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년 6월 아이돌팝 발매작 중 정규앨범을 중심으로 주목할 만한 앨범을 다룬다. 비아이, 몬스타엑스, 엑소, 엔플라잉, 위아이, 트와이스, 업텐션, 원위, 브레이브걸스, 세븐틴, 2PM, NCT 드림, 이달의 소녀 등.
서드: 그룹 시절부터 솔로 앨범까지 그가 만든 곡들은 사운드는 록과 힙합 등 다양한 장르를 넘나들며 다양한 모습을 펼쳐 보이면서도 단 한 가지 만큼은 놀라울 정도로 일관성을 보이는데, 바로 자기연민과 외로움으로 점철된 화자의 태도이다.
타이틀곡 ‘해변’에서는 스스로를 “외딴섬”에 홀로 버려진 존재로 지칭하며 외로움을 토로하고 ‘긴 꿈’과 ‘역겹겠지만’ 같은 곡에서는 사랑하는 이와 이별한 화자의 외로움을, ‘Numb’나 ‘Help me’ 같은 곡에서는 외로움이라는 감정 그 자체에 몰두하기도 한다. “죽고 싶진 않지만 난 살고 싶지 않아”, “이 구렁텅이에서 날 꺼내 줘 누가 안아줬음 싶어” 같이 직설적인 가사는 다소 과격하게 말하면 칭얼거림처럼 느껴지기도 하면서도, 그만큼 솔직한 표현이기에 비아이의 곡이 지닌 정서를 가장 효과적으로 전달한다. 비아이 음악의 매력이라면 결국 이 솔직함의 정서가 아닐까. 그가 곡마다 쓰는 비유와 은유들은 신선함보다는 뻔하고 상투적인 편에 가깝지만, 한편으로는 시각 또는 촉각적으로 뚜렷한 이미지를 전달하며 빠르게 이해된다는 장점이 있다.
언뜻 비슷해 보이는 감성의 곡들로 채워진 앨범이지만 트랙마다 뚜렷이 구분되게 다양한 장르의 사운드로 동어반복이라는 함정을 피해간다. 예전부터 장르에 있어 소위 ‘진정성’을 추구하는 데에는 관심이 없어 보이는데, 그에게 있어 장르는 단지 화자의 감정을 가장 잘 전달하기 위한 재료 정도로 구분되고 있는 것은 아닌가 하는 생각마저 든다.
노래 속 화자를 곡을 쓴 이와 섣불리 동일시하고 싶지는 않지만, 그가 팀과 회사를 떠나 솔로로서 앨범을 발매하기까지의 외연적 과정과 직설적이고 감정적인 그의 가사를 생각하면 둘을 완전히 떨어뜨려놓고 생각하기 쉽지 않다. 실제로 비아이 본인이 직접 작성한 것처럼 보이는 앨범의 트랙 소개는 가사를 자기 자신의 감정과 생각을 그대로 써내려갔음을 굳이 숨기지 않는다. 대표적으로 첫 트랙 ‘WATERFALL’에서 그간의 심경을 털어놓기라도 하듯 자신을 “괴물”, “죄인”, “위선자”, “폐인” 같은 단어로 자신을 지칭하다가도 “빌어먹을 재능 내 이름을 uh / 나 아니면 누가 그래 누가 기억해”라며 음악을 계속하게 된 이유를 스스로에게 설명하듯 읊조리는 가사를 통해 그가 일으켰던 물의와 그를 둘러싼 논란들에 대한 그의 심경을 어느 정도 엿볼 수 있다.
이하이의 보컬이 빛나는 ‘긴 꿈’과 더불어 인상적이었던 트랙은 ‘STAY’. 도입부 랩의 플로우에서 래퍼로서의 번뜩이는 그의 감각을 확인할 수 있는 곡이었다. 솔로 이전과 비교해 변화한 지점과 결코 변화하지 않을 지점을 동시에 확인할 수 있는 앨범이며, 그만큼 이에 대한 호불호는 분명할 것 같다.
