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는 만큼 보이리라
미국의 유명한 카피라이터인 제임스 웹 영은 “아이디어는 낡은 요소들의 새로운 조합일 뿐(An idea is nothing more nor less than a new combination of old elements)”이라고 말했다. 이미 뻔해진 요소들을 어떻게 활용해내느냐가 독창성을 담보하게 되고, 그것이 곧 아이디어 싸움이 되는 것이다. 인피니트의 ‘Back’ 컴백 무대를 보고 어떤 이는 샤이니의 ‘Sherlock’을, 어떤 이는 2PM의 ‘Heart Beat’를 떠올렸으며, 비스트나 티아라의 히트곡이 떠오른다고 하는 이들도 있었다. 물론 ‘BTD’나 ‘내꺼하자’, ‘Destiny’ 등 기존에 인피니트가 발표했던 여러 다른 곡들을 연상하는 사람들도 있었다. 중요한 것은, 거의 모든 이들이 이 노래에서 어떤 아이돌의 가장 뜨겁고 눈부셨던 순간을 연상하고 있다는 점이다. 그것은 ‘Back’이라는 작품을 구성하고 있는 모든 요소들이 개별적으로 신선함을 갖추고 있지는 못하더라도 그 조합에서 충분한 설득력과 흡인력을 만들고 있다는 의미일 것이다.
굳이 제임스 웹 영의 명언을 인용한 것은, 인피니트의 이번 두 신곡을 설명하는 데에 이보다 더 적절한 문구가 없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Draft에서 이미 언급한 바 있지만 ‘Back’은 멤버들의 보컬 편성에 상당한 변화를 준 곡이며, 이는 인피니트 음악에 있어 꽤 큰 변화를 의미한다. 인피니트 노래에 조금이라도 관심을 가졌던 이들은 이제 인피니트의 어떤 신곡을 듣든 ‘이쯤에서 떼창이 힘 있게 나와줘야 되는데…’라든가, ‘역시 성규가/우현이 고음 발사를 도맡는군’이라든가 하는 예측을 하게 된다. 이처럼 어느 정도 인지도 있는 가수의 신곡은 대중들의 예측이 가능해지게 마련인데, 이때쯤이면 많은 가수들이 ‘브랜드 이미지화’라는 전략과 ‘식상함’ 사이에서 표류하게 되곤 한다. 그러나 ‘Back’에서는 인피니트 멤버들이 각각 갖고 있던 똑같은 7가지의 보컬을 가지고 색다른 조합을 시도했다.
이 곡은 먼저, ‘1절 – (간주) – 후렴 – (간주) – 2절 – 후렴’으로 구성된 단순한 형식에서, 1절을 발라드로 바꾸어 2절과의 대조를 이루게 했다. 여기서 각 부분을 리드하는 보컬을 살펴보면, 1절과 2절은 인피니트의 다른 곡들처럼 각각 성규와 우현이 핵심적인 역할을 하고 있는데, 종전과 달리 각 절 뒤에 등장하는 후렴은 호야와 엘이 나누어 담당하고 있음을 발견할 수 있다. 서브 보컬이라기엔 역할 비중이 작았던 엘이나 래퍼 겸 댄서로서의 역할에 충실했던 호야의 보컬이 재발견되면서, 그동안 고수해 오던 떼창 위주의 단조로운 후렴구 작법에서 벗어나 새로운 가능성을 보여준 것이다.
