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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자 기고 : 아이돌의 피상성에 대한 전복의 시도로서의 에스파

에스파의 노래 및 세계관이 흥미로운 것은 SM이 아이돌 산업이 가지는 피상성 문제의 본질을 꿰뚫었다는 것이다.

에스파의 노래 및 세계관이 흥미로운 것은 SM이 아이돌 산업이 가지는 피상성 문제의 본질을 꿰뚫었다는 것이다. 아이돌은 멤버가 아닌 개인으로서 존재하지만 동시에 무대가 아닌 일상의 많은 부분이 아이돌 그 자체로서 소비된다. 최근 엔터 산업에서 눈에 띄게 성장하는 프라이빗 메시지(버블, 유니버스, 포켓돌스 등)는 사실상 아이돌이 단순히 무대를 넘어 새로운 활동영역을 전개한다는 단편적인 증거이다. 사실상 아이돌을 개인으로 소비하는 역사는 유구하나, 이렇듯 상업적으로 접근하게 된 것은 얼마 되지 않았다.

아이돌은 더 이상 개인으로서의 자아와 아이돌로서의 자아를 분리해 그 역할을 영위할 수 없다. 일상과 살아온 흔적, 과거까지 아이돌로서의 상품성을 판단하는 지표가 되고 개인 그 자체가 상품으로 존재하게 된다. 극단적인 상품화는 그 개인의 존엄성 침해에도 영향을 미친다. 이러한 흐름은 건강하지 못하기도 하지만, 동시에 관찰자를 기만하게 되는 모순을 낳는다. 소비되는 아이돌의 자아는 그가 사는 일상의 모든 영역을 포괄하면서도, 동시에 그는 소비되는 상품으로서의 적절한 선을 넘어갈 수 없다. 도덕적, 윤리적으로 무결해야 하며, 셀링 포인트에서 성애의 측면이 완전히 배제되었다 할 수 없기 때문에 가능한 사생활의 영역도 지극히 좁다. 그러나 엔터 산업의 아이돌은 가상현실의 아바타가 아니라 현존하는 몸이며, 지나친 압박이나 한계 속에서는 결국에 관찰자를 기만하게 된다는 것이다. 아이돌을 현상과 연결지으려는 시도가 만연한 아이돌 산업의 흐름은 그 내부에 모순을 갖게 된다. 그렇다면 이러한 건강하지 못한 흐름이 주류가 된 지금, 엔터 산업은 극단적 상품화에 대한 전복적 시도를 어떤 식으로 전개해 나가고 있나?

에스파의 세계관이 흥미로운 점은 문제가 된 극단적 상품화에 대한 전복의 시도를 상당히 비유적이며 환상적인 방식으로 풀어나가고 있다는 것이다. 에스파 세계관의 핵심이라 할 수 있는 ‘ae-캐릭터’는 개인이 사이버상에 올린 정보를 바탕으로 인격이 부여된 ‘새로운 나’이며, 이는 나에 대한 정보로 이루어져 있다는 점에서 나인 동시에 내가 ‘제공한’ 정보로만 이루어졌다는 점에서 완전히 나와 같지 않다. 사이버상에 올리는 나의 정보의 대부분은 수정되거나 가공되어, 내가 보이고자 하는 나의 모습(욕망)이 투영된 나인 것이다. 각각의 멤버들에게는 모두 ae-캐릭터가 존재하고, 이들도 에스파의 멤버다. 그리고 에스파의 세계관 스토리텔링은 현존하는 인물과 ae-캐릭터의 결집을 막는 빌런, ‘Black Mamba’로 인해 일어난 사건을 설명하는 방식으로 진행되었다. (“We against the villain, What’s the name? Black Mamba”) 멤버들은 결집을 통해 ‘KOSMO’로 상정된 ‘Next Level’로 가게 되는데, 해당 내용은 함의에 대한 고찰 없이도 개별적 이야기만으로 굉장히 흥미롭다. 또한 가상 캐릭터, 실제 아이돌 멤버, 그에 관한 영상 컨텐츠, 노래 등 모든 요소가 하나의 유니버스를 구축하며, 이것이 아이돌 멤버를 매개로 하여 현실과 구분되지 않고 있다는 점 역시 흥미롭다.

하지만 이러한 시도는 단순히 흥미로울 뿐 아니라, 세계관 구축에 다양한 미디어를 동반하며 발생할 수 있는 상품성이 무궁무진하고, 소비자들에게 전혀 불쾌하지 않게 인식의 전복을 시켜준다는 점에서 인상적이다. 에스파의 이러한 세계관은 아래의 두 가지 함의를 지닌다.

