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년아 저 모든 별들은 너보다 먼저 떠난 사람들이 흘린 눈물이란다. 세상을 알게 된 두려움에 흘린 저 눈물이 이다음에 올 사람들을 인도하고 있는 것이지”
넥스트 – ‘해에게서 소년에게’
나는 신해철의 팬이었다. 그를 이렇게 보내고 나서 하는 말이기에 계면쩍지만, 팬이었다. PC통신에 만들어진 그의 팬클럽 회원이었고, 그의 앨범의 대부분을 가지고 있다. 하지만 난 언젠가부터 그의 음악을 듣지 않기 시작했고, 어른이 된 후 알게 된 친구들은 내가 신해철의 팬클럽이었다는 사실을 모른다. 바쁘게 살다 보니 잊고 산 것도 있고, 음악을 듣는 취향이 달라진 탓도 있겠지만 감히 고백하건대, 신해철을 너무나도 좋아했었다는 사실이 조금 부끄러웠다. 그건 서른이 넘은 내가 학창시절의 사진들을 꽁꽁 감춰두고 있는 것과 비슷하다. 하지만 내가 그 시절 이승환의 팬이기도 했다는 게, 전람회의 팬클럽이기도 했다는 사실은 그만큼 부끄럽진 않다. 그런데 신해철은 좀 다르다.
그건 신해철이 록 스타임과 동시에 나라는 코흘리개에겐 한없이 멋있어 보였던 동네 대학생 형 같은 존재였기 때문일 것이다. 이미 완성된 것 같은 어른들과도 달랐고, 사춘기 시절의 불안정한 정서를 위로하고 때로는 아름답게 포장해주었던 다른 가수와도 달랐다. 신해철은 “그의 말투를 따라하며 그의 행동을 흉내내보기도 해 / 그가 가진 생각들과 그의 뒷모습을 맘속에 새겨 두고서”의 가사처럼 내가 흉내 내고, 따라했었던 형이었다. 그래서가 아닐까. 나도 어른이 되면서 그를 무작정 동경했다는 사실을 감추고 싶었던 것은. 신해철의 부고가 전해진 10월 27일 밤, 그럴 거라 전혀 생각하지 못했던 이들이 소년으로 돌아가 그의 팬이었음을, 그에게서 많은 것들을 배웠음을 고백하는 것을 지켜보며 나는 신해철이 우리 세대에게 ‘마왕’도, ‘교주’도 아니라 ‘골목대장’같은 존재가 아니었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내게 그가 그렇게 멋있게 보였던 이유는 무엇이었을까. 최소한 강헌이나 유하 같은 평론가가 주목했던 사회 비판적이고, 때로는 지적이고 철학적인 가사가 다는 아니었다. 나는 아직도 ‘니체의 상처 입은 분노’가 무엇인지 모른다. 하지만 “돈, 큰집, 빠른 차, 여자, 명성, 사회적 지위, 은행 구좌의 잔고 액수”에 연연하지 않고 “자랑할 것은 없지만 부끄럽고 싶진 않은 나의 길”을 걷겠다는 형의 태도에서 깊은 감명을 받았던 유년기의 나를 기억한다. 형은 명문대 재학생에, 당시 가장 주목 받는 가수 등용문이었던 대학가요제로 화려하게 데뷔해, 소매가 풍성한 셔츠를 입고 커피 잔을 두 손에 든 채 왕자님처럼 앨범 재킷 사진을 찍었다. 요즘 말로 하면 ‘엄친아’였을 것이다. 하지만 형은 이상하게 “세상을 알게 된 두려움에 흘린 저 눈물”을 반복해서 노래했다. “세월 속에 흐릿하게 잊어져 간 약속 / 나는 아직 기억하고 있다”고, “열병에 걸린 어린애처럼 꿈을” 꾼다고 노래했다. 신해철이 당대의 소년들에게 큰 영향을 끼쳤던 이유는 이런 낭만적인 삶의 태도 때문이었다.
