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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리츠의 완장과 귤의 참맛

외신이 프리츠에 대해 보도한 것은 의상 때문이었다. 완장의 형태가 나치의 하켄크로이츠를 연상시킨다는 것이다. 재밌는 것은, 이 의상에 대해 일각에서는 즉각적으로 어떤 ‘사인’을 캐치했다는 점이다. ‘덕밍아웃’이라는 것이다.

외신에 프리츠에 대한 오보가 연잇고 있다. 프리츠를 한국의 4인조 여성그룹이라고 소개한 것이다. 프리츠는 로봇곰 크랭크를 포함한 5인조 혼성, 아니 혼종 그룹이다. 크랭크는 최근 발매된 ‘솔아솔아’의 뮤직비디오에서 기타 연주를 선보이기도 했다.

프리츠
무려 센터! ⓒ 팬더그램

…그런 건 됐고, 외신이 프리츠에 대해 보도한 것은 의상 때문이었다. 완장의 형태가 나치의 하켄크로이츠를 연상시킨다는 것이다. 이 소식은 월스트리트 저널이 보도한 것으로 알려지기도 했으나, 산하 블로그인 “코리아 리얼타임”에 게재됐고, 이후 독일의 일간지 디 벨트(Die Welt)에서도 보도했다. 국내에서도 제법 논란이 되었다. 소속사 팬더그램 측은 “교통 표지판에서 착안한 것”이며, “네 방향 무한대로 뻗어나가자는 의지”를 담은 엑스자 형태의 로고라고 해명에 나서기도 했다. 재밌는 것은, 이 의상에 대해 일각에서는 즉각적으로 어떤 ‘사인’을 캐치했다는 점이다. ‘덕밍아웃’이라는 것이다. 딱히 나치 추종자라기보다, 일본 서브컬쳐의 영향일 것으로 쉽게 미루어 짐작할 수 있었다는 얘기다. 한국 대중문화계에서는 뭔가 나쁜 것은 일단 일본에서 들어온 것으로 생각하는 경향이 있기도 하지만 말이다.

하지만 결국, 프리츠와 ‘솔아솔아’의 의상에 대해 일본 대중문화의 영향을 느끼는 것은 자연스럽다. 이제는 어느 정도 양식이 확립된 한국 아이돌계에서 일본 아이돌을 참고하는 것은 전략적으로든 윤리적으로든 나쁜 일이 아니다. 아이돌의 세계가 리부트되고 있는 듯한 요즘이라면 더욱 그렇다. ‘일본풍’을 온몸으로 쏟아내는 ‘솔아솔아’의 뮤직비디오는, 그래서 그나마 혐의를 벗는다. 블라우스는 밀리터리 풍이지만 치마는 고스로리 풍이고, 비디오에는 붉은 섬광이 날아다닌다. 음악은 어느 모로 들어도 비주얼록, 혹은 비주얼록을 도입한 애니메이션 음악으로, 케이팝의 ‘블링블링’과는 다소 거리를 둔다. 멤버들의 외모는 화려하기보다는 수수한 듯 상냥하고 귀여운 타입이고, 노래와 퍼포먼스를 완벽하게 구사하기보다는 씩씩하고 활기찬 모습을 보여주는 것도 일본식 아이돌 전략이라 할 수 있다. 다소 ‘전파계’라 부를 법한 수수께끼 같은 표현과 설정들도 그렇다. 프리츠가 네오나치거나 유태인 혐오자, 인종주의자라고 느껴질 다른 이유가 없다. 그저 일본 서브컬쳐의 이런 저런 요소들을 쏟아 넣었을 뿐이다.

논란이 된 프리츠 의상

두 번째 혐의는 거기서 발생한다. 그것을 분별 없이 가져와도 되느냐는 것이다. 확실히 일본에는 ‘제3제국 간지’를 동경하며 차용하는 흐름도 존재한다. 일본에서 유독 그렇게 되는 사회적, 정치적 맥락이 있는지, 어느 정도 수가 될 뿐인 일탈적 개인들인지, 혹은 그것이 동양권에 존재하는 현상인지는, 여기서 논하기 곤란할 것이다. 그러나 일본에서도, 한국의 일본 서브컬쳐 향유층에서도, 이런 코드에 대한 경각심이 존재한다는 것만은 분명하다. 그리고 그것이 서구권의 인식과 온도차가 있다는 것 또한 거의 분명해 보인다.

