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월 21일 ~ 31일에 발매된 아이돌 언저리 신작들에 대한 필진들의 단평이다. 써니힐, 스텔라, JJCC, 탑독, 알파벳, 씨스타, 포텐(4TEN), 터치, EXID, 비트윈, 하이포, 베스티, 라붐(La Boum), 슈퍼주니어, 박정민을 들어보았다.
미묘: 흔히 생각하는 것과 달리 하우스는 우리 '댄스 가요'에서 그리 잘 팔리는 종목이 아니다. 이민수 특유의 아기자기함으로 무장한 'Monday Blues'가 거의 인디트로니카에 가까운 색채를 곁들여가며 하우스 속에 가요 타이틀곡의 설득력을 얻어낸 것은 매우 인상적인 지점. 아이유 풍의 에버랜드 하우스를 활용해 귀여운 느낌을 더하는 'Get the x out', 'Paradise'와 레트로한 매력이 돋보이는 '연애세포' 등, 음악 좀 들었다는 사람들의 페티쉬를 살짝 간지럽히면서, '좋은 가요' 그룹인데 '어쩌다 보니 아이돌처럼 보일 뿐'이란 느낌을 준다. 어쩌면 차기 브라운아이드걸스의 길을 가는 것일까. 압도적인 부분이 없어 부담을 주지 않으면서도 무척 심상치 않은 음반.
유제상: 'Part A.'라는 부연설명이 붙은 써니힐 최초의(!) 정규앨범. 써니힐 멤버들도 참여했던 나르샤의 '맘마미아'와 유사한 분위기를 지닌 타이틀 'Monday Blues'를 필두로 총 8개의 곡이 수록되었다. 타이틀을 포함해 제아가 피처링한 'Paradise'나, 먼저 싱글 커트 된 '그 해 여름' 정도가 인상적이다. 다만 이들 트랙 또한 신규 팬의 유입을 불러올 정도로 강렬하진 않으며, 묘하게 일상의 지루함을 반복해서 사람 지루하게 만드는(...) 가사가 많아서 이에 대한 호불호가 갈릴 듯. 써니힐의 팬이라면 이 정도의 볼륨, 정성에 만족할 수 있겠지만 그 외의 사람이라면 글쎄
조성민: 필연적으로 자본의 힘에 의존하게 되는 이른바 ‘기획력’의 중요성이 강조되는 것이 요즘 아이돌 시장에서의 추세이지만, 아직까지는 기획력으로 어찌할 수 없는 아티스트 고유의 능력이 분명 작품 퀄리티를 결정적으로 좌우한다고 본다. 여느 걸그룹보다 특출난 콘셉트의 곡이 있는 것도 아닌데 듣는 내내 귀가 즐겁고 기분이 좋아지는 앨범이라면, 이는 결국 그만큼 가수의 역량이 크게 발휘되었다는 뜻이리라. 써니힐 음악의 가장 큰 장점은, 듣고 있는 동안 신나고 화려한 무대가 머릿속에서 자연스럽게 연상된다는 점인데, 이번 앨범에서도 그런 장점이 여실히 드러난다. 이것은 단순히 ‘신나는 노래를 뽑아왔다’는, 어떤 기획 단계에서의 계산에 의한 것보다, 써니힐 멤버들이 노래를 그만큼 잘 다룬다는 데에 기인한다. 어쨌든 써니힐은 ‘믿고 들어야 마땅’하다는 것을 확인할 수 있는 앨범. 선공개곡 ‘그 해 여름’이 전체 앨범에서 훌륭한 아우트로(Outro)로서의 역할을 하고 있는 점이 마음에 쏙 든다.
