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윗튠이 머물다 간 들판에

Tweet about this on TwitterShare on FacebookShare on Google+Share on TumblrEmail this to someone

최근 나인뮤지스의 새 미니앨범이 나왔다. 몇 명의 멤버가 빠져나가고 프로듀서가 교체됐다. 그런데 흥미롭게도 이 음반은 익히 알려진 전작들의 기조를 잘 유지하고 있다. 어쩌면 조금 너무 잘 유지하고 있다고 해야 할지도 모르겠다. 전작들의 프로듀서는 바로, 한재호-김승수 콤비를 주축으로 한 스윗튠(Sweetune)이다. 한동안 농담처럼 ‘아이돌 화타’라고도 불린 스윗튠은 실제로 적지 않은 팀에게 커리어의 반전을 가져올 인상적인 곡들을 선사했다. 그들의 수혜를 받은 대표격은 카라라고 할 수 있다. 그리고 카라 역시, 이번의 나인뮤지스처럼, 지난해 발매한 미니앨범 “Day & Night”을 통해 멤버와 프로듀서를 교체했다.

잘 알려진 것처럼 스윗튠은 특정 팀과 장기적인 관계를 맺으며 활동하는 경향이 있고, 각 팀의 커리어를 구축해 나가는 형태의 프로듀스를 해낸다. 이들이 카라에게 만들어준 것이 반드시 성공적인 커리어 그 자체만은 아니다. 스윗튠은 아티스트에게 곡을 맞추기보다 아티스트를 만들어나가는 프로듀서에 가까워서, 우리가 카라의 음악을 말할 때 떠올리는 대부분의 특징들이 사실 스윗튠의 음악적 특징이기도 한 것이다. 우리는 ‘음악적 변신’ 같은 이야기를 하고 있는 것이 아니다. 카라 음악의 표피가 아닌 골조가 되어버린 ‘스윗튠스러움’은, 멤버 변동에 따른 팬들의 이탈이나 낯섦과 함께 카라에게 큰 숙제가 된 것이다.

‘스윗튠보다 더 스윗튠 같은’ “Day & Night”는 ‘ジェットコースターラブ’(제트코스터 러브, 작곡 황성제)를 포함한 카라의 기존 곡들을 강하게 연상시킨다. 카라를 꾸준히 들어온 청자라면 누구나 각각의 곡에서 두어 곡 이상의 기존 곡 제목을 어렵지 않게 댈 수 있을 것이다. 수록곡의 구성마저 카라의 디스코그라피를 분석해 ‘약간 퇴폐적이면서 시원한 업템포 하나, 사랑스러운 업템포 하나, 조금 어설픈 듯해서 매력적인 발라드 하나…’ 하고 특징 별로 프로토타이핑 하기라도 한 듯한 양상이다. 이를 통해 카라는 소녀 이상 숙녀 미만의 시간에 머무른다. 카라를 탈퇴한 뒤 어른의 모습으로 돌아선 니콜과는 상반되는 지점이다.

니콜의 “First Romance”는 스윗튠과의 협력관계를 이어간다. 그러나 소녀의 설레는 감정을 쏟아내는 데 중점을 두던 카라의 기존 곡들과 달리, ‘Mama’의 가사는 사건과 정황을 관찰하여 묘사하고 있다. 그리고 그 배경에는 애타는 마음과, 집에서는 모르는 “낮과 밤의 온도 차이”란 비밀이 담겨 있다. 음악 또한 반음씩 떨어지는 덩어리들이 안정적인 화성감으로 이동하면서 긴장감을 낳는다. 이러한 장치들이 단조 위주의 멜로디와 함께 고혹적인 분위기를 자아내며, 그것이 니콜의 ‘성장’의 서사를 이룬다. 또한 음반 전체에 걸쳐 니콜의 보컬은 카라 전원의 몫을 혼자 해내는 듯 보인다. 어쩌면 스윗튠이 설계한 카라의 다음 단계를 니콜에게 이식한 형태일까. 다시, 이는 카라 보컬의 ‘여전함’과 현재의 카라의 ‘허전함’ 속에서 양자택일을 하게 하는 “Day & Night”과는 반대된다.

