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월 하순에서 4월 초순까지 발매된 아이돌 신작에 대한 아이돌로지 필진 단평. 프리스틴, 몬스타엑스, 걸스데이, 와썹, 레드벨벳, 오마이걸, 위너, 드림캐쳐, 텐, 틴탑, EXID, 정은지를 다룬다.
최근 내부 사정으로 인해 퍼스트리슨 리뷰에 차질이 빚어졌습니다. 퍼스트리슨은 발매되는 모든 음반을 리뷰하는 것이 원칙이었으나, 당분간 주요작 중심의 리뷰로 전환합니다. 업데이트 간격 조정을 위해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독자 여러분의 양해를 부탁드립니다. – 편집자
김윤하: 프리스틴의 데뷔작 “Hi! Pristin”은 여자친구의 ‘파워청순’ 이후 은근슬쩍 걸그룹 키워드의 주류가 되어버린 ‘파워’가 아낌없이 팡팡 터지는 앨범이다. 청량과 명랑을 무기로 어떤 장르, 어떤 서사 앞에서도 주눅 드는 법 없이 팔과 다리를 쭉쭉 내뻗는 멤버들의 모습은 그룹을 대표하는 캐치프레이즈 ‘파워&프리티’에 아슬아슬 딸려있는 ‘프리티’를 무색하게 만든다. 멤버들은 기세 좋은 타이틀곡 ‘Wee Woo’는 물론 R&B 팝, 트랩, 팝 발라드 등 장르별로 잘 차려진 수록곡들을 올 테면 와보라는 듯 하나씩 씩씩하게 소화해낸다. 리더 나영을 비롯한 그룹 과반수 멤버들이 〈프로듀스 101〉을 통해 이미 대중들 앞에 선 적이 있었다는 사실과 데뷔 전 매달 열었던 소극장 공연으로 다져진 경험치가 이 노련한 데뷔 앨범의 근간이 되어주었을 것이다.
미묘: 각 멤버를 번갈아가며 조망하는 뮤직비디오는 표정이나 행동이 변하는 장면들의 연속이다. 곡은 구조적으로도 다소 정신없고, "뿌뿌"까지 들어가면서 기믹이 과하다는 인상이 남기도 하지만, 그것을 모두 뛰어넘어 질주해버리는 에너지가 그 표정들 속에 담겨 있다. 사랑받아본 경험으로 가득하다는 듯한 류의 자신감, "내가 이렇게 하면 네가 좋아한다는 걸 안다"는 듯한 모습들. 이 "모험을 좋아하"는 공주는 거침없이 몰아치다가 필요한 게 있으면 "앰뷸런스 한 대 보내주세요"라고 당당하게 말해버린다. “좋아해, 널 좋아해”를 외치는 목소리의 기세는, 예쁘게 보여서 사랑받겠다는 결의가 아니라 확신이다. 최근 프리스틴 멤버들의 처우가 종종 화제에 오르는데, 이들의 생기는 그런 안정된 환경만이 만들어낼 수 있는 게 아닐까 하는 상상마저 하게 한다. 우아한 세련미의 'Be the Star'도 발군의 트랙. 특이하게도 오히려 라이브에서 훨씬 탄탄하게 들리는 'Black Widow'는 다소간 뻣뻣하고 멍한 듯한 연출과 히스테릭한 사운드가 팽팽한 긴장감을 낳으며 '스쿼드'로서의 프리스틴을 이색적으로 선보인다. 단, 'We'는 아무래도 플레디스 걸즈 버전이 좀 더 좋았다고 생각한다.