예미: 비아이의 첫 솔로 정규 앨범은 그간의 ‘비아이 스타일’을 총집합하여 그의 고난 서사를 그려낸 앨범이다. Choice37, 밀레니엄 등 YG에서부터 함께한 프로듀서들과의 협업은 ‘비아이 스타일’을 이전 커리어와 일관되게 구현했고, 앨범 소개글과 가사에는 자신의 고통에 공감해 주길 바라는 마음을 담았다.
“WATERFALL” 앨범에서 비아이는 랩 발성을 기반으로 보컬을 오가는 퍼포먼스를 선보이며, 힙합뿐만 아니라 록과 하우스 등 여러 장르를 각 곡에 차용하였다. 전 곡에서 캐치한 멜로디가 돋보이고, 가사에 약간의 가벼움을 담은 가창과 특유의 발음 사용이 그간 비아이의 작업물과 연결된다. 특히 록 기반의 트랙은 그를 키운 곳이 YG였음을 다시금 연상케 한다. 가사는 커리어의 위기를 배경으로 우울, 공허함, 외로움, 팬에 대한 사랑과 다짐 등 어두운 감정선을 일상적인 단어로 풀어냈다.
비아이는 “WATERFALL” 앨범에서 다양한 사운드를 자신의 가창 스타일과 전하려는 메시지에 맞게 적용하는 팝 싱어송라이터로서 준수한 앨범 구성력을 보여주었다. 가볍고 화려한 곡에서 주로 드러나던 비아이 특유의 스타일이 복잡하고 내면적인 이야기를 전할 때도 녹아 있는 점이 돋보였다. 다만 앨범 완성도와 별개로 그가 처한 위기가 자업자득으로 느껴진다면, 위기에 처해 고민하는 앨범 서사에 온전히 공감하기 어렵다.
비아이 및 그의 전 소속사가 처한 상황을 고려하면 이 앨범이 여러 사람의 지원 속에 발매되었다는 것이 의아할 것이다. 이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비아이의 현재 상황을 ‘고난’으로 인식하는 해외 팬층이 적지 않음을 감안해야 한다. “WATERFALL” 앨범은 YG의 현황에 대한 국내외 간 인식에 큰 온도차가 있으며, 한국 케이팝 팬은 전 세계 케이팝 팬 중 일부에 불과하다는 것을 알려주는 사례 중 하나일 것이다.
조은재: ‘힙합 아이돌’을 표방하며 데뷔했지만 ‘댄서블한 EDM 근데 이제 힙합을 곁들인’ 곡으로 많은 사랑을 받고 저변을 확대해오다가 다시 힙합에 진정성이 넘치는 앨범으로 돌아왔다. 단순한 회귀라기보단 2막을 여는 변주 같은 느낌이 강한데, 아무래도 지금까지 다양한 레퍼토리를 소화하며 쌓아온 커리어 덕분에 언더독 시절보다 운신의 폭이 넓어지고 거기서 여유와 자유를 얻은 듯하다. 각자의 방식으로 음악적 경험을 쌓은 멤버들이 다 함께 고루 참여한 앨범은 신인 시절 프로듀서의 강한 의도에 의해 기획되었을 때보다 훨씬 깔끔하고 정확하게 재단되어 있다.
주헌이 프로듀싱한 타이틀곡 ‘GAMBLER’는 몬스타엑스 멤버 당사자가 생각하는 몬스타엑스의 매력으로만 가득한 곡이다. 타의 추종을 불허하는 묵직한 중량감은 의외로 케이팝 신에서 흔하지 않은 ‘어른 남자’의 이미지를 극대화하는데, 젠틀한 애티튜드를 걸친 안쪽으로 드러나는 야성미의 실루엣이 인상적이다. “오묘한 기류”의 서스펜스를 형성하는 리프 위로 침착한 중저음과 교차되는 샤우팅 같은 사운드 연출, 수트를 베이스로 했지만 치명적인 포인트를 주는 아이템으로 스타일링한 비주얼, 정박에 맞춰 포즈를 취하는 듯하지만 강렬한 텐션을 지속하는 댄스 퍼포먼스까지 하나의 완결성을 갖춘 캐릭터로 구현되어 있다. 전체 앨범의 싱글 하나하나가 몬스타엑스의 여러 가지 캐릭터로 해석된 느낌인데, 형원의 ‘Secrets’는 몬스타엑스의 미국 앨범이 연상되는 한편, 아이엠의 ‘Rotate’는 최근 발표한 솔로 앨범에 들어있었어도 어색하지 않았을 법한 곡이다. 로컬라이징이 전혀 되어 있지 않은 ‘순도 100% K-pop’이었던 일본 오리지널 싱글의 한국어 번안곡이 앨범 말미에 수록된 것마저 다양한 몬스타엑스의 면모 중 하나를 보여주겠다는 의지처럼 느껴질 정도다. 여러 가지 레퍼토리와 누적된 디스코그래피를 바탕으로 나온 앨범이기에 역설적으로 ‘근본’을 표방했던 데뷔 앨범이 떠오른다.
