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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마이걸 – Windy Day (2016)

“결산 2016” 기획의 연장으로, 아이돌로지가 2016 베스트 음반으로 꼽은 주요작들에 대한 리뷰를 추가한다. 해가 바뀌어 다시 들어보는 작년의 수작들이 새로운 감상을 더할 수 있길 기대하며.

아이돌로지는 “결산 2016” 기획의 연장으로, 아이돌로지가 2016 베스트 음반으로 꼽은 주요작들에 대한 리뷰를 추가한다. 해가 바뀌어 다시 들어보는 작년의 수작들이 새로운 감상을 더할 수 있길 기대하며.

사춘기, 널 닮은 바람이 불어오는 핑크빛 바다

아이돌의 세계관을 구축하는 가장 큰 요인 중 하나는 노랫말, 즉 가사가 아닐까. 그런 의미에서 오마이걸의 “Windy Day” 앨범은 마치 사춘기라는 하나의 테마를 두고 쓰여진 한 권의 시집 같다는 생각마저 든다.

리패키지의 타이틀곡 ‘Windy Day’에서 나무들은 “너를 생각하면 흔들리”고, “너를 볼 때마다” 바람개비는 돌아가며, 그것이 “내가 너를 많이 좋아한단 증거”라 노래하는 화자의 감정은, 사랑이라기보다 차라리 사랑을 하고 있다는 자기 최면처럼 보인다. ‘Liar Liar’에서는 “그 사람도 날 사랑할”지 전전긍긍하지만, 한편으론 안절부절 “밤새 이불을 뒤척”이며 상상의 바다를 헤엄치는 감정 그 자체를 즐기는 듯 보이기도 한다.

한편 “너는 아닌데 나만 들떠서 혼자 이러는 게 아닐까”라는 애절한 소절로 운을 떼는 ‘I Found Love’와 “무슨 기대”를 품은 채 “오지 않을 연락”을 기다리는 ‘Stupid In Love’에서는 짝사랑에 빠진 자신을 다소 자조적 시선으로 바라보기도 한다. 또 ‘B612’에는, “먼 우주를 돌아서 만난 그런 느낌”이라 하면서도 운명적 사랑이라기보다는 오히려 “네가 날 사랑하는 건 기적 같은 일”이라 애써 축소시키는 소심한 모습의 화자가 있다.

조금 소극적일 뿐, 수동적이지 않은

“Windy Day” 앨범 속 화자들은 한껏 부풀어있고 동시에 위태로우며, 철저히 자기중심적인 짝사랑을 하고 있다. 허나 조금 소극적일 뿐, 결코 수동적이지는 않다는 일관성을 잃지 않는다. ‘한 발짝 두 발짝’에서 네가 “멀어지면” 다가가고, 네가 다가오면 “우리의 사랑이 빠르게 느껴지지 않게” 그대로 서 있겠다 말하며 ‘너’라는 상대와의 미묘한 거리감을 스스로의 의지로 유지하고 있는 모습만 보더라도 말이다.

‘Knock Knock’에선 다른 아이에게 절친을 빼앗길까 봐 전전긍긍하며 “걔가 어떤 앤 줄 아니? 정말 이상해”라고 그 아이의 험담을 하며, 친구에 대한 독점욕과 질투를 그려낸다. 유일하게 사랑이 아닌 우정에 대해 이야기하는 이 노래는 이 앨범에서 부록 또는 번외편처럼 느껴지기도 하지만, 사춘기에 겪을 만한 감정이라는 면에서 일관성을 해치지 않고 앨범 속에 자리를 잡는다.

단지 가사 뿐만이 아니라, ‘Windy Day’의 뮤직비디오에서 또한 사춘기와 짝사랑, 그리고 그에 동반한 불안한 심리를 상징하는 장치들을 발견할 수 있다. 숲속을 거닐던 지호가 멤버들을 향해 권총 방아쇠를 당기자 거센 바람이 불어닥치는 장면은 오마이걸의 데뷔곡 ‘Cupid’의 연장선상에 있는 듯 보이기도 하고, 가려운 듯 머리를 나무에 긁던 지호의 머리에서, 또 멤버들의 머리에서 뿔이 솟아나는 장면은 성장통을 비유해 그린 듯하다. 갑작스레 깜깜한 숲속의 미로를 손전등에 의존해 헤매는 장면은 호러영화를 연상시키듯 섬뜩하기도 한데, 어쩌면 짝사랑의 설렘 이면에 숨은 불안하고 부정적인 심리를 표현한 것은 아닐까?

또 쉴 새 없이 격렬하게 무대를 뛰어다니면서도 마치 깃털이라도 된 듯이 가볍게 소화해내는 안무는 줄넘기 놀이 모습을 보는 것 같기도 하다. ‘Windy Day’를 비롯한 오마이걸의 노래에는 다소 억지를 쓰면서까지 그 의미를 넘겨짚어 보고픈 매력이 있다.

팬들과 함께 성장해갈 수 있는 걸그룹

작년 여름 운 좋게 오마이걸의 첫 번째 콘서트 <여름동화>를 현장에서 관람할 수 있었다. 공연장에서 여성 팬, 그것도 중고생으로 보이는 팬들이 압도적인 비율을 차지하는 광경을 보았고, 오마이걸의 이러한 콘셉트와 세계관이 십 대 여성에게 제대로 어필하고 있다는 것을 체감했다. 또래 혹은 어린 연령대의 동성 팬과 공감대를 형성하고, 나아가 동경의 대상으로서의 아이돌 걸그룹이 된다는 것. 많은 걸그룹들이 이미 하고 있는 역할이고 추구하는 바이지만, 굳이 무게중심이 어느 쪽으로 기울었는지 따져본다면 오마이걸은 앞으로도 더 적극적으로 동성 팬에게 어필하면서 팬들과 함께 성장해나가는 그룹이 될 수 있지 않을까.

얼마 전 발매된 새 앨범 “Coloring Book”과 함께 오마이걸의 세계관은 이어지고 있다. 이들이 앞으로 아이돌 그룹, 특히 걸그룹에게 필연적으로 요구되는 ‘성장의 서사’를 어떻게 그려내며 극복할 수 있을지, 즐거운 마음으로 지켜보고 있다.

Windy Day
WM 엔터테인먼트
2016년 5월 26일
햄촤

By 햄촤

흔한 덕후 트잉여. 카라를 까지 맙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