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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onthly : 2021년 2월 – 싱글

2021년 2월 아이돌팝 발매작 중 주목할 만한 싱글에 대한 아이돌로지 필진 단평. CIX, 김우석, 라비, 청하, 강다니엘, 루시, 트라이비, 킹덤, 아이엠, 이승협 (J.DON), 선미, 온앤오프, 픽시의 싱글을 다룬다.

2021년 2월 아이돌팝 발매작 중 주목할 만한 싱글에 대한 아이돌로지 필진 단평. CIX, 김우석, 라비, 청하, 강다니엘, 루시, 트라이비, 킹덤, 아이엠, 이승협 (J.DON), 선미, 온앤오프, 픽시의 싱글을 다룬다.

CIX ‘Cinema’

‘HELLO’ Chapter Ø. Hello, Strange Dream
C9 엔터테인먼트
2021년 2월 2일

에린: 곡 초반 내레이션에서 “Action”이라고 말하는 순간, ‘Cinema’는 청자들을 가상의 영화 공간으로 데려갈 뿐만 아니라 그 공간을 충분히 즐길 수 있도록 한다. 곡이 영화 속 상대방과 함께해서 설레는 찰나의 순간을 포근하게 표현하는 데에 집중되어 있기 때문이다. 화려하게 곡을 전개하거나 강력한 사운드로 강조하기보다는 일정한 리듬의 반복과 함께하는 후렴구 및 편안한 보컬 사용을 통해서 부담 없이 가상의 영화의 순간을 상상할 수 있도록 한다. 뮤직비디오 역시 레트로적인 공간을 적극적으로 사용하여 포근함을 강조하고 있으며, 멤버들의 퍼포먼스 역시 한층 더 자연스러워 CIX의 매력을 효과적으로 전달한다.

김우석 ‘Sugar’

2ND DESIRE [TASTY]
TOP 미디어
2021년 2월 8일

조은재: 솔로 가수, 특히 남자 솔로 아이돌은 여러 명의 멤버로부터 파생되는 콘텐츠와 퍼포먼스의 볼륨을 물리적으로 따라갈 수 없기 때문에 부족분을 무엇으로 어떻게 채우는가가 가장 큰 관건이 된다. 김우석은 'Sugar'에서 이 부분을 달달한 연애 감정으로 채웠다. 나른하게 늘어지는 R&B 위에 한껏 애교 있게 연출된 보컬은 작년에 나온 백현의 'Candy'와도 비슷한 결이지만, 어딘가 조심스러웠던 백현에 비해 김우석은 좀 더 본격적이고 직설적으로 다가온다. 댄서와의 페어 안무 대신 누군가 앉아야 있어야 할 듯한 빈 의자를 중심으로 펼쳐지는 퍼포먼스가 특히 인상적인데, 청자에게 다가가는 방식으로 박력 있고 저돌적인 전통적인 남성성 어필보다는 상대가 다가오게 도발하는 언어를 사용하고 있다는 점이 흥미롭다.

라비 ‘범 (Feat. Chillin Homie, Kid Milli)’

범(feat.Chillin Homie, Kid Milli)
그루블린
2021년 2월 8일

예미: 제목과는 달리, ‘범’의 방향성은 ‘범 내려온다’보다는 ‘대취타’에 가깝다. 트랩 프로덕션과 스웨그 기조의 가사, 그리고 장르 씬을 향해 있는 아이돌 래퍼의 작업물이라는 포지션에서 그렇다.
그루블린 레코즈 창립 이후 라비의 행보는 국내 힙합 씬에 편입되고자 하는 것으로 보이고, ‘범’의 피쳐링진 선택 역시 그러한 선 위에 있다. 그러나 ‘범’에서 라비는 안무 영상을 주 콘텐츠로 공개하며, 아이돌 활동으로 다져진 퍼포먼스 능력을 주된 어필 포인트로 삼았다. 랩 스킬이나 아티스트로서의 자의식 표출을 통해 씬에서 인정받으려 하던 종전의 여러 시도에 비해 꽤 독특한 방향성으로 보이는데, 씬 내에서 자신이 가진 특징과 강점을 부각하는 동시에 기존 아이돌 활동을 통해 형성된 팬층도 만족시키는, 똑똑한 행보로 보인다.
랩과 프로덕션이 모두 탄탄한 결과물이기에, ‘범’이라는 제목이 괜찮은 결과물에 아류작 이미지를 씌운 것 아닐까 하는 우려도 되었다. 그러나 '범 + 범 내려온다' 퍼포먼스 비디오를 선공개한 것을 보며, 뒤따라가는 전략을 대놓고 내세운 것이 재미있었다. 자신의 위치와 강점, 현 트렌드를 흥미롭게 섞고 비튼 결과물.

