듯 같은 가사라도 누가 어떻게 읽는가에 따라 달라질 수 있는 것이다.

사랑해 널 이 느낌 이대로 그려왔던 헤매임의 끝
이 세상 속에서 반복되는 슬픔 이젠 안녕
수많은 알 수 없는 길 속에 희미한 빛을 난 쫓아가
언제까지라도 함께하는 거야 다시 만난 나의 세계
– 소녀시대 ‘다시 만난 세계’

내 말 들어봐요 언니? I’m In The Trance
지금 이 감정은 뭐죠? 난 처음인데
– f(x) – ‘Nu 예삐오’

이외에도 여성의 욕망을 드러낸 현아나 가인의 곡들도 충분히 의미로 접할 수 있다. 김완선, 엄정화, 이효리가 게이 아이콘이었던 점을 생각하면 세 사람이 어느 정도 공유하고 있는 부분이 있다고 이해할 수 있다. 이들에겐 각각의 이유가 있을 것이다. 예를 들어 엄정화의 경우 보깅을 차용하는 등 적극적으로 게이들의 문화를 흡수한 바 있으며, 이루어질 수 없는 사랑을 담은 가사, 성적 매력의 표출 등이 그 이유였다. 게이 아이콘 중에는 카리스마 있는 여성 솔로 가수가 많다. 이들을 모아놓으면 어느 정도 ‘이쪽 사람들’의 취향을 읽을 수 있지만, 그렇다고 해서 이들이 편협하게 즐기는 것은 아니다.

퀴어도 아이돌을 좋아한다. 아이돌은 대체로 모두에게 행복을 주는 존재다. 게이 앤썸으로서의 아이돌 음악 또한 충분히 상상할 수 있고, 또 이미 전례도 존재한다. 생각해보면 보아는 2009년 샌프란시스코 게이 퍼레이드에 참여하기도 했다. 앞으로는 어쩌면 퀴어문화축제에 아이돌 섭외도 가능하지 않을까? 그러니 올해 좋은 축제를 접한 분들이라면 모두 후원하러 가자. 후원의 힘을 더할 때 더욱 멋지고 알찬 축제를 볼 수 있을 것이다.

2009년 샌프란시스코 게이퍼레이드에서 보아 | CC BY Charlie Nguyen
2009년 샌프란시스코 게이퍼레이드에서 보아 | CC BY Charlie Nguyen
헤테로 이미지의 아이돌, 퀴어가 좋아하다

가끔 고민이 밀려올 때가 있다. 나의 정치적인, 혹은 개인적인 신념과 무관하게 느껴지는 무언가를 즐길 때, ‘내가 이걸 이렇게 즐겨도 되나’ 하는 고민이다. 사실 ‘무엇을’ 즐기는가만큼 ‘어떻게’ 즐기는가 역시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비판적으로 해석하거나, 반대로 내 나름의 해석을 가하며 즐길 수도 있는 것이다. 그렇게 심각하지 않되 깊이 있게 파고들다 보면, 전복적으로 해석하거나 페미니즘 혹은 퀴어의 관점에서 해석하여 즐길 수 있는 것들이 분명히 있다. 물론 용감한 형제의 가사나 유세윤, 장동민 등을 전복적으로 즐기기는 힘들지만, 적어도 재미있게 접할 수 있는 영역은 폭넓어진다.

푸코나 롤랑 바르트 등이 말하는 문화의 구조주의적 접근은. ‘의미는 구축하는 것’이며 상징적 접근을 반영한다고 말한다. 실제로 하나의 작품을 읽을 때 그 안에서 찾아낼 수 있는(혹은 만들어낼 수 있는) 상징적 접근은 다양하다. 이는 기호학을 포함한 여러 학문이 이뤄낸 성과이기도 하지만, 사람들이 문화 안에서 상징 체계를 공유하고 있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기도 하다. 그래서 누군가는, 작품이란 완성되는 순간 창작자의 손을 떠나 하나의 생명체처럼 유기적으로 구성되어 간다는 식으로도 이야기한다.

아이돌이라는 텍스트는 언제나 열려 있다. 이는 절대 다수가 별 고민 없이 재미있게 접할 수 있지만, 퀴어와 페미니스트들은 그 중에서도 퀄리티와 의미를 어느 정도 생각하며 좀 다르게 즐긴다. 여기에는 각자의 성지향성 등 조금 더 복잡한 갈래가 섞여 있을뿐더러 내가 이야기한 것이 관련된 이야기의 전부가 아니다. 앞으로 퀴어와 아이돌, 페미니즘과 아이돌에 관한 이야기는 더 고민하고 묶어서 쓰는 것이 내 나름의 과제가 아닐까 한다. 여기에 많은 이들이 아이돌을 능동적으로 깊이 있게 즐겨 아이돌로지가 많은 사랑을 받길 바란다.

서울 퀴어문화축제 2015

블럭

By 블럭

블럭이라는 이름을 쓰는 박준우입니다. 웨이브, 힙합엘이, 스캐터브레인을 하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