박희아: 타이틀곡 ‘Wee Woo’는 전략 시뮬레이션 게임에서 맹공을 펼치는 것과 비슷한 효과를 발휘한다. 상대의 혼을 모조리 빼놓는다. 모든 파트에 바짝 힘을 주었고, 이로 인해 음원으로 들을 때 유독 피로감이 높다는 점을 단점으로 꼽을 수도 있다. 그러나 무대를 보면 이 점이 도리어 커다란 장점으로 승화된다는 사실. 수많은 그룹들 사이에서 신인 걸그룹이 눈에 띄기 위한 방법으로 이만한 게 없다. 멤버 하나하나의 특징을 잡아줄 뿐만 아니라, 다른 걸그룹들에 비해 입체적인 파워를 과시하는 팀 정체성에 딱이니까. 수록곡 ‘Be the Star’는 꼭 들어 보길 권한다. 도입부터 신비로우면서 달콤한 사운드가 귀를 사로잡는다. 이외에도 앨범 수록곡 각각이 롤플레잉 게임을 하는 듯 또렷한 캐릭터를 갖고 있다. 다음 앨범이 벌써 기다려진다.
햄촤: ‘Wee Woo’는 구성이나 멜로디보다는 대중의 인상에 강렬히 남길 수 있는 소위 ‘플짤’이 될 만한 순간을 위해, 뮤직비디오와 안무까지 철저히 기획된 곡이 아닐까. 멤버별 파트의 전환은 서로 다른 곡의 티저를 편집해 교차시킨 듯 멜로디와 이미지가 쉴 새 없이 변화되고, 가장 폭발적이라 할 수 있는 후렴구의 “좋아해 널 좋아해 BUBU” 부분조차도 멜로디와 가사에 맞춘 안무가 아닌 안무에 노래를 맞춘 듯한 착각이 든다. 산만한 구성에 거부감이 들다가도 들을수록 머릿속에서 곡의 구조가 재조립되면서 그 매력에 빠지는, 마치 “Wee Woo Wee Woo”하는 사이렌 소리처럼 프리스틴이라는 그룹을 제법 성공적으로 뇌리에 각인시키는 데뷔곡. 멤버들 상당수가 프로듀싱에 참여했는데, 설령 그 비중이 아직 미미하더라도 앞으로 그룹이 성장해나가는 데에 큰 무기가 되리라 기대한다. ‘플레디스 걸즈’라는 이름으로 앞서 발표했던 ‘We’가 마지막 트랙으로 수록되어 다시 듣는 감회가 새롭다. 각 수록곡마다 개성 또한 뚜렷하며, 들을수록 매력을 발견할 수 있는 데뷔 앨범. 특히 변화무쌍한 분위기의 첫 트랙 ‘Be the Star’가 귀에 꽂힌다.
미묘: 거침없이 내달리던 전작에 이어, 몬스타엑스는 이번에도 육체파에 가까운 에너지로 밀어붙인다. 다만 타이틀 '아름다워'의 제목과 커버아트에서 상상할 수 있듯 탐미적인 어프로치를 본격적으로 가미한다. 기존 곡들의 연장선상에 있는 랩을 멜로디컬하고 감상적인 멜로디와 접붙인 '아름다워'는 후렴의 질감이 대단히 새롭지는 않으나 매우 안정적으로, 그래서 성공적으로 두 세계를 연결한다. 과거 흔히 들려오던 감성적인 보이그룹 단조 댄스튠의 경계를 아슬아슬하게 맴돌면서, 상당히 익숙하지만 질척이진 않는 균형을 잘 잡아내고 있어, 큰 부담감 없는 가요로서 감상하면서 자연스럽게 몬스타엑스의 매력을 발견하는 이들도 있을 법하다. 이런 기조가 마음에 든다면 각기 감성적 접근을 더 강화한 'Miss You'와 와일드한 에너지를 더 강조한 'Calm Down', '넘사벽'도 주목해볼 만하다. 특기할 사항은 상대적으로 가볍거나 R&B 기조를 띠는 트랙들인데, 감성을 강조하며 울어대거나 밝은 색채로 억지 균형을 찾기보다, '신남'은 '힘'에 거의 위탁한 채로 어른스러운 분위기를 연출하고 있다. 앨범에서 유난히 귀에 밟히는 "인마"가 좋은 포지셔닝 전략인지는 확신이 서지 않지만, 매우 격하고 신나며 단단한 트랙들로 근사한 인물형을 선보이는 멋진 앨범.
