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유 “에잇” (2020)

이미지 (c) EDAM 엔터테인먼트

‘에잇(Prod.&Feat. SUGA of BTS)’은 3분이 채 되지 않는 짧은 노래다. 기습적인 컴백이지만 단순 소품 발표가 아니고, 이제껏 “Chat-Shire” 미니앨범 이후 아이유 세계관의 척추가 되었던 ‘나이 시리즈’의 일부라 하니, 허투루 들을 수 없다.

새로운 장르―93년 동갑내기들의 추억의 음악 도전

킥과 탐을 시원하게 두드리는 팝 록 스타일의 곡이다. 케이팝 씬에서 흔히 보던 장르는 아니나, 작년쯤부터 아레나 앤썸이나 드라이빙 뮤직으로 간간히 등장하기 시작했다. 서구권에서의 영향으로는 포스트 말론의 ‘Circles'(2019) 같은 곡을 염두에 두지 않았을까 싶다. 장르적으로는 아이유에게도, 곡을 제공한 방탄소년단의 슈가에게도 새로운 도전이다.

보도자료를 보면 이 작품이 스물여덟살 동갑내기끼리의 협업임을 강조하고 있다. 이 곡에 참여한 빅히트 엔터테인먼트 소속의 작곡가 장이정 a.k.a. El Capitxn 역시 93년생 동갑내기다. 슈가와는 그의 믹스테이프 “Agust D” 이전부터 공동 작업을 해왔으며, 아이돌 그룹 히스토리 소속이던 시절에는 아이유와 ‘금요일에 만나요’를 함께 부르기도 했다.

지금의 팝 록이라는 장르는 결국 얼터너티브 록이 대중음악의 표면에 이식되어오는 과정에서 탄생한 존재다. 93년생들이 어린 시절을 보낸 2000년대, 미국의 로우틴 대상 팝은 대부분 이같이 밝은 멜로디에 밴드 사운드를 접목한 팝 록이었다. 에이브릴 라빈(Avril Lavigne)이나 힐러리 더프(Hilary Duff), 초기 조나스 브라더스(Jonas Brothers)를 생각하면 될 것이다. 같은 시기, 혹은 그보다 조금 전, 국내에서는 일명 ‘모던록’ 밴드들이 적지 않은 사랑을 받기도 했다. 93년생 또래 중 음악 취향이 조숙한 사람들은 델리스파이스나 더더를 듣고 자랐을 수 있다. 이 세대에게는 이것이 추억의 사운드 중 하나인 것이다.

다만 나이든 ‘락덕’들에게는 이 곡의 팀버(timber)가 미진하게 들릴 수 있겠다. 밴드 사운드를 재현하고자 했지만 작업 방식은 요즈음 여느 힙합/R&B 트랙처럼 미디로 찍은 드럼이기 때문이다. EDM에 익숙한 요즘 세대의 귀에는 더 친숙하게 들릴지도. 어찌 보면 2020년대의 팝 록은 밴드 사운드를 홈스튜디오에서 단신으로 구현해낸 원맨밴드 전자음악과 사촌 지간이라고 할 수도 있을 것 같다. ‘사람이 모여 리얼 사운드로 음악을 만든다’는 명제는 사라지지만, 비교적 그런 사운드처럼 들리게끔 스테이션에서 열심히 찍고 조정하는 음악이다. 여기에서 코로나 이후의 새로운 시대상까지 읽어내려 한다면 지나친 시도일까?

그리운 기억 속에 맴도는 노래

음악과 가사의 에너지 방향을 보자. 음악은 4분의 4박자로 힘차게 앞으로 나아간다. 슈가가 프로듀싱한 음악을 들어보면 신스를 먼 곳에 던져 공간감을 살리는 연출을 선호하는 듯한데, 이 곡에서도 어김없이 그런 사운드가 들린다. 이세계로 떠나는 듯한 설렘이 느껴진다. 그러나 아이유가 쓴 멜로디와 가사는 조금 다른 이야기를 한다. 환상적인 공간에서 만나는 그리운 사람, 그 사람과 지내는 의식 같은 시간을 말하고 있다. ‘에잇’의 뮤직비디오 비하인드에서 아이유는 이 곡을 두고 “앞으로 나아갈 수 없는, 그런 생각에 빠진, 그래서 자꾸 제자리로 돌아오는 무기력한 그리움을 담은 곡”이라 설명했다. 전진하려는 사운드와 기억에 머무르려 하는 가사가 만나, 떠나지 못하고 맴을 도는 듯한 기묘한 방향성이 만들어진다.

