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빅스 : 그들이 살아남는 법 (1)

빅스는 ‘Rock Ur Body’까지 그룹의 로고인 로봇 캐릭터 ‘로빅’을 중심으로 그룹 콘셉트를 일관성 있게 유지하려고 노력했다. 그러나 ‘다칠 준비가 돼 있어’에서 젤리피쉬는 콘셉트의 흐름을 통째로 갈아엎어 버리는 용단을 내린다.

때는 2013년 12월 6일 토요일, 나는 여느 때처럼 뒹굴 거리며 <뮤직뱅크>를 시청하고 있었다. 타이틀에 ‘Voodoo’라는 단어가 들어간 곡이 메이저 차트 1위에 오르는 일은 메탈 강국 스웨덴에서나 일어나는 건 줄 알았는데 그것이 실제로 일어났습니다. 동시에 그간 지켜봐 왔던 빅스의 모든 무대들이 주마등처럼 스쳐 지나가는 현자타임이 도래했다. 2005년 기점으로, 발라드 중심으로 굴러가던 한국 가요계 판도를 뒤집고 아이돌은 급속도로 시장을 주도해 나가기 시작했다. 그러나 그만큼 레드오션화 또한 빠르게 진행되었고, 이에 따라 지속적인 활동을 담보할 수 있는 확률은 점점 낮아지고 있다. 이런 시장 환경에서 케이팝이 어떻게든 시청자들의 눈과 귀를 잡아두기 위해 시도했던 자극적인 일련의 장치들을 나는 ‘어그로(도발) 마케팅’이라고 부르고 있다. (어그로 마케팅에 관해서는 후일 다른 지면에서 자세히 다룰 수 있기를 바란다.)

바야흐로 대아이돌시대라고 불러도 좋을 한국 가요계에서, 지상파 음악방송 1위는 해당 가수가 성공적으로 시장에 안착했다는 신호로 받아들여진다. 아이돌을 주 수익구조로 삼고 있는 메이저 기획사가 아닌 타 기획사 출신의 아이돌이 본 타이틀을 획득하는 것은 이제 그만큼 이례적인 일이다. 박효신, 성시경 등 중견 발라드 가수를 관리해왔던 젤리피쉬 엔터테인먼트(이하 젤리피쉬)가 첫 아이돌 그룹을 기획하여 이 위치까지 올려놓는 과정에는 분명 흥미로운 지점이 있었다. 그리하여, 이 글의 목표는 뮤직비디오 발표와 음악방송이 병행된 곡들 일부를 되짚어 보면서 빅스라는 그룹을 간략히 분석하는 데에 있다. 스크롤 압박과 노잼의 예감이 든다면 밑의 세 줄 정리를 보고 뒤로 가기를 눌러 아이돌로지의 다른 훌륭한 아티클을 읽어 보는 것도 좋을 것 같아…

  • 명료한 콘셉트 설정으로 그룹/멤버 단위 캐릭터, 악곡, 가사 등 그룹 구성요소의 높은 통일성을 도모하는 기획 패턴
  • 타이틀곡 컴백 무대를 발표 역순으로 돌려보면 멤버들의 눈이 작아지다 못해 사라짐
  • 영원히 고통받는 철쭉소년

데뷔하는 슈퍼히어로

빅스는 엠넷의 프로그램 <마이돌>을 통해 멤버 구성과 그룹명에 시청자 의견을 반영하는 방식으로 만들어진 그룹이다. 신인 아이돌 그룹이 데뷔 전 다양한 형태의 리얼리티에 출연함으로써 사전 홍보를 하는 것은 이제 정형화된 마케팅 중 하나라 할 수 있다. 그러나 본 프로그램은 그리 큰 반향을 얻지 못했으며 지금도 이 프로그램의 존재를 알고 있는 것은 일부 아이돌 팬과 빅스 팬 정도라 할 수 있겠다. 여하튼 우여곡절 끝에 빅스는 2012년 5월 24일 <엠카운트다운>에서 ‘SUPER HERO’로 데뷔하게 된다.

빅스에게 ‘컨셉돌’이라는 이름이 붙기 시작한 계기는 ‘다칠 준비가 돼 있어’였을지 모르지만, ‘Rock Ur Body’까지도 빅스는 그룹의 로고인 로봇 캐릭터 ‘로빅’을 중심으로 그룹 콘셉트를 일관성 있게 유지하는 속에서 다양한 시도를 하려고 노력했다. ‘그녀’가 원하는 바를 다 이루어줄 수 있는 초인적인 능력을 가진 히어로(‘SUPER HERO’)에서, ‘그녀’를 지켜줄 수 있는 게임 속 건강하고 발랄한 소년 캐릭터(‘Rock Ur Body’)까지의 이행 과정은, 장기적인 관점에서 짜여진 듯 대단히 자연스럽다. ‘Rock Ur Body’의 경우 뮤직비디오의 비주얼 콘셉트를 픽셀아트로 설정하고 악곡에 칩튠 사운드를 적절히 활용, 가사 내용과 그룹 콘셉트 사이에 상당한 통일성을 부여했다(현재까지의 발매작 중 티저를 포함한 뮤직비디오의 완성도는 이 곡이 가장 높다). 또한 데뷔 때부터 지속적으로 업데이트하고 있는 <빅스 TV>를 통해 그룹 전체의 콘셉트를 넘어 멤버 개인별 캐릭터를 형성하는 데도 공을 들였다. 대중의 관심을 좀 더 쉽게 얻기 위해 자극적인 요소를 투입하는 마케팅을 펼치기보다, 오로지 성실하게 그룹의 완성도를 높여 차트에 진입하겠다는 결연한 의지가 느껴질 정도의 행보였다. 그러나 그런 노력과 의지에도 불구하고 두 번째 타이틀곡 또한 성적이 기대한 바에 미치지 못했던 듯하다. (멤버들은 후일 첫 음악방송 1위를 축하하는 치킨 팬미팅 자리에서 ‘Rock Ur Body’에 대해 “그 때 정말로 1위 할 줄 알았다”라고 술회한 바 있다.) 그리고 젤리피쉬는 콘셉트의 흐름을 통째로 갈아엎어 버리는 용단을 내린다.