유제상: '마리오네트'로 무관심의 무저갱에서 탈출한 스텔라가 반년 만에 선보인 신곡. '마리오네트'가 반복적인 전자음과 노이즈를 활용해 최근 경향을 충실히 반영했다면, '마스크'는 반 음씩 오르내리는 멜로디에서 현상의 허망함을 일깨우는 가사에 이르기까지 복고의 분위기가 물씬 풍긴다. 솔직히 이 곡에는 90~00년대 가요의 향유자라면 좋아하지 않고는 못 배길 요소들이 한 가득이다. 곡의 전주와 초반부 읊조림이 김원준의 '언제나'를 떠올리게 한다든지, 하늘하늘한 옷을 입고 얼굴을 가렸다가 다시 보여주는 모습이 '인형' 시절의 베이비복스를 연상시킨다든지...여기에 천천히 힙을 움직이는 야릇한 안무를 더해 '마리오네트'로 증폭된 섹시에 대한 기대감마저 채워준다. 본래 앞서 언급한 모든 요소를 지닌 걸그룹이 바로 나인뮤지스였는데, 요즘 이들의 상황이 여의치 않다 보니 스텔라가 그 역할을 대신하게 된 걸까. 여튼 만족스러운 신곡.
조성민: 뚜렷한 방향성이라든가 콘셉트를 설계해두지 않은 상태에서 스윗튠의 곡을 그저 ‘받아오면’ 이렇게 된다. 과연 대중 일반이 이 노래를 듣고 ‘스텔라’를 떠올릴까, 아니면 ‘카라-레인보우’나 ‘나인뮤지스’를 떠올릴까? 곡의 퀄리티도 좋고, 멤버들의 가창력에 크게 흠이 있는 것도 아니기 때문에, 결국 문제는 예의 그 ‘기획력’에 있다고밖에 설명할 수가 없겠다.
미묘: 처음엔 읽기가 "더블제이씨"였는데 이젠 "제이제이씨씨"로 바뀐 것인가. 어쨌든 데뷔 싱글과 마찬가지로 '케이팝에서 늘 들어온 것 같은' 풍으로 만들어진 곡들이다. 마침 프로듀서진은 이단옆차기, David Kim, 텐조와 타스코. '빙빙빙'의 후렴이 폭발력을 보이기보다는 묵직한 베이스와 함께 다소 가라앉는 듯해 다소 아쉽다. 그러나 평이한 곡 속에 가요계에선 흔히 들리지 않는 사운드를 꼭 하나씩 집어넣어서 어딘지 모르게 굉장히 다른 것 같은 기분을 느끼게 하는 점은 흥미로운 전략이다. 특히 감성적인 파트에서 피아노나 기타를 활용하는 방식은 초보 프로듀서들에게는 참고서가 될 만한 우아함을 선보인다.
유제상: 이단옆차기 작곡 '빙빙빙 (Oneway)'을 전면에 내세운 5인조 남성 그룹 JJCC의 신보. 너무 깔끔하게 곡이 뽑혀서 다소 밋밋하게 느껴지는 '빙빙빙', 인피니트 같은 '니가 떠나간다', 훵키한 멜로디가 기억에 남는 'Be Good'에 타이틀 곡 '빙빙빙'의 인스트루멘탈까지 총 네 곡을 수록. 곡들은 하나같이 퀄리티가 좋으며, (아무래도 제작진의 힘이겠지만) 신인그룹답지 않은 숙련된 기운이 느껴진다. 음원은 이 정도면 공이 많이 들어가 있으니, 이제 이들에게 중요한 것은 잦은 홍보와 지속적인 미디어 노출, 팬덤의 형성, 화력지원 같은 외부 요인이 아닐까 싶다.
조성민: 분명 무척 좋은 노래들이고, 좋은 앨범이다. 문제는 음악이 아니다. 이 팀은 ‘아이돌’로서 대중에 소비되는 것에 관심이 없어 보인다. 뮤직비디오 등의 비주얼 측면만 놓고 본다면 전형적인 아이돌 EDM인 ‘빙빙빙’보다 미디엄 템포의 힙합이었던 ‘첨엔 다 그래’가 더 아이돌다웠다.
