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오의 판타지, 도경수의 리얼리즘

이미지 ⓒ KBS 2TV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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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오의 판타지, 도경수의 리얼리즘

영화 〈순정 (2016, 이은희 감독)〉 개봉 당시, 한 영화관에서 ‘순정 콤보 세트’가 판매되었다. 나초와 추가 치즈 소스, 스프라이트 외 영화 굿즈로 구성된 이 세트 메뉴는 과거 〈엑소의 쇼타임〉이란 리얼리티 프로그램에서 디오가 홀로 영화관을 방문해 주문한 음식을 바탕으로 만들어졌다. 평소 자신의 뚜렷한 기호를 쉽게 내비치는 일이 없는 디오가 보여준 몇 안 되는 ‘호(好)’의 증거물이었다. 전례 없이 열광적인 호응을 불러일으킨 이 단품 조합은 결국 그가 출연하는 영화 제목을 달고 아예 세트 메뉴로 출시되기에 이르렀다. 본인이 의도한 것은 아니나, 이 일은 아이돌이 자신의 기호를 브랜딩한 유일무이한 사례로 남게 됐다. 아이돌 그룹 엑소(EXO)의 디오와 배우 도경수의 합작품이었다. 두 가지 아이덴티티가 만난 지점은 다분히 상업적이었지만, 바꿔 말하면 이는 디오와 도경수가 아이돌 가수 그리고 배우로서 제 역할을 완벽히 해냈다는 증명이기도 했다.

EXO의 D.O. 가장 작은 소년이 가장 강력한 힘을

그가 지닌 첫 번째 아이덴티티, ‘디오’는 가수라는 직업군에서 발현된다. 엑소의 메인보컬 3인 중 한 명으로서 그가 보여주는 보컬 스펙트럼은 서정성에 기반을 두고 있다. 감정에 충실한 목소리. 이것은 디오가 지닌 가장 큰 매력이다. 2013년 겨울에 발표한 ‘12월의 기적’ 오프닝을 연 따뜻한 저음. 그것이 그의 보이스가 지닌 본래의 서정성을 가장 잘 활용한 예라면, 데뷔 앨범 타이틀곡 ‘MAMA’ 오프닝에서 전주를 강하게 차고 오르는 고음은 그의 서정성이 분노나 증오와 같은 감정적 대척점을 표현할 때도 매우 효과적인 요소가 될 수 있음을 증명한다. 이처럼 따뜻하고 부드럽되, 강단이 느껴지는 디오의 음색은 저음역대와 고음역대를 오가며 곡에 숨은 감정을 극대화하는 주된 역할을 한다.

그런데 어째서일까. SM 엔터테인먼트는 팀 내 가장 서정적인 색깔을 담당하고, 신체적으로도 가장 왜소한 그에게 초능력 ‘힘’의 설정을 부여했다. 이는 팀에서 가장 연약해 보이는 소년이 누구보다 강력한 힘을 가졌다는 역설을 통해 그가 신체적 단점마저도 콘셉트 상의 장점으로 승화시키기를 기대했기 때문이다. 애처로운 눈빛과 보이스로 아름다운 것들만 좇을 것 같은 그가 아이돌 시나리오 안에서는 괴력을 발휘하는 굳건한 기질로 묘사된다. 이처럼 디오는 계획된 판타지 안에서 양극단에 놓인 이미지를 통해 커다란 간극을 만들어내고, 이는 팬들로 하여금 보호자가 되고 싶은 욕망과 반대로 그에게 기대고픈 욕구를 동시에 느끼게 하는 기제가 된다.

배우 도경수, 지극히 현실적인 곳에 사는 소년

한편 디오가 지닌 서정성은 배우로서의 정체성에도 주요하게 배양되어 있다. ‘디오’가 아닌 ‘도경수’라는 두 번째 아이덴티티의 출발점은 SBS 드라마 〈괜찮아, 사랑이야 (2014)〉였다. 이 드라마는 노희경 작가의 작품으로, 도경수가 자신이 지닌 애처로운 소년의 이미지를 완벽하게 화면으로 구현해낼 수 있게끔 만들었다. 유년기 시절에 받은 상처로 망상장애를 겪는 장재열(조인성 분)과, 그가 만들어낸 자살 시나리오 속에 등장하는 소년. 도경수가 맡은 한강우는 신체적 질환과 일원화된 정신 질환의 절대치를 표현하는 것이었다. 또 이 드라마는 도경수에게 출발점임과 동시에 ‘아이돌 출신’이 으레 받는 연기력에 대한 우려를 완전히 접게 한 계기가 되었다. 일종의 터닝 포인트였다. 이때 도경수에게는 두 가지 맥락에서 이 용어를 적용할 수 있다. 1. 아이돌 ‘디오’에서 연기자 ‘도경수’가 되는 연예계 커리어의 전환점으로 기능하면서, 2. 아이돌 출신 배우가 단 한 번의 ‘연기력 논란’도 없이 완벽하게 배우로 자리 잡게 된, 씬 전체에 새로운 인식을 심어준 전환점이 된 것이다. 눈빛, 왜소한 체구, 낮은 목소리처럼, 도경수가 지닌 서정적 요소는 매우 독보적인 지점에서 배우의 것으로 빛을 발했다.