그런 형이 나에게 가장 큰 영향을 미친 건 결국 사랑이었다. 소심한 소년이었던 십대의 나는 노래방에 가게 되어 노래 좀 하라는 재촉을 못 이기게 되면, ‘내 마음 깊은 곳의 너’나 ‘먼 훗날 언젠가’를 선곡하곤 했었다. 그리고 그 기억이 나만의 것이 아님을 확신한다. 그 어떤 록발라드의 고음보다 “그녀는 나의 작은 공주님이었지요”와 “Promise, Devotion, Destiny, Eternity. and Love”의 속삭임이 소년의 심장을 강타했었다. 대학 생활을 <우리들의 천국>과 같은 캠퍼스 드라마로 상상하던 시절, 나는 신해철의 사랑 노래로 사랑을 배웠다. 그것은 신해철의 사랑 노래가 마침내 하나의 사랑관을 형성할 정도로 일관된 정서를 가지고 있기 때문이기도 하고, 그 정서가 소년을 전율시킬 정도로 운명, 헌신, 약속과 같은 장대한 기사도적 낭만을 품고 있었기 때문일 것이다.
그래서 난 신해철이 스물세 살 때 발표한 그의 솔로 1집 앨범이 재미있다. 당장 다음해에 나온 “myself” 앨범부터도 찾아볼 수 없는 정서와 신해철의 디스코그라피 전체에서 두고두고 반복해서 나타나는 정서가 혼재되어, 미처 정리되지 않은 서랍 속 같은 앨범이기 때문이다. 예를 들자면 ‘인생이라는 이름의 꿈’이라는 곡의 “꿈결 한가득 걸어온 세월 / 시간은 점점 빨리 흘러가고 / 거울에 비친 나의 모습은 어느새 어른이 되어 있는 걸까”에서 보이는 어른이 된다는 것에 대한 고민, 자신의 꿈을 향한 여정에 대한 불안감 등의 정서는 “myself” 앨범의 ‘나에게 쓰는 편지’, ‘50년 후의 내 모습’, ‘길 위에서’ 등에서 자세해지거나, 여러 형태로 변주되고, 때로는 넥스트 “Home” 앨범의 ‘영원히’나 훗날의 “Lazenca, A Space Rock Opera”의 ‘The Hero’ 같은 곡에서도 그 흔적을 찾을 수 있다. 특히 선명한 유년 시절과 불확실한 미래를 대비시키는 작사는 그의 가사에서 유달리, 그리고 흔히 나타나는 코드다.
‘슬픈 표정 하지 말아요’는 신해철의 곡이 아니기에 다소 이질적이지만, 신해철의 가사이기에 여전히 신해철의 정서를 담고 있기도 하다. 어떤 시련을 겪고 있는 연인을 안쓰럽게 바라보는 나, 안정된 미래를 약속할 수 없는 자신, 그럼에도 불구하고 분명히 약속하는 영원한 사랑의 맹세는 신해철이 끊임없이 반복하는 사랑에 대한 관점이자 주장이다. ‘슬픈 표정 하지 말아요’가 다소 소년의 풋풋함을 담고 있다면 좀 더 성숙한 청년으로써 이별의 순간까지 돌아보는 ‘내 마음 깊은 곳의 너’와 좀 더 짙은 인생의 회한을 담은 ‘the dreamer’, 보다 구체적인 스토리를 안고 있는 ‘힘겨워 하는 연인들을 위하여’까지 신해철은 같은 노래를 꾸준히 반복한다. 여기에 ‘고백’이라는 곡에 흐르는 비감과 숙명론적 태도가 더해지면 신해철만의 일관된 사랑관이 완성된다. “처음 너를 본 순간부터 나는 이미 알고 있었지 / 내 삶의 끝까지 가져갈 단 한 번의 사랑이 내게 왔음을”의 가사에 이어지는 “내 말을 들어봐”라는 속삭임까지. ‘아주 오랜 후에야’, ‘the dreamer’, ‘사탄의 신부’ 등등에까지 이어지는, 방황하는 자신을 기다리고 종내는 구원해줄 누군가에게 헌신하겠다는 그의 기사도적 낭만에 기초한 사랑관은 토이의 앨범에서 신해철 본인이 부른 ‘마지막 로맨티스트’ 같은 곡으로 일종의 자기 패러디 되기도 할 만큼 일관된 것이었다.