우리는 ‘성장’을 어떤 값의 상승으로만 여기는 경향이 있다. 하지만 아티스트에게 성장이란 위쪽뿐만 아니라 사방팔방 360도로 확장되는, 그리고 확장된 영역 안에서 무게 중심을 다잡아가는 과정을 총체적으로 의미하는 것 아닐까. 성장 끝에 중심을 잡고 안정을 찾은 아티스트가 저마다의 세계를 갖게 되는 이유겠다. “One Of A Kind”는 몬스타엑스가 스스로의 아티스트적 성장을 위해 치열하게 고민하고 부단히 노력해온 결과물로서의 ‘세계’, 그 첫 번째 차원이다.
심댱: 좋게 말하면 엑소의 에센셜, 달리 말하자면 팀 컬러를 고집스레 꺼내어 보인 앨범. 앨범의 컨셉이 “The Power of Music”의 연장 선상임을 숨기지 않는데, 단적인 예시는 프로모션 시리즈 ‘EXO in 'PARALLEL UNIVERSE’에서 확인할 수 있다. (페어로 찍힌 시리즈 영상을 종합하면 이 영상의 리바이벌에 가깝기 때문이다.)
타이틀곡 ‘Don’t Fight The Feeling’은 ‘Power’ 뮤직비디오에서 스쳐 지나갔던 너드들이 플레이 하는 게임처럼 청량감을 재현한다. 세계관의 무게를 버티지 못하고 각 콘셉트별로 평행세계가 존재한다며 눙쳤던 해당 뮤직비디오 초반부의 설정이 속칭 ‘컴눈명의 현실화’처럼 적용될 줄은 아무도 예상치 못했으리라. 스캣같이 흥얼거리기 좋은 훅이 동방신기의 '뒷모습'을 연상시키는 ‘파라다이스’는 ‘훅!’과 함께, 로맨스와 여유로운 에너지가 공존하는 ‘Non Stop’의 자기장 안에 자리한다. ‘오아시스’와 거의 동일한 작곡진이 작업한 트랙(‘Runaway’)으로 비장함을 짚어내고, ‘Wait’처럼 따스한 트랙으로 마무리하는(‘지켜줄게’) 흐름까지 그들의 근작에서 접할 수 있는 트랙 리스트와 엇비슷하다.
군백기를 마친 멤버 둘과 본국에서 솔로 활동 중인 또 다른 멤버의 참여에 포커스를 둔다면 '스페셜'의 의미를 어느 정도 납득할 수 있다. 레이의 보컬은 곡의 흐름 상 환기가 필요한 구간에 배치되어, 단출해진 인원에서 수호와 비슷한 쓰임새로 연출되었다. 디오의 존재감은 ‘파라다이스’ 첫 후렴구에서부터 여실히 느껴지고, 시우민도 트랙 리스트를 무난하게 소화했다. (‘Runaway’ 1절 파트에서 1옥타브 아래로 떨어지면서 생기는 낙차는 눈여겨 볼만 하다.) 스핀오프 형태의 ‘스페셜 앨범’은 획기적으로 신선하지 않지만, 세 멤버의 공백을 너끈히 메우는 엑소 유니버스와 음악적 컬러를 느끼기에 적절하다.