청하 ‘Bicycle’

Querencia
MNH 엔터테인먼트
2021년 2월 15일

서드: 홀로 소화하기에는 조금 벅차 보일 정도로 보컬 파트가 쉴 구간이 별로 없는 꽉 찬 구성의 곡임에도 파트마다 보컬의 톤과 창법을 미세하게 변화하며 허전함을 느낄 여지를 주지 않는다. 랩 파트마저 능숙하게 소화하는 모습에서 피처링은 굳이 필요하지 않다는 자신감마저 느껴지며, 웅장한 드럼 비트와 함께 댄스 브레이크까지 더해져 지금 이 순간 청하가 할 수 있는 모든 것을 한 곡 안에 눌러 담은 듯하다.
장대한 정규 앨범의 타이틀곡으로서 어쩌면 다소 무난해 보이는 선택지처럼 보이기도 하지만 한편으로 이 모든 걸 무난하게 보이도록 만드는 재능의 대단함을 다시 생각해본다. 굳이 빨간 스포츠카를 타고 건들거리지 않더라도, 청하가 타면 자전거조차도 ‘Swag’가 된다.

스큅: 청하의 정규 1집 타이틀곡 ‘Bicycle’은 당당한 애티튜드를 지닌 동 세대 팝 디바들의 스타일을 응축해 케이팝의 방식으로 분출해낸다. Rina Sawayama의 ‘XS’, ‘Akasaka Sad’, ‘Snakeskin’, Ariana Grande의 ‘7 Rings’ 등 몇몇 레퍼런스의 다소 상투적인 조합으로 들리기도 하나, 이것이 케이팝의 퍼포먼스로 구현된다는 것 자체가 차별점을 빚어낸다. 주전공인 왁킹을 살려 유려한 팔과 손의 놀림을 부각한 이전까지의 퍼포먼스와 달리 전반적으로 하체에 무게중심을 싣고 있는데, 무대 위에 우뚝 선 청하의 존재감을 견고하게 각인시키고자 하는 의도로 보인다. 댄스 브레이크 파트에서는 전성기 시절 이효리의 기개가 떠오르기도 한다. 묵직한 앨범 소개글에서 드러낸 “케이팝 디바”의 지향성에 걸맞은 애티튜드를 지닌 타이틀곡.

강다니엘 ‘PARANOIA’

PARANOIA
KONNECT 엔터테인먼트
2021년 2월 16일

에린: ‘PARANOIA’는 “어두운 내면”을 호러 콘셉트를 통해 효과적으로 표현하는 데에 성공적이다. 호러 콘셉트를 표현하는 데에 있어 자칫하면 과욕을 부릴 수 있는 가능성이 있음에도 적당히 완급조절을 함으로써 부담스럽게 들리지 않도록 한다. 호러 장르에서 떠올릴 수 있는 비명이나, 긴장감을 일으키는 휘파람 소리, “내 맘속에 있는 Monster alone in the dark”에서의 괴수 같은 목소리를 적재적소에 배치하였으며, 해당 사운드들은 과하지 않은 보컬 운용으로 인해 더욱 강조된다. 이와 같은 완급조절 덕에 호러 영화의 한 장면을 떠올릴 수 있도록 하였으며, 곡의 설득력을 높였다.