미묘: 리패키지 신곡이 전작의 인스트루멘탈 트랙까지 다 나온 뒤에 등장한다는 점이 이색적이다. '이건 아니지 않나 싶어'는 톡톡한 사운드 질감도 좋고 후렴의 가사 활용도 꽤 재밌게 귀를 감아온다. 그러나 멜로우한 스타일이 "좀 구태의연하지 않나 싶은 아이돌 행보, 이건 아니지 않나 싶은 느끼함." 그런 의미에서 '나 왜 이래'는 그런대로 납득할 만한 무게중심을 가진 편인데, 곡 자체는 좀 더 흘러가버리는 면이 있어 아쉽다.
미묘: '답정너'에서 게이트 신스가 커다랗게 오르락내리락하는 것이야 거의 장르 문법의 일부로 포섭되고 있는 것에 가까우니 그렇다 치자. 로맨틱한 터치를 더하기 위해 넣은 듯한 스트링과 피아노가 너무 구태의연하진 않은지? 심지어 포인트를 준 "Oh My Gosh"마저 조금 낡게 느껴진다. "샤방샤방한 남자 아이돌이라면 이런 거겠지..?"하는 클리셰에 가까운데, 그게 의외로 잘 살리기 어렵다는 건 제국의아이들이 잘 보여주지 않았나. 그나마 그쪽을 따라잡기에도 조금 무리인 듯하다. 그래도 나머지 수록곡인 '#아야'와 '심통부려'는 상대적으로 좋게 들린다. 무난하고 고전적인 길을 걸으면서 (요즘 유행하는) '짓궂은 남자들이 여기저기서 튀어나와 장난스러운 랩을 던져대는' 느낌을 재밌게 살린 편.
유제상: '답정너'라는 무시무시한 제목의 곡을 타이틀로 내세운 알파벳의 미니앨범. 플레이 타임 내내 남성 아이돌이 내세울 수 있는 귀여움이 잘 살아있어(심지어는 힙합 비트의 '심통부려'까지 귀여움이 넘친다) 기존 싱글보다 그룹의 방향성이 선명히 드러나 보인다. 개인적으로는 수록곡 중 동방신기 스타일의 '#아야'가 좋았지만 팬들의 입장은 다를 수도 있겠네. 참고로 이 앨범의 '답정너'는 "'답'은 '정'해졌는걸 '너'는 이제 내꺼란 걸"의 준말이란다. 모든 답정너가 이런 긍정적인 의미이면 좋으련만.
미묘: 'I Swear'는 힘을 보여주겠다는 의지로 다소 에어로빅 풍의 비트를 펼쳐놓고 씨스타와의 궁합이 검증된 브라스를 풀어놓은 뒤 '옥구슬 같은' 풍의 목소리로 빙글빙글 기교도 넣는다. 가사의 내용을 염두에 두고 들으면 왠지 핑클의 '영원한 사랑'처럼 들리는 점이 조금 신경 쓰이지만 흠 잡을 곳 없는 곡. 다소 쎈 아이돌로 시작해 제3의 길을 걸었던 씨스타가 상큼계 걸그룹의 화법을 조금씩 섞어 넣고 있는 점이 재밌다.
유제상: '이런 곡은 이제 그만 나와주었으면...' 했던 'Touch My Body'에 비해 한결 듣기 편한 'I Swear'와 (씨스타 음악의 한 축을 차지하는) R&B 스타일의 'Hold On Tight'에, 기존 히트곡 넷의 리믹스를 수록한 미니앨범. 개인적으로는 꿀벅지를 뽐내며 학다리 무공을 펼치는 씨스타가 아닌, 이 앨범처럼 편안한 곡을 편안하게 부르는 씨스타를 선호한다. 덧붙여 리믹스에 대해서 말하자면 경천동지할 변화가 있는 것은 아니니, 해당 리믹서의 팬들은 그냥 그들이 낸 앨범을 들으시길.
