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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etters : 박보람 – 예뻐졌다

‘예뻐졌다’는 노래의 화자와 박보람을 일치시키는 것 뿐만 아니라, 심지어 노래를 듣는 청자인 나조차도 노래의 화자에 깊숙이 이입하게 된다. 그래서 발견한 것은 꽤 슬픈 것이다.

나는 예쁜 아기는 아니었다. 어른들은 내게 ‘장군감’이라고 하곤 했는데, 그건 여자가 남자에게 “착하게 생겼다”고 하는 것과 비슷한 말이다. 나이가 들면서 나는 “듬직하게 생겼다”거나 “공부 잘하게 생겼다”는 말을 들었다. 그것이 그들이 칭찬을 하고 싶다는 선의로 내게서 애써 찾아낸 외모였다. 십 대 때 찍은 내 사진은, 거울조차 자주 들여다보지 않았던 시기였기에 나 자신에게조차 낯설다. 뻣뻣한 직모 머리, 여드름이 잔뜩 난 얼굴과 살찐 체격을 어디에 둘 곳 모르고 어색하게 카메라를 바라보고 있는 낯선 내가 사진 속에 있다.

하지만 여자에 비해 남자의 외모에 훨씬 관대한 세상에서 살았던 나는 다이어트 후(혹은 성형 수술 후) 주변 사람들이 자신을 대할 때 훨씬 더 친절하게 대한다는 여자들의 간증에 백 퍼센트 이입을 하는 것은 아니다. 그래서 나는 박보람의 ‘예뻐졌다’를 들으며 그 어떤 이야기를 하는 것도 조심스럽다. 하지만 “예뻐졌다, 매일 듣고 싶었던 말 / 정말 한 번도 듣지 못했던 말”이란 가사에는 나 또한 떠올리고 싶지 않아도 떠오르는 것이 있다. 어떤 놀림, 짓궂은 장난들, 열등감의 씨앗이 된 장난스러운 별명 같은 것들.

이십 대를 지나면서 거친 몇 번의 연애는 감사하게도 내게 적당한 수준의 자존감을 돌려줬다. 나는 그저 평범했을 뿐이다. 심지어 누군가에게 나는 매력적으로 느껴지는 사람이었다. 그것을 아주 오랜 시간을 거쳐 깨달으며 나는 내 외모에 대해 평가하는(혹은 평가하는 듯한) 사람들에 대해 그전처럼 예민하지 않을 수 있게 됐다. 하지만 나아지지 않는 것도 있다. 움츠러든 십 대 시절을 보낸 탓에 나는 다양한 표정을 가지고 있지 못하다. 다른 사람에게 어떻게 해야 내 몸짓이나 제스처가 매력적으로 보이는지 모른다. 여전히 나는 뭘 해도 스스로를 어색하게 느낄 때가 많고, 백화점처럼 예쁜 물건들이 널려 있는 곳에 가면 나 자신의 모습부터 검열한다. 연애가 내게 어느 정도 자존감을 회복시켜주기는 했지만, 그것만으로 충분하진 않다.

“나도 너처럼 사랑받길 원했어 / 그래서 더 독하게 / 예뻐졌다, 매일 듣고 싶었던 말”이라는 가사는 그래서 슬프게 느껴진다. 내가 적극적으로 표현하지 못했던 욕망이 거기 있다. 어쩌면 여자만큼 외모에 가혹하지 않은 세상과 몇 번의 연애가 나 자신의 마음을 더 깊게 들여다보지 않게 했는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것은 내 욕망을 더 깊이 숨기는 것이었다. 그런 욕망을 직시하는 것은 나의 열등감을 먼저 들여다봐야 하는 일이고, 그것은 괴롭다. 괴로워하는 것을 그만둔 것과 자유로워진다는 것은 같지 않다.

