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ategories
Article

독자 기고 : 피의 실드와 비난을 넘어 – 우리에게는 ‘번역’이 필요하다

최근의 사건은 플랫폼들과 친밀성이 복잡다단하게 얽힌 아이돌 판에서의 다양한 논쟁들이 공통으로 가지는 하나의 특징을 보여준다.

아이돌로지는 많은 주관이 모여 새로운 시각을 만들 수 있다는 믿음으로 만들어진 아이돌 전문 웹진으로, 아이돌로지의 지면을 더 풍성하게 채워줄 수 있는 독자 기고문을 모집하고 있습니다. 자세한 사항은 기고 모집 안내 페이지에서 확인 가능합니다.

얼마 전, 트위터에서는 한 아이돌 그룹 멤버의 버블 내용을 계기로 갑론을박이 오갔다. 해당 멤버는 자신이 어릴 때 동물을 키운 이야기를 했는데, 한 트위터리안은 이 부분을 캡쳐하여 어릴 때 해당 동물의 특성에 대해 잘 몰랐다는 사실을 ‘자랑스럽게 얘기 좀 하지 말라’고 트윗을 올렸다. 해당 멤버의 팬이든 아니든 이 이슈에 반응하는 이들은 크게 두 부류로 나뉘었다. 해당 멤버의 버블 내용을 비판하거나, 이를 지적하는 트윗을 비판하거나.

편의상 해당 멤버의 버블 내용을 X, 이를 지적하고 수천 번 리트윗된 해당 트윗을 Y라 하자. X를 비판하는 이들은 ‘나도 팬이지만 이건 아니다’처럼 일종의 당사자성을 드러내며 문제를 지적하거나, ‘아이돌이면 자신의 영향력을 인지하고 조심했어야 한다’처럼 아이돌을 일종의 ‘공인(公人)’으로 이해했다. 반면 Y를 비판하는 이들은 ‘이걸 비판하는 사람은 안티팬이다’처럼 ‘팬’의 범주를 선점하거나, ‘버블 유출은 불법이다’처럼 버블 규정을 통해 소속사에 신고를 넣는 제도적 방식을 채택하기도 했다(일부 인신공격성 트윗들이 존재한 것도 사실이다). 두 세력은 강하게 대립했다.

이 글은 X와 Y의 내용을 판단하지 않는다. 여기서 다루고자 하는 것은 동물권이나 반려인간 의 책임, 버블 규정과 법적 대응 절차가 아니라, 서로 다른 플랫폼과 유저들의 연결에서 필연적으로 발생하는 ‘번역’의 문제이기 때문이다. 애초에 X가 없었다면 Y도 생기지 않았을 것이라는 지적도 가능하지만, 이는 문제 상황을 X를 생산한 아티스트 개인으로 환원하며, 이때 남는 것은 개인의 도덕성 문제뿐이다. 무엇보다도 X가 문제의 ‘계기’일지언정, 그것을 ‘원인’으 로 규정하게 되면 이 상황에 개입하는 ‘우리’의 문제는 사라지고 만다. 따라서 이 글은 조금 더 구조적인 층위에서 해당 문제를 이해하고자 최초의 문제 제기를 시도한 Y에 집중한다.

이 상황에서 문제가 되는 플랫폼은 버블과 트위터인데, 이 둘은 매우 유기적으로 연결되어 있다. 아이돌 멤버들의 버블은 자주 트위터의 실시간 트렌드에 오르고, 팬들은 트위터에서 특정 해시태그를 통해 버블에 ‘답장’을 하거나, 자신들이 버블로 보내지 못하는 사진이나 동영상을 멤버들에게 전달하기도 한다.

이처럼 버블에 답장하거나, 버블의 내용에 대해 언급하는 등의 트윗들을 여기서는 ‘버블-트윗’이라고 부르자. 버블-트윗의 문법은 그렇지 않은 트윗의 문법과 다르다. 여기에는 버블의 구조가 큰 영향을 끼친다. 아티스트의 메시지가 나에게만이 아니라 모두에게 똑같이 전달된다는 것은 공공연한 사실이지만, 아티스트가 특정한 코드를 사용하면 팬들이 각자 설정한 자신의 이름이 적힌 메시지를 받게 된다. 이처럼 명백히 공유되고 있는 것을 사적인 형태로 담아냄으로써 친밀성을 구성하는 것이 바로 버블의 구조다.

이 구조는 트위터와 연결되면서 버블-트윗의 문법을 형성한다. 계정을 비공개로 설정하면 해시태그를 써도 아이돌 멤버에게 트윗이 닿을 수 없으므로, 버블-트윗은 대체로 공개적이다. 내용은 다양하지만, 그중 멤버에게 보내는 편지와 같은 형식이 상당히 큰 비중을 차지한다. 과거의 팬레터를 버블-트윗이 일부 대체한 측면도 존재하는 것이다. 그런 면에서 버블-트윗은 ‘주요 수신인이 정해진 공개 편지’라는 다소 독특한 형태를 띠게 된다. “국민 여러분”으로 시작하는 대통령 담화문도 형식만 보면 공개 편지라고 볼 수 있지만, 이런 경우에서 수신인은 지극히 추상적인 대상이다. 국민 개개인은 인격체지만, ‘국민’은 오히려 인격이 철저히 제거된 개념이다. 아티스트들이 무대 이후 트위터나 브이앱에 올리는 사진과 글도 공개 편지라고 볼 수 있지만, 그때 호명되는 팬덤의 이름 또한 그 자체로 인격체는 아니다. 그러나 버블-트윗의 수신인은 특정 멤버로 정해져 있으며, 따라서 버블-트윗은 해당 인격체에게 직접 전달될 수 있는 무엇으로 인식되고, 또 실제로 그렇게 기능하고 있다. 실제로 버블-트윗은 자주 친밀한 개인에게 보내는 편지의 형식과 굉장히 가깝다. 여기서 버블, 버블-트윗은 아티스트를 인격체로서의 사적인 개인으로 전제하게 된다.