유럽에서 살면서 느끼는 것은, 이 사람들은 나치에 매우 민감하다는 것이다. 대중문화에서도 나치는 악마, 좀비, 혹은 교화의 대상으로 묘사되는 것이 압도적이다. 휴고 보스가 명품가에 당당히 자리하고 있는 것을 보면 ‘제3제국 간지’가 정치적 맥락을 떠나 제공하는 미적 쾌를 느끼는 것만은 비슷해 보이는데도 말이다. 그 배경에는 나치 부역과 유태인 학살의 기제가 악마적 개인이 아닌 평범한 자신들 속에 있었음에 대한 반성이 자리한다. 그래서 때로는, 우리라면 웃어 넘길 수 있는 것들에도 매우 정색하기도 한다. 다른 대륙의 전승국인 미국에서는 또 다른 층위가 포함되지만, 서구사회에서 제3제국은 그런 식의 금기의 의미를 갖는다.

반면 세계 2차대전 당시 우리는 일제와 얽혔다. 우리는 나치에 피해를 입지도 않았지만, 그에 부역하거나 유태인 학살에 동조할 일도 없었다. 유태인을 증오해본 적도 없었다. 심지어 ‘Nazi’에서 ‘국가’의 어원을 느낄 일도 없다. 그러니 나치 기호에 대한 감수성이 서구의 그것과는 다를 수밖에 없다. 우리가 굵은 원형 집중선만 보면 욱일기를 의심하지만 서구에서는 ‘동양의 쿨’처럼 받아들여지기도 하는 것과 같은 온도차이다. 그리고 귤이 회수를 건너 탱자가 되는 것은 너무나 흔한 일이다.

지코 - Tough Cookie
남부연합기를 사용해 논란이 된 지코의 ‘Tough Cookie’ ⓒ 세븐시즌스

우리가 서구사회에서와 똑같이 반응할 필요는 없을지 모른다. 미국의 래퍼가 남부연합기를 사용한다면 그에게는 여러 가지 혐의가 가겠지만, 우리가 지코를 흑인 인종차별주의자라고, 프리츠를 유태인 혐오자라고 낙인 찍을 필요는 없다. 우리는 탱자에 맞게 판단하면 된다. ‘몰랐어도 잘못’인 부분도 있지만, 탱자의 사회에서는 귤의 참맛을 모르는 일도 있는 게 현실이다.

그러나 귤이나 탱자 모두 운향과의 식물이다. 오렌지나 자몽, 한라봉이라 해도 마찬가지다. 그것은, 나치나 인종주의가 “누군가는 좋아하고 누군가는 싫어하는 것”의 영역이 아니라, “인간으로서 좋다/나쁘다”의 영역이라는 것이다. 아렌트적으로 보아, 서구사회가 나치 기호를 경계하는 것이 누구든 나치 부역자나 유태인 학살자가 될 수 있기 때문이지, ‘코카서스 인종이라면 누구나 그럴 수 있었기 때문’이 아니란 것이다. 미국인이 욱일기를 사용하는 것 또한 “너희는 되냐?”가 아닌, 이 맥락에서 이해와 비판이 이뤄짐이 옳다.