후렴에서 두 사람 모두 똑같이 “돌아와줘 / I want you back, back, back, back, back / Back, back, back, back, back”을 불러 직접적으로 두 보컬의 차이를 비교해볼 수 있는데, 1절 후렴에서는 엘 – 성규 / 호야 – 우현 순으로, 2절 후렴에서는 엘 – 우현 / 호야 – 성규 순으로 차이를 준 점도 인상적이다. 엘의 쨍한 음색은 가끔 성규와 비슷하게 들리기도 하고, 호야와 우현은 보컬에 호흡과 기교를 풍부하게 섞는다는 공통점이 있다. 비유하자면, ‘집착돌’의 이미지를 구축하고 있는 인피니트 안에서 성규와 엘은 ‘히스테릭한 집착’을, 호야와 우현은 ‘애원을 통한 집착’을 표현하고 있달까. 그래서 강렬한 댄스로의 반전을 시작함을 알리는 1절 후렴의 첫 파트는 비슷하게 날카로운 음색을 가진 엘과 성규가 한 파트로 묶여있고, 간주가 나오기 직전의 1절 맨 마지막 파트에서는 호야와 우현의 애절한 목소리가 등장해 간주가 끝날 때까지 여운을 주고 있다. ‘Last Romeo’와 마찬가지로 이번에도 비슷한 역할을 하고 있는 성열의 드라마틱한 브리지 다음에는 후렴을 가득 채우는 우현의 애드리브(“하나도 지우지는 마”부터 호야 파트 중간에 들어가는 “uh yeah”까지) 사이에 엘이 배치되고, 호야의 애절한 보이스를 성규가 받아 마무리한다. 사실 이런 감정선상의 완급 조절은 그동안 성규-우현이나 우현-성규의 조합으로만 이루어진 면이 있었는데, 이러한 조합의 식상함에서 탈피할 좋은 대안을 찾아낸 것 같다. 추가로, 1절의 발라드 파트에 호야가 메인보컬들과 함께 배치되고, 댄스로 반전된 이후의 2절의 첫 소절(“잊을 법한 기억들을 하나둘씩 되돌려”)을 엘이 불러 두 보컬의 각기 다른 개성을 살펴볼 수 있는 것 역시 ‘Back’을 듣는 또 다른 재미라 하겠다.
보컬 측면에서의 변화를 제외하고서도, 인피니트는 무대에서 연출되는 거의 모든 요소들에서 변화를 추구했는데, 이 ‘변화’란 결국 기존의 요소들을 재조합 및 재구성한 것이라 볼 수 있다. 명불허전의 인피니트표 ‘칼군무’와, ‘집착돌’로서의 면모를 보여주는 애절하고 처연한 가사가 이미 익숙해진 공식임은 더 말 할 것도 없다. 도입부의 잔상 안무는 ‘Destiny’에서 시도한 바 있었으며, 2절에서 동우-우현-성종-성열로 이어지는 워킹 동작은 많은 음악방송에서 원테이크 촬영을 시도하고 있다는 점에서 최근 대형 기획사들이 잇달아 선보인 안무 연출 트렌드를 반영하려는 의도로 보인다. 이 모든 시각적 요소들이 ‘Back’의 드라마틱한 가사와 맞물려 개별 요소들이 원래 갖고 있던 성격들은 희석되는 대신 ‘Back’만의 맥락 안에서 고유한 의미를 갖게 된 것이다.
또한, 곡의 진행에 있어서도 반전을 통해 두 가지 장르를 한 곡으로 접붙인 것은 인피니트 내적으로는 물론, 최근 아이돌이 형성하고 있는 트렌드와도 상당한 거리가 있다. 한 곡 안에 여러 장르가 조합된 곡은 여전히 많고 많지만, 전체 곡의 흐름 안에서 포인트나 클라이막스를 만들기 위해 잠깐 등장하는 장르 반전이 아니라, ‘Back’처럼 본격적으로 장르도, 편곡도 아예 다른 두 곡을 하나로 접합시켜 진행하는 곡은 분명 요즘엔 거의 찾아볼 수 없었다. 이는 자칫 무척 모험적인 시도가 될 수 있었으나, 인피니트는 향상된 가창력과 연기력을 통해 이를 안정적으로 소화해내는 모습을 보여준다. 장르가 반전되는 부분에는 댄스 브레이크를 넣었는데, 사실 인피니트 곡에서는 대체로 간주 대신 랩 파트가 들어가기 때문에 댄스 브레이크가 등장하는 경우도 댄스그룹 치고 드문 편일뿐더러, 곡의 앞부분에 등장하는 경우는 거의 없었다. 그런데 ‘Back’에서는 앞부분에 댄스브레이크가 들어감은 물론, 심지어 2절이 등장하기 전 간주에도 군무가 등장한다. 다른 어떤 때보다도 퍼포먼스에 공을 들인 티가 날 수밖에 없는 구성이라 할 수 있겠다. 가장 놀라운 것은 이들의 데뷔곡인 ‘다시 돌아와’부터 최신곡인 ‘Back’까지, 모든 안무를 한 명의 안무가가 디렉팅했다는 사실이다. 이 점 때문에 어떤 곡들의 몇몇 동작에서는 기시감이 느껴지기도 하지만, 포인트 동작만큼은 각각 곡들이 전혀 다른 개성을 보여주고 있어 늘 새로운 느낌을 준다.
