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년 10월, 〈슬픔의 케이팝 파티〉라는 수상한 제목의 파티가 열렸다. 폭발적인 호응 속에 이어지는 이 기획을 아이돌로지가 들여다 보았다. 지난 5월 현대카드 언더스테이지에서 열린 〈슬픔의 케이팝 파티〉 현장 리포트. 〈슬픔의 케이팝 파티〉는 9월 28일 부산 금사락에서도 개최된다. [예매 링크]
1부 〈My Mad K-Pop Diary: 웃거나 울거나 망하거나〉
Text by 하루살이
2019년 5월 11일 〈현대카드 Curated 52 슬픔의 케이팝 파티〉(이하 ‘슬케파’) 1일 차 토크 1부는 〈웃거나 울거나 망하거나〉라는 타이틀 아래 김윤하 음악평론가와 조한나 음악기획자의 대담으로 진행되었다. 두 사람은 우선 관객의 연령대부터 조사했다. 현장에는 일부의 80년대 생, 대다수의 90년대 생, 소수의 00년대 생이 참석해 있었다. 둘은 스스로 ‘라디오키드 대표’와 ‘클럽키드 대표’라 칭하며 케이팝 체화 방식의 세대 차를 시작으로 케이팝의 역사를 훑고, 관객들과 공감 한풀이 장을 열었다.
진행자들은 “개방”을 키워드로 케이팝의 탄생 배경을 설명했다. 초기 댄스팝은 새로움이자 젊음이었고 대중음악을 망치는 주범으로 지목되었다. 이 꾸준한 혐의에 곳곳에서 웃음이 터졌다. 윤일상, 주영훈, 김창환으로 90년대 초반 “가요계를 더럽힌 댄스음악”을 요약했다면 그다음은 서태지 이후 H.O.T.와 젝스키스, 본격적인 1세대 아이돌의 전성시대였다. 동시에 베이비복스 등 여성 아이돌의 수난시대였음을 지적하며, 설익은 팬덤 문화에 대한 지적이 이어졌다.
1세대 그룹들의 해체 이후 장나라, 비, 이효리 등의 솔로 아티스트로 대변되는 1.5세대까지 지나면 정말로 “우는 가수”들의 이름이 등장했다. 브라운아이즈, 거미, 빅마마, 씨야, 먼데이키즈, 버즈 등 그 시절 아티스트들이 호명될 때마다 현장에는 질색 어린 탄식이 이어졌다. 급기야 “버즈는 슬케파에 입장 금지입니다” 발언까지 나왔다. 이와 대조적으로 “SMP가 남기고 간 것”이라는 표현이 등장하자 객석에서 NCT의 응원봉이 빛났다. 모두가 웃음을 터뜨렸다. 바로 이들이 “SMP가 남기고 간 것”, 케이팝의 주 소비층이며 그래서 우리는 SM과 유영진의 영향력에서 벗어날 수 없다는 결론으로 이어졌다.
두 호스트는 2007년을 ‘케이팝 원년’이라 칭했다. 그해 원더걸스의 ‘텔미’와 빅뱅의 ‘거짓말’이 발매되었고 소녀시대와 카라가 데뷔했다. 이른바 ‘2세대 아이돌’, 우리가 현재까지도 즐기고 있는 형태의 케이팝이 등장하기 시작한 것이다. 이들의 의도적인 해외 진출이 끼친 영향과 관련된 경험담이 이어졌다.
김윤하 평론가는 토크를 마무리하며 가장 세련된 케이팝으로서 f(x)의 ‘4 Walls’를 선곡했다. 노래와 함께 공감의 탄성이 현장을 채웠다. ‘슬픔의 역사’는 결국 이 파티의 존재 의의로 귀결되었다. 개방에서 태어나 변칙과 파격으로 연명한다. 여전히 무한에 가까운 수용력으로 변주가 이어진다. 매일 울고 망할지언정 종말을 고하기엔 아직 생동한다. 이런 케이팝을 놓지 못하는 우리가 모여 이 역사에 ‘슬픔의 케이팝 파티’라는 한 줄을 더 보태는 자리였다.
2부 〈Play List Contest: 나의 친구들〉
Text by 심댱
‘슬케파’의 콘셉트는 ‘다이어리’라고 한다. 이번 토크 세션 중 ‘플레이 리스트 콘테스트(이하 P.L.C)’는 마치 다이어리를 꾸미는 것처럼 개개인의 케이팝을 조명하는 시간이었다. 특히 5월 11일 토크 2부에서는 너와 나, 우리의 플레이리스트를 통해 케이팝에 스며든 심상을 살펴볼 수 있었다. 보컬리스트 지망생 신혜림과 유튜버 예지주가 참여한 ‘P.L.C: 나의 친구들’은 독특하게도 ASMR 스타일로 진행되었다. 장난스럽게 속삭이면서 토크를 이어가던 그들이 마치 또래 친구처럼 친근하게 느껴졌다.
세션 중 인상 깊었던 플레이 리스트를 몇 꼽아보자면, 프리스타일(Freestyle)의 ‘Y’, 이지(izi)의 ‘응급실’ 등 싸이월드 시대를 회고하는 플레이리스트 ‘쵸재깅(cyworld를 한글 타자로 잘못 쳤을 때 나오는 단어)’은 지나간 웹에 묻은 추억을 소환했다. 한편 플레이리스트 ‘CCTV가 널 감시할지라도’는 정규직들이 퇴근해 텅 빈 사무실에서 야근하는 비정규직의 애환을 노래로 달래는 풍경을 떠올리게 했다. 플레이리스트의 대표곡이 재생될 때마다 떼창하거나 몸서리를 치는 등 관객의 공감 어린 반응은 토크를 더욱 더 풍성하게 했다.
‘사랑’을 테마로 한 예지주의 플레이리스트는 토크 중 가장 많은 호응을 얻었는데, 그가 플레이리스트를 꾸리면서 남긴 소개 글은 다음과 같다.
“음악이란 국가가 허락한 유일한 마약이다. 내 친구이자 동반자이며 기쁜 날에는 더 기쁘게 해주고 슬플 때는 위로가 되어준다. 사랑을 하며 울고 웃으며, 그리고 사랑을 시작할 때 듣게 된 노래들.”
그의 플레이리스트에서는 아티스트를 향한 애정을 듬뿍 느낄 수 있는 곡(황보 ‘R2Song’, 소녀시대 ‘Run Devil Run’)부터 사랑하는 사람과의 추억이 있는 곡(엄정화 ‘초대’, 인피니트 ‘내꺼하자’)까지 담겨 있었다.
흔히 아티스트에게 돌아가는 케이팝의 스포트라이트를 대중에게 옮겨본 이 시간은, 처음엔 다소 어색했지만 좋아하는 노래를 두고 나누는 대화가 그렇듯 즐거웠다. ‘나의 케이팝’을 말하면서 그 노래에 꽂아두었던 나의 추억과 생각까지 함께 나눈 이 자리는 취향이 남긴 흔적을 우리 스스로 느끼게끔 했다. 그건 바로 ‘케이팝 고인물’이라 자조하지만, 진정으로 케이팝을 사랑했던 너와 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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