하루살이: “별과 달에 대한 이야길 다루”는 밴드, 엔플라잉의 첫 한국 정규 앨범이다. 2019년 일본에서 발매한 정규 앨범 “BROTHERHOOD”의 ‘Songbird’는 “조금은 두려워도” “우리 함께”이기 때문에 두려움을 극복하고 ‘Another space’, ‘Outer space’로 향했었다. 2021년 “Man on the Moon”의 ‘Moonshot’은 두려움 자체를 동력 삼아 달 위에 올라선다.
(중략)
전작 “So, 通”은 망원경을 새로 장착한 이들이 갈 수 있는 극단점들을 제시했다면, “Man on the Moon”의 10곡은 넓게 펼쳐져 있는 기존 곡들의 간극을 메운다. 대부분의 멤버가 크레딧에 이름을 올리며 스스로에게 더 능숙해진 모습으로 음악적 세계관을 견고히 다지고 확장했다. 다른 무엇보다 듣기 좋은 음악이라는 불변의 원칙에 충실하려는 노력들이 엿보여 즐겁다. 첫 정규 앨범을 대하는 진심을 꾹꾹 눌러 담아 찍은 이 발자국은 더 거대한 도약을 도모하기에 충분해 보인다. (엔플라잉 “Man on the Moon” (2021) 中 일부 발췌)
마노: 각 요소가 맞물리지 못하고 삐걱대는 인상이 강했던 ‘TWILIGHT’, 여러 가지 의미로 무리하는 듯 보였던 ‘모 아님 도’를 지나 ‘BYE BYE BYE’에 이르러서야 드디어 꼭 맞는 옷을 입게 되었다는 점이 썩 반갑게 다가온다. 제목은 언뜻 한 시절을 풍미했던 보이밴드 엔싱크가 발표한 동명의 곡을 연상시키기도 하는데, 곡은 전혀 다르게도 훵키한 기타 리프가 곡을 리드하는 청량감 넘치는 댄스곡이다. 계절감도 제격이거니와 멤버들의 면면과도 딱 맞는 선택으로 보이고, 시행착오 끝에 적절한 방향성을 잡았다는 점에서 팀에게는 하나의 터닝 포인트가 되지 않을까 싶다. 수록곡들도 계절감과 멤버들의 수행력에 걸맞은 청량하고 상쾌한 무드가 주를 이루고 있는데, 타이틀곡과 마찬가지로 Mospick이 작업한 ‘Ocean’이 특히 기억에 남는다. 팀의 “이 다음”을 기대하게 하는 EP.
심댱: 트와이스를 볼 때마다 호수 위를 헤엄치는 백조 무리처럼 느끼곤 한다. 백조가 수면 위에서는 우아해 보여도 수면 아래서는 분주히 헤엄치듯이 어떤 비트를 주든 격렬한 안무를 여유 있게 소화하는 모습이 꼭 그것과 같아 보였기 때문이다.
이번 ‘Alcohol-Free’에서 보사노바 특유의 나른함을 어떻게 케이팝적으로 보여줄지 궁금했는데, 사랑에 빠져 각성한 것처럼 혹은 칵테일을 섞어내는 바텐더처럼 팔과 다리를 바삐 움직이며 시선을 떼지 못하게 했다. 2절에서 반음씩 오르내리는 피아노는 술김에 달큰해진 숨을 고르는 모양처럼 들리고, 살랑이는 보컬과 저편에서 거나하게 취한 듯한 색소폰의 조화는 달콤한 바람이 불어오는 휴양지의 한때를 그린다.
조금 느긋해진 타이틀곡의 분위기는 그동안 가열차게 달려왔던 트와이스의 디스코그래피에 한 줄기 여유를 불어넣는 것만 같다. 사랑의 떨림을 가성으로 잘 표현해낸 ‘First Time’부터 도발적인 베이스라인이 인상적인 ‘Scandal’, 자신만만하게 발화되는 “Na na na na ayy”에 매료될 수밖에 없는 ‘Conversation’, 속도감 있게 달려 나가는 ‘Baby Blue Love’와 ‘SOS’의 몽환적인 마무리감까지 트랙리스트의 흐름은 와인처럼 부드럽게 이어진다. 트와이스가 그리는 여름은 늘 그렇듯 직관적으로, 본작에는 나른한 여름의 면면을 담아냈다. 날랜 몸짓에도 여유를 잃지 않는 그들이 능숙하게 선보인 한 잔의 여름을 놓치지 않길 바란다.
