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년 6월 아이돌팝 발매작 중 주목할 만한 싱글에 대한 아이돌로지 필진 단평. 하성운, 이펙스, 우진영, 라잇썸, 원위, 유겸, 브레이브걸스, 2PM, 이달의 소녀의 싱글을 다룬다.
하성운 ‘Sneakers’
에린: 초반에 아련하게 시작하다가 후렴구에서 리듬을 강조하여 시원한 상승감을 일으킨다. 이러한 분위기 고조는 자연스레 날아오르는 이미지를 연상시켜 하늘을 날아다니고자 하는 곡의 의도를 충실히 구현한다.
‘스니커즈’는 하성운의 안정적인 가창이 돋보이는 곡이다. 하성운은 다양한 톤과 호흡을 사용하며 곡의 분위기를 유려하게 전환한다. 그의 화음은 전반적으로 곡의 서정적인 분위기를 유지하고, 보컬 질감은 고조되는 분위기에 맞추어 부드러운 질감에서 단단한 질감으로 변화하여 곡의 설득력을 높인다. 하성운의 보컬이 곡의 중심을 잡고 있는 덕분에 날개 달린 ‘스니커즈’의 청량함을 신나게 즐길 수 있다.
이펙스 ‘Lock Down’
조은재: 비장하게 떨어지는 힙합 베이스에 청소년기의 반항심을 근거로 비판적 메시지를 던지는 레퍼토리는 이미 1996년 '전사의 후예' 이후로 K-pop의 단골 소재였기에 그 자체로 큰 파괴력을 주기에는 어려울 수 있다. H.O.T. 등 1세대 아이돌은 여기서 갱스터랩이나 성대 부상이 우려되는 수준의 샤우팅이나 그로울링 등을 사용해 야성미를 극대화했지만, 이펙스의 미성 보컬은 날카롭게 다듬어지거나 단단히 뭉쳐있지 못하고 공허하게 흩어져 곡에 집중하기 어렵게 한다. 특히 후렴에서 세 번씩 반복되는 갱 보컬은 박력이나 패기를 충분히 담아내지 못하고 곡의 텐션이 끊어지게 만든다. 8인조라는 적지 않은 인원에도 동선은 단순하고 안무 동작 사이에 비어있는 구간들이 있어 퍼포먼스를 수행하는 사람마저 어색해하는 듯 보이는 면이 있다. 금동현 등 주목할만한 멤버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매력과 개성을 십분 발휘할 수 있도록 연출된 것 같지 않아 아쉽다. 슬림한 라인의 스쿨룩에 반항적인 연기는 같은 레이블에서 나왔던 CIX의 ‘순수의 시대’가 연상되는데, 심지어 ‘Lock Down’의 절 부분에서 반복되는 신스 리프와 유사한 사운드가 '순수의 시대'의 후렴에 등장하기도 해서 같은 프로듀서의 같은 곡을 두 팀이 나누어 부르는 듯한 인상을 준다.
우진영 ‘Happy Birthday’
조은재: "한국에서 진짜 힙합은 아이돌이 한다"는 우스개가 생각난다. 진한 힙합 냄새로 가득한 앨범 수록곡 중에서도 타이틀곡 ‘Happy Birthday’는 가장 날이 서 있는 트랙이다. “Happy birthday to me”라는 선언 뒤에 무겁게 떨어지는 베이스를 가르는 댄스 브레이크는 한창때의 지드래곤이 떠오를 정도로 끼가 넘친다. 하지만 래핑과 댄스 모두 과장된 부분 없이 잘 정제되어 있고, 덕분에 퍼포먼스는 좋은 포인트를 만들며 안정적으로 진행된다. 자전적 가사는 에고 트립에 빠지지 않고 듣는 이에게 순수하게 자신의 ‘태어남’을 알리는데, 어떻게든 존재를 과시하려고 과욕을 부리던 한국의 수많은 ‘가짜 힙합’에 비하면 자못 겸손하기까지 하다. 하지만 공격적이지 않고 파괴적이지 않은 것이 진정한 아이돌의 미덕 아니겠는가. 미쳐도 귀엽게 미쳤던 ‘우친놈’이 그리운 사람은 반드시 들어볼 것을 권한다.
