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산 2020 : ①올해의 신인 7선

아이돌로지가 수집한 2020년 정식 데뷔 아이돌은 보이그룹 17팀, 걸그룹 16팀, 혼성그룹 1팀 총 34팀이었다. 이 중 필진 8명의 투표를 통해 선정한 올해의 신인 7팀을 소개한다. 순위는 별도로 산정하지 않았으며, 순서는 ABC-가나다 순으로 정렬했다. 이들은 물론 리스트에 없는 이름들 역시 2021년에 멋진 활동을 기대한다.

MCND

마노: 2월에 정식 데뷔한 MCND는 (프리데뷔곡 ‘TOP GANG’을 제외하고) 총 두 장의 EP와 한 장의 디지털 싱글을 발매하며 2020년을 숨 가쁘게 달려왔다. 데뷔 첫해부터 무려 ‘3컴백’을 이뤄낸 셈인데, 상대적으로 이른 데뷔 시기와 왕성한 활동 덕에 다양한 스펙트럼의 결과물을 선보일 수 있었다는 점은 앞으로도 호재로 작용할 가능성이 높아 보인다. 다양한 스펙트럼 속에서 ‘우리는 누구’라는 자기소개는 물론, ‘우리가 무엇을 어떻게 잘 할 수 있는지’와 ‘앞으로 어떤 식으로 성장해나갈 수 있는지’까지 충분히 설명하고 있기 때문이다. 멤버 구성이 5인이라 단출하다는 인상을 줄 법도 하지만, 기본적인 수행력은 물론 장악력이 높아서 무대가 결코 비어 보이지 않는다는 점도 플러스 요인. 다인원 그룹의 화려함보다는 소수 정예의 집약적인 절도를 주 무기로 시종일관 에너지를 뿜어대는 매서운 퍼포먼스를 선보이며, “누군지 물어 누구신지 / 설명 안 해 우린 굳이 / But 보란 듯이 지금 이 무대를 얼리고 / 손짓 하나로 가뿐히 다 부시지” (‘ICE AGE’) 라는 패기가 결코 허세가 아님을 여실히 증명해낸다. 거의 모든 크레딧에 캐슬제이를 비롯한 멤버들의 이름이 보인다는 점도 팀의 미래를 긍정적으로 점치게 만드는 요소.

조은재: 이 팀이 일찍부터 해외 팬덤에 어필한 이유는 이들이 ‘수많은 장르 중에서도 굳이 K-pop이어야 하는 이유’를 훌륭히 보여주기 때문이다. 리듬감 있는 곡의 전개와 정예로 캐스팅된 듯한 다섯 멤버가 펼치는 퍼포먼스는 다시 유행하는 다인원 그룹의 트렌드에서 독보적으로 튀어 보이게 만든다. 무겁게 떨어지는 비트에도 전혀 밀리지 않는 박력 있는 애티튜드가 어쩐지 신인답지 않다는 생각이 들면서도, 동시에 신인이기 때문에 이 정도 패기가 나오겠거니 싶어 그 ‘신인다움’에 수긍하게 된다. 흔한 오해 중 하나가 실력이 완성된 상태로 데뷔하는 아이돌은 이후의 성장 폭이 좁을 거라는 편견인데, 레퍼토리의 외연 확장을 고려하면 실력이 출중한 아이돌이야말로 성장 폭이 더 넓을 가능성이 크다. 이 팀이 ‘TOP GANG’부터 ‘떠’까지, 그리고 여러 콘텐츠에서 선보인 커버를 통해 소화할 수 있는 콘셉트의 스펙트럼을 다양하게 펼쳐놓을 수 있는 이유 또한 이미 완성된 실력에 기반한다. 이 팀에 아이돌 팬들에게 익숙한 정석적인 창법의 메인보컬이 없음에도 자신들에게 맞는 곡을 잘 찾고 퍼포먼스를 짜내는 것을 보면 신인 같지 않은 탁월함이 느껴진다. 다른 것보다 퍼포먼스에 중점을 둔 콘텐츠를 자주 내놓고 있는 것 또한 주목할만한 점. 커버하지 않은 아이돌을 찾는 것이 빠를 정도로 다양한 아티스트의 퍼포먼스를 재해석하는 과정을 보다 보면 모종의 장인정신마저 느껴진다.

