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ategories
1st Listen

1st Listen : 2017년 5월 하순 ①

2017년 5월 말에 발매된 아이돌 신작들에 대한 아이돌로지 필진 단평. 분량 관계상 5월 24일을 기준으로 2회에 나눠 게재한다. 에이스(A.C.E)의 데뷔 싱글을 비롯해, 아이콘, 세븐틴, 레드퀸, 비하트, B.I.G, 이달의 소녀 김립, 맵식스, 규현, 예지를 다룬다.

2017년 5월 말에 발매된 아이돌 신작들에 대한 아이돌로지 필진 단평. 분량 관계상 5월 24일을 기준으로 2회에 나눠 게재한다. 에이스(A.C.E)의 데뷔 싱글을 비롯해, 아이콘, 세븐틴, 레드퀸, 비하트, B.I.G, 이달의 소녀 김립, 맵식스, 규현, 예지를 다룬다. 이번 회차부터 새 필자 랜디가 합류한다.


New Kids: Begin
YG 엔터테인먼트
2017년 5월 22일

랜디: ‘Bling Bling’과 함께 싱글컷 된 ‘벌떼 (B-Day)’는, 똑같은 쇼오프 스왜그(show off swag)라도 이 노래가 훨씬 유쾌하다. “벌떼”와 “birthday”의 말장난이 계속해서 교차하는 가운데, ‘Bling Bling’에서처럼 여성을 트로피 정도로 취급하는 대목도 없고, 시종일관 신나는 분위기이다. 마이너 곡 사이사이에 일부러 넣은 메이저 코드가 모험가 분위기를 물씬 풍기고, 후렴에서 리듬으로 정신없이 몰아붙일 때는 정말로 즐거워진다. ‘Bling Bling’의 첫인상은 ‘빛의 위너 어둠의 아이콘’ 같은 콘셉트를 의식한 건가 했는데, ‘벌떼’를 들으면 그런 양분이 굳이 필요가 있겠는가 생각이 든다.

오요: 'Bling Bling'과 '벌떼'을 나란히 두고 보면 확실히 '벌떼' 쪽이 낫다. 'Bling Bling'이 진부한 자기과시가 전부인 통속적 힙합 트랙에 불과한 반면 '벌떼'는 적어도 그것보다는 더 다채로운 소리를 추구하고 있다는 점에서 그러하다. 비트는 평범한 편이며 “자 이제 여기서 떨어집니다”라고 외치는 빌드업도 없지만 화성과 목소리를 쌓아 충분한 상승감을 확보한다.

햄촤: SM 엔터테인먼트에 SMP가 있듯이 YG에 ‘YGP’가 있다면 아이콘은 현재 YGP의 적통 계승자다. ‘리듬타’부터 ‘Bling Bling’과 ‘벌떼’까지 아이콘의 메인 테마는 ‘잘난 나’와 ‘잘 노는 나’ 두 가지로 압축된다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반복되는 테마에 ‘젊음의 에너지를 표현할 방법이 이것밖에 없나’ 싶은 아쉬움도 있었지만, 아랑곳하지 않고 밀어붙이는 일관성에 어느새 수긍하게 되는 힘이 있다. 무엇보다 노래가 흥겹다는 점이 아이콘의 가장 큰 무기. 흥겨움은 지누션, 원타임을 지나 빅뱅을 거치며 이어져 온 YGP의 핵심 키워드다. 두 곡만으로는 공백기 동안 기다려온 이들의 갈증을 전부 채워주기에 아주 조금 모자란다는 점이 아쉬울 따름.


Al1
플레디스 엔터테인먼트
2017년 5월 22일

랜디: 활동곡으로는 언제나 고백송을 부르던 세븐틴이 처음으로 이별 노래를 싱글컷 했다. 예의 위트 있던 안무 구성이 ‘요즘 EDM 스타일’ 곡에 세련되게 잘 이식되어 왔다. 이전에는 동선을 재기발랄하게 짠 것이 눈에 띄는 요소였다면, 이번 곡의 무대는 멤버마다 각자의 공간을 두고 일정한 간격으로 춤추는 것이, 대인원이면서도 흠 없이 일사불란해 독특한 미감을 선사한다. 한 가지 치명적인 문제는, 이 ‘요즘 EDM’ 스타일이란 것을 의식하다 보니 동시대 존재하는 인기 EDM곡과 지나치게 비슷한 인상을 준다는 것이다. 트레이싱처럼 똑같은 부분은 없으나, 하필이면 이런 확장하는 느낌의 비트에, 하필이면 이런 멜로디를 얹어서 (본의든 아니든) 비슷한 효과를 얻어내는 곡이 되어버렸고, 이것이 몹시 신경 쓰인다. 좋은 안무 퍼포먼스가 곁들여져서 ‘플러스알파’가 되었으니 그냥 넘어가야 하는 문제인 걸까?