미묘: 엇박으로 지속되며 긴장을 주는 신스를 비롯해, "로킹한 EDM을 가져오겠다!"는 의지가 강하게 느껴진다. 날카로운 음색의 신스가 화성적으로 아슬아슬하게 울리는, 앤섬 풍의 화려한 사운드와 당당한 비트가 인상적이다. 여러 면에서 스피카의 'Tonight'이 연상되기도. 다만 이런 풍의 록스타 EDM 앤섬이 가요계에서 얼마나 먹힐 수 있는 종목인지는 궁금증의 대상. 랩만 나오면 조금 낯간지러워지는 것이 옥에 티.
유제상: 여성 4인조 그룹 포텐의 데뷔곡. 곡 자체는 양질의 팝으로, 멤버들의 개성이 다소 거세된 2NE1의 "CRUSH"를 듣는 기분이다. 다만 이런 좋은 곡을 두고도 2NE1이 그랬듯이 진부한 가사를 붙인 점에 대해서는 지적하지 않을 수 없다. 이것은 내가 모르는 남녀 간 '감성의 차이'인가? 아니면 상업적 황금률인가? 그것도 아니면 이런 질질 짜는 가사에 내가 모르는 어떤 보편미(美)라도 담겨 있는 걸까? 왜 하나같이 좋은 곡의 가치를 떨어뜨리는 '너 없으면 안되는데 하여튼 강해질 거야' 같은 앞뒤도 맞지 않는 가사를 여성 화자의 목소리로 퍼뜨리는 걸까?
조성민: 아무리 들어도 잘 모르겠어서 이번 회차 리스트 중에서 이 곡만 굉장히 오랫동안 수차례 들어보았다. 멤버들의 목소리는 꽤 매력적인 편인데, 곡이 별로 매력적이지 않은 것 같다. 그리고 ‘토네이도’가 자꾸 ‘토메이로(Tamato)’로 들린다는 점도 신경쓰인다. 안무에 스트릿댄스의 기본 동작이 지나치게 많아 무대를 봤을 때 덜 훈련되었다는 인상도 준다. 차라리 산뜻한 걸그룹 율동으로만 구성했다면 또 모르겠는데, 아장아장 율동과 걸스힙합, 락킹 동작 등을 섞어버리면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까. 혼돈의 데뷔곡. 이래서 제목이 중요한가 보다.
미묘: 나는 보통 멜로디 파트를 제외한 편곡의 비중을 높게 보는 편인데, 이 곡에 대해서는 얘기하지 않을 수 없을 것 같다. 이 곡의 후렴은 편곡이 부족해서 잘 되지 못한 게 아니다. 부분부분 곡의 다이내믹을 더해주는 재편곡이고 워블베이스가 등장하는 댄스 브레이크도 야심은 알 것 같지만, 정작 중요한 결과물은 여전히 그냥 술술 흘러가버린다.
조성민: 놀랍게도 제국의아이들, 인피니트, 틴탑과 데뷔 동기인 팀인데, 멤버 재정비와 함께 데뷔곡을 리믹스한 싱글을 발표했다. 노래는 그 어떤 남자 아이돌이 불러도 그다지 나쁘지 않을 만한 모양새로 구성되어 있으며, 리믹스를 통해 딱히 이전과 다른 신선한 느낌이 생기지도 않았다. 팀으로서 인지도를 알리기에는 조금 늦은 감이 있으니, 지금부터라도 멤버별 인지도를 높일 필요가 있지 않을까. 안타깝다.
유제상: 건강보험심사평가원과 함께하는 국민건강 체조송. 감상의 영역에 속하는 곡은 아니니 평을 하긴 어렵다만, 아직 이렇다 할 히트곡이 없는 프리츠의 이미지가 이렇게 무분별하게 소모되는 것을 보니 조금 안쓰럽다. 곡 제목에 들어간 '베뱁베뱁'은 아마도 '베이비 베이비(Baby Baby)'인 것 같은데, 이전 곡의 '오에오에'도 그렇고, 간질간질 신경 쓰이는 이런 이상한 센스가 계속 유지되는 한 프리츠의 메이저 입성은 쉽지 않을 것이다. 물론 제작진들은 이것 또한 프리츠의 개성이라고 생각하겠지만 말이다.