햄촤: 공백기가 길었던 만큼 건재함을 어필하기 위해 고심한 흔적과 더불어 앨범 전반에서 보컬의 성장이 두드러진다. 걸스데이야 예전부터 노래와 퍼포먼스 사이의 균형감을 잃지 않으며 발전해온 그룹이지만, 이번 앨범은 특히 보컬의 매력을 어필하고 있으며 소진과 민아의 솔로곡 또한 같은 맥락 속에서 자연스레 앨범에 자리 잡는다. 타이틀곡 ‘I’ll Be Yours’는 ‘Darling’의 상큼함과 활기보다는 ‘Something’의 섹시함을 더 연상시키는 곡으로 브라스 사운드와 더불어 후렴 끝에 몰아치는 민아의 보컬이 인상적이다. 수록곡 중 ‘Love Again’과 소진의 솔로곡 ‘Kumbaya’를 들어보시길 추천한다.
미묘: 와썹은 2주 뒤, 이 곡이 수록되지 않은 EP를 발매했는데, 4인조 재편 과정에서 나다의 이름이 (작사에) 들어간 마지막 릴리즈가 된 모양이다. (또한 아마도 과거 와썹의 느낌이 살아있는 마지막 릴리즈가 될 모양이다.) 'Dominant Woman'이란 제목부터 시작해서, 마피아 레코즈답게 마구 쏟아붓는 기세가 인상적이다. "Dominant woman 난 돈이 나는 woman", "DOMINANT, 앤티, 들아" 등의 말장난도 꽤나 감각적. "미래를 만들어가는 건 바로 나"처럼 갑자기 청소년 센터 정서로 빠져나가는 것이 일견 아쉽기도, '이게 제맛'이란 생각을 하게 하기도 한다. 과격하고 히스테릭한 요소들이 자칫 과잉해질 수 있을 만큼 빼곡하게 들어서 있는데, 이를 부피감 있게 감싸주지는 못한다. 그래서 더 날카로운 날것으로 만들어질 수도 있었겠으나, 그보다는 아무래도 조금 허약하게 들리는 점이 아쉽다. '와썹 1기'의 추억을 뒤로하고, 달라진 와썹의 새로운 활동에 기대를 걸어본다.
박희아: ‘Would U’는 매우 사랑스럽게 짜인 플롯을 바탕으로 만들어진 곡이다. 레드벨벳의 ‘Red’ 이미지를 가장 서정적으로 활용한 형태다. “Would U Would U Would U” 반복되는 코러스가 잔잔한 울림을 남긴다. 뮤직비디오까지 함께 보면 산뜻한 파스텔 컬러의 보컬이 보다 선명한 뉘앙스로 다가온다. 레드벨벳이 굳이 팀 콘셉트를 두 개로 나누지 않았더라면 이 감흥이 덜했을 것 같기도 하고.
햄촤: 다섯 명 모두 좋은 목소리를 갖고 있고 서로 조화도 잘 이루는 레드벨벳. 이들의 장점은 대중적으로 알려진 노래들과 달리 발라드에서 더 빛나는지도 모른다. 특히 이번 ‘Would U’에서는 슬기와 웬디의 목소리의 대비가 유난히 뚜렷하면서도, 둘 다 보컬의 운용을 댄스곡과는 전혀 다른 방식으로 매끄럽게 조율하고 있음에 새삼 주목하게 된다. 막상 앨범에서는 이런 어쿠스틱한 밝은 분위기의 발라드가 거의 없었다는 점을 상기하니, 봄에 듣기 딱 좋은 이 노래가 더욱 반갑다.