미묘: 작년 말부터 세븐틴을 바라보는 온도 차의 핵심은 ‘청량미’보다는 ‘파격미’에 있는 것 같다. ‘아낀다’‘만세’는 청량미가 돋보이기도 했지만 또한 파격적인 곡이었는데, 그 파격의 방향이 바뀌면서 생겨나는 감각의 차이가 있는 듯하다. 지금의 세븐틴은 보다 전통적인 가요의 미학에 혼종을 가해 새로운 것으로 바꿔내는 어떤 ‘이종 가요’를 추구하는 과정에 있다고 생각한다. 그것이 비교적 긴 미래를 바라보는 길이기도 하겠지만, 동시에 조로한 느낌을 주지 않기가 결코 쉬운 태스크는 아닐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수록곡들의 ‘태도’에 눈길이 간다. ‘If I’는 (몇몇 소스가 좀 납작하게 들려서 아쉽지만) 뮤트 기타와 패드 등이 잔뜩 어둡게 무게를 잡고 있는 가운데 유려한 R&B가 흐르는 것이 매력적이다. 딥하우스에서 어른스러운 그루브를 추출해내는 ‘Swimming Fool’, 기품이 돋보이는 ‘입버릇’도 주목할 만하다.

박희아: 타이틀곡 ‘울고 싶지 않아’는 우지가 앞으로도 쭉 주목할 만한 송메이커라는 것을 선언하는 듯한 곡이다. 도입부터 마무리까지 전반적으로 튀지 않는 멜로디와 흐름을 구성해 단순한 후렴 “울고 싶지 않아”에 온 힘을 불어넣었다. 무턱대고 특정 파트나 특정 멤버의 사운드를 키우고 죽이는 식의 흐름을 구상해서 될 일은 아니다. 퍼포먼스와 팬덤까지 고려하는 아이돌 음악에서 이게 가능하려면 멤버들의 특징을 꼼꼼히 분석하고 그걸 어떻게 한 곡에 담을지 섬세하게 분석해야 한다. 우지는 거기에 분명 많은 힘을 쏟고 있을 것이다. 다만 후렴 한 줄을 위해 너무 많은 부분에서 기력을 제거했다는 인상도 있다. 같은 맥락에서, 복잡했던 음악의 구조가 단순해지면서 멤버 한 명 한 명에 대한 주목도는 상대적으로 떨어진다. 덕분에 통일감은 완벽하게 전달된다는 장점이 있다. 아마 앨범 타이틀 “Al1”의 진짜 메시지도 여기에 있을 것이다.

오요: 우지는 좋은 송라이터라는 것을 '울고 싶지 않아'를 듣고 다시 한번 확신하게 된다. "울고 싶지 않아"라는 가사만 반복되는 후렴이 자칫하면 단조롭게 들릴 수도 있는데 클라이맥스 부분에 예상을 깨고 랩을 배치하는 센스에서 '역시 보통이 아니다'라는 생각이 들었다. 아쉬운 것은 목소리를 뒷받침하는 소리들이 다소 진부하다는 점이다. 더 과감히 악기를 썼으면 어땠을까, 아쉬움이 매우 크게 남는다.

햄촤: ‘울고 싶지 않아’는 ‘아낀다’나 ‘예쁘다’ 같은 노래를 부르던 세븐틴에게 익숙했던 이들에게는 다소 낯설게 다가올 수 있는 노래로, 타이틀 곡에서는 처음으로 이별을 다루는 가사에서부터 변화의 시도가 느껴진다. 수록곡 전반에서도 이전보다는 차분히 가라앉은 듯한 이미지가 공통적이면서도 곡마다 개성이 뚜렷하다. 다만 이전 앨범들과 비교하면 새로운 시도를 하는 과정에서 앨범을 하나로 묶을 수 있는 구심점이 다소 희미해진 인상도 있다. 대중에게 익숙한 세븐틴, 팬들이 좋아하는 세븐틴, 그리고 자신들이 원하는 세븐틴의 이미지 사이에서 방향성에 대한 고민이 느껴지는, 한 차례 도약을 위해 모색하는 과도기적 앨범일지도 모르겠다.