아이돌 그룹으로 활동을 하다 연기에 도전하는 배우들은 첫 작품에서 대체로 밝은 역할을 맡는다. ‘아이돌’이라는 정체성에서 기인하는 것이다. 그러나 도경수는 완전히 다른 선상에 놓인 선택을 했고, 이것은 밝고, 쾌활하고, 깨끗해야 한다는 통상적 아이돌 이미지에 반하는 일이었다. 도경수는 “우울해서 보기 싫다”는 이유 덕분에 역으로 마니아층을 형성한 드라마 〈괜찮아, 사랑이야〉에 이어, 대형마트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실화를 다루며 제작 전부터 화제가 된 영화 〈카트 (2014, 부지영 감독)〉에 얼굴을 비췄다. 흥미로운 지점은 이 작품이 넉넉한 제작비 없이 크라우드 펀딩을 통해 제작됐다는 점이고, 이로 인해 영화 말미에는 제작비를 지원한 팬들의 닉네임이 나열되는 진풍경이 그려지기도 했다. 더불어 도경수의 가장 최근 드라마 작품은 극 중 사이코패스 이준호(최원영 분)의 아역을 연기한 KBS 2TV 드라마 〈너를 기억해 (2015)〉 다. 그는 여기서 섬뜩하고 교활한 눈빛으로 자신의 목을 칼로 그은 뒤 교도소를 탈출하고, 아이를 납치했다. 대한민국에서 가장 많은 수의 팬을 보유한 아이돌 그룹 엑소의 멤버가 ‘정신 질환’, ‘자살’, ‘비정규직 노동자’, ‘크라우드 펀딩’, ‘살인’ 등의 키워드와 묶인다고 쉽게 상상이나 할 수 있을까. 심지어 도경수는 영화 〈순정〉과 관련해 첫사랑의 기억을 묻는 인터뷰에서조차 “(당시에) 행복함, 풋풋함보다는 슬프고 우울한 감정들이 더 와 닿았던 것 같다.”고 말했다.

ⓒ 명필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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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가 택한 자신만의 T.P.O.

디오, 그리고 도경수는 “무대도 긴장이 되고 촬영장도 긴장이 된다.”고 이야기한다. 그는 무대에서의 떨림에 대해 “희열의 떨림”이라고 하고, 연기할 때의 떨림에 대해서는 “다른 배우에게서 공통된 감정을 느끼고, 그게 딱 맞아 떨어지면 엄청난 희열(이 온다)”고 설명한다. 그에게 있어서 아이돌 디오와 배우 도경수가 분리되는 순간이다.

엑소의 디오는 어떤 발라드 싱어보다 서정적인 보이스 컬러로 노래할지언정, 카메라가 자신을 비추면 능숙하게 미소를 짓거나 제스처를 취할 수 있는 ‘아이돌스러움’을 갖추고 있다. 반면 도경수는 서정이 짙게 밴 눈빛으로 연기에 임할지언정, 거칠고 현실 냄새나는 역할을 택해 아이돌이라면 쉽게 고르지 않을 불편한 선택지에 집중하는 모습을 보인다. 결과적으로 아이돌 디오에게 있어서 서정성이란 엑소의 판타지로 귀결되고, 배우 도경수에게 서정성이란 판타지 따위 없는 냉정한 리얼리즘으로 귀결되는 셈이다.

〈순정〉 스틸컷 ⓒ 주피터 필름

〈순정〉 스틸컷 ⓒ 주피터 필름

그에게는 ‘예능감’으로 승화시킬 만한 뛰어난 유머 감각이 없다. 엑소 멤버들 사이에서 두드러질 정도의 말주변도 없다. 그러나 확고한 자기 기준은 존재한다. “’남자다움’이라는 단어의 의미를 아직 모르겠다. 그런 사람이 되려고 항상 노력하고 있는 것 같다”며, 그 예로 배우 잭 블랙을 꼽는 정도다. 그는 알고 있다. 주어진 역할을 보다 넓고 깊은 스펙트럼으로 소화하기 위해서는 외적인 요건보다 내부에 쌓인 경험적 요소가 더욱 중요한 힘을 발휘한다는 것을. 그래서 자신의 왜소한 체구가 웃음거리가 됐을 때에도 분노나 자격지심을 내비치지 않는다. 말없이 묵묵한 자신의 캐릭터를 지켜갈 뿐이다.

이것은 그만의 T.P.O.(Time 시간, Place 장소, Occasion 상황)다. 판타지와 리얼리즘의 대비 속에서 디오와 도경수가 고른 시간, 장소, 상황 중 그와 어울리지 않은 것은 없었다. 적어도 아직까지는 분명히 그렇다. 그러니 이 아이돌이 보여주는 새로운 이미지 롤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박희아

Author:

음악기자. 사랑스런 콘텐츠들을 골라 듣고, 보고, 읽고, 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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