루시 ‘히어로’

INSIDE
미스틱 스토리
2021년 2월 16일

하루살이: JTBC 〈슈퍼밴드〉는 그 무엇도 증명할 필요가 없는 밴드들을 탄생시켰다. LUCY는 그 기반으로 아름답고 포근한 선율을 자유롭게 만들고, 아이돌이 아닌 밴드에게는 절대 요구되지 않을 법한 기획을 수용한다. 이제껏 많은 아이돌밴드가 밴드로서의 증명이라고 하는 것에 옭매여 아이돌도 밴드도 온전히 되지 못했기에, 아이돌의 태도와 미학을 스스럼없이 수행하는 LUCY의 행보는 생소하면서도 반갑다.
데뷔곡 ‘개화’부터 꾸준히 계절감을 활용한 만큼 ‘히어로’에도 '눈꽃' 등 계절 단어가 등장하는데, 이번엔 이를 본격적인 주제로 삼기보다 감정을 강화하는 소품으로 사용한다. 몽롱한 발음 사이 “두 손에 빔”은 선명히 나와 후렴을 속도감 있게 이끌고 이내 바이올린 선율 뒤로 사라진다. 베이스가 양감을 풍성하게 채워 LUCY만의 독특한 악기 편성이 더욱 빛을 발하고 노래는 귀에 맺힌다.

트라이비 ‘DOOM DOOM TA’

TRI.BE Da Loca
TR 엔터테인먼트터테인먼트
2021년 2월 17일

에린: ‘둠둠타’는 트라이비라는 신인 그룹의 시작을 알리는 데에 적합한 신호탄이다. “둠둠타 둠둠타” 후렴구가 주는 타격감은 트라이비라는 신인 그룹이 가지고 있는 에너지를 느낄 수 있도록 하며, “네 귓가에 때려 넣어 나 나 나 날”을 외치며 그룹을 각인시키고자 한다. 초반의 인트로와 마지막 후렴을 이어주는 브릿지의 비트는 시원함과 함께 그룹의 쾌활함을 보여준다. 다만, 곡이 전환되는 부분들에서 보컬의 힘이 더해졌다면 보다 곡이 폭발력 있고 호소력이 갖추어질 수 있었을 것이다. 뮤직비디오에서 삼각형을 강조하는 이미지들은 신인 그룹으로서의 브랜드를 구축하려는 노력으로, 향후 그룹의 이미지로서 지속해서 사용할지는 지켜보아야겠다.

킹덤 ‘Excalibur’

History Of Kingdom : PartⅠ. Arthur
GF 엔터테인먼트
2021년 2월 18일

심댱: 올 4월에 방영되는 Mnet 〈킹덤〉과 동명인 그룹명으로 한번, 엔소닉의 2016년 발매작 "Excalibur" 이후 오랜만에 등장한 동명의 곡으로 두 번이나 고개를 갸웃거릴 수밖에 없었다. 이를 노림수라고 단언하기에는 무리가 따르지만, 수많은 레퍼런스의 레퍼런스로 쌓아 올리는 케이팝에서 모종의 기시감은 피할 길이 없을 것이다. 케이팝 안무 제작 및 댄서 출신인 고윤영의 프로듀싱으로 탄생한 킹덤은 일곱 멤버가 나라를 다스리는 왕으로 분하는 거대한 세계관을 이끈다. 세계관이 근래 케이팝 마케팅에 필수적이라 해도 이는 아티스트를 더욱 돋보이게 만드는 장치여야 하지 케이팝 그 자체가 되면 곤란하다. 세계관 앞에 나서야 할 플레이어를 두텁게 감싸는 한편, 암청색 영화처럼 어둡고 비장해진 남자 아이돌의 최근작과의 음악적 차별점이 뚜렷하게 드러난다고 하기 어렵다. 오히려 트랙 리스트 중 분위기를 슬쩍 풀어내는 수록곡 '피카소'와 'X'에서 보컬의 풋풋한 미성을 확인할 수 있었다. 네 가지로 구성되었다는 왕의 이야기를 뚝심 있게 전달하면서도 플레이어의 개성을 고르게 녹여낸 차기작을 볼 수 있기를 바란다.