에린: 트와이스 “Taste of Love”는 여름을 배경으로 사랑을 이야기하는 앨범이다. 하지만 여름을 견딜 수 있는 시원함을 선사하기보다는 여름 본연의 무드를 즐기는 데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타이틀곡 ‘Alcohol-Free’에서부터 이러한 경향성은 뚜렷하다. 보사노바 리듬을 활용한 ‘Alcohol-Free’는 여름 햇살 아래 적당히 리듬만 탈 수 있을 정도의 분위기를 조성하고, 후렴구 “나는 Alcohol free 근데 취해”라는 다소 모순적인 가사로 곡의 존재감을 드러낸다. 앨범 테마가 여름을 내세우는 것치고 시원한 상승감이 부족해 아쉬움을 느낄 찰나, 베이스라인과 멤버들의 저음 보컬로 서늘함이 강조된 ‘Scandal’과 ‘Conversation'이 귀에 들어온다. 특히 ‘Conversation‘의 베이스라인, 비트, 지효의 보컬로 전환되는 후렴구 파트는 앨범에 긴장감을 더한다. ‘Baby Blue Love’ 속 뻗어가는 보컬은 앨범 초반부 부족했던 활기를 채워주고, ‘SOS’는 여름 사랑 이야기에 낭만을 더하여 “Taste of Love”를 마무리한다. 여름의 분위기를 구현하는 데에 충실한 “Taste of Love”는 분명 트와이스의 폭발력을 보여주지는 못하지만, 각 곡을 안정적으로 소화하는 트와이스의 능숙함을 확인할 수 있는 앨범이다.
스큅: 투박한 정공법을 가지고 접근했던 초반기를 지나 ‘Blue Rose’로 세련된 작법을 고민하기 시작한 업텐션은 8인조 체제에 접어든 이후 세련된 정공법을 연마해가고 있다. 타이틀곡 ‘SPIN OFF’는 ‘Your Gravity’, ‘Destiny’에 이어 포 온 더 플로어 리듬의 뼈대 위에서 현란하게 휘몰아치는 악곡이 돋보이는, 근래 케이팝의 정석과도 같은 곡이다. 아이즈원의 대표 싱글을 참조한 듯한 느낌도 드는데 (실제로 아이즈원의 ‘비올레타’, ‘Fiesta’를 작업했던 최현준이 작곡에 참여했다), 휘황찬란한 곡 구조 아래 상반되는 두 메인보컬 환희와 선율을 어느 때보다도 효과적으로 교차시키며 상쾌한 인상을 남긴다. ‘SPIN OFF’만큼 화려하지는 않으나, ‘Liar’, ‘Summer Drive’, ‘Parade’에 이르는 수려한 수록곡 라인 역시 막힘 없는 시원시원함을 자랑한다. 그러나 유닛 곡들이 몰려 있는 후반부는 상투로 가득 들어차 있어 아쉬움을 남긴다. 앨범 막바지에 접어들면 전반부의 서늘한 온도는 거의 기억에 남아있지 않게 된다. 정규앨범이라는 구색에 경도되기보다 내실 있는 EP를 구성하는 편이 더 나을 수도 있지 않았을까.