김윤하: 오랜만에 오마이걸 특유의 마칭(marching) 사운드로 돌아온 타이틀곡 ‘컬러링북’은 안타깝게도 힘차기 이전 난삽해져 버린다. 수십 가지 색채가 폭죽과 꽃가루처럼 터지는 풍경을 상상하며 만들었음이 분명한 곡과 사운드는 터지고 퍼질 타이밍을 적절하게 잡지 못한 채 머릿속 떠올린 화사한 이미지만을 쫓아가는 데 급급하다. 한층 더 안타까운 건 ‘컬러링북’을 제외한 앨범 수록곡들은 언제나 그렇듯 꽤나 준수한 진영을 갖추고 있다는 점이다. 현역으로 활동하고 있는 어떤 걸그룹보다 촉촉하면서도 산뜻한 분위기를 능숙하게 표현하는 여덟 멤버들의 목소리는 여느 때처럼 세련되게 골라낸 팝 사운드를 구석구석 채우며 곡 사이를 누빈다. 적절한 때 적절한 한 방이 이렇게 어렵다.
미묘: 기세 좋게 소리치는 여리여리한 소녀들, 그것은 오마이걸의 큰 매력 포인트다. '컬러링북'은 손가락을 물어버릴 것 같은 "열 손가락!"이란 챈트와 함께 시원하게 폭발한다. 그 비결은 사실상 한 덩어리의 곡인 시작부터 "완전 perfect 해"까지, 그리곤 다시 시작점으로 돌아와 새롭게 변주해버린 "Bang bang..."에서 긴장을 최대한 잡아냈다가, 거의 막무가내에 가까운 후렴으로 연결되는 구조다. 수록곡들은 여전히 상냥한 꿈과 좋은 취향으로 아주 조금, 그러나 결정적으로 특별하게 꾸려졌다. 전작들에 비해 조근조근하고 나긋나긋해진 기색이 강한데, 마치 '걸그룹 팝의 기타는 이렇게 써야지'라는 듯한 'Perfect Day'가 다시 시원하고 말끔한 격정을 담아내며 마무리된다. 걸그룹 공식의 출발점이라 해도 좋을 예쁘장함에, 에너지 뻗치는 존재로서의 소녀를 잊지 않고 조합할 줄 아는 것은 오마이걸의 가장 큰 자산. 바로 그 점에 충실하겠다는 다짐처럼 들리는 EP다. 뮤직비디오를 조금 언급하고 싶은데, 폭발하는 물감을 뿌리며 날뛰고 날아오르는 소녀들의 모습은 비교적 클리셰기는 하나 이런 장면을 케이팝에서 본지 너무나 오래돼서 반갑다. 무엇보다, 있을 수 없는 일이 벌어질 때의 놀라움을 즐거움으로 표현하는 멤버들의 표정이 보기 좋다. 다만 물감이 뿌려진 뒤, 그리고 색채의 세계를 오가면서 보이는 미감이 다채롭기보다는 다소 어수선하게 느껴지는 점은 아쉽다. (또한 여전히, '지적하긴 애매하지만 찜찜한' 성적 메타포와의 긴장은 어쩌면 오마이걸에게 있어 가장 큰 딜레마가 아닐까 한다.)
햄촤: 기존 오마이걸의 색깔에서 벗어나지 않으면서도 대중적으로 좀 더 어필하기 위한 타협점을 찾은 결과물 같은 앨범이다. 타이틀곡 ‘컬러링북’은 ‘Closer’나 ‘Windy Day’에서 느낄 수 있었던 독특하고 신비한 이미지는 조금 줄었지만 여전히 그들만의 활기찬 에너지가 충분한 곡이다. 반복적인 “열 손가락!” 샤우팅은 데뷔곡 ‘Cupid’를 연상케 하고, 빠른 템포의 리듬과 구성은 두 번째 미니앨범 수록곡인 ‘Round About’이 떠오르는 등 기존 곡과의 연계성도 잃지 않는다. 수록곡 중 가장 익숙한 ‘오마이걸스러운' 분위기와 가사의 ‘Agit’와 더불어 일곱 명의 매력적인 음색을 골고루 감상하기 딱 좋은 발라드 ‘In My Dream’ 등 여전히 작지만 알차게 꽉 채워진 미니앨범. 다만 오마이걸 음악의 매력 중 상당한 역할을 차지했던 미미 랩의 비중이 꽤 줄어든 점은 아쉽다.