나띠(NATTY)

랜디: 2PM의 닉쿤부터 블랙핑크의 리사까지, 태국 출신 아이돌은 한국 대중에게 더 이상 낯선 존재가 아니다. 나띠 역시 태국인 아이돌로서, 그가 케이팝을 체화하고 구현하는 모습을 보면 감탄을 금할 수 없다. 맛깔나는 춤은 물론이고, 다국어의 뉘앙스를 살려내는 보컬이나 랩, 무대 위에서 빛나는 끼와 표정 연기까지, 어떨 땐 케이팝의 초국적성은 한국인보다도 그와 같은 사람에게서 더 분명하게 드러난다고 느낀다. TV 오디션 프로로 이미 대중과 만나며 큰 기대를 모은 그는, 이례적으로 그룹이 아닌 솔로로 데뷔해 올해만 두 장의 싱글을 냈다. 외국인 솔로 아이돌에는 작년에 데뷔한 일본 출신 유키카 등이 있지만, 유키카가 2020년 첫 정규 앨범에서 그의 일본인 국적을 전면에 내세우고 있는 것과는 달리 나띠는 초국가적 케이팝 그 자체다. 나 역시 별일 없는 한 그의 국적에 대해 글을 쓰는 것은 신인 리뷰인 이 글이 마지막이 되지 않을까 싶다. 두 번째 싱글 ‘Teddy Bear’의 스타일리시한 보컬이나 무대 연기에서 이미 리사나 민니 같은 스타의 아우라가 충분히 느껴진다.

하루살이: ‘NINETEEN’에 이어 ‘Teddy Bear’까지 나띠는 가상의 이야기를 전달하는 스토리텔러 혹은 연기자라기보다 이야기의 실제 주인공처럼 보인다. , <아이돌학교>를 거쳐, 드디어 데뷔한 나띠가 부르는 ‘어둠이 어둡지 않아 빛나는 나라서’는 올해 가장 설득력 있는 가사 중 하나였다. 진정성같은 허무한 가치를 따지려는 것이 아니다. 인물과 기획 사이의 괴리가 거의 보이지 않는다는 것이 핵심이다. 퍼포머에게 맞춰 섬세하게 마름질 된 음악과 퍼포먼스가 주는 일치감은 그다지 새로울 것 없는, 꿈을 좇는 소녀의 이야기에 강한 전달력을 부여한다. 특히 리드미컬한 베이스에 맞춰 동작을 쭉쭉 뻗어내는 ‘NINETEEN’ 무대는 잘 웃는 귀여운 장난꾸러기 캐릭터를 헤치지 않으면서도 빼어난 퍼포먼스와 보컬 실력을 한껏 뽐낸다.

스테이씨(STAYC)

서드: STAYC는 올해 데뷔한 걸그룹 중에서도 눈에 띄게 대중적 호감도가 높아 보이는 팀이다. 히트 작곡가 블랙아이드필승이 제작한 걸그룹이라는 점도 기대를 불러일으켰지만, 기대감이 실망으로 바뀌지 않았다는 점이 무엇보다 크게 작용하지 않았을까. 6인조로 쉽게 파악이 가능한 멤버 구성, 데뷔곡 ‘SO BAD’의 음방활동에서 AR 의존도가 낮은 라이브 퍼포먼스를 안정적으로 소화하는 기본에 충실한 모습이 10인조 이상의 다인원 그룹과 복잡한 세계관과 스토리라인 등이 지배적이던 케이팝 트렌드에 지쳐있던 팬들에게 호감을 일으켰는지도 모른다.
‘SO BAD’는 ‘사랑하는 너 때문에 내 맘이 아프다’는 통속적 연애감정을 담고 있는 노래지만, 오히려 힘있는 보컬과 퍼포먼스로 표현하는 의외성을 통해 독특한 분위기를 만들어낸다. 각자의 목소리를 최대한 꾸미지 않은 채 그대로 내는 듯한 내추럴한 보컬 디렉팅 속에서 금관악기를 성대에 숨긴 듯한 멤버 시은의 고음과 듣는 순간 귀를 놀라게 만드는 멤버 재이의 저음의 선명한 대비감이 쉽게 잊지 못할 인상을 남기는데, 조화를 무너뜨리지 않으면서도 강한 개성을 표출하는 이들의 목소리를 앞으로 어떻게 활용해나가며 팀의 개성을 발전시켜나갈지도 기대된다.