마노: 탄탄한 연주력과 수행력을 바탕으로 양질의 결과물을 연이어 선보이고 있는 원위의 첫 EP. 타이틀곡 ‘비를 몰고 오는 소년’은 첫 정규 “ONE”의 타이틀곡이었던 ‘나의 계절 봄은 끝났다’처럼 약간의 통속성과 미세한 ‘뽕끼’를 전면에 내세우고 있는데, 타이틀곡이 되레 이질적으로 느껴질 정도로 수록곡들은 산뜻한 만듦새를 자랑하고 있다. ‘비를 몰고 오는 소년’은 제목과는 대조적으로 곡의 기조가 무척이나 건조하고 퍽퍽한데, 용훈의 보컬이 가진 미묘한 통속성을 극대화하며 빈틈없이 한껏 몰아친다. 후속곡이기도 했던 ‘AuRoRa’(정식 발매 전에 진행한 온택트 라이브 ‘Studio We #6’에서 최초 공개된 바 있다)와 이어지는 ‘LOGO’에서 건조함을 어느 정도 해갈한 후에 특유의 장난기와 발상력이 엿보이는 ‘로보트도 인간에게 감정을 느낀다’에서 살짝 숨을 고르고, 화사하고 댄서블한 ‘베로니카의 섬’으로 흥을 끌어올린 후 ‘천체’에서 천천히 소강하며 우주 유영을 마무리한다. 추천곡은 ‘베로니카의 섬’. 언젠가 야외 페스티벌 무대에서 이 곡과 꼭 만나고 싶다.
예미: ‘Rollin’’이 발매 4년 만에 주목받으며 새로운 활동의 계기를 마련한 브레이브걸스는 “Summer Queen”으로 자신들을 한 차례 더 각인시켰다. 타이틀곡 ‘치맛바람’은 ‘Rollin’’을 연상케 하는 직관적인 트로피컬 하우스로, 현 트렌드를 반영하여 베이스를 보강했다. 네 멤버의 고른 보컬이 곡을 채우고, 직관적인 멜로디 및 곡 구성과 민영의 고음 파트가 곡을 각인시켰다. 제목에 맞춰 치마를 이용한 퍼포먼스로 시원한 분위기를 연출했지만, ‘치맛바람’이라는 단어가 당위성 없이 쓰인 점은 아쉬웠다. 수록곡 ‘Pool Party’, ‘나 혼자 여름’, ‘FEVER’는 ‘여름 댄스곡’이라는 테마를 뉴잭스윙과 디스코 등 여러 가지 사운드로 풀어냈다. ‘나 혼자 여름’은 따라 부르기 쉬운 멜로디로 <가요 톱10>을 떠오르게 했고, ‘FEVER’는 후렴을 저음으로 채우는 등 다양한 보컬 활용을 보여주었다.
브레이브걸스는 대중성 있는 댄스 팝을 부르는 “Summer Queen”이라는, 현재 아이돌 씬에서 비어 있는 포지션을 파고들어 입지를 확고히 했다. 다만 용감한 형제의 작곡 스타일에서 기인한 이 팀의 대중성은 동시대 아이돌 팝의 기조와 상반된 지점을 향한다. 그렇기에 이들의 커리어가 어떤 방향으로 이어질지가 궁금해지는데, 멤버들의 탄탄한 기본기와 그간 쌓아 온 서사가 이후 브레이브걸스의 자산이 되리라 짐작해 본다.
스큅: 데뷔 때부터 세븐틴의 퍼포먼스가 독특하게 느껴졌던 지점은 무대 바깥 청중을 향한 에너지만큼이나 무대 안에서 멤버들끼리 복닥거리는 활동력이 강하게 느껴진다는 것이었다. 세븐틴은 무대에서 정밀하게 균형을 갖춘 돌탑이기보다는 서로의 몸을 이리저리 맞부딪히며 스파크를 튀기는 부싯돌들에 가까웠고, 작년 “헹가래”와 “; [Semicolon]”역시 그러한 부싯돌의 미학을 느낄 수 있는 작품이었다. 사랑과 성숙이라는 테마 아래 전작들에 비해 메시지성이 한층 강화된 “Your Choice”는 사뭇 다른 모습을 보인다. 멤버들 간의 마찰열은 한소끔 사그라들었고, 말끔한 팝을 들려주는 곡들에서는 정연한 하나의 그림을 제시하려는 의도가 눈에 더 들어온다. 멤버들 간 환상의 티키타카에서 빚어지는 재미로 팬덤을 초월한 인기를 얻은 세븐틴의 웹 예능 <고잉 세븐틴>처럼 그들의 매력의 핵심은 어떠한 완결성보다는 그룹 내 역동 그 자체에 있었기에, 미묘한 차이로 역전된 “Your Choice”의 방향성은 아쉬움을 남긴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Your Choice”가 잘 세공된 앨범임을 부정할 수는 없다. 셔플 리듬이 상쾌하게 귀를 두드리는 ‘Heaven’s Cloud’, 톤 다운된 기조 아래서도 처연함보다는 시원시원한 전개가 돋보이는 ‘Ready to love’, 뻔한 박력보다는 곧은 심지를 보여주는 ‘Anyone’, 현란하게 펄떡이며 세븐틴의 원기를 뽐내는 ‘GAM3 BO1’, 퍼포먼스 유닛의 다양한 레퍼토리를 꾀하는 ‘Wave’, 한국화된 고전 알앤비의 정석을 구현한 ‘같은 꿈, 같은 맘, 같은 밤’까지. 개별 곡의 슬기로운 음악적 선택에서 세븐틴은 여전히 음악을 효과적으로 운용할 줄 아는 팀임을 느낄 수 있다. 번뜩이는 스파크는 덜하지만, 수많은 마찰을 거쳐 단련된 반질반질한 면면이 만져지는 앨범.