최근 사건의 핵심은 바로 이 문법이었다. 아티스트의 버블 발송, 이것의 캡처와 비판, 이에 대한 논쟁들까지를 하나의 ‘사건’으로 명명할 때, ‘동물권 침해 사건’이나 ‘버블 유출 사건’과 같은 이름은 모두 해당 사건을 충분히 담아내지 못한다. 오히려 ‘버블-트윗 번역 실패 사건’이 적절한 명명일 것이다.

이때 ‘번역’은 일상적 의미와는 다소 다르다. 나는 행위자-네트워크 이론(Actor-Network Theory, ANT)의 맥락에서 이 말을 사용한다. 행위자-네트워크 이론은 그래프, 설계도, 표준, 병균, 트윗과 같은 인간 아닌 모든 존재, 즉 비인간도 인간과 동등한 ‘행위자(actor)’이며, 이 들과 인간들이 동맹을 맺어 만들어진 네트워크가 개별 행위자에게 비로소 행위능력(agency)을 부여한다고 말한다. 뛰어난 연설을 하는 정치인의 능력이 개인의 재능뿐 아니라 유능한 보좌진을 통해 정보라는 행위자와 연결됨으로써 비로소 발생하는 것처럼 말이다. 이 이론에서는 행위자가 동원할 수 있는 네트워크의 규모가 곧 권력이다. 여기서 연결망을 건설하는 행위가 바로 ‘번역’이다. 이는 한 행위자의 이해(利害)나 의도를 다른 행위자의 이해나 의도에 맞게 치환하고, 이를 통해 연결망에 질서를 만들고 연결망을 크게 만드는 과정이다. 일상적인 번역의 용례가 서로 다른 언어들 사이에서만 성립한다면, 여기에서 번역은 서로 다른 행위자들 사이에 성립한다고 볼 수 있다.

미셸 칼롱(Michel Callon)은 번역이 문제 제기, 관심 끌기, (자기 네트워크에) 등록하기, 동원하기의 네 단계로 이루어진다고 분석한다. 이 글에서 다루는 사례를 통해 이를 이해하면, Y를 작성한 트위터리안은 X를 특정한 담론의 맥락으로 규정함으로써 ‘문제 제기’하고, 이를 통해 다른 트위터리안들의 ‘관심을 끌고’, 그들이 Y에 찬성하고 Y를 확산시키도록 자신의 네트워크 에 그들을 ‘등록’하고 ‘동원’했다고 볼 수 있다. Y에 반대한 이들도 Y를 ‘버블 유출’ 등으로 문제 제기한 이후에는 같은 단계를 밟았다.

그러나 언어 사이의 번역에 항상 오류가 있듯이 행위자-네트워크 이론의 번역도 그러하다. 이번 사건은 Y가 버블-트윗의 문법에 맞지 않을 뿐 아니라, 버블-트윗의 문법에 정면으로 도전한다는 점에서 강한 반발을 불러일으켰다. Y의 바탕이 되는 담론이나 가치를 통해 Y의 네트워크에 결합한 사람들이 존재하는 동시에, 버블-트윗 문법의 핵심인 친밀성과 인격체로서의 수신인을 중심으로 결합한 사람들 또한 존재했기 때문이다.

그런 맥락에서, Y가 특정 담론을 통한 문제 제기일 뿐 아니라 인격을 가진 사적인 개인으로서의 아티스트에 대한 공격으로 이해된 것은 그것이 편지보다는 ‘저격’에 가까운 형태로 쓰였다는 점 때문이었다. 즉, 이 사건의 발생은 단순히 X의 내용도, Y의 문체도 아니라, 버블과 트위터라는 두 플랫폼이 연결되면서 발생한 ‘버블-트윗’이라는 문법의 준수라는 층위에서 벌어진 상호 간 번역의 실패 때문이었다.

최근의 사건은 플랫폼들과 친밀성이 복잡다단하게 얽힌 아이돌 판에서의 다양한 논쟁들이 공통으로 가지는 하나의 특징을 보여준다. 번역의 문제가 중요한 이유는 X와 같은 계기를 온전히 예방하는 것이 불가능하고, 따라서 그 이후에 우리가 X에 어떤 방식으로 연루될 것인지 고민해야 하기 때문이다. 우리에게는 적절한 문법으로 팬덤 내부에서 문제를 제기할 수 있는 팬-비평가가 필요하다. 모든 집단은 각기 다른 문화를 갖고 있고, 그 문화는 기본적으로 그 집단 안의 구성원들이 소통하는 언어이기도 하다. 서로 다른 담론과 문화 사이를 소통 가능한 형태로 번역해낼 수 있을 때, 비로소 우리에게 논의의 ‘다음 단계’가 모습을 드러낼 것이다.

글: 참나물페스토
사회과학을 공부하지만 사회를 잘 아는지는 모르겠고 에스파, 투모로우바이투게더, 있지, 레드벨벳 다 사랑한다. 암 온 더 넥스트 레벨, 대-학원의 문을 열어.

By Editor

idology.kr 에디터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