다칠 준비

다음 타이틀곡인 ‘다칠 준비가 돼 있어’는 빅스라는 그룹을 사람들에게 알린 일대 전환점으로, 그 해 가장 성공한 ‘어그로 마케팅’ 사례로 남게 된다. 이 싱글에는 ‘아이돌 하기 싫어’라는 제목의 곡이 함께 수록되어 있었다. 음반에 대한 정보 없이 발매일을 2주 가량 앞둔 시점, 멤버 엔의 트위터에 “아이돌 하기 싫어”라는 트윗이 올라왔다. 엄청난 양의 연예 기사가 쏟아지고, 이를 계기로 이탈하는 팬이 생길 정도의 큰 소동이 빚어졌다. 결론적으로는 성공적인 노이즈 마케팅이 된 셈.

‘다칠 준비가 돼 있어’는 분장에 가까운 파격적인 메이크업과 칼라 렌즈로 시청자들의 시선을 사로잡아 버렸는데, 터닝포인트답게 과도기적 양상도 눈에 띄게 드러나 있는 점이 흥미롭다. 그다음 타이틀곡인 ‘hyde’와 ‘저주인형’에서는 비주얼계 패션의 요소를 적극적으로 차용했다. 그에 비해 ‘다칠 준비가 돼 있어’는 뱀파이어 콘셉트라는 것을 말해줘야 ‘아 뱀파이어구나’ 할 수 있을 만큼 애매한 의상을 선택했으며, 뮤직비디오의 경우 이게 뱀파이어인지 달에 파견 나간 최종병기 소년인지 알 수 없는 것이 나왔다(회사 측이 주장하는 콘셉트는 ‘사람을 지키는 선량한 뱀파이어’였다). 용단이 무색하게도, 비싼 돈 주고 만든 로빅과 로빅이 대변하던 ‘히어로’ 캐릭터를 어정쩡하게 들고 간 결과, 그간 고수하던 가사-비주얼 콘셉트-캐릭터 설정의 통일성이 무너지고 말았다.

아이돌의 목숨은 늘 간당간당해 ⓒ SBS
타 그룹으로의 이탈은 허용하지 않겠어요 ⓒ SBS

그러나 타이틀곡 작사에 김이나를 기용함으로써 그룹 전체에 확실한 드라마를 부여함과 동시에 뮤지컬에 가까운 안무를 구성하는 흐름이 시작되었고, 이는 전체 콘셉트를 탄탄하게 만드는 데 유효하게 작용하였다. 또한 동방신기와 엑소의 작곡에 참여한 Albi Albertsson, Ricky Hanley의 곡을 사서 황세준 프로듀서가 편곡하는 방식을 취했는데 이는 SM의 캠프식 작곡의 축소판과 흡사한 구성이 있어, 안정된 퀄리티를 보장하는 곡을 뽑아내는 선례를 유지할 수 있었다. ‘다칠 준비가 돼 있어’를 통해 젤리피쉬는 ‘콘셉트도 콘셉트지만 곡의 퀄리티를 유지하며 그룹의 개성을 만들어 나간다’라는 기조를 명확히 보여주었고, 치밀함을 바탕으로 한 전략적인 기획은 순위권 내 롱런으로 이어졌다.

그리고 ‘hyde’부터는 일전 기획으로 재미를 본 젤리피쉬의 가속이 시작된다. 자극에 끌린 사람들을 붙잡아두기 위해서는 그전보다 더 자극적인 것을 마련해야 하는데, 이것이 바로 어그로 마케팅의 본질적 한계이다. 미성년이 큰 수요층인 아이돌을 판매하는 데는 실로 다양한 제약이 따르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 본진이 한국이라면 더더욱 그렇다. ‘다칠 준비가 돼 있어’를 통해 빅스를 안정궤도에 올려놓았다고 판단했다면 다시 무난한 컨셉으로 돌아가도 되는 지점이 여기였으나, 젤리피쉬는 마치 ‘이것은 일시적인 어그로가 아니라 장기적인 계획의 일환이다’라고 주장하듯 한 발짝 더 치고 나가 뮤직비디오에 19금 딱지를 달고 컨셉돌로서의 입지를 굳혔다.

빅스 : 그들이 살아남는 법

결코 만만치 않은 시장에서 만 2년 동안 빅스(VIXX)의 생존을 일궈낸 것은 무엇이었을까. ‘hyde’, ‘저주인형’에서 자극적 콘셉트를 한층 강화하고 최근 ‘기적’을 통해 새로운 길을 모색하는 그들의 이야기가 빅스 : 그들이 살아남는 법 (2)에서 이어진다.

빅스의 ‘기적’이 수록된 “Eternity” 싱글에 관한 아이돌로지 필진들의 단평은 1st Listen : 2014.05.21~05.31에서, ‘hyde’에 참여한 프로듀서 올로프 린드스코그의 인터뷰는 [인터뷰] ‘Swing’(슈퍼주니어 M)의 프로듀서 올로프 린드스코그에서 확인할 수 있다.

김영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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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영양

일본어 통번역을 하긴 하지만 다른 것도 많이 합니다.
50인치 티비와 5.1채널 스피커로 음방을 볼 수 있는 삶이 목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