박보람이 ‘예뻐졌다’는 노래를 부르고 그것이 대중에게 받아들여지는 모습을 보며 복잡한 마음이 들기도 한다. 과거의 자신을 못생겼다고 규정해버리고, 지금은 예뻐져서 달라졌다는 선언이 담긴 노래를, 수십만의 시청자가 TV 방송을 통한 데뷔 과정을 지켜본 박보람이 부르게 되고, 그래서 사람들이 블로그에 박보람의 비포 애프터 사진을 올리고, 음원 사이트에서 1위를 달리게 됐다고 그것을 ‘스토리의 힘’이라고 말하는 것이 싫다. 하지만 나도 한 사람의 대중으로서 ‘예뻐졌다’와 박보람을 떼어놓고 생각하기 힘들고, 그래서 나는 이 노래를 들으며 효민의 ‘Nice Body’를 처음 들었을 때처럼 어이없어 할 수가 없다. 남자 프로듀서의 차별적인 성적 욕망을 대리 표현한 것 같았던 ’Nice Body’에 비해 상대적으로 덜 노골적인 ‘예뻐졌다’는 노래의 화자와 박보람을 일치시키는 것 뿐만 아니라, 심지어 노래를 듣는 청자인 나조차도 노래의 화자에 깊숙이 이입하게 된다. 그래서 발견한 것은 꽤 슬픈 것이다. 내가 들여다보는 것을 그만둔 내 열등감이 거기 있다. ‘예뻐졌다’는 네 글자에 불과한 칭찬에 여전히 취약하고, 누군가에겐 립서비스에 불과할 수도 있는 그런 칭찬을 원하는 어린아이가 내 안에 아직도 살아 있다. 수많은 시청자 앞에서 자신의 빛나는 재능을 확인받은 젊은 가수가 이런 노래를 부르는 것과, 그 노래에서 나 자신의 나약한 고리를 확인하는 그 모든 것이 속상하다.

예뻐졌다
MMO
2014년 8월 7일

나 예뻐졌대 다 그래 모두 놀래
못 알아보겠대 (Oh M God)
어디했어 뭐했어 모르는 소리 No (말도 안돼 No No Way)

바나나 한 개 계란 두 개
정말 피곤해 남들처럼 예뻐지는게
(넌 모를거야 죽었다 깨어나도 넌)
머리부터 발 끝까지

너무 너무해
신경쓸게 한 둘이 아냐
나도 너처럼 사랑받길 원했어
그래서 더 독하게

예뻐졌다, 매일 듣고싶었던 말
정말 한번도 듣지 못했던 말
달라 모든게 달라졌어 (Doo Roo Roo Roo)
예뻐졌다, 니가 보는게 전부가 아냐
전에 니가알던 내가 아냐
잘가요 My Love

짧은 치마 스키니 상관없어 이젠 입을수있어 (I’m Good)
(당당하게 남들 Oh 눈치따윈 안볼래)
하루종일 난 거울만 보네

좋아 매일매일 달라진 내 모습
어제 나보다 오늘 내가 더 예뻐
주문을 또 걸어봐

예뻐졌다, 매일 듣고싶었던 말
정말 한번도 듣지못했던 말
달라 모든게 달라졌어 (Doo Roo Roo Roo)
예뻐졌다, 니가 보는게 전부가 아냐
전에 니가알던 내가 아냐
잘가요 My Love

I’m Beautiful, Beautiful, beautiful
누구도 부럽지 않아
이젠 나를 봐줘
나를 더 사랑할래 Woo Woo

Long Time No See 이게 얼마만이야
오빠가 좀 뜸했었지
목소리 아니었음 몰라 볼 뻔했어
이미 훌륭했지만 이렇게 여신이 될 줄이야
무리한 보람있네
너무 비인간적인건 아닌지
아무튼 당분간 좀 골치아프겠다!
Say Holla to Your Fans

예뻐졌다, 니가 보는게 전부가 아냐
전에 니가알던 내가 아냐
잘가요 My Love

쓴귤

By 쓴귤

TV를 보고, 음악을 듣고, 만화를 읽고 글 씁니다. 귀여운 사람과 이쁜 것들을 좋아합니다.

2 replies on “letters : 박보람 – 예뻐졌다”

예뻐지고자 하는 소망이 이루어질 수 없는 현실, 괴리감?
일상에서도 자주 듣는 예뻐졌다는 말이 불편하다는 건 아직 자존감이 회복되지 않았다는 반증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