하루살이: STAYC는 능력 있는 프로듀서가 제작하는 아이돌의 장점을 제대로 들려준다. 데뷔곡 ‘So Bad’는 블랙아이드필승의 작품답게 캐치한 멜로디가 인상적이며, 재이의 둔탁한 저음부터 시은의 쨍한 고음까지 넓은 스펙트럼의 목소리가 적재적소에 배치되어 있다. 뚜렷한 음색과 음역의 대비 덕분에, ‘You stole my heart 맘을 뺏겼지’ 낮게 읊조리는 목소리에 쉽게 맘을 빼앗긴다. 윤을 주축으로 화려함을 넘어 독특한 스타일링도 눈길을 끄는데, 자칫 괴상해질 수 있는 연출을 무대 위 안정적인 연기력과 자신감으로 소화해낸다. 그래서 지독히 통속적인 가사나 세계관 같은 전략의 부재에도 불구하고, 다른 팀들과 ‘무언가 다름’을 인정할 수밖에 없다. 가끔은 이런 ‘단순명료함’이 그 무엇보다 특별해지기도 하니까 말이다.

시그니처(cignature)

랜디: 지금 입은 이 ‘옷’이 훨씬 임팩트가 있다. 전신인 굿데이의 흔적이 거의 없지만 전혀 아쉽지 않다. 성공적인 방향 틀기에는 음악적 색깔을 싹 바꾼 점이 가장 유효타였던 듯 싶다. 근 몇년 간 서구권에서 “하이퍼팝”이라는 이름으로 두루뭉실하게 묶이던 사운드, 그러니까 오버블로운 베이스와 게임 같은 신스, 높은 피치의 깜찍한 보컬, 팝적인 탑라인이 산란하게 펼쳐지며 케이팝 청자들이 바라는 가려운 지점을 정확하게 긁어준다. 이 팀이 수많은 신인들 중 특히 돋보이는 지점은 음악이 디지털 네이티브 세대의 얼굴을 한 아이돌 당사자들과 위화감 없이 어우러진다는 점이다. 가사에서 노골적으로 표현하고 있지 않더라도, 음악의 질감이 이미 게임 속 같은 가상공간 안에서 탄생한 노래인듯 자연스럽다. 아이돌팝에서 ‘기성 세대가 10대 문화를 모방하려 한’ 티가 확 나버리면, 그 기획이 아무리 화려해도 흥이 다소 죽어버리는 법이다. 대형 기획사도 예외는 없다. 시그니처는 그런 거슬림 없이 그저 신나게 ‘눈누난나’, ‘아싸’를 따라 외칠 수 있어서 좋았다. 올해 가장 인상 깊게 들은 신인.

심댱: 2020년은 그 어느 때보다 퀄리티가 준수한 신인이 많았던 한해였다. 큰 흠결이 느껴지지 않는, 미끈한 모양새의 신인 틈바구니에서 시그니처는 거칠지만 충만한 에너지를 가지고 있다. 그들은 록이든 EDM이든 자극적인 사운드를 끌어들여 청소년기의 충동적이고 충돌하는 정서를 표출한다. 이 감정의 충돌은 ‘아리송’의 후렴구 ‘You blow my mind’ 다음 가볍게 스치는 화음이나 프리코러스까지 쌓아 올렸던 긴장을 메탈릭하게 내리꽂는 ‘ASSA’의 드롭 등으로 한순간에 정리되곤 하는데, 어디로 튈지 모르는 인물의 내면을 롤러코스터처럼 속도감 있게 보여준다. 그들은 통통 튀는 캐릭터를 무대에서도 소화해내며 2020년 어느 리스너의 눈과 귀를 쨍한 색감으로 물들이는 데 성공했다. 앞으로 어떤 음악과 이미지를 가지고 나올지 알 수 없지만, 시그니처라는 이름처럼 씬에 인상적으로 자리 잡지 않을까 기대해본다.

