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툰 발걸음에서 찾은 가능성
아이돌로지에 글을 쓰는데 갓세븐에 대해 설명이 필요한가 싶지만, 그래도 조금은 설명해야 할 것 같다. 갓세븐은 JYP 엔터테인먼트(이하 JYP)를 통해 데뷔한 보이그룹이며, 총 일곱 명의 멤버로 구성되어 있다. 그 중 JB와 Jr.는 JJ 프로젝트를 통해 먼저 데뷔한 바 있다. 외국인 멤버가 세 명인데, 셋 다 래퍼다. 최근에는, 일찍 데뷔해 본 두 명이 각각 리드보컬, 서브보컬을 맡고 영재와 유겸이 가세하는 포지션을 취하고 있는데, 완전히 결정된 건 아닐지도 모른다. 갓세븐의 첫 정규 앨범 “Identify”는 데뷔 시기를 생각하면 꽤 빨리 나왔다는 느낌이 드는데, 앨범 제목에서 보는 것처럼 일찍 정체성을 구축하고 싶어서인지도 모르겠다.
결론부터 말하면 이 앨범은 그러한 욕구를 충족시키는 앨범이고, 정체성이나 콘셉트의 측면에서 본다면 꽤 성공적이다. 결과적으로는 잘 만들어진 앨범이라는 이야기이다. 그런데 재미있는 부분은, 이번 앨범의 보도자료부터 ‘힙합’이라는 단어를 그룹에게 직접 붙이지는 않지만, 간접적으로 자주 사용하고는 한다는 것이다. 힙합이라는 단어를 그룹으로부터 떼어내면서 장르 팬들의 따가운 시선을 피할 수 있다는 장점은 있는데, 그룹을 대표하는 단어를 새로 만들 필요는 있어 보인다. 힙합 댄스 혹은 힙합 비트라는 표현을 쓰는 것에 굳이 신경 쓰지 않더라도 앨범의 수록곡 다수는 충분히 힙합 리듬을 기반으로 하고 있다. 앨범의 일부 지점은 뉴잭스윙 혹은 한국 댄스 가요의 재해석이라고 할 수도 있고, 그런 지점이 보인다는 것 자체가 JYP의 놀라운 발전이라고도 할 수 있다.
다만 랩에 대한 평가는 어쩔 수 없이 하게 된다. 랩이 계속 곡에 들어가고 래퍼 멤버가 셋이나 있기 때문이다. 또 도구로서의 랩이냐 그룹의 정체성이냐를 놓고 봤을 때 이런저런 이야기를 할 수밖에 없다. 다만 ‘Girls Girls Girls’를 생각하면 이 부분이야말로 장족의 발전이다. ‘하지하지마’에서 박진영의 힘없는 플로우가 등장하는 건 단점이라고 할 수 있지만, 전반적으로 ‘도구로서의 랩’은 그나마 어느 정도까지는 끌어올린 듯하다. 또 예로부터(?) 랩은 보이그룹 내에서도 외국 물 먹은 사람들의 몫이었기 때문에 그런 맥락을 생각하면 자연스럽게 다가올 수도 있다. 여전히 발음이나 센스의 측면에서 불편함 혹은 성에 안 찬다는 느낌을 받을 가능성이 있지만.
타이틀곡 ‘하지하지마’의 경우 JYP 이름으로 나오는 곡 중 가장 이 회사가 잘하는 스타일의 집약체라고 생각한다. 신시사이저의 적극적 활용, 리듬감 살린 보컬 라인, 마이너 코드의 활용 등이 돋보이며 안무 역시 JYP 특유의 ‘긴 팔다리가 필요한’ 안무다. 루프 중심으로 가는 진행이나 신시사이저의 높은 위치, 보코더의 사용 등으로 곡은 뉴잭스윙에 가깝다는 느낌을 준다. 또한 훅의 길이에 비해 버스(verse)의 길이가 짧아서 상대적으로 타이트한 전개를 통해 곡의 단순함을 무마하는데, 중독성과 질리는 느낌 사이 어딘가에 아슬아슬하게 반복되는 훅이나 브리지는 이 곡의 최고 장점이자 단점이다. ‘하지하지마’에서 랩이 크게 거슬리지 않는 이유는 한 사람의 버스 길이 자체를 짧게 가져가기 때문이다. 이어지는 ‘Gimme’ 같은 경우 아슬아슬하다고 느껴질 정도로 신시사이저가 전면으로 나와 있는데, 90년대 스타일의 멜로디와 코드 진행이지만 사운드 소스나 드럼 자체에 신경을 많이 쓴 흔적이 보인다. 특히 하이햇, 퍼커션의 운용이나 스네어로 채워가는 구간이 그렇다. 랩이 후반부 브리지 타이밍에서 등장하며 BPM이 1/2로 늘어지는 모습이나 충분히 예상되는 타이밍의 브레이크는, 오히려 철저히 가요스러워서 댄스곡의 미덕을 잘 지켰다고 하겠다. ‘손이 가’의 경우 잘 만든 R&B 넘버로, 무려 새우깡을 차용한(…) 센스 있는 메인 훅의 가사나 허밍, 랩의 활용 모두 적절하게 조화를 이루고 있다. 재미있는 건 비투케이(B2K)의 ‘Bada Boom’이 가진 트레이드마크 사운드를 썼는데, 비투케이가 거의 유일무이하다시피 존재하는 힙합 보이그룹임을 생각해보면 나름 의미심장하다.