김윤하: 기분 탓일까. 결성 후 매해 위기상황에 봉착하는 듯한 위너지만 이번에야말로 진정한 위기였다. 메인 보컬이자 지난 앨범 성공의 일등공신이었던 멤버 하나를 잃은 절체절명의 상황. 그룹은 자신들이 타고 있던 바람의 방향을 180도 바꿔 올라타며, 흔한 표현이지만 위기를 기회로 바꾼다. 그런 의미에서 ‘Fool’보다는 ‘Really Really’가 인상적인데, ‘공허해’나 ‘센치해’ 같은 기존의 히트곡들이 감정을 품으며 매력적인 면모를 보여줬던 것과 달리 ‘Really Really’는 ‘널 좋아해’라는 가사와 함께 묻어두었던 감정을 폭발시키며 이목을 집중시킨다. 트로피컬 하우스의 트렌디한 무드와 함께 어둡게만 보이던 위너의 내일에 엷은 빛줄기가 스며들었다.
박희아: ‘Really Really’로 김진우가 상당히 매력적인 톤을 지닌 보컬이라는 것을 알게 됐다. 킬링 파트라고 부를 만한 부분 중에서 그가 유독 많은 부분을 담당했는데, 앞서 발표한 곡들에서는 사실 나머지 세 멤버가 뿜어내는 에너지가 워낙 강해서 존재감이 매우 약했다. 하지만 이번 ‘Really Really’에서는 다르다. “널 좋아해” 같은 담백한 언어가 돋보여야 하는 만큼, 가만히 서 있기만 해도 흘러넘치는 세 멤버의 에너지가 선을 넘으려는 순간에 김진우가 짧고 강한 몇 개의 파트로 분위기를 정돈한다. 파트 분배를 누가 했는지 상당히 영리하다. 왜 이들이 팀인지, 단체 무대에서 에너지 밸런스를 맞추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 성공 요인인지 알게 해준다.
햄촤: 생각해보면 마치 각기 다른 장르에서 모인 듯한 네 명이 하나의 그룹에서 모인 위너는 서로 다른 음색과 스타일에서 생기는 이질감을 차라리 각자의 개성을 최대한 어필하는 방법으로 돌파해버린다. 서로가 서로의 곡에 피처링하듯 파트를 전환하고, 그로 인해 곡의 분위기가 다채롭게 변화하면서 다소 느린 리듬감의 곡이지만 긴장감을 계속 이어가며 묘한 중독성을 빚어낸다. 각자가 가장 잘할 수 있는 방법으로 각각의 파트를 소화하면서 온전한 하나의 곡으로 완성시킨 ‘Really Really’는 다인원 그룹이 대세가 되어가는 케이팝씬 가운데에서 4인조 위너가 가진 메리트를 가장 잘 보여주는 곡이 아닐까. 특히 후렴구 ‘Really Really’에서 강승윤의 허스키한 목소리와 ‘널 좋아해’에서 김진우의 미성이 대비되는 순간의 매력에서 쉽게 빠져나오지 못하고 있다.