그에 비하면 ‘안녕’에 나타난 가식적인 사랑과 속물적인 여성에 대한 비난은 신해철의 이후 디스코그라피엔 결코 나타나지 않는 독특한 정서다. 오히려 ‘현대 여성’이나 ‘너에게 들려주고 싶은 이야기’ 같은 곡을 쓴 015B의 정석원이 작사했다면 더 그럴싸하다고 느껴진다. “우리 처음 만났던 비가 오는 날 / 많은 얘길 나누며 온종일 걸었지 / 그날은 그대 생각하다 온 밤을 지새우고 그대를 보고픈 마음에 어쩔 줄을 몰랐었지만 / 사랑한다는 그 말 하기가 너무 어려워”라고 노래하는 ‘너무 어려워’ 같은 곡 또한 신해철이 작사, 작곡 모두에 참여하지 않은 유일한 곡이어서인지 신해철의 사랑 노래이라고 하기엔 지나치게 수줍다. 정석원이 작곡한 ‘PM 7.20’ 이나 ‘함께 가요’는 물론 신해철 본인이 작곡한 “사랑이라는 이름만으로 함께하기엔 이젠 나에게 지쳐 있다면 / 오, 떠나가요”라고 노래하는 ‘떠나보내며’ 또한 신해철 특유의 사랑 노래와는 확연히 구별된다.
그래서 신해철의 1집은 신해철의 팬에게는 그리운 앨범임과 동시에 낯설기도 한 앨범이다. 본인조차도 “myself” 음반을 자신의 음악의 초심이라고 규정하지만, 신해철이 자신의 방향을 고민하고 자신의 정서를 찾아가는 방황의 흔적은 오히려 1집에 고스란히 남아 있고, 우리는 그의 음악 여정 동안 1집에서 나타난 어떤 태도가 버려졌고, 어떤 정서가 계승되었거나, 반복되었는지 알고 있다. 한 남자가, 한 뮤지션이 가요계의 최고 호황기부터 극심한 불황기까지 극렬한 변화의 시기를 거치며 어떻게 성장하고, 어떻게 변해가며, 또 어떻게 자신의 인생을 살아가는지 신해철은 보여주었고, 그 시작의 단초는 이 1집 앨범에 있다.
동경하던 형이, 한때는 잊고 살았던 그가 26년여간의 대장정을 멈추었다는 비보를 접한 지금 나는 다른 앨범이 아닌 그의 솔로 1집 앨범을 듣는다. “이제는 나도 어른이 돼 그들과 다른 삶을 살고 있지만” 형이 “내게 가르쳐준 모든 것을 가끔씩은 기억 하려고” 하기 때문이다. 그가 늘 말해왔던 “꿈”이, “열병”이, “고흐의 불꽃 같은 삶”이 시작된 앨범은 청춘의 한 추억을 남겨두는 기념 사진 같았던 89년의 무한궤도의 앨범도 아니고, “myself”라는 타이틀을 달아 오로지 자신의 작품임을 천명하며 뮤지션의 길을 걷기 시작한 91년의 2집도 아니라고 나는 생각한다. 신해철 스스로도 “문단 데뷔할 때 사랑에 대한 시와 예쁜 수필을 써서 소녀 팬들의 지지를 받았는데”라고 말하는 때, 최근 초심으로 돌아가겠다며 발매한 앨범에도 “reboot 슬픈표정하지말아요”라고 타이틀을 붙이지 않는 그 때, 특유의 저음으로 “슬픈 표정 하지 말아요. 타이거가 있잖아”라고 속삭이는 그에게 여학생들이 비명을 지르고, ‘안녕’의 영어 랩을 한글로 받아 적으며 외우던 남학생들을 양산하던 그 순간에 나의 ‘The Hero’는 탄생했다. 나는 대학가요제의 대상 수상으로, 누구나 꿈꾸는 하이틴 스타가 되어 꿈을 이룬 듯이 보이는 때 “조명은 꺼지고 텅 빈 무대 위에는 아직 남아 있는 시든 꽃다발”을 노래했으며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미 지워진 기억들과 이미 사라진 약속들은 아직도 희미하게 내 가슴속에 꺼지지 않고 있어요”라고 수줍게 다짐한 신해철의 처음 시작을 듣는다. 어른이 되었어도 여전히 불안하고, 혼란스러운 서른의 나는 스물 세 살의 방황이 역력한 순간, 아직 분명한 확신이 없는 그의 ‘길’이 시작되는 그 순간들을 담은 노래들을 들으며 위로 받는다. 지금 그는 여전히 나를 인도하고 있다.
- letters : 신해철 1집 “슬픈 표정 하지 말아요” - 2014-11-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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One reply on “letters : 신해철 1집 “슬픈 표정 하지 말아요””
읽다가 마음이 찡해졌습니다. 저 역시 그를 떠나보내고 이제야 생각하는거지만, 한 시대를 품미한 마지막 로맨티스트가 아니었나 싶어요. 그래서 더더욱 그의 부재가 안타깝고 슬픈것 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