아이돌마스터.kr OST Part 2
인터렉티브미디어믹스
2017년 5월 22일

랜디: 드라마에 등장하는 작중 그룹을 연기하기 위해 익숙한 인기 걸그룹의 멤버들이 모인 스페셜 유닛이다. 노래의 만듦새가 조악해서 크레딧을 확인해보니 지난 10년간 다수의 케이팝 히트곡을 만들어온 작곡가들이라서 더 놀랍다. 이 정도 퀄리티를 얻어내려면 굳이 이 작곡가들에게 곡을 받을 필요가 없었을 것 같은데, 하는 생각이 들 정도. 이 노래 한 곡으로 이 드라마가 아이돌팝이란 장르를 어떻게 인식하는지, 얼마나 피상적으로 이용하는지가 느껴진다. 글쎄, 아이돌에 큰 관심이 없는 사람이 멀리서 보면, 케이팝이란 이 정도 장르로 보이는 걸지.


좋아서 그래
Poong 엔터테인먼트
2017년 5월 23일

랜디: 봄 여름 시즌에 가볍게 듣기 좋은 연애 노래다. 얕은 드럼 위에 예쁘고 아기자기한 멜로디와 가사를 얹었다. 지난 1월에 내놓은 미니앨범과 활동곡은 그룹 이름부터 지나치게 타 그룹 레퍼런스를 많이 내보이는 것이 오히려 마이너였다면, 4개월 만의 신곡은 이제야 비하트의 제 길을 찾아가나 보다 하는 기대를 하게 한다. 응원하고 싶어진다.

미묘: 곡 자체는 한없이 무난한 곡이라 해야 할 듯하다. 느긋한 R&B로 만들었다가 살짝 템포를 올려놓은 것만 같은 곡인데, 바로 그 부분이 산뜻함을 더해서 듣기 좋은 곡이 되었다. 사근사근하게 흘러가는 곡을 도중에 그냥 흘려보내 버리는 부분들이 조금 아쉬운데, 약간만 기세를 더해 호흡을 끌어올렸다면 좋지 않았을까.


Hello Hello
GH 엔터테인먼트
2017년 5월 23일
놓치기 아까운 음반

랜디: 충격의 데뷔곡과 ‘국뽕돌’이란 별명을 딛고, 이제는 점점 듣기 좋은 노래를 들고나오고 있는 B.I.G의 새 싱글. 세븐틴의 ‘아낀다’ 등에 참여했던 Premo가 주도적으로 만든 곡인데, 이전 싱글이었던 ‘1, 2, 3’ 때도 느꼈지만 Premo와 B.I.G 멤버들은 음악적인 합이 상당히 좋은 것 같다. Premo는 이렇게 안정적인 힙합 댄스곡을 만들 수 있는 작곡가였구나 싶고, B.I.G 멤버들도 보이스톤 겹치는 사람 없이 고르게 노래에 착 잘 붙는구나 싶고. 꾸준히 함께 가기 좋을 조합을 찾은 것 같아 앞으로가 더욱 기대된다.


선인장
비트 인터렉티브
2017년 5월 23일

랜디: 화제의 핫팬츠 남돌 에이스(A.C.E)의 데뷔곡. K.A.R.D의 ‘Oh NaNa’ 등을 만든 주비터 사운드의 작품이다. 아마 케이팝 씬에서는 처음 시도되는 ‘하드스타일’ 장르의 곡이 아닐까 싶은데, 숨돌릴 틈 없이 몰아치는 신스와 여유 없이 밀어붙이는 비트로 승부하는 곡이다. 특유의 과한 느낌이 특징이던 90년대 일본 유로비트에 BPM까지 더 올려버린 듯한 인상을 준다. 여기에 안무 맞춰내기가 쉽지 않았을 것 같다.

미묘: ‘댄스가요’는 ‘일렉트로닉’과는 다른데… 라고 생각하며 듣고 있노라면, 의외로 전개부는 멀쩡하게 댄스가요로서의 설득력을 확보한다. 케이팝에서 차용되는 일렉트로닉보다는 클럽 씬 취향에 훨씬 가깝다는 생각은 들지만, 시각 이미지에서 드러나는 취향의 선명한 존재와 더불어 이를 아이돌이란 맥락에 적용하기 위한 고민의 흔적이 엿보인다. 이는 확실히 긍정적인 부분이다. 흥미를 자극하는 것은 후렴에서 브레이크까지의 구간으로, 후렴의 시작 “바람아 불어라”는 아무리 보아도 가요에의 이식이 덜 되었다는 인상이지만(라이브 무대에선 또 느낌이 다를 수는 있겠다) 브레이크로의 전환부는 두 세계가 제법 멋지게 만나는 지점, 브레이크는 ‘댄스가요 브레이크’를 만들기 위해 너무 나가서 자칫 조금 시시해질 만한 섹션인 듯하다. 차기작에 기대를 걸어본다.