에스파(aespa)

서드: 가상현실 속 아바타와 현실 속 멤버가 유기적으로 공존하는 새로운 콘셉트로 아이돌 시장 콘텐츠의 영역을 또 한 번 확장하겠다는 SM 엔터테인먼트의 포부와 함께 등장한 에스파는, 다인원 걸그룹이 되리라는 예상과는 달리 4인조라는 다소 컴팩트한 규모의 팀으로써 모습을 드러냈다.
데뷔 싱글 ‘Black Mamba’는 항상 색다른 콘셉트를 시도하는 SM 엔터임을 감안하더라도 매우 특이한 케이스의 데뷔곡으로, 사랑이나 우정에 대한 이야기도 아닌, 그렇다고 SMP 특유의 자아성찰이나 세태비판도 아닌, 대중가요의 맥락에서 완전히 벗어난 가사를 담고 있다. 에스파와 ae-에스파 사이의 교류를 방해하는 ‘블랙맘바’라는 존재와의 갈등을 그리는 ‘Black Mamba’의 가사는 오직 에스파의 콘셉트인 세계관과 스토리라인 속에서만 의미를 갖는, 비디오게임으로 비유하자면 오프닝인 동시에 튜토리얼 단계와 같은 곡이다. 그만큼 콘셉트에 대한 SM의 진심이 느껴지면서도 세계관이나 서사를 띤 연작 앨범 등으로 팬들의 몰입을 요구하는 케이팝의 트렌드에 지쳐가는 이들이 눈에 띄게 늘어가는 이 시점에서 과연 대중을 사로잡을 요소가 될 수 있을지는 아직 미지수다.
‘Black Mamba’는 SM 걸그룹의 데뷔곡 중에선 아마 가장 무겁고 비트가 강조된 노래이기도 하다. 화려한 동선 변화를 최소화하고 정박자에 칼각을 맞추는 일사불란한 퍼포먼스는 4인조에 최적화돼있고 파트마다 골고루 스포트라이트가 멤버에게 돌아가는 효과적 안무 구성이다.
거창하게 콘셉트를 제시한 것 치고는 가상현실의 아바타인 ‘ae-에스파’ 멤버의 존재가 아직은 크게 부각되지 않았지만, 아마 이후 활동할 곡에서 어떠한 스토리 라인을 전개해나갈지 이미 큰 그림은 그려놓지 않았을까. 다만 엑소의 초능력이나 NCT의 시스템도 결국 멤버들의 재능과 매력이 대중을 설득시키는 가장 큰 이유였다는 당연한 진실을 SM이 놓치지 않았으면 좋겠다.

스큅: “굳이”라는 의문에 “어쨌든”으로 밀어붙인다. 인공지능 ‘ae-멤버’를 내세운 기획은 (남성중심적 시각으로 왜곡된 여성 캐릭터 묘사 방식에 있어서는 비판을 피할 수 없겠으나) 결국 SM의 ‘오래된 미래’를 향한 추동의 표식 그 이상 그 이하도 아니다. 레드벨벳이 데뷔 초기에 소녀시대와 f(x)를 적절히 배합했다는 평을 들었다면, 에스파에는 00년대 초중반 보아와 천상지희 더 그레이스의 향취가 은근하게 배어 있다. 악곡 면에서나 무대 면에서나 단숨에 이목을 잡아끄는 심상을 쉴새없이 난사하는 모습은 틱톡, 트위터, 인스타그램, 팬카페를 능수능란하게 넘나드는 SNS 상의 행보와 맞물려 신세대적 감각을 환기하지만, 중심부에 자리하는 거창한 포부와 그를 너끈히 떠받치는 절도는 에스파가 고전 SMP의 적장자임을 못박는다. 아직까지 케이팝에 흩뿌려져 있는 고전 SMP식 근본 없는 선언의 태도가 마침내 SM에 의해, 그것도 보이그룹이 아닌 걸그룹의 목소리를 빌어 집대성되었을 때의 쾌감을 쉽사리 지나칠 순 없을 것이다. ‘SM 성골 보컬’ 윈터가 부르는 “에스파는 나야 둘이 될 수 없어”가 올 한 해를 통틀어 손꼽히는 케이팝 밈(meme) 중 하나가 된 데에는 다 이유가 있다. 현 세대 케이팝의 결정적인 기능을 밈의 형성에 있다고 한다면, 에스파가 그리는 ‘오래된 미래’는 분명 낡지 않은 ‘오래된’ ‘미래’로서 충분히 유효성을 입증해낸 것이 아닐까. 더불어 에스파가 ‘오래된’ ‘미래’일 수 있는 근거는 개성 있는 멤버들에게서 비롯된다. 탄탄하고 유려한 가창을 뽐내는 윈터와 바다, 루나, 혹은 티파니의 쨍한 질감을 닮은 닝닝의 보컬이 팀의 골조를 이루면, 예리한 카리나와 뭉툭한 지젤의 보컬이 운율을 빚어내며 팀을 한층 입체적으로 조형해간다. SM의 정형과 비-정형이 교차하는 흥미로운 캐릭터 운용이 앞으로 어떻게 펼쳐질지 미래가 더욱 궁금해진다.