나인뮤지스의 “Drama”는 카라의 예를 따른다. 다소 방향성이 불분명한 인트로 ‘Pilot Episode’와 팬송인 ‘9월 17일’을 제외한 이 미니앨범의 ‘몸통’은, 스윗튠의 나인뮤지스 청사진을 그대로 가져온다. 단조 멜로디로 일관하면서 강한 업템포 속에 축축한 느낌을 중화하는 이 방법론은 ‘티켓’과 ‘건’에서, 그리고 약간의 유쾌하고 쿨한 터치를 통해 슬픈 멜로디 속에서 흥청망청한 분위기를 끌어내는 것 또한 ‘돌스’, ‘휘가로’에서 스윗튠이 사용한 레고 블록이다. ‘드라마’와 ‘초이스’의 템포 차이는, 거의 같은 유전자 성분의 곡에 템포 차이를 두어 분위기를 전환했던 기존의 방식을 연상시킨다. 빠른 곡보다는 느린 곡에서 리듬의 동세를 느끼기 좋기 때문일지, 세 곡 중 가장 느린 ‘주르륵’은 기타 사운드를 적극적으로 활용해 액센트를 주어가며 ‘돌스’, ‘휘가로’가 보였던 리듬의 출렁이는 곡선미를 살려내기도 한다.

상황 변화에 따른 조정도 눈에 띈다. ‘드라마’를 17초 가량에 달하는 제법 긴 랩으로 시작하는 점은, 랩으로 강한 인상을 남긴 멤버들의 탈퇴를 의식한 듯하다. 메인 멜로디에 덧붙여 부분부분 음색을 적극적으로 바꾸는 보컬 연출도 마찬가지이다. 그렇게 “Drama”는 기존 팬들이 나인뮤지스에게서 사랑했던 모습들을 놓치지 않으려 하고, 결과적으로 이 음반은 ‘스윗튠 아닌데 마치 스윗튠 같고’, ‘나인뮤지스인데 마치 나인뮤지스 같은’ 음반이 되었다.

반면 기존에 비하면 아무래도 무난한 색채를 띠기도 한다. “슬픈 음악 뒤로 흐르고 / 까만 밤 별들이 조명처럼 비추네”(‘드라마’), “주르륵 주르륵 내 눈물이 / 주르륵 주르륵 내 사랑이”(‘주르륵’) 같은 가사는 기존의 신파적 정서를 이어가려는 듯하나, “사랑이 뭐라고, 그게 다 뭐라고”, “시간이 지나면 모든 게 잊혀진단다”(‘돌스’), “매혹적인 향에 취해 Tonight”(‘와일드’), “관둘 때도 됐는데 될 듯 말 듯 / 가슴이 문제야 / 습관이 나빠”(‘글루’)와는 강도의 차이가 크다. 송수윤이 담당하던 기존 가사의 ‘오글미’를 재평가하는 계기도 될 수 있을까. 어느 것이 더 좋다고 말하기는 어렵지만, 예전처럼 지독하게 파고들지는 않는다. 음악 역시 ‘글루’나 ‘와일드’의 숨 가쁜 절박함과는 상당한 차이를 보인다. 이번의 나인뮤지스는 적당히 흥청거리고, 그것은 이전 같은 퇴폐미와는 거리가 있다. 이는 장점이기도 하다. 사람에 따라 나인뮤지스의 기존 곡들은 진입장벽이 있었던 것도 사실이다. 이 음반은 이들의 ‘엣지’를 줄여, 더 먹기 편하고 안전한 팝으로 만들었다. 그것도, 전체적인 기존의 색채를 유지하여 팀 구성과 프로듀서 변화로 인한 충격을 최소화하면서 말이다. 결코 쉬운 일이 아닐 것이다.