라잇썸 ‘Vanilla’
예미: 큐브 엔터테인먼트에서 발랄한 하이틴 걸그룹을 데뷔시킨다는 것은, 전형적이지 않은 걸그룹을 선보였던 회사의 전례로 보아 상당히 의아한 일이었다. 꿈과 사랑을 달콤하게 표현한 데뷔곡 ‘Vanilla’에는 군데군데 등장하는 브라스와 신스가 곡에 긴장감을 더한다. 아기자기한 파스텔 톤 비주얼 컨셉에 8명이라는 많은 인원을 활용한 안무가 더해져 10대의 에너지를 보여주는 무대가 완성되었다. 빈틈없이 교차하는 보컬과 동작-동선이 모두 복잡한 안무를 힘 있게 소화하는 멤버들의 면면을 보면, 현재의 컨셉이 ‘신인’에게는 어울릴지언정 멤버들에게 최적화된 것은 아닌 듯하다. 퍼포먼스의 기본기가 탄탄한 만큼 향후 그룹의 아이덴티티가 어떻게 형성되고 변모할지 기대하게 된다.
원위 ‘비를 몰고 오는 소년’
하루살이: 리버브 적고 건조한 기타라인으로 시작해 빠르게 여우비에서 태풍까지 몰아친다. 간절한 기우제에서 출발해 포스트 코러스에 다다르면 포 온 더 플로어 디스코 리듬으로 달리는 페스티벌로 변모한다. 2절 후렴은 이례적으로 동명이 쏟아지는 소리를 뚫고 앙칼지게 쏘아붙인다. 몽환적인 이야기에 비해 선명한 사운드는 브릿지에서 잠시 소강하는 듯하더니 기타 솔로가 이어지며 다시 폭주한다. ‘나의 계절 봄은 끝났다’와 비슷하게 단조에서 6번째 음인 파의 사용을 제한한 멜로디로 미묘한 ‘뽕끼’를 가져간다. 적극적인 퍼포먼스로 에너지를 표출하는 점까지 ‘나의 계절 봄은 끝났다’와 닮아 있는데 앨범 내 여타 수록곡들과는 이질적이다.
유겸 ‘네 잘못이야’
예미: 유겸이 AOMG 이적 후 발표한 ‘네 잘못이야’는 솔로 R&B 아티스트로서 유겸의 가능성을 보여주었다. 그레이가 제공한 댄서블하고 낙차 큰 비트는 유겸이 아이돌 활동을 통해 쌓은 곡 해석력 및 퍼포먼스 능력을 뒷받침했다. 비록 아직 탁월하지 않은 보컬 역량 및 곡과 연관성이 적은 뮤직비디오가 아쉬웠지만, 한 곡을 혼자 이끌어갈 수 있는 능력을 보여주었다는 점은 고무적이다.
최근 유겸은 AOMG, 갓세븐 동료인 JAY B는 하이어 뮤직에 이적하여 관심을 모았다. 박재범이 사장으로 있는 두 회사는 힙합/R&B 전문 레이블이지만 케이팝 팬층과도 거리가 가까우며, 소속 아티스트들이 음악뿐만 아니라 스타성으로도 크게 주목받는 곳이다. 아이돌 활동 이력을 자산으로 가져가는 동시에 음악 커리어를 주도적으로 이어가려는 이들에게 구성원의 자율성을 존중하는 AOMG/하이어 뮤직은 매력적인 선택지이고, 유겸이 AOMG에서 만든 ‘네 잘못이야’는 이러한 선택을 대표하는 사례일 것이다.
브레이브걸스 ‘치맛바람’
서드: ‘치맛바람’이라는 제목만 듣고 처음 들었던 우려와는 달리, 브레이브걸스의 매력과 여름 노래의 청량함을 담아내는 데에 집중한다. 지금 이들에게 불고 있는 인기의 순풍에 돛만 달아도 잘 될 거라는 확신에 기반해 무리하게 힘을 주지 않고 부담 없이 즐길 수 있는 용감한형제 표 댄스곡이 완성됐다.
늘 그렇듯 용감한 형제의 음악은 트렌드의 변화와는 무관할 정도로 정공법으로 승부해왔고, 거기에는 시원하게 뻗어나가는 고음을 소화할 수 있는 보컬의 존재가 중요했다. 지금 브레이브걸스는 전성기의 애프터스쿨과 AOA 같은 팀에 이어 용감한 형제라는 장인이 만들어준 무기를 가장 잘 휘두를 수 있는 전사들과도 같으며, 이들의 노래를 납득시키는 것 또한 화려한 콘셉트나 서사 부여가 아닌 탄탄한 보컬을 기반으로 한 퍼포먼스 능력이다.
그중 메인보컬 민영의 활약이 당연하게도 가장 중요한데, “살랑살랑”, “찰랑찰랑” 같은 가사를 그보다도 더 힘 있고 맛깔나게 부를 수 있는 이는 케이팝 신에서 매우 드물 것이다. 또 멤버 전원이 오랜 시간을 통해 ‘용형 스타일’을 충분히 숙지하고 있기에 단순하면서도 흥겨운 이 노래가 지닌 매력을 아쉬운 점 없이 백분 발휘해내고 있다. 아쉬운 점이라면 많은 이들이 이미 지적했듯이 뮤직비디오의 단체 군무 장면에서 가수와 백업 댄서의 의상 색이 거의 같은 탓에 가장 시원해야 할 후렴 장면이 답답해 보인다는 것 정도.