박희아: 90년대 아이돌 씬을 뒤흔든 H.O.T.가 2017년에 나오는 보이 그룹의 레퍼런스가 될 수 있다는 점은 놀라울 따름이다. 촌스럽다는 이야기는 아니고, 어둡고 강렬한 분위기로 압도하던 당시의 패기를 빌려왔다. 몰아치는 사운드가 지닌 공격적인 태도는 최근 나온 아이돌 음악 중에서도 가장 강력한 쪽에 속한다. 또 주비터 사운드가 끈적한 리듬감으로 구현했던 K.A.R.D의 육감적인 느낌이 ‘선인장’에서는 통속성 강한 멜로디로 전이된 듯하다. 아무튼 음악도 이들의 핫팬츠 퍼포먼스도 재미있는 경험이지만, 주비터 사운드와 함께 오래 작업할 것 같으니 남기는 한 마디. 어느 순간부터 일정한 패턴에 갇혀버린 K.A.R.D에게서 느껴진 지루함만큼은 닮지 않기를 바란다.


Kim Lip
BlockBerry Creative
2017년 5월 23일

랜디: 이달의 소녀는 1/3까지가 하나의 프로젝트였나 보다. 앞선 다섯 명의 멤버들은 일본 서브컬처적인 정서를 바탕으로 예쁘고 귀여운, 때로 아련한 분위기를 내는 데 주력했다면, 여섯 번째 멤버 김립부터는 아예 색깔을 확 바꾸었다. 앞서 소개된 멤버들보다도 오히려, 최근 1, 2년간 등장하기 시작한 20대 초반 여성 댄스 가수(아이, 소희, 그리고 아이돌 씬 바깥까지 눈을 돌린다면 Eyedi 등)들과 묶는 것이 더 적당할 것 같은 어반 R&B 댄스곡이다. 작년까지는 안다 혼자 분투하던 이 장르에 가수가 많아진 건 좋은 일 같다. (이들 대부분이 그룹 데뷔 전 프리데뷔 격으로 나온 거긴 하지만.) 뮤직비디오 초반에는 일본 교복 같은 의상을 입고 있긴 하지만, 그것 말고는 기존 이달의 소녀 콘셉트와 거의 교차점이 없다. 이다음 멤버가 나와야 이 새로운 패턴을 확인할 수 있을 것 같다.

놓치기 아까운 음반

미묘: 저항해볼 생각을 할 틈도 없이 몸이 움직여버리는 곡이다. 베이스와 신스는 어둡게 울리는 보컬 뒤로 살짝 억눌려 있는데, 조금 더 앞으로 튀어나와 귓전을 때리는 버전을 듣고 싶은 욕구가 생기기도 하지만 동시에 (케이팝으로서) 좋은 비율로 배합됐다는 생각도 든다. 다행히 색깔이 선명하면서도 ‘그게 뭐 하는 사운드인지 다들 아는’ 종류의 소스들이라 가능한 일일 듯. 텐션 노트를 많이 활용하면서 툭툭 내던지도록 구성된 보컬 멜로디는 청아하게 무덤덤한 섹시함이라는 (예스러운) 미덕을 잘 보여준다. 색정적인 질감을 낼 법한 곡과 뮤직비디오인데, ‘풀쩍풀쩍’에 가까운 동작이 많이 섞이면서 톤을 가볍게 하고 있고, 어쩌면 그것이 김립과 (기존의) 이달의 소녀 사이의 구름다리가 될지도 모르겠다.

햄촤: ‘Eclipse’는 상대적으로 퍼포먼스가 강조된 곡으로, 데뷔 프로젝트의 절반이 지나고 본격적으로 이전까지와는 색깔이 다른 멤버들을 소개하려는 신호탄과 같은 역할을 하고 있다. 몽환적인 분위기와 로케이션이 돋보이는 뮤직비디오도 여전하다. 색다른 이미지라고는 하지만 하나의 그룹 안에서 기획된 이미지인 만큼 여전히 듣기에 편한 멜로디와 템포 안에서 머무르며, 곡 자체는 나쁘지 않지만 대중을 강렬하게 사로잡을 만한 무언가를 보여주지는 않는다. 여전히 다음 소녀를 기다리게 만드는 싱글. 물론 그 점마저도 기획 의도에 포함되었겠지만.


