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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포트 : 크래비티 “The Awakening: Written In The Stars” 쇼케이스

아직은 넘버즈처럼 자신들의 ‘초능력’을 이리저리 실험하고 있을지라도, 언젠가는 자신들이 선택하는 미래를 향하게 될법한, 다분히 ‘미래지향적’인 행보를 크래비티는 꾸준히 이어가고 있다.

우리가 선택할 수 있는 미래

“未来は一方向だけに進んでる訳じゃないは。私達が選べる未来があるはずよ。(미래는 한 방향으로만 가는 게 아니야. 우리가 선택할 수 있는 미래도 있을 거야.)”

「AKIRA」 中

사이버펑크의 재유행에 따라 2017년 국내에서도 재개봉한 바 있는 애니메이션 명작 「AKIRA」에는 뇌파 실험에 의해 초능력을 발휘하게 된 아이들 ‘넘버즈’가 등장한다. 그 중 키요코라는 아이는 미래를 예지하는 초능력을 갖고 있는데, 미래를 자의적으로 선택할 수 있을 거라는 대사를 통해 운명론을 부정하는, 혹은 평행우주를 암시하는 듯한 인상을 주었다. 작중 배경인 ‘네오 도쿄’의 붕괴를 예지한 키요코는 바로 그 네오 도쿄의 붕괴를 저지하기 위해 이 명대사를 남겼다.

크래비티의 ‘Gas Pedal’ 뮤직비디오는 ‘네오 도쿄’를 오마주 한 ‘네오 서울’을 배경으로 한다. 멤버들은 때로는 실험체 넘버즈로, 때로는 「AKIRA」의 주인공인 붉은 점퍼의 카네다로 분해 네오 서울을 활보한다.「AKIRA」를 차용했다기보다는 차라리 실사화를 했다고 보는 게 더 정확할 정도로 ‘Gas Pedal’의 뮤직비디오는 레트로-사이버펑크를 정석적으로 구현했다.

2021년 8월 19일 크래비티 ‘Gas Pedal’ 미디어 쇼케이스 현장 ⓒ스타쉽 엔터테인먼트

신곡 ‘Gas Pedal’은 반듯하게 구획된 사이버펑크의 신도시처럼 분절적이고 변칙적인 진행이 특징이다. 마치 작품 배경을 설명하는 내레이션처럼 속주하는 랩을 지나면 이전 작품에서는 쨍하게 울리던 미성 보컬이 예사롭지 않은 저음으로 낮게 깔려있고, 그 아래로는 서스펜스를 극대화하는 베이스가 부글거린다. 이전의 타이틀곡에 비해 멤버별 파트가 길어진 것 또한 인상적인데, 후반부에는 아카펠라 랩까지 하이라이트 되어 있어 지루할 틈이 없게 구성되어 있다. 보컬 또한 프리-코러스에서는 원진, 민희의 저음과 우빈의 록킹한 고음이 병치되어 긴장을 고조시키고, 브리지에서는 원진, 성민의 훅 사이로 우빈, 민희의 고음 샤우팅이 가르고 들어와 곡이 하이라이트로 향하고 있음을 알린다.

이토록 화려한 보컬과 랩의 ‘스킬’에 비해 곡과 퍼포먼스의 연출은 꽤 절제되어 있는 편인데, 똑같은 레이싱 콘셉트였던 ‘My Turn’이 레이드-백 된 스왜그를 표현하는 여유를 보여주었다면, ‘Gas Pedal’은 속도감 있는 락킹 동작과 전진하는 스텝으로 한층 바짝 긴장된 애티튜드를 보인다. 편곡 또한 보컬을 침해하지 않는 선에서 든든히 받치고만 있다는 인상을 주는데, 레이블이 심혈을 기울여 뽑아낸 훌륭한 사운드를 강조한 나머지 정작 주인공이 되어야 할 보컬이 압도당하는 참사(!)마저 종종 일어나는 ‘과잉의 미학’ K-pop에서는 보기 드문 연출인지라 모종의 자신감으로 해석할만하다.

커플링곡인 ‘VENI VIDI VICI’는 데뷔 때부터 이어져 온 크래비티의 소년미 넘치는 캐릭터를 잘 보여주는 곡이다. 티저로 공개된 스트릿 패션의 ‘YOUTH’ 버전 콘셉트 필름에서 일렉 기타 솔로 파트가 일부 나온 바 있었는데, 무대 퍼포먼스에서는 기타 솔로를 댄스 브레이크 구간으로 활용해 곡의 하이라이트로 연출한 점이 인상적이다. 청소년기의 반항심을 록 밴드 사운드에 얹어내는 것이 최근의 팝 트렌드이기도 하다는 점에서, 작금의 시대상을 크래비티의 색깔로 훌륭히 소화해낸 곡으로 주목할 만하다.

멤버 원진은 ‘지금까지 구축한 크래비티만의 색깔’을 묻는 질문에 “이번 정규 앨범으로도 확인하실 수 있듯이 굉장히 많은 콘셉트를 소화할 수 있고 다양한 모습을 보여드릴 수 있다. 그래서 하얀 도화지 같은 색깔이라고 생각했다. 어떤 앨범과 어떤 곡을 저희에게 주시더라도 저희가 잘 소화해낼 수 있고 잘 표현해낼 수 있다고 생각한다.”고 답변했다. 실제로 크래비티는 세 장의 미니 앨범을 거쳐오는 동안 다양한 장르를 소화하면서도 늘 ‘제법 잘한다’는 괄목의 평을 들어왔다. 아직은 넘버즈처럼 자신들의 ‘초능력’을 이리저리 실험하고 있을지라도, 언젠가는 자신들이 선택하는 미래를 향하게 될법한, 다분히 ‘미래지향적’인 행보를 크래비티는 꾸준히 이어가고 있다.

By 조은재

우리 존재 화이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