조성민: 아이돌이 부르는 공익 캠페인송은 SBS 인기가요의 ‘교통안전송’이나 ‘우유송’ 정도면 충분한 것 같다.
맛있는 파히타: 도대체 왜 이런 짓을 했는가? 아주 쌔끈하게 잘 뽑아낸 버스(verse)가 끝나자마자 쌩뚱맞고 청승맞은 코러스가 터지는데 다 된 밥에 재뿌리기가 아닌가. 요즘 주가를 올리고 있는 DIGIPEDI 의 신들린 뮤직비디오조차 노래를 살리는 데에 실패하고 말았다.
미묘: 사우스 풍의 사운드와 파워풀한 '정통 댄스가요'를 섞겠다는 야심은 높았던 듯하나...
유제상: EXID의 신곡 '위아래'의 가사 해석에 대해서 예당 엔터테인먼트가 낸 보도자료에 따르면 EXID가 아래, 팬들이 위에 위치해 서로 마주 보겠다는 뜻을 담고 있다고 합니다. 저는 들으면 들을 수록 영화 <왕의 남자>에서 장녹수가 연산군에게 했던 '어떤 대사'가 연상됩니다. 아무래도 제게 음란마귀가 씌였나 봅니다. 음원만 놓고 보면 트라이벌한 비트가 인상적인 양질의 곡입니다. 통속적인 후렴구가 없었다면 더 좋았을 것 같습니다.
조은재: 제대로 된 여자 래퍼의 존재감이 이 정도입니다, 여러분. 걸그룹의 공식이나 문법을 흐트러뜨리지 않고 LE 같은 래퍼를 녹여냈다는 것은 그만큼 다른 멤버들의 실력이 출중하다는 말도 되겠고, 곡과 무대를 구성함에 있어 균형이 한쪽으로 쏠리지 않게 상당히 신중을 기했다는 인상도 줄 수 있다. 걸그룹의 새로운 형태를 본 느낌도 있다. 솔지의 보컬이 무척 마음에 든다.
유제상: 같은 복고풍이라도 이들의 노래는 격이 다르다. 이들의 정성스러운 복고풍 노래인 '일루션 (illusion)', 'I,NO'를 듣고 있노라면 클릭비, 듀크, 포지션이 활개 치던 2000년대 초반이 저절로 떠오른다. 세상의 모든 노래가 이들 같았던 시절, 공교롭게도 비트윈이라는 DVD 유통사가 있었다. 당시 갓 군대를 제대한 평자는 DVD방에 갈 때면 비트윈에서 발매한 DVD를 집어 들고... 비트윈의 성공적인 활동을 기원한다.
조성민: 왜 자꾸 이런 느낌이 드는지는 아직 모르겠는데, 제국의아이들 아류 같은 느낌이 든다. 작년에 이미 핫 트렌드였던 플라워 패턴 수트를 이제 와서 의상으로 채택했다거나, 멤버 한 명 한 명이 강조될 리가 없게끔 안무를 구성한 점 등이 이 그룹의 미래를 어둡게 만들고 있다. 수많은 아이돌 그룹들이 그러하듯, 이 팀 역시 멤버가 왜 꼭 6명이어야만 했는지를 무대에서 보여줄 필요가 있어 보인다.