“이게 악몽이라면 영영 깨지 않을게”라는 가사를 보면 꿈속인 것 같다. 잠은 아이유가 즐겨 써온 소재다. ‘무릎’이나 ‘밤편지’에서 알 수 있듯, 아이유에게 잠은 편안한 때, 좋은 상태의 메타포다. 상대방과 서로를 베고 누워 편안하게 잠자는 상태는 더없이 행복하게 들리지만, 이것이 현실이 아님을 알고 있기에 악몽이라 부른다. 밝게 들리는 음악에 얹은 이같은 가사는 2분 50초 남짓한 짧은 곡에 다중의 레이어를 부여한다. ‘맞게 들은 걸까’ 반신반의하며 곡을 반복해서 재생하다 보면 어느새 작사가 아이유가 담고자 한 맴도는 그리움 속에 들어와있다.

나이 시리즈의 세 번째 곡… 다른 점은

나이 시리즈의 전작 두 곡은 아이유가 청자 혹은 대중에게 직접 던지는 메시지였다. 고의적으로 알쏭달쏭하게 풀어나간 ‘스물 셋’과 그런 ‘스물 셋’이 촉발한 촌스러운 논란으로부터 편안해졌다는 자기고백 ‘Palette’까지, 그의 나이 시리즈는 대중문화 속 아이유라는 당대 가장 유명한 소녀가수의 자의식 표현, 또는 음악적 성장기였다. 나이 시리즈라 밝힌 적은 없지만, 10주년 기념으로 발매했던 ‘삐삐’가 오히려 이런 ‘아티스트 아이유를 만만히 본 이들에게 던지는 디스(diss)곡’으로서는 두 곡과 비슷했다.

‘에잇’ 속에는 대중이 없다. 그저 화자의 현재 상태와 머무르고픈 기억의 한 뼘만을 이야기한다. 아이유는 이전작들이 수필이라면 이것은 소설이라고, 직접 작성한 곡 소개에 적었다. “오렌지 태양 아래”는 앞선 가사 “다 해질 대로 해져버린 (기억)” 덕분에, 정오의 내리쬐는 태양이 아닌 오렌지빛 석양 같은 심상을 준다. SF적인 요소가 곁들여진 뮤직비디오와 함께 감상하면 음악 자체가 가상현실(VR)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오렌지섬이라는 가상의 공간을 배경 삼아 담아내고자 한 감정이 ‘에잇’의 주제다. 아이유의 픽션은 비교적 명징하다. “Chat-Shire” 미니앨범의 ‘레드퀸’ 등을 떠올려보면 알 수 있다. 직접 언급만 피했을 뿐, 노래의 주인이 누구인지 짐작할 수 있다면 직관적으로 알아들을 수 있는 비유다. 그나마도 아이유는 긴 시간을 오해 받아왔다. 비유가 어려워서가 아니다. 설마 대중의 사랑을 받는 대상으로서의 ‘유명 소녀 가수’가 저런 비판적 의식을 전면에 대놓았다는 것이 낯설어서, 많은 이들이 받아들이지 못했을 뿐일 것이다.

Forever Young IU

보통 대중가요에서 일컬어지는 “Forever young”이란 관용어구는 청춘의 뜨거운 사랑이 영원하길 바라는 기원이다. 블랙핑크의 ‘Forever Young’이 일반적인 용례에 해당된다. “Forever young”을 말하는 화자의 현재는 청춘이며, 무아지경의 행복 상태에서 이 기쁨이 영원하기를 바란다. 여기에서 비롯되는 애상감은 그런 기원이 실은 부질이 없음을 너 나 우리가 너무도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 흘러가는 시간은 누구의 잘못도 아니니까.

‘에잇’의 중간을 관통하는 “Forever young”이 다르게 와닿는 이유는 이 일반적인 공식에서 조금 비껴섰기 때문일 것이다. 스물여덟살은 분명히 청춘이지만, 그의 그리움의 시점은 비교적 젊은 인생에서도 과거 속에 존재한다. 아무리 사람마다 인생에 벌어지는 이벤트가 다르고 인생의 속도가 다르다지만, 나이 스물여덟에 이런 기억을 품어야 하는 일은 너무 이르고, 흔치 않게 가혹하다. 빨리 성숙하기를 종용당하면 슬픔을 처리하는 방식과 속도에도 영향을 받는다. 2008년 솔로 가수로 데뷔한 이래, 그는 소녀의 모습을 했지만, 어리고 젊은 사람답게 좌충우돌하며 성장하기는 그에게 쉽사리 허락되지 않았다.

그래서 그의 이런 나이 시리즈, 자기가 자기 ‘추억 앨범’을 만들고자 하는 시도는 소중하다. 흔히들 아이돌을 두고 ‘멋지고 예쁜 시절을 방송국 카메라에 담아놓을 수 있으니 얼마나 좋은가’라고 하지만, 아이유는 그런 푸티지(footage)만을 남기고 싶은 것 같지는 않다. 자기 가슴으로 느끼고 자기 손으로 적은 기억을 기록하고자 하는 의지가 ‘에잇’에 있다. 마침 모두가 몸을 낮추고 지금을 견뎌야 하는 2020년 봄이다. 음악가가 결국은 세상에 내놓은 노래 덕에 우리는 위로를 받는다.

랜디

Author:

K-Pop enthusiast. I mean i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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