햄촤: 'Good Night'은 전작 ‘Chase Me’보다는 더 헤비한 사운드와 빨라진 템포, 다이나믹한 편곡으로 그룹의 색깔을 확실히 각인시키려는 포부가 느껴지는 곡이다. 뮤직비디오의 콘셉트 또한 전작으로부터 매끄럽게 이어지고 있다. 개인적으론 데뷔곡에 대해서는 판단을 조금 유보하고 싶은 입장이었으나 이번 싱글을 통해 전반적 기획의 뚜렷한 방향성이 보이는 듯해 앞으로의 성장이 더욱 기대된다. 다음번에는 좀 더 멤버들의 개성을 드러낼 수 있는 뮤직비디오와 스타일링을 보여주면 좋겠다는 바람을 살짝 얹으면서, 언젠가 이들이 무대에 라이브 밴드를 대동하고 콘서트를 하는 날을 기다리고 싶다. 분위기가 전혀 다른 발라드인 수록곡 ‘Lullaby’는 록 버전이 따로 존재하는데, 밴드 사운드를 들어낸 것은 아닌지 의심될 만큼 언제 기타 사운드가 몰아치며 변주될지 모른다는 긴장감이 흐른다. 어쩌면 팬들을 위한 리메이크 소스 제공으로서의 의도가 숨어있는지도?
김윤하: 우선 뮤직비디오를 꼭 함께 감상하길 권한다. ‘몽중몽’은 하나의 단독 작품이라기보다는 그를 담아낸 영상과 그를 다시 풀어내는 텐의 퍼포먼스 이 세 가지가 삼위일체 되었을 때에야 비로소 완성되는 노래이기 때문이다. 사실 그 삼위일체가 그려내는 풍경이 새삼스럽진 않다. 최근 SM의 작업 가운데 가장 ‘앞선’ 것들을 섞어낸 인상을 짙게 풍기는 음악과 영상은, 좀 더 거칠게 비유하자면 NCT U의 ‘일곱 번째 감각’과 태민의 일본 싱글 ‘사요나라 히토리’의 컬래버레이션이라 해도 좋을 정도다. 다만, 그 눈 시린 세계 속 춤추는 텐이 너무나 아름답다. 다소 애달픈 마음으로 디스커버리를 선사한다.
박희아: 동양적인 소리와 움직임을 퓨처한 이미지 속에 섞어서 완성한 곡, 그리고 뮤직비디오다. 이번 SM 스테이션 시즌 2에 상당히 인상적인 곡들이 많은데, ‘夢中夢’은 압도적으로 도드라진 매력을 자랑한다. NCT라는 그룹 특성상 멤버들 모두가 고르게 빛을 보기 어렵다. 물론 수많은 선배들이 순서를 기다리고 있는 SM 스테이션에서도 이들에게 얼마나 기회가 돌아갈지는 모르겠다. 하지만 이 결과물로 짐작건대, NCT 내부에 아이돌 시장에서 상당한 경쟁력을 지닌 멤버들이 있을 거라는 사실만큼은 확신할 수 있다. 그만큼 이 콘셉트만 놓고 보자면 새삼 SM 엔터테인먼트의 기획력에 놀라지 않을 수 없다. ‘일곱 번째 감각’으로 한 차례 어필한 NCT의 차가운 세계관X텐의 뛰어난 춤 실력X우아한 동양적 아이덴티티. 세 가지가 곱해진 놀라운 작품.
햄촤: 정규답게 다채로운 수록곡으로 채워 넣은 앨범. 틴탑에게선 왠지 ‘유약한 속마음을 감추려 애써 센 척하는 남자’의 이미지가 있는데, 이번 앨범에서도 ‘손만 잡고 잘게’, ‘화나게 해’ 같은 곡을 통해 특유의 정서가 잘 표현된 것 같다. 앞쪽에 배치된 댄스 넘버보다는 ‘뭐가 문제야’, ‘You & I’, ‘Mirror’등 앨범 후반의 어쿠스틱하고 느린 템포의 곡들이 귀에 더 강렬히 인상을 남긴다는 점이 개인적으론 다소 의외이자 신선한 발견.