한편, ‘Back’과 마찬가지로 랩 파트가 없는 커플링곡 ‘Diamond’에서는 래퍼 동우의 인상적인 보컬과 코러스를 들을 수 있는데, 그의 목소리에 집중해서 들어보면 놀랍게도 그 특유의 그루브가 R&B 장르와 맞아떨어지는 구석이 있음을 느낄 수 있다. ‘Diamond’의 작곡가 중 한 명인 이기는 이번 정규 앨범의 (히든 트랙을 제외한) 마지막 수록곡인 ‘소나기’에도 참여한 인물인데, ‘소나기’와 ‘Diamond’ 두 곡 모두 기존의 스윗튠 곡들이 보여주고 있는 파트 배분 법칙(!)을 무시하고 있음에도 무척 고른 밸런스를 보여주고 있다는 사실이 흥미롭다. 평소 인피니트는 여러 곡에서 각 멤버가 어느 정도 고정된 역할을 수행하고 있었는데, 성규가 부르는 클라이막스 이후로 이어지는 우현의 고음의 애드리브나, 동우가 저음의 짧은 랩으로 하이라이트 부분에 코러스를 넣는 것 등이 그랬다. 이것에 익숙해져 있던 이라면 성규의 애절한 클라이막스 부분 애드리브(“이 비 따윈 증발하게”부터)와 호야의 거친 코러스에 조금 놀라게 될 것이다. 후반부의 고음 보컬 코러스도 거의 매번 성규나 성종, 우현이 맡아왔는데 ‘Diamond’에서는 동우가 맡아, 저음으로만 강조되던 동우의 목소리에 적응되어 있던 이들은 이 목소리가 누구인지 묻는 경우까지 생겼다. 특히 ‘Diamond’는 인피니트가 발표한 적이 없었던 장르에 해당하는지라 달라진 파트 배분에서 오는 신선함이 극대화된다.
정리하면, “Be Back”은 전체 인피니트 음반 중에 ‘전멤버의 보컬 역량 강화’를 가장 강하게 느낄 수 있는 앨범이며, 그중에서도 ‘서브 보컬(호야, 엘)의 메인 보컬화’와 ‘래퍼 동우의 보컬 재발견’을 시사점으로 꼽을 수 있겠다. 기존의 행보에서 멤버들의 역할 비중이 각각 ‘1/7’을 지키는 데에 충실했다면, “Season 2″와 “Be Back”을 발표하고 ‘인피니트 제2막’을 선언한 시점부터는 그 비중이 ‘1/7, 그 이상’이 되지 않을까. 이번 앨범을 포함한 ‘인피니트’의 전체 디스코그라피를 한 편의 드라마에 비유한다면, 인피니트 음악의 기조를 형성해온 스윗튠과 제이윤이 쓴 시놉시스 위에 Rphabet 등 다른 작곡가들이 극 중 가장 긴장되고 격정적인 장면들을 만드는 역할을 하고 있으며, 여기에 주연 배우인 인피니트 멤버들의 호연 덕에 전체 작품은 완성도를 갖추게 되는 것이다. 모든 아이돌 기획자들은 이 단순하면서도 강력한 힘을 가진 제작 공정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그다지 면밀하게 이들을 관찰해온 사람이 아니라면, 인피니트가 항상 비슷비슷한 음악만을 해왔다고 생각하기 쉽다. 하지만 개별 작품마다 새로운 의미를 부여하기 위해 노력하는 것만큼이나 그 각각의 의미들을 관통하는 근간을 형성하는 것 역시 아이돌을 포함한 모든 아티스트들에게 무척 중요한 일이다. 성장이나 진보는 바로 그 근간 위에서 꽃피워지는 것이 미덕일 것이며, 많은 가수들이 이 성장과 진보의 미덕을 충실히 지키고자 노력하고 있는 것 또한 사실이다. 다만 그 노력이란 그저 ‘안 하던 짓을 해본다’에 그치는 단발성 일탈을 ‘도전’으로 합리화하는 것이 아니다. 해오던 것은 꾸준히 유지하되, 그 전에 해본 적 없었던 무언가를 추가하거나 새로 조합해 작은 발걸음이나마 앞을 향해 내딛음이 바람직할 것이다. 그런 점에서 인피니트는, 꾸준하며 여전했지만, 동시에 항상 새로웠다. 비유하자면, 정규 2집 “Season 2″가 가장 인피니트다운 모습을 꾸준히 이어가겠다는 약속에 해당했다면, 정규 2집 리패키지인 “Be Back”은, 그러나 절대 같은 모습만을 보여주지는 않겠다는 다짐에 해당한다. 앨범 프로듀서와 제작진은 물론 멤버들도 이 점을 분명히 인식하고 있는 듯, 며칠 전 라디오 방송에서 멤버들은 ‘”Season 2″에서 부족함을 느낀 청자들은 “Be Back”을 통해 그 부족함을 채우게 될 것’이라고 자신감을 보였다. 그리고 그 자신감은 충분히 유효하다.