아이엠 ‘GOD DAMN’

DUALITY
스타쉽 엔터테인먼트
2021년 2월 19일

예미: 첫 솔로 EP "DUALITY"를 내놓은 몬스타엑스의 래퍼 아이엠. 중저음 톤을 살린 싱잉 랩으로 전 곡을 이끌어 가는데, 시종일관 이모(emo) 정서를 가져가되 타이틀곡 ‘God Damn’에서는 탐미적인 영상 및 연출로 아이돌로서의 면모를 놓치지 않는다. 앨범 전 곡의 작사 작곡을 도맡았지만, 자기를 각인시키겠다는 야심보다는 트렌드에 대한 소화력이 타이틀곡과 앨범 모두에서 돋보였다. 싱잉 랩 스타일에서 준수한 기량을 보여주고, 장르 특유의 어두운 정서와 서정성을 가사로 구현한 점이 인상적이었다. 다만 앨범 첫 트랙으로서 ‘God Damn’은 ‘howlin’‘ 등 이후 수록곡을 더 빛나게 하는 포문 역할을 하는 곡인데, 타이틀곡으로 보기에는 멜로디가 다소 약하고 심심하다는 인상이 들어 아쉽다.

이승협 (J.DON) ‘클리커 (Clicker)’

ON THE TRACK
FNC 엔터테인먼트
2021년 2월 22일

하루살이: 지닌 모든 것을 보여주겠다는 야망을 듣는 이에게는 부담스럽지 않게 조화시켰다. 스스로의 이야기를 담았지만, 밑도 끝도 없는 자기 연민이나 자기혐오, 혹은 내용 없는 분노, 과시로 흐르지 않는다. 넘치는 것 없이 매끈한 트랙을 타고 ‘삶의 주체가 나이길 바라 난’이라는 건강한 메시지를 향해 간다. 그 과정에서 설교를 늘어놓기보다 ‘클리커’라는 아기자기한 소재에 가벼운 말장난과 유쾌한 태도를 더해 교과서적인 메시지의 장벽을 낮춘다. 강한 훅을 먼저 제시하고 다시 훅을 향해 차곡차곡 쌓아 올리는 구조를 주로 취했던 엔플라잉 노래들과는 달리, 밀도를 균일하게 유지하되 랩과 노래 스타일을 틈틈이 바꿔 따분함을 차단한다. 한 밴드의 프론트 퍼슨이자 래퍼라는 정체성이 중첩된 위치에서 이승협은 메스꺼운 선입견을 다시 한번 산뜻하게 어긋 낸다.

선미 ‘꼬리’

꼬리 (TAIL)
어비스 컴퍼니
2021년 2월 23일

서드: 주로 여성을 향한 부정적 편견을 담은 단어로 쓰여온 ‘꼬리’를 성적 긴장감과 유희의 은유로 사용하며 자연스레 의미를 전복시키는 가사가 흥미롭다. 비슷한 맥락에서 ‘날라리’의 연장선에 있는 시도처럼 보이는데, 선미가 참여한 가사는 늘 테마가 뚜렷하면서도 사고의 과정을 되짚어보고 싶게 만드는 디테일이 있다.
선미의 곡들이 언제나 그랬듯 퍼포먼스와 합쳐지면서 그 의미가 강조되고 완성된다. 고양이부터 구미호까지 꼬리를 시각화한 안무는 뮤지컬의 한 막을 감상하듯 시선을 압도하며, 특히 삼백안마저 퍼포먼스의 일부로 만들어버리는 선미의 눈빛과 무대 연기력은 여태 보아온 케이팝의 그 어떤 공포 콘셉트보다 섬뜩한 순간이다.