제3제국 코드가 주는 미적 쾌는 아이돌과 아주 무관하지 않다. 극동의 서브컬쳐로서 갖는 특성과 접근성도 있겠지만, 어쩌면 그 이상의 의미가 있을지 모른다. 샤이니의 ‘Everybody’가 보여주는 특정한 색채의 밀리터리룩과 테마는 유토피아 이념을 연상시킨다. 인간 개조와 각성, 인간의 힘으로 완벽한 세계를 구축한다는 유토피아는 동전의 양면처럼 디스토피아로 연결되고, 이는 제국주의와 인종주의, 전체주의 통제사회를 의미한다. 케이팝만이 아니라 세계의 팝 시장에서도 일루미나티 음모론이 자주 등장하는 것 역시, 일루미나티라는 기호가 유토피아 이념과 맞닿아 있으며, 그것이 주는 심미적 효과가 대중음악에서 매력적인 아이템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샤이니의 의상에서 나치를 떠올린 사람도 없지 않았지만, 결국 이는 스캔들로 번지지 않았다. 그것은 흰색, 빨간색의 가죽 등 특정 성적 지향성 코드를 비롯한 다양한 이미지 기호를 통해 ‘나치’로 비칠 수 있는 가능성을 적극적으로 희석했기 때문이다. 또한 디스토피아에 저항하기 위한 각성이라는 콘셉트도 설득력 있게 구현되었다. 그 결과, 훈장이 가득한 진회색 제복과 빨간 테두리 등의 노골적인 기호가 있음에도, 이 곡과 비디오는 그것이 주는 시각적 미감만을 남기고 넘어갈 수 있었던 것이다.

케이팝 문화는 ‘뭔가 있다’ 싶으면 전부 가져오는 혼종문화다. 마치, <미생>이든 <명량>이든 <인터스텔라>든 화제가 된다면 뭐든 갖다 붙이는 부장님처럼 말이다. 그러다 보면 뭘 모르고 잘못 가져오는 경우도, 꼭 가져오고 싶은데 위험한 것인 경우도 생긴다. (혹은 노이즈마케팅을 위해 일부러 가져오는 경우도 있겠다.) 우리와는 같은 가치, 다른 감수성을 가진 사람들도 케이팝을 즐기는 시절임을 염두에 둔다면, ‘무엇을’ ‘어떻게’ 가져올지에 대해 조금은 더 예민한 고민이 필요한 것이다.

프리츠의 “솔아솔아” 싱글에 관한 아이돌로지 필진들의 단평은 1st Listen : 2014년 11월 중순에서 확인할 수 있다.

미묘

By 미묘

가식과 내숭의 외길 인생. 음악 만들고 음악 글 씁니다.
f(x)는 시대정신입니다.

7 replies on “프리츠의 완장과 귤의 참맛”

이번 보도로 인해 프리츠를 알았는데 일본 서브컬쳐의 혼종이라기보단 저 소속사 사장님 전략이 대놓고 일본 여자아이돌 우라까이신듯, 본인이 덕후일지도…솔아솔아는 대놓고 베비메탈 카피, 인류최대난제나 수박송도 찾아보니 스타더스트계열 많이 참고 하신듯, 곡의 제목 네이밍센스나 가사 작법 역시 일본어 직역수준도 많더라는…이왕 어그로 잘 끌어낸거 한 노선만 제대로 카피해보시길, 개취로는 솔아솔아가 제일 나은데 베비메탈 카피 노선 쭉 타시길!

본문 중 잘못된 표현이 있었군요. ‘철십자’는 철십자 훈장으로, ‘갈고리 십자가’라 부르는 하켄크로이츠와는 다른 것이라고 하네요. 본문에 ‘철십자’로 적은 것은 ‘갈고리 십자가’의 의미였습니다. 지적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논란에 앞서서 먼저 짚고 넘어가야할 부분이, 프리츠의 저 문양과 나치 문양이 같냐 하는거죠.

빨강,흰색, 검정의 색 배합 그리고 크게 보아 십자가란 점 말고는 공통점이 없어요

따지고보면 다른 문양입니다

이 논란은 프리츠의 문양 = 나치문양일때나 성립되는게 아닐런지…

물론 저걸 보고 나치를 떠올릴 수 야 있다만, 그건 자신의 머리에 기존에 자리잡아있던 추상적 관념이 개입되어 변질된 비약적인 해석이 아닐까요

소속사측에서도 분명히 나치 문양을 의도한게 아니라고 하였고, 문양 역시 나치랑은 다르게 생겼죠

이걸로 소속사측에서 할 수 있는 최선의 해명은 했다고 봐요, 더이상 무얼 말해야될까요?

(실상은 그런 의도로 만들고자 한게 아니였음은 분명함에도)

나치 문양으로 오해 받을 가능성까지 염두에 두고 아예 딴 문양을 만들었어야 했나,

아니면 저걸 곡해하여 받아들이는 일부 대중의 잘못일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