미묘: 살짝 톤다운을 함으로써 보컬 지향의 정체성을 살리면서도, 남자 아이돌로서 할 건 다 하고 있다. 그 중엔 은근한 성적 코드도 포함되는데, 무리하지 않고 부드럽게 부르는 보컬이 그 공격성을 뭉텅 잘라내서 부담이 없게 만든 점이 또한 (정통파) 아이돌스럽다. 어쨌든 지향점이 K-아이돌은 아닌 팀. 보컬이 곡에 편안하게 잘 묻어나는 걸 보면, 아이돌들이 가창력이 부족해서 편안한 창법이 유행한다는 류의 오해에 대해서도 좋은 반박의 근거가 돼줄 듯하다.
조성민: 아이유와의 콜라보에서 키를 찾은 걸까. 곧 가을이 오는 마당에, 앨범 전체에서 봄 내음이 진동한다. 보컬 특화 그룹 같지만, 의외로 퍼포먼스 등의 볼거리도 충실하게 챙겨두었다. 사실, 이 정도 음색에 이 정도 보컬이라면 과거에는, 많은 보컬그룹들이 그러했듯, 굳이 볼거리까지 신경 써야 할 필요가 없었을지도 모른다. 물론 필요가 없었다고 해도 이런 춤 실력을 썩히기에는 아까웠겠지만. 이 정도면 상당히 성공적인 데뷔인 것 같은데, 다른 사람들의 의견이 궁금하다.
맛있는 파히타: 단언코 이야기하자면 라붐의 데뷔곡 '두근두근'은 걸그룹 데뷔곡으로서 대단히 인상적이다! 걸그룹 데뷔곡이 가져야 할 어떤 맥락을 충실히 따르고 있으면서도 노래와 퍼포먼스를 통해 팀 고유의 개성을 보여주고 있다. 장난끼가 가득한 퍼포먼스는 마치 즉흥적인 애드립처럼 느껴지고 '가공되었으나 가공되지 않은 것 같은' 생기발랄한 에너지가 고스란히 시청자에게 전해진다. 템포를 변화시키며 드라마틱한 감정변화를 주고 "나의 남자가 되어줄래요?" 같은 유사연애적인 라인을 코러스에 배치한 점도 허투루 만든 아이돌 데뷔곡이 아님을 느끼게 해준다.
유제상: 앨범 재킷이나 멤버들의 면면을 보고 에이핑크 같은 전통적인 형태의 걸그룹이리라 생각했던 평자의 뒤통수를 후려친 싱글. 강렬한 비트와 보코더의 사용으로 기존 그룹들과 차별화를 시키려는 노력이 엿보인다. 특히 수록곡이 모두 과장된 비트를 담고 있어 곡의 멜로디에 비해 그루비한 것이 장점이라면 장점. 물론 그런 노력이 기존 그룹과의 현격한 차이를 만들어내지는 않지만, 데뷔싱글임에도 인스트루멘탈을 포함 여섯 곡이 수록되어 있는 점도 그렇고 여러모로 리스너들을 배려한 점이 돋보인다. 이 싱글에서 맘에 안 드는 점이라면 다소 생뚱맞은 싱글 제목 정도?
조성민: 이제 걸그룹이 ‘소녀 콘셉트’로 데뷔하는 것은 아무런 화젯거리가 안 된다. 중요한 것은 이 콘셉트를 유지하느냐, 여기서 아티스트 내지는 뮤지션으로 진화하느냐, 아니면 다 버리고 섹시 노선으로 갈아타느냐 뿐이다. 데뷔작은 에이핑크 오마주처럼도 느껴지는데, 과연 향후 행보도 그럴 수 있을까 궁금하다. 멤버들 각각의 끼나 개성은 충분해 보이고, 최근 데뷔한 신인 중에서는 적어도 다섯 손가락 안에는 꼽힐 정도일 것 같다.
미묘: 이전 타이틀 'Hot Baby'는 꽤 즐겁게 들었는데, 그것은 음반 전체의 균형이 좋았기 때문이다. 리패키지에 추가된 '니가 필요해'는 로킹하게 밀어붙이는 점이 시원하고, 요즘 사람들이 많이 이야기하는 이단옆차기의 동어반복에서 벗어나보고자 하는 의지도 느껴진다. 그러나 역시 'Hot Baby'와 연달아 이어 듣기에는 조금 피로감이 있다. 하긴 디지털 리패키지니까. 요즘 누가 음반을 순서대로 듣겠나. 리뷰하는 사람이 아니라면 말이다.