스큅: 겹박자 위에 뭉근하게 퍼지는 관능미는 선미의 솔로 데뷔곡 ‘24시간이 모자라’를 연상케 하나, 색감과 표정이 단적으로 대비되는 앨범 커버에서 드러나듯 그 태도는 정반대다. ‘24시간이 모자라’가 내내 숨이 가쁜 듯한 창법으로 어딘가 절박하고 위태로운 느낌을 냈다면, ‘꼬리’는 파트에 맞춰 목소리를 다채롭게 변환하며 여유롭게 위험함을 연출한다. 음역이 높거나 성량이 압도적인, 흔히 말하는 ‘가창력 좋음’의 범주에 들지 않더라도 좋은 가수가 될 수 있음을 보여주는 예시라 할 수 있겠다. (1theK 채널에서 공개한 ‘꼬리’와 ‘꽃같네’의 라이브 영상을 필히 시청할 것을 권한다)
선미가 연출하는 위험함의 근저에는 EP “Warning”의 삼부작 (‘가시나’-‘주인공’-‘사이렌’) 때부터 굴려온 입체적인 퍼스널리티가 자리한다. 으레 자신의 솔직한 이면을 내보이거나 다양한 협업으로 자아탐구를 거치며 정다면체와도 같은 자아상을 구성하는 여타 셀프 프로듀싱 아이돌과 달리, 선미는 유독 전개도가 명징하게 떨어지지 않는 곡면 도형처럼 느껴진다. 오래간 호흡을 맞춘 FRANTS와의 작업을 중심으로 확고한 스타일을 유지하는 가운데, 저마다 복잡다단한 심상이 녹아있는 악곡, 가사, 안무, 뮤직비디오를 하나의 덩어리로 뭉쳐서 내놓기 때문이다. 요컨대 선미의 위험함의 실체는 곧 어디로 튈지 알 수 없고 곡면 너머를 쉽사리 가늠할 수 없는 구체(球體)의 예측불허함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꼬리’는 선미표 '위험'의 정수를 보여준다. 앞서 이야기한 다채로운 보컬 운용은 물론, 통상의 뜻을 거부하고 겹겹의 함의를 덧댄 메타포가 인상적이었던 ‘가시나’, ‘Noir’ 때와 같이 ‘꼬리 치다’는 표현을 전유해 이를 동물적이고 솔직한 감정표현으로 해석해낸 작사가 돋보이며, 이는 캣우먼을 오마주한 뮤직비디오, 다양한 꼬리 모양을 형상화한 안무와 결합되어 더 큰 폭발력을 발휘한다. 레드벨벳 아이린&슬기 ‘Monster’의 안무가인 Janelle Ginestra를 직접 섭외해 만들었다는 퍼포먼스는 호기심에 찬 고양이의 꼬리, 좌중을 현혹하는 구미호의 꼬리, 날카롭게 곤두선 전갈의 꼬리를 넘나들며 기이한 인상을 남기는데, 결국 이를 완성하는 것은 타의 추종을 불허하는 선미의 표현력임을 짚어야 할 듯하다. 그 어떤 화려한 동작보다도 기억에 남는 것은 광기에 찬 헤드뱅잉, 그리고 섬뜩한 선미의 표정이었다. ‘가시나’의 엉뚱함, ‘주인공’의 파국, ‘사이렌’의 박력, ‘느와르’의 냉혈, ‘날라리’의 광란, ‘보랏빛밤’의 로맨스를 모두 종합해낸 선미의 요약본. 홍소진과 새로이 합을 맞춘 사이드 트랙 '꽃같네' 역시 '가시나'와 'Black Pearl'의 스핀오프로 느껴져 선미가 스스로를 지속적으로 집대성해가고 있음을 실감케 한다.

조은재: 여성을 고양이에 비유하는 것은 아주 오래된 관습이고, 성적인 비하의 의미로 관용될 때도 상당히 잦은 편이다. 그러나 '가시나'와 마찬가지로 선미는 가장 강렬한 여성의 이미지로서 고양이를 전유한다. 무표정으로 정면을 똑바로 응시하며 이어가는 연기는 야생 동물의 모습에 가까운데, 집고양이뿐만 아니라 고양잇과 맹수의 모습까지 언뜻 볼 수 있어 더 에너제틱하게 다가온다. 여느 때보다 낮고 거칠게 들리는 보컬이 일반적으로 생각하는 고양이의 울음소리와 대조적이라서 더욱 몸집이 큰 고양이를 떠올리게 한다. 퍼포머의 존재감이란 그런 것이다.

온앤오프 ‘Beautiful Beautiful’