‘너란 Girl’은 제목은 참 유치하다는 생각이 들지만, 그만큼 갓세븐의 나이나 비주얼을 가장 잘 고려한 듯한 곡이다. 보이그룹이 귀엽고 순한 매력을 선보일 때 대부분 여리고 소년 같은, 흔히 쓰는 표현에 따르면 ‘주머니에 넣고 다니고 싶은’ 이미지를 전면에 내세우지만, 갓세븐은 좀 더 자연스러운 매력이 있다. (물론 귀여움이라는 건 덕깍지 씌기 나름이다만) 반면 ‘그냥 오늘 밤’의 경우 보컬 샘플을 활용한 어반 트랙이며, 요즘 유행하는 셋잇단음표 플로우를 구사하는 등 랩의 비중이 다소 세게 느껴지지만, 보컬이 음역을 적게 가져가면서 상대적으로 스트레이트한 느낌을 주어 샘플과 잘 어울린다. ‘볼륨을 올려줘’ 역시 보컬 샘플이 등장하는데, 사운드 소스나 빌드업(build up) 자체는 세련되었지만, 오히려 랩이나 보컬에 있어서 조금 늘어지는 감을 준다(대부분 이럴 때는 퍼포먼스로 텐션을 채우고는 한다). 이어 ‘그대로 있어도 돼’, ‘달빛’은 R&B 무드를 이어가는데, ‘달빛’의 경우 피아노 중심의 진행이 한때 유행했던 작곡가 팀 스타게이트(The Stargate)의 R&B 스타일을 떠올리게 한다. 이어 ‘She’s a monster’ 역시 R&B 트랙이며 피아노를 테마로 가져오지만, 느린 BPM과 함께 훅에서 꽤 많은 소리가 쌓이는 점이 인상적이다. 다만 많은 소리가 등장하는 이 훅은 산만함과 화려함의 경계에 아슬아슬하게 있는데, 이는 곡의 힘에 비해 보컬의 힘이 밀려 중심을 잡는 소리가 약해서 그런 듯하다. 후반부에 BPM을 두 배로 늘려 댄서블하게 만드는 것 역시 큰 도움이 되진 못한다. 이어 ‘Girls Girls Girls’, ‘A’로 앨범은 마무리된다.
앞서 말했듯이 앨범은 전반적 무드 조성이나 색깔 알리기에는 성공적이다. 가끔 가성을 포함한 보컬의 측면에서 힘의 부족이 느껴지기는 하지만, 대신 풋풋한 소년의 모습을 얻어가기도 한다. 이는 가사의 측면에서도 마찬가지다. 2PM과 다른 점이 있다면, (멤버들의 연령도 고려했겠지만) 노골적으로 남성성을 내세우기보다는 서툴고 풋풋한 인상을 주며 다소 ‘착한’ 편에 속해있는 표현들로 가사를 채웠다. 이러한 부분이 시장 내에서 장점으로 통할지는 잘 모르겠으나 보컬이나 프로덕션과 어느 정도 긴밀함을 유지하고 있기에 긍정적으로 본다. 아무래도 같은 레이블에 있는 남성 그룹과 비교될 수 밖에 없는, 더군다나 ‘정체성’을 놓고 이야기하는 상황이다. 근본적인 차이가 있다면 랩의 비중, 그리고 멤버들의 연령인데, 갓세븐은 그 차이를 기점으로 2PM과의 비교 분리를 시도하는 듯하다. “Identify”는 전반적으로 세련된 면모를 선보이고 있으며, 음악적 거점이나 방향이 쉽게 읽힌다는 점을 높이 살 만하다. 다만 아트워크나 기타 포스트 프로덕션에서 ‘미래지향적’인 모습을 담아내고자 한 건 조금 역부족이 아니었나 싶다. 개인적으로는 비주얼이나 의상의 경우 소년과 남자의 경계에 있다는 것을 표현하고자 한 것 같은데, 다소 무리하지 않았나 싶다.
칭찬도 많이 했지만, 이 앨범이 완성형이라는 의미는 아니다. 이들의 첫 번째 정규 앨범이라는 점이나 앨범 제목, 목표를 고려했을 때 하는 이야기다. 여전히 각 멤버는 채워나가야 할 부분을 가지고 있다. 이는 프로덕션이나 제작 등에 있어서 자발적인 부분을 요구하는 것이 아니라, 그걸 소화해내는 역량의 차원에서 하는 이야기다. 좋은 프로덕션을 소화할 줄 아는 것이야말로 아이돌의 미덕이기 때문이다. 앞으로 갓세븐이 계속 성장하는 모습을 볼 수 있길 바란다.
- 하지하지마
- Gimme
- 손이 가
- 너란 Girl
- 그냥 오늘 밤
- 볼륨을 올려줘
- 그대로 있어도 돼
- 달빛
- She`s a monster
- Girls Girls Girls
- 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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One reply on “갓세븐 – Identify (2014)”
공감이 가는 리뷰네요. 잘 읽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