위클리(Weeekly)

마노: ‘낯선 기시감’이 든다. 어디선가 본 것만 같지만 잘 생각해보면 어디서도 본 적 없었던, 그 미묘한 지점을 적확히 파고들며 익숙한 듯 낯선 소녀상을 그려낸다. 록 사운드 기반의 음악, 시종일관 활기차게 외치는 챈트, 스쿨룩으로 대표되는 스타일링, 무대 위를 기운차게 누비는 퍼포먼스 등, 모든 요소가 언뜻 ‘전통적’인 걸그룹을 표방하고 있는 것처럼 보이지만 그 방식이 결코 고루하거나 식상하지 않다. 소녀상은 ‘전통적’이되, 그것을 그려나가는 문법을 조금씩 비틀어 자칫 뻔해지기 쉬운 부분을 절묘하게 비껴간다. 왠지 삼삼오오 모여 좋아하는 사람에 대한 이야기를 속닥거릴 것만 같지만 사실 그들의 관심은 오로지 ‘나’에 맞춰져 있다거나, ‘그 사람’의 TMI가 궁금한 것이 아니라 ‘내 TMI 궁금하지 않아? 그럼 알려 줄게’라는 식이라거나, 두 번째 타이틀곡 ‘Zig Zag’의 무대 의상이 흔한 테니스 스커트나 핫팬츠가 아닌 무릎 기장의 긴 반바지라거나. ‘소녀’ 콘셉트의 걸그룹이 과포화 상태에 이른 케이팝씬에서 위클리는 그들만의 색다른 변별점을 기어코 만들어내며 리스너들을 손쉽게 설득해낸다. 그들이 이 씬에서 어떻게 그리고 왜 ‘다른’지, 그들이 이 씬에서 존재해야 하는 당위가 무엇인지를. 프로덕션의 치밀함은 물론이거니와, 멤버들의 뛰어난 수행력이 있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는 점은 말할 필요도 없겠다. 멤버 신지윤이 데뷔 EP “We Are” 때부터 꾸준히 양질의 자작곡을 실어 왔다는 점도 이 팀의 미래를 기대하게 하는 요소 중 하나.

스큅: Z세대 대변을 부르짖은 아이돌 중 가장 그에 걸맞은 결과물을 보여준 팀이 아닐까. 최근 걸그룹 사이에서 두드러진 ‘나는 달라’, ‘제멋대로’ 식의 어필이 주로 SNS 인플루언서와 같은 자기전시적 태도에 근거하고 있다면, 위클리는 ‘Tag Me (@Me)’라는 데뷔곡 제목이 단적으로 보여주듯 SNS를 일상적인 놀이터 삼아 뛰노는 여느 신세대의 소란한 활기를 포착한다. 위클리의 노래에서는 범-관중을 상정한다기보다 소규모의 또래 친구 팔로워들에게 수다스레 이야기보따리를 푸는 듯한 내러티브가 읽히고, 장기자랑으로 하고 싶다기보다 교실에서 뮤지컬처럼 펼쳐졌으면 하는 퍼포먼스를 그린 듯한 무대는 그 지향점을 더욱 구체화한다. (그러한 면에서 기존의 걸그룹보다는 오히려 세븐틴의 데뷔 초기를 떠올리게 되기도 한다.) 폭신한 톤의 리드보컬 지한부터 시크함마저 묻어나는 메인보컬 겸 래퍼 먼데이까지 다채롭고도 균형잡힌 팀의 보컬 팔레트는 팀에 생동감을 한껏 불어넣는다. “한 번 뜨면 수군수군 난리나는 타임! 라인!” 곡 도입부의 펄떡이는 챈트를 맞닥뜨리는 순간, “냬냬냬냬냬냬” 하고 비죽 고개를 내미는 후렴구의 재잘거림을 마주치는 순간, ‘위클벅적’이라는 팀의 수식어를 단번에 납득하게 될 것이다. 당케와 이스란이 함께 빚어낸 섬세한 가사가 팀의 기반을 다지는 가운데, MBTI부터 환경보호까지 Z세대의 화두를 두런두런 늘어놓는 프로듀싱 멤버 신지윤의 감각 역시 돋보인다. 한편 “나는 저 언니처럼 되고 싶어”라고 말갛게 외치는 2번째 미니앨범의 1번 트랙 ‘언니’를 듣고 있자면 위클리의 핵심은 ‘언니를 동경하는 소녀’가 아닌 ‘언니가 동경하는 소녀’ 이미지를 만들어내는 데에 있을지 모르겠다는 생각도 드는데, 세대별로 각기 다른 방식으로 매력을 느낄 만한 그룹인 만큼 오래 볼수록 진가가 더해지리라는 믿음을 실어본다.