ONF: MY NAME
WM 엔터테인먼트
2021년 2월 24일

랜디: 첫 정규앨범 “ONF: MY NAME”의 타이틀. 곡을 여는 힘찬 브라스 소리 의성어 'Brrram 빠밤 빠밤 빰빰' 후렴은 노래의 시작이기도, 앨범의 시작이기도, 또 정규 앨범으로 수렴되는 지금까지의 온앤오프 음악의 확언이기도 하다. 노래하고 공연하는 사람들로서 이 시국에 쉽지 않은 시간을 보냈겠지만서도, 온앤오프는 이번에도 힘차고 맑은 청춘찬가로 세상에 나섰다. 그 자체가 주는 뭉클함이 있다.
이제껏 온앤오프가 꾸준히 선보여온 '청량' 계열 케이팝은 세계 팝 역사의 맥락 상 나이 어린 여성층에게 사랑 받는 예쁜 음악, 일명 '버블검 팝'과 큰 연관이 있다. 국내에도 '청량'한 가요는 커리어 초반에 소년미를 어필하기 위해 하는 것이라는 인식이 퍼져있었다. (일명 '남자다운' 모습을 보이려면 그만 둬야할, 오래 할 장르는 아니라는 인식도 내포되어 있었으리라.) 그러나 온앤오프는 드물게 계속해서 청량하고 낭만적인 노래를 발표하고 있는 팀이다. 이것도 일종의 뚝심이라 평하고 싶다. 이런 음악을 반가워하고 지지하는 케이팝 리스너들에게 지키는 의리라고 볼 수도 있을 것이다.
전형적인 아이돌 그룹이라기보다는, 마치 2000년대의 스윗소로우처럼 멤버들의 보이스톤이 다채로우면서도 잘 어우러지는 보컬 그룹으로의 특성이 강한 팀이다 (근데 이제 박진감있는 춤 실력을 곁들인). 브릿지 다음에 오는 주제의 반복을 과감하게 아카펠라로 편곡한 데에서 이 팀이 보여줄 수 있는 실력적 자신감이 엿보인다. 지속적으로 함께 작업해온 프로듀서인 모노트리의 황현과의 신뢰 관계의 결과라고 볼 수도 있을 것이다.
가사가 전달하는 메시지도 빼놓을 수 없겠다. 요즘 나오는 다양한 가요가 저마다의 방법으로 청자들을 위로하고자 할 때 온앤오프가 접근한 주제는 '자기결정권'이다. 온앤오프의 SF 세계관 속에서는 마침내 도래한 안드로이드들의 해방가를 의미하지만, 그 울림은 청자가 노래 밖에서 따라부를때 더욱 선명해진다. 특히 곡 말미에 같은 멜로디를 반복하며 단 한 번만 등장하는 다음의 가사는, 전지구적 어려움을 거치며 존재를 의심 받고 지워짐 당한 사람들에게 멋진 응원가가 되어준다. "살아있다 우린, 꿈을 꾼다 우린 / 아름다운 우리 여기에 있다."

픽시 ‘Wings’

With My Wings
올라트 엔터테인먼트
2021년 2월 24일
놓치기 아까운 음반

스큅: 픽시는 으레 떠올리는 요정의 이미지가 아닌 (레인보우 픽시를 기억해보라) 원전이 되는 잉글랜드 남서부 설화 속 픽시의 이미지를 따온다. 여행자를 놀래켜 겁을 주거나 길을 잃도록 만드는 짓궂은 픽시처럼 ‘Wings’는 시청각적으로 착란을 일으키는 데에 열중한다. 돌연 귓가를 파고드는 인트로의 조잘거림을 뿌리치면 단호하게 찍어내리는 비트가 귀를 난도질하고, 픽시를 묘사한 옛 삽화처럼 그로테스크한 분위기가 곡을 휘감는다. 드림캐쳐의 데뷔 초기 방향성을 블랙핑크와 에버글로우의 방법론으로 풀어낸 듯 보이는데, 아니나 다를까 해외 케이팝 팬덤에서 조금씩 반응을 얻고 있다. 후렴구에 삽입된 비명 소리, 엑소시즘을 보는 듯한 기괴한 동작들 등, 호불호가 갈릴 만한 요소들이 삐걱거리고 있으나, 다소 조악(粗惡)한 구석마저도 그룹의 콘셉트에 맞추어 조악(刁惡)하게 풀어진 듯하다. 자칫 우스워지기 쉬운 콘셉트를 착실하게 수행해낸 멤버들의 역량도 주목할 만하다. 폭주하는 빌드업 끝에 맞닥뜨리는 구호 “We’re the PIXY!”의 해괴한 쾌감 하나만으로 신인으로서 신선한 인상을 주기에 충분했다. 앞으로 콘셉트의 줄다리기를 어떻게 해나갈지가 관건일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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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dology.kr 에디터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