2PM ‘해야 해’
서드: ‘우리집’의 기조를 이어받듯 댄디한 콘셉트와 여유로움이 묻어나는 타이틀곡으로 “해야 해야 해야만 해”, “돼야 돼야 되어야만 해” 같은 심플한 후렴구 가사와 이어지는 “너를 잠깐 더 볼 수 있게 / 너를 조금 더 알 수 있게 / 부디 우리가 될 수 있게”에서 음절에 맞춰 변화하는 리듬감이 매력 포인트다.
안무 또한 곡에 맞춰 큰 동작이나 격렬한 움직임 없이 절도 있는 군무로 구성돼있는데, 정적인 듯 보이면서도 끊임없이 동선에 변화를 주면서 무대를 보는 재미를 놓치지 않는다. 미묘하게 다른 춤선을 지닌 6명인 만큼 멤버 각자의 직캠을 찾아보며 비교하는 재미도 있겠다.
2PM은 예전처럼 숨을 가쁘게 헐떡이거나 상의의 단추를 풀어 헤치지 않고 단지 와이셔츠의 소매를 걷어 올리는 것만으로도 섹시함을 표현할 수 있는 팀이 되었다. 물론 그것이 가능한 이유는 우리가 이미 그 정장 속에 ‘짐승돌’로서의 매력이 내재해있음을 알고 있기 때문이기도 하다. 군백기를 거친 아이돌이 팀의 콘셉트를 변화시키면서도 본질적인 매력을 잃지 않는 방법을 제시하는 또 하나의 모범사례를 2PM은 보여주고 있다.
이달의 소녀 ‘PTT (Paint The Town)’
서드: ‘So What’과 ‘Why Not?’을 거쳐 육하원칙 시리즈로 이어지나 싶더니 그건 아니었나 보다. ‘발리우드 사운드’를 자칭한 ‘PTT’는 이전보다 더 무겁고 격렬한 사운드와 퍼포먼스를 선보인다. 이국적 악기들이 동원된 비트와 멜로디는 한 번 들으면 쉬이 귓가에서 떨쳐내기 힘든 중독성을 지녔다.
긴 휴지기를 거쳤던 멤버 하슬이 오랜만에 합류한 완전체 활동이기에 그런 것인지 ‘달의 눈’이나 ‘12개의 문’ 등을 언급하는 가사는 이전보다 더 이들의 세계관을 강조하며 이에 기대고 있는데, 그렇게까지 깊이 들어가 보지 않은 청자의 입장에서는 의미를 파악하기가 쉽지는 않다. 다행스럽게도 굳이 가사에 신경쓰지 않더라도 ‘PTT’는 사운드만으로 충분히 흥겹게 즐길 만한 곡이다.
‘So What’에서부터 콘셉트에 맞춰 랩이 차지하는 비중이 점점 늘어나고 있는데, 이번 ‘PTT’에서는 여진의 랩 파트가 짧지만 강한 인상을 남겼다. 앞으로의 비중 상승을 기대해볼 만한 성장이다. 기다림이 길었던 만큼 많은 팬들이 반길만한 컴백이며, 그에 화답하듯 음반 판매량에서도 자체 커리어 하이를 기록해 의미 있는 활동으로 남았다.
케이팝이 해외에서 주목받으면서 이전 세대의 걸그룹보다는 콘셉트나 장르에 있어 표현할 수 있는 영역이 넓어지고 더 다양하고 과감한 시도를 할 수 있게 되었다는 점은 고무적이다. 다만 한편으로는 강렬한 사운드와 이미지만으로 어필하는 데에는 언젠가 한계점에 도달할지 모르며, 그 다음에는 어떠한 전략을 취할 수 있을까 하는 우려도 생긴다. 이달의 소녀는 계속해서 변화하고 발전하고 있지만, 팀에게 가장 잘 맞는 콘셉트와 스타일은 아직 발견해나가는 중이라고 생각하기에 앞으로의 변화 또한 기대를 품게 된다. 또 현재까지 이달의 소녀의 시그니처 트랙으로 ‘Butterfly’를 꼽는 한 사람으로서, 한 번쯤은 그와 같은 정교한 퍼포먼스와 섬세한 메시지를 담은 타이틀곡을 다시 선보여줬으면 하는 사적인 바람을 블록베리를 향해 띄워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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