Momentum
드림티 엔터테인먼트
2017년 5월 23일

랜디: 딱 들으면 이단옆차기의 노래답다. 스타일보다도 멜로디 자체가 한국 가요를 관통하는 그 감성을 너무 잘 알고 있다. 멤버들의 곡 소화력도 꽤 좋다. 다만 안무가 유기적이지 못하고 디테일이 듬성듬성하다는 인상이라, 대인원의 메리트를 충분히 살리고 있지 못하다는 느낌이 든다.


다시 만나는 날
SM 엔터테인먼트
2017년 5월 24일

랜디: 특별하지 않은 SM 발라드 곡이지만, 당분간은 들을 수 없을 규현의 목소리라 조금 짠하다. 그건 그렇고 규현의 창법이 조금 변한 것 같다. 입천장 뒤쪽에 공간을 전보다 좁게 남기면서 비음이 살짝 늘었다. 연차가 오랜 가수가 시간이 지나며 창법을 조금씩 바꾸는 것이 드문 일은 아니지만, 그 특유의 얼굴 전체에서 공명하는 발성을 좋아했던 팬으로서는 조금 아쉽다.

미묘: 애절한 기대로 가슴이 벅차오르는 장면은 아마 규현이 가장 잘 표현하는 것인지 모르겠다. 또한 규현의 곡에서 자주 듣게 되는 대목들이기도 하다. 나긋나긋한 사색 같은 도입부에서부터 점차 크레센도 되면서 후렴으로 들어서기까지는 그러한 매력이 잘 살아있으며, 이를 표현하는 멜로디의 상승도 가슴을 파고든다. 약간의 화성적 의외성을 가하면서, 끝나는 듯하다가 다시 이어지는 브리지도 고전적인 질감이지만 효과는 분명하다. 다만 후렴이 아쉬운데, 그 시작과 끝이 ‘동양적’인 느낌으로 흐르면서 조금 관습적인, 혹은 예스러운 가요 발라드 느낌이라 조금 김이 샌다.


아낙수나문
페이브 엔터테인먼트
2017년 5월 24일

랜디: 웃지 않는 얼굴로 대표되는 유일한 여돌이라서, 그 존재 자체가 케이팝 씬에서 유의미한 인물. 예지의 이번 싱글은 가사뿐 아니라 스타일링과 안무 등을 예지 본인이 프로듀싱 해냈다는 점에서 이전 트랙보다 특별하다. 솔로로 발표하는 싱글의 메시지가 매번 비슷하게 느껴져서 아쉽기도 하다만, 예지를 둘러싼 가요계와 사회가 전혀 변하지 않고 있으니 그가 내놓는 트랙은 늘 유효타이다. 셀프 프로듀싱 싱글이니 회사에서 좀 더 확실하게 지원해줬으면 좋았을 텐데, 뮤직비디오는 매무새가 너무 후줄근해서 슬퍼질 지경이다. 그 화면을 뚫고 나오는 예지의 기세는 여전하지만 말이다.

미묘: 예지라서 할 수 있는 것임에는 분명해 보이지만 이것이 아니면 안 됐다는 생각이 들지는 않는다. 하지만 그 자체로 무척 흥미로운 것만은 분명하다. 섹션 배치를 놓고 보자면, 케이팝에서 래퍼의 자신감 표현으로서 보기 드문 질감을 보여주는 공격적인 랩을 여유로운 마음으로 감상한 뒤, 퍼포먼스 파트로 넘어가 일종의 브레이크와 드랍을 함께 가져가는 형태다. 뇌쇄적인 이미지나 살벌한 느낌 사이에서 밸런스를 정확히 맞추고 있다는 인상은 아닌데, 이때 안무도 폭발적이거나 공격적이라기보다는 단검 같은 절제를 보인다는 점이 재미있다. 뮤직비디오 속에서 매섭게 웃는 예지의 표정과 함께 제법 난폭하게 몰아치는 사운드를 들을 수 있는 것은 매우 반가운 경험이다. 보다 선명한 차기작을 기대하고 싶다.

By Editor

idology.kr 에디터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