미묘: 지난 앨범부터 음악이 부쩍 좋아지고 있다. 타이틀 이후 세 곡이 연달아 SM 특유의 취향이라 할 만한 어둡고 매끄러운 R&B를 기반으로 서서히 상승세를 보인뒤 다섯 곡 연달아 떠들썩한 댄스곡으로 이어진다. 전자가 말끔한 성인 남성의 매력을 확실하게 잡아주고 나니, 훵크 색채가 가미된 중후반부도 훨씬 우아하고 근사하게 들린다. 그렇다, 어른의 음반이 되었다. 보다 '아이돌적'인 색채의 'Too Many Beautiful Girls'와 '환절기'에도 고개가 끄덕여지는 것도 앞 트랙들의 뒷받침이 있기에 가능한 일이다. 장난스러운 캐릭터들이 요란하게 뒤섞인 대규모의 그룹이 보여줄 수 있는 음악적 매력이, 이제는, 설득력 있게 다가온다.
조성민: SM에 닥친 여러 악재들이 슈퍼주니어의 앨범 퀄리티 상승으로 이어진 걸까. 슬슬 팬들도 슈퍼주니어의 ‘14번째 멤버’로 인정하고 있는 듯한 유영진이 오랜만에 굉장히 들을 만한 타이틀곡을 선사했다. 기존에 예성이 담당하던 부분들을 려욱이 대부분 메우고 있는데, 덕분에 그 동안 잘 부각되지 않던 려욱의 매력이 상당히 빛나고 있다. 개인적으로 슈퍼주니어 3집 "쏘리 쏘리(SORRY, SORRY)"가 ‘아이돌 명반’에 속한다고 생각하고, 꽤 오랫동안 빠져서 들었던 기억도 있는데, 이번 앨범은 "SORRY, SORRY"의 업그레이드 버전 같다는 인상을 받았다. 앞으로 슈퍼주니어 앨범은 계속 이렇게 만들어주세요. 제발요.
미묘: 확실히 일본과 한국의 대중음악 시장에는 취향 차이가 존재한다는 걸 느끼게 한다. 제이팝 중에서도 한국인에게 약간 진입장벽이 있는 류의 음반을 한국어로 듣는 기분. 주 작곡가인 한상원은 무척 가요적인 곡들을 쓴다고 생각했는데 다소 의외. 혹시 다소 크게 믹스된 보컬이 워낙 기교를 많이 부리며 단어마다 꾹꾹 누르며 가기 때문일까. 다른 수록곡들에 비해 타이틀 'Summer Break!'은 다소 '다른 취향'으로 신나는 곡이라 생각하며 들으면 나름의 재미가 있다.
조성민: 유난히 계절감을 뚜렷하게 갖고 있는 팀들이 종종 등장하는데, 개인적으로 SS501은 가을-겨울 시즌에 무척 잘 어울렸던 것으로 기억한다. 그래서일까. 박정민의 ‘여름 앨범’은 무척 ‘따스하다’. 차라리 크리스마스 앨범을 내면 어땠을까. 사실 박정민의 보컬 톤 자체가 여름에 그다지 잘 어울리는 편도 아니다. 그런 의미에서, 겨울에 앨범 한 번 더 내고 한국에서 활동 좀 해줬으면 좋겠다. ‘여름’을 ‘요름’으로 발음하는 것을 듣는 순간 정말 국내 활동이 시급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천년가도’는 김형준과의 듀엣 버전으로 한 번 더 수록해도 좋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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One reply on “1st Listen : 2014.08.21~08.31”
위아래 저렇게 평가해놓고 지금보니깐 아이러니하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