박희아: 멤버의 공백을 없애기 위해 벌인 필사적인 노력인지, 드디어 새로운 이미지로 다가서기 위함인지. 어느 쪽이든 간에 좋은 결과물이 나왔기 때문에 우선 다행이다. 이전 앨범들보다 톤다운된 트랙들이 이어지고, 이런 무드가 EXID에게 더없이 잘 어울린다. 타이틀곡 ‘낮보다는 밤’은 섹슈얼한 포인트가 제목부터 또렷하다. 욕망을 노래하는 방식은 직접적이되, 이전보다 절제된 발성은 습기 어린 바람처럼 끈적한 분위기를 이끌어낸다. 덕분에 뇌쇄적이고자 하는 곡의 의도가 더욱 잘 다가온다. 혜린이 솔지의 빈자리를 채웠는데, 솔지에 비해 한층 가볍고 담백하게 유혹하는 가사를 소화한다는 장점이 있다. 사이사이로 끊임없이 치고 빠지는 하니와 정화는 트랙마다 능숙하게 소임을 다하고 있다. 보컬들의 이야기가 끊길 것 같은 순간마다 생기를 불어넣는 LE는 여전히 EXID에 귀중한 존재다. 누구 하나 모자람 없이 각자가 팀에서 자신의 역할을 잘해주고 있다는 점은 매우 중요하다. 그 점 하나로도 이 앨범의 완성도를 높게 평가할 수 있다.
햄촤: 수록곡 전반에서 전작들과는 확연히 달라진 톤이 돋보이는 앨범이다. 몰아치는 LE의 랩과 솔지의 폭발적 고음 대신 이들이 선택한 전략은 ‘느슨함’이다. 타이틀곡 ‘낮보다는 밤에’에서도 느껴지듯 이전까지라면 후렴에서 고음으로 상승했을 법한 지점에서도 오히려 힘을 빼고 긴장감을 늦추면서 예상을 벗어나는 재미를 계속해서 만들어낸다. 누군가는 솔지의 부재로 인해 드러날 수 있는 약점을 감춘 선택이라 말할지도 모르지만, 오히려 솔지 외의 네 명이 지닌 장점을 더욱 적극적으로 드러냈다고 해야 정답일 것이다. 전반적으로 하니의 보컬 활용의 폭이 특히나 넓어졌고 후렴에서 혜린의 역할 또한 커지면서 그룹이 한 단계 더 성장했음을 여실히 보여준다. 영화 〈친구〉의 명대사 “니가 가라 하와이”를 재치 있게 인용한 ‘How Why’와 하니의 솔로곡 ‘우유'도 즐겁지만 무엇보다 묘하게 몽환적인 느낌의 첫 트랙 ‘Boy’가 인상적이다. 그룹이 상승가도를 달리는 도중에 놓쳐왔던 점들을 차분히 챙기며 메인보컬의 부재를 위기가 아닌 기회로 바꾸어버린, EXID라는 그룹이 단지 운만으로 지금의 자리에 왔다고 생각하는 이들이 있다면 강제로라도 들려주고 싶은 앨범.
김윤하: 출중한 보컬리스트를 활용한 기획을 일종의 제작사 고유의 캐릭터 해석이라 볼 때, 플랜에이 엔터테인먼트((구) 에이큐브)가 설정하고 있는 정은지의 시간대는 적어도 93년생인 가수가 나고 자란 곳은 아니다. 80년대, 멀리 보면 70년대까지도 아우를 수 있을 것 같은 이 뿌연 세피아 톤은 원래도 냉보다는 온의 기운을 타고난 정은지의 보컬과 색깔을 살려주기는커녕 한층 답답하고 무겁게 만든다. 장롱 깊숙이 숨어있던 엄마 옷을 꺼내 입고 테크닉으로 겨우겨우 균형을 잡고 있는 그에게 윤건도 곽진언도 썩 좋은 구원이 되어주지는 못했다. 하나 더, ‘너란 봄’과 ‘너란 놈’의 끝맞춤 가사는 근 수년간 만난 것들 가운데 가장 구질구질한 라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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