마노: 군백기를 거쳐 완전체로서는 무려 약 5년 만에 발표하는 풀 렝스 앨범. 군백기로 찾아온 예상치 못한 브레이크를 의식하지 않을 수 없었을 듯한데, 그래서인지 전반적으로 전작 “GENTLEMEN’S GAME”의 연장선으로 읽히는 부분이 다수 존재한다. 타이틀곡 ‘해야 해’만이 전작의 타이틀곡 ‘Promise (I’ll Be)’의 연장선에서 살짝 비껴가 있는데, 퓨처 베이스를 표방한 ‘Promise (I’ll Be)’와는 달리 ‘해야 해’는 묵직한 베이스라인이 곡을 주도하는 가운데 훵키한 기타 리듬과 모던한 피아노 멜로디, 코러스 파트의 은근한 브라스 사운드가 어우러진 미니멀한 댄스곡이다. 곡도 곡이지만 스타일링과 퍼포먼스에서도 팀에게 역주행의 기회와 함께 제 2의 전성기를 가져다준 ‘우리집’을 떠올리지 않을 수 없는데, 아니나 다를까 보너스 트랙 격으로 ‘우리집’ 어쿠스틱 버전이 수록되어 있기도 하다. 상승세를 이어가겠다는 야심일지, 안전한 길을 택하겠다는 고집일지는 듣는 이가 판단할 몫이겠다.
전작과 마찬가지로 이번 앨범 역시 “댄디한 성인 남성 화자”를 내세워 ‘어른들의 사랑’을 그려내고 있다. 우연히 스친 매력적인 상대에게 “오늘 밤 어떨까”라며 은근한 유혹을 던진다거나(‘해야 해’), 샴페인이 담긴 잔을 기울이며 연인과 사랑을 속삭이거나(‘샴페인’) 하는 식이다. ‘Hands Up’이나 ‘미친거 아니야?’ 등의 혈기 가득한 소란스러움과는 상반되는, 차분하고 관능 넘치는 어른들의 파티라고나 할까. 테이크아웃 전문 프랜차이즈 카페보다는 탁 트인 테라스가 딸린 고즈넉한 카페가 어울릴 것만 같은 ‘집 앞 카페’, 청량한 질주감이 돋보이는 ‘보고싶어, 보러갈게’ 등 멤버들을 비롯하여 다양한 프로듀서진이 참여한 매력적인 트랙들이 이어지지만, 전작에 비해 후반부로 갈수록 텐션이 다소 늘어지는 듯 느껴지는 점은 아쉬운 부분. 그럼에도 본작은 꾸준히 자신들만의 영역을 구축해나가고 있는, 어느덧 10년차를 훌쩍 넘긴 보이그룹만이 추구할 수 있는 어느 경지를 그려낸다는 점에서 충분히 그 의의를 지닌다 할 수 있겠다.