첫째, 글의 서두에서 밝힌 바와 같이 아이돌의 소비자, 팬은 현상과 아이돌을 연결지으려는 시도 속에서 언제나 기만당하게 되고, 이는 소비자에게도, 수익을 내려는 엔터 사업자에게도 전혀 유쾌한 일이 아니다. 이를 해결하기 위해 아이돌의 개인으로서의 자아와 아이돌로서의 자아를 분리하려는 시도는 일단 주류에서 벗어나게 되고, 이것이 받아들여질 가능성은 상당히 낮다. 하지만 SM 엔터테인먼트는 새로운 세계관을 도입하면서 소비자가 불쾌하지 않게 이러한 모순(현상과의 단절)을 받아들이도록 하는데, 바로 ae-캐릭터를 통해서다. 에스파는 가상의 멤버 4인과 실존 멤버 4인으로 이루어진 8인조 그룹으로 가상의 캐릭터들 또한 에스파를 구성하는데, 이들은 단순 멤버가 아닌 거대한 세계관을 매개하는 인물이다. 이 멤버들은 동시에 실제의 멤버들과 연결되고, 이 들로 매개된 세계관은 현실과 가상의 경계를 모호하게 한다. 이러한 시도의 의도는 무엇인가. 물론 우리는 가상과 현실의 경계를 모르지 않는다. 카리나와 지젤은 00년생 유지민 씨와 우치나가 에리 상이며 사내의 제작자들에게 세계관에 대한 설명을 듣고 아이돌의 역할을 수행한다는 것을 모두가 알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러한 설정들은 받아들이기에 유쾌하다. 시각적으로 매력적임은 물론 스토리 라인 또한 흥미진진해 우리가 마블이나 디씨를 소비하는 방식과 거의 흡사하게 소비된다. 이것이 바로 핵심인데, 사실상 눈 가리고 아웅 하는 것–세계관 없이 진행될 때 기만에 불과한 것–이 아주 유쾌한 방식으로 이루어지는 것이다. 아이돌을 소비하는 방식이 더 이상 현상과 아이돌을 연결짓는 무의미한 방식이 아니라, 마블 영화를 보듯, 연극을 보듯 가상의 콘텐츠임을 인식하고 소비하게 되는 것이다. 이러한 방식 속에서도 아이돌은 기존의 아이돌로서 존재할 수 있다. ae-멤버들과 매개된 가상의 세계관과 아직도 연결되어 있기 때문에 세계관 위주의 사이버틱한 면모가 아닌 그들의 일상에 대해서도 모순 없이 소비할 수 있게 되고, 이는 누구보다 판매자에게 가장 유익한 방식일 것이다. 모순에서 발생하는 불쾌함이 제거된 소비, 그리고 더 나아가 관련 세계관을 여러 매체를 통해 보여줌으로써 증폭되는 상품성은 어마어마하다.

두 번째, 위에서 말한 것과 같이 에스파의 세계관은 소비형식과 그 내용이 결부되어 시너지를 발생시킨다. ae-캐릭터의 설명은 상당히 흥미롭다. 나를 바탕으로 생겨난 인격이지만 동시에 내가 아닌, 내가 보여주고자 하는 나의 욕망이 투영된 캐릭터인 ae-캐릭터에 대해 SM이 제공하는 설명은 한결같이 그럼에도 ‘나’라는 것을 강조한다. 세계관 영상은 “존재는 본질에 앞선다”는 사르트르의 말을 인용하며 ae-캐릭터를 실제의 현상, 존재에서 배제하려는 시도를 막는데, 이는 그 세계관에서 상당히 사이버틱하게 표현되나 그 실상은 엔터 산업에서 아이돌 개인과 아이돌로서의 자아의 관계와 굉장히 닮았다. 아이돌로서의 개인은 그임과 동시에 그가 아니다. 가상의 아바타는 아니지만, 완전히 그 개인과 동일하다고 보기엔 많은 것들이 배제되어 있다. 아이돌인 그를 소비하는 사람들은 매체의 발달로(이는 언택트 시대와 겹쳐 더 강조된다) 그를 실물로써 인지하기 보다는 화면으로, 사진으로, 동영상으로, 가끔씩은 그의 감정을 담은 메시지로 인지하게 된다. 사실상 인간적인, 현상으로서의 그를 마주하는 것은 거의 없어졌다고 봐도 무방하다. 매체를 통해 비춰지는 모습만을 소비하게 되지만, 이를 소비하는 팬들의 관심은 그에 한정적이지 않다. 위에서 말한 흐름대로 스크린 속 그들을 조망하는 동시에 그 존재 자체에 대해 애정을 품게 되는 것이다. 이것이 아이돌의 상품성이 되는 것인데, 그렇다면 이에 대한 인지, 즉 내가 소비하는 것은 그 본질과는 거리가 먼 것이라는 인지는 소비의 기반이 되는 애정의 단절을 낳는다. ae-캐릭터를 에스파로 내재화하려는 시도는 이러한 단절에 대한 외침이다. ae-멤버 또한 존재하는 멤버임을 받아들여라! (이 말은 개인으로서의 아이돌을 인지하게 되더라도, 그는 소비되는 아이돌로서도 존재함을 잊지 말라는 말로도 치환된다) 둘은 각각의 존재이지만 동시에 서로로서 존재한다. 실제로 ae-멤버와 실존 멤버들이 서로를 부르는 호칭은 ‘My’이고, 둘은 놀라울 정도로 교감하며 서로에게 지대한 관심을 가짐을 계속해서 피력한다. 이는 소비를 지속시키려는… SM의 외침이기도 한 것이다.

해당 기고문은 에스파의 세계관을 상업성과 아이돌 산업의 피상성의 측면에서 바라보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엔터 산업의 새로운 방향성을 아주 세련된 방법으로 제시했다는 것을 강조하고자 한다. 영상 콘텐츠, 가상의 멤버, 흥미로운 스토리, 그리고 이를 그대로 담아낸 이번 신곡까지 팬들을 과몰입하게 만드는 에스파가 활발한 활동으로 그 세계관을 끊임없이 확장해 나가기를 바라며 글을 마친다.

글: 매상

케이팝에 과몰입하는, 법학을 공부하는 대학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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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dology.kr 에디터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