그런데 “Drama”를 반복해서 듣고 있다 보면 어느 순간 이 다채로운 보컬의 8인조가 어쩐지 카라처럼 들린다. 2차 아이돌 붐 이후 박규리를 비롯한 카라의 음색들이 걸그룹 보컬의 전형 중 하나로 자리잡은 탓도 있겠으나, ‘안전해진 나인뮤지스’가 카라의 영역에 가까이 있다는 힌트도 준다. 카라의 소녀성을 좀 더 화려하고 강렬하게 보완하려는 DSP 미디어의 입안이 낳은, 역시 스윗튠이 담당했던 초반의 레인보우(‘A’, ‘마하’)와도 닮았다고 해야 할까. 스윗튠이 소방서를 만든 레고 블록을 뜯어 재조립해 보니 스윗튠이 기존에 만들었던 경찰서, 우체국과 비슷하게 돼버린 격이다. 그리고 그 사이 스윗튠은 니콜이라는 공항을 만들었다.

한 음악가가 여러 스타일의 창작을 하는 것은 쉽지만은 않아서, 어느 정도 보캐뷸러리의 폭에 제한이 있는 것을 상정함이 옳다. 놀라울 정도로 아티스트에게 맞추며 풍성한 변화를 주는 이단옆차기조차 늘 비슷비슷하다는 비아냥을 들을 정도니 말이다. 그렇다면 다른 프로듀서들과 작업하는 아티스트들에게도 남일은 아니다. 웬만해선 누구도 스윗튠과 카라의 결별을 상상해보지 못했듯, 지금 스윗튠과 작업하고 있는 팀들이나 다른 특정 프로듀서와 꾸준히 작업하는 팀들 역시 언젠가는 같은 숙제에 직면할지 모른다.

카라와 나인뮤지스는 모두 나름 훌륭한 답안을 제출했다. (길게 언급하지 않았지만, 레인보우 역시, 성적과 무관하게, 감탄할 만한 답안’들’이었다.) 차이가 있다면, 카라는 아이돌성에서 출발해 ‘국민 그룹’의 영역으로 자연스레 진입한 기적적인 역사를 바탕으로 ‘카라의 어제’에 머무른다면, 비교적 마이너 아이돌이었던 나인뮤지스는 약간은 더 폭넓은 대중에게 어필할 수 있는 팝을 내놓았다는 것이다. 2보 전진을 위한 1보 후퇴라고 한다면, 그 1보가 매력적인 워킹이 된 것으로 충분히 근사한 일이다.

이 두 음반은 앞으로 유사한 사례들에 대한 좋은 선례가 돼줄 것이다. 두 팀이 앞으로도 지금처럼 ‘스윗튠 스타일’을 이어갈지, 일단의 내적 문제를 봉합한 뒤에는 변신을 시도할지는, 다음 음반이 나와봐야 알 수 있겠지만 말이다. 그리고 어쩌면 프로듀서 교체를 성공적으로 정면 돌파하는 사례를 보게 될지도 모른다. 우리는 그저 두 손을 맞잡고 무릎을 퉁겨가며 물개처럼 좌우로 흔들면서 노래하며 지켜볼 따름이다. “스윗튠이 머물다 간 들판에 모락모락 피어나는 새 프로듀서 향기. 색동옷 갈아입은 아이돌 언덕에 빨갛게 노을이 타고 있어요.”

나인뮤지스의 “Drama” 미니앨범에 관한 필진 단평은 1st Listen : 2015년 1월 하순에 포함되어 있다. 각 음반에 관한 리뷰와 관련글은 아래에서 확인할 수 있다.
카라
Day & Night
DSP 미디어
2014년 8월 18일

  


니콜
First Romance
B2M 엔터테인먼트
2014년 11월 19일

  


나인뮤지스
DRAMA
스타제국
2015년 1월 23일

   


미묘

Author:

가식과 내숭의 외길 인생. 음악 만들고 음악 글 씁니다. f(x)는 시대정신입니다.

http://verymimyo.egloos.com
http://twitter.com/mimyo_
http://facebook.com/demimyo

Share This Post On
Logo Header Menu