스큅: 리패키지 앨범에 새로이 추가된 3곡 중 ‘Hello Future’, ‘Bungee’ 2곡이 문샤인의 곡으로, 결과적으로 기수록곡인 ‘Diggity’, ‘Rocket’, ‘Countdown’을 포함해 앨범 13곡 중 총 5곡의 크레딧이 문샤인으로 채워졌다. 이는 레드벨벳의 ‘피카부’로 케이팝에 입성한 이래 별나고 쾌활한 트랙을 다수 배출해온 문샤인과 청량한 활기로 뭉친 NCT 드림의 상성이 잘 맞아떨어진 결과로 보인다. 새삼 문샤인이 프로듀싱했던 ‘무대로’가 그룹의 새로운 챕터를 여는 중요한 열쇠로 기능했음을 실감한다. 그리고 ‘Hello Future’, ‘Bungee’, ‘Diggity’ 3곡은 레드벨벳 ‘멋있게’, ‘In & Out’, 더보이즈 ‘Shake You Down’, SuperM ‘One (Monster & Infinity)’, 샤이니 ‘CØDE’에 이은 문샤인과 켄지의 공동 작업물인데 (켄지가 작사에만 참여한 곡까지 포함하면 레드벨벳 ‘피카부’, ‘Power Up’이 추가된다), 작곡 면에서나 작사 면에서나 서로의 쿼키(quirky)함을 배가시키는 훌륭한 상성을 자랑한다. 10대의 나이에 묶여있던 그룹의 정체성을 ‘영원히 자라지 않는 소년’의 이미지로 개편한 현재, NCT 드림의 “터무니없는 상상”을 그려내기에 더할 나위 없이 좋은 조합인 듯하다. 앞으로도 NCT 드림과 문샤인-켄지의 조합을 더 보았으면 하는 바람이 있다. 한층 더 하이퍼액티브해진 리패키지 앨범의 무드는 형형색색의 히피 콘셉트와 틴에이지 공상과학 첩보물을 보는 듯한 비주얼과도 찰떡같이 맞아떨어졌다. 곡과 앨범을 둘러싼 모든 요소가 조화를 이뤄 케이팝의 정석으로 내세우기에 부족함이 없다.
에린: 하슬이 오랜 휴지기 이후 복귀한 만큼 “&”는 다인원 그룹의 응집력을 강조한다. ‘&’로 비장한 진격을 알리는 신호탄을 쏘아 올린 후 ‘PTT’의 대규모 행진이 이어진다. ‘&’와 ‘PTT’의 북소리와 이국적인 나팔소리가 후렴구 “Paint the Town”에 행진 구호 역할을 부여한다. 열두 명의 박자에 맞춘 군무와 대형을 활용한 화려한 퍼포먼스는 ‘PTT’ 행진에 압도되도록 한다. 특히 “Like a wolf to the moon” 가사에 맞춰 날아오르는 듯한 늑대를 표현한 안무는 곡의 야생적인 면모를 각인시킨다. “&” 앨범 초반부에서는 카리스마를 강조했다면, 앨범 중반부는 ‘WOW’와 ‘Be Honest’와 같은 트랙으로 그룹의 활기를 보여준다. ‘WOW’의 빼곡히 이어지는 보컬 화음은 다소 장난스러운 이달의 소녀만의 파티를 구현하였고, ‘Be Honest’의 청량한 멜로디는 “당당하라”는 메시지를 담으면서도 “내게 손을 뻗어”나 “세상 끝까지 함께 빛나”와 같은 가사로 청자와의 유대를 표현한다. 이후 ‘Dance On My Own’는 앨범에서 일관되게 이어진 단단한 에너지를 느슨하게 풀어주고, 상대방을 별로 비유한 ‘UR’은 별을 보며 상대방을 그리워하는 ‘A Different Night’와 연결되면서 앨범을 아련하게 마무리한다. 초반부 휘몰아치는 이달의 소녀의 박력에서 후반부 아련함으로 마무리하는 “&”는 하나가 된 완전체의 아이덴티티를 확고히 하며 이달의 소녀가 앞으로 나아갈 수 있는 기반을 만들어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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