- Season 2
- Last Romeo
- Back
- Diamond
- Follow Me
- 로시난테
- 숨 좀 쉬자
- Light (SungKyu Solo)
- Alone (Infinite H)
- Memories
- 나란 사람
- Reflex
- 미치겠어 (Infinite F)
- 눈을 감으면 (WooHyun Solo)
- 소나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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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replies on “인피니트 – Be Back (2014)”
이 글이 여러 방면에서 저와 공감하는점이 많아 읽기 편한 글이였습니다. 인피니트의 여러 곡을 들었던 사람으로서 이번 back은 정말 많은 변화를 준게 느껴지는데 특히나 팬이나 팬아닌 분들이나 인피니트 타이틀곡 치고 랩파트가 없는점, 느린반주에서 빠른반주로 변화하는점, 서브보컬의 back 부분이 신기해했죠. 그런데 이 부분이 글에 나와있네요. 글쓴분도 느끼셨기 때문이겠죠. 사실 특히나 사비부분은 티저뜰때만해도 평소 사비부분을 독점했던 성규씨 파트일거라고 당연스럽게 넘겨집던 부분이였고 심지어 팬들조차 ‘성규 목소리가 좋다’ 며 애정했을 정도로 당연했죠. 후에 무대공개후 그 부분이 명수씨인걸로 팬들에게도 인피니트가 시도한 변화를 크게 느끼게 했달까요.. 이번에 back은 인피니트의 전체적으로 더 증가한 실력과 새로운 변화를 담은요소가 리패키지 앨범이라고 불린만한다고 생각합니다. 이 글에 ” 인피니트 안에서 성규와 엘은 ‘히스테릭한 집착’을, 호야와 우현은 ‘애원을 통한 집착’을 표현하고 있달까.” 이 부분은 노래를 들으면서도 전혀 생각치 못했던 부분인데 새로운 생각을 들게하네요.
들으면서 다시 한번 느껴봐야 할듯 싶어요. 이 글에 많이 공감하고갑니다.
티저의 목소린 성규가 맞아요.
전멤버의 보컬 역량 강화를 가장 강하게 느낄 수 있다는 앨범이라는 것에 크게 공감하며 글을 읽었습니다. 인피니트는 신곡을 내면 낼 수록 멤버들의 파트가 점점 고르게 분배 되어간다고 생각하는데 이번 back 역시 그렇게 느끼게 합니다. back을 들으며 제일 흥미로웠던 것은 래퍼 동우와 호야의 보컬이였는데요. 랩이 아닌 보컬로도 힘있게 서브보컬 못지않는 실력을 보여 강한 인상을 남게 했습니다. 다음 앨범에서도 두 래퍼의 보컬을 기대하게 할 만큼이요. 마지막으로 첫 댓글에서도 언급 된 “인피니트 안에서 성규와 엘은 ‘히스테릭한 집착’을, 호야와 우현은 ‘애원을 통한 집착’을 표현하고 있달까.” 이 부분. 저는 이 부분 왠지 무슨 느낌인지 알 것 같아요. 성규-엘, 호야-우현의 표현방법이나 음색 등 이 묘하게 아니면 정말 뜬금없이 비슷하다고 느낄 때가 있거든요. 글을 다시 읽고난 후 back도 다시 들어봐야 겠어요. 잘 읽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