크래비티(CRAVITY)

심댱: 정통적인 남자 아이돌 그룹의 모습, 강렬한 음악과 퍼포먼스를 잘 수행하는 그룹 중 하나라고 생각할 수 있다. 강하게 밀어붙이는 그들의 시리즈 “HIDEOUT”의 타이틀곡들은 그 전형성을 충족하는 한편, (‘클라우-나인’으로 발음하며) 부드러운 미성으로 띄워 보내는 ‘Cloud 9’, 댄서블한 멜로디에 센슈얼함을 은근슬쩍 끼워 넣은 ‘Ohh Ahh’ 등 후속곡 라인까지 접하면 냉탕과 온탕처럼 크게 갈라지는 컨셉들을 모자람 없이 두루 소화함을 알 수 있다. 보컬진이 대부분 곱고 깨끗한 톤을 가지고 있어, 그 매력을 십분 살린다면 청량 계보도 무난히 이어갈 수 있는 그룹으로도 비춰진다. 또한 수록곡 다수가 라이브 클립으로 공개된 만큼 레퍼토리에 많은 정성과 준비가 있음이 읽힌다. 좀 더 풍부한 색채를 머금을 만한 경험과 시간, 그리고 관객과 호흡하는 무대를 더 많이 갖는다면 발전 가능성이 높을 것으로 점쳐지는 팀.

조은재: 올 한 해 동안 이 팀에 대해 소개해달라는 요청을 받을 때마다 잊지 않고 덧붙였던 코멘트가 있다. ‘이 팀은 당장은 최고가 아닐 수도 있다. 하지만 이 팀의 모든 요소가 현시점 기준으로 최선으로 구성되어 있다. 그래서 이 팀의 매력은 바로 그 최고와 최선의 간극에 놓인 잠재력이다’. 아닌 게 아니라, 이 팀에는 ‘없는 게 없다’. 얼핏 무난하게 들리는 데뷔 앨범과 연이어 나온 2집은 이들의 운신 범위를 제한하는 방향이 아니라 가능성을 열어두는 방향으로 작동한다. 특유의 서늘함과 날렵함을 견지한 퍼포먼스는 박자를 잘게 쪼갰음에도 촘촘하게 맞춰져 있고, 사운드 또한 군더더기 없이 꼭 필요한 소리만 들어있다는 인상이 있다. 특히 보컬 디렉팅에서는 시원하게 내지르는 샤우팅이 인상적인 ‘Top of the Chain’이나 ‘Believer’ 같은 트랙부터 섬세한 바이브레이션까지 살린 발라드 트랙까지 다양한 활용법을 보여주고 있다. 미성의 보컬이 다수 포함된 신인 그룹이 으레 그렇듯 단선적이고 짧은 파트나 가성 코러스 위주로 배치할 법도 했지만, 제작자의 강박이 느껴질 정도로 고른 용인술을 보여주며 멤버들은 그것이 당연하다는 듯 훌륭하게 소화해낸다. 무엇이 주어져도 소화해내겠다는 자신만만함 또한 이 팀의 잠재력을 뒷받침하는 애티튜드겠다. 오래 구상해온 프로젝트인 듯 준비한 콘텐츠의 볼륨이 방대한 데에 비해 너저분하게 늘어놓은 것이 없고 잘 정돈되어 있다. 그래서 이들이 어필하는 것은 구차하고 질척거리는 호소보다 소담하게 잘 꾸며놓은 세계로의 초대에 가까운데, ‘초대’에 걸맞게 다른 보이그룹에서는 흔히 볼 수 없는 섬세하고 사려 깊은 배려를 앨범 안팎에서 느낄 수 있다. 이들이 외치는 ‘Get Closer’라는 캐치프레이즈를 간과할 수 없는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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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dology.kr 에디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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