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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자 기고 : ‘Make A Wish’, 더 세심한 케이팝을 원해 – 케이팝의 혼종성과 문화적 전유에 관해

그 휴게소는 특이하게도 바다 한가운데 덩그러니 있었습니다. 바다를 가로지르는 긴 가교의 중앙에서, 한적한 해상공원 한 켠에서, 저는 눈이 섞인 바닷바람을 맞으면서, “문화 전유 자체가 나쁜 건 아니에요. 문화사는 애초에 차용의 역사라고요.” 하고 말했고 그는 “그래서 남의 종교를 마음대로 써놓고 문제 되니까 모르는 척 삭제한 게 괜찮나요?” 하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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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ake A Wish’, 더 세심한 케이팝을 원해

“NCT Make A Wish 무대에서는 모스크1)가 있는 배경을 사용하셨습니다. 종교를 미학으로 사용해서는 안 됩니다. 무슬림과 그들의 종교에 대해 모욕적이고 무례하므로 이것을 고치고 사과하십시오.” (2020년 10월 KBS World TV 계정에 전송된 멘션)

1) 이슬람교에서, 예배하는 건물을 이르는 말

그 휴게소는 특이하게도 바다 한가운데 덩그러니 있었습니다. 바다를 가로지르는 긴 가교의 중앙에서, 한적한 해상공원 한 켠에서, 저는 눈이 섞인 바닷바람을 맞으면서, “문화 전유 자체가 나쁜 건 아니에요. 문화사는 애초에 차용의 역사라고요.” 하고 말했고 그는 “그래서 남의 종교를 마음대로 써놓고 문제 되니까 모르는 척 삭제한 게 괜찮나요?” 하고 말했다.

차용된 타문화 요소에 대한 비판, “문화 전유”

2001년 11월, 유네스코는 ‘유네스코 세계 문화 다양성 선언’을 통해 문화 다양성을 인류 공동의 유산으로 규정하고 인간 존엄성의 존중과 소수집단 및 원주민의 자유·인권보장을 권고하였습니다. 이에 따라 협약 당사국들은 문화 다양성 보존을 위한 노력을 의무화하고 국제적 협력관계를 구축하였습니다. 이어 UN 위원회는 2017년 ‘제34차 세계 지적재산권 기구 정부 간 위원회’에서 원주민 문화에 대한 전유를 금지하고 관련 문제를 처리할 것을 촉구하였습니다.

문화 다양성 보존을 위한 국제사회의 노력은 글로벌 대중문화 소비자의 사회적 책임 의식을 강화하였습니다. 이것이 최근 잦아지고 있는 케이팝의 일부 창작물 대상 문화적 전유 (cultural appropriation) 비판의 배경입니다. NCT 역시 2020년 10월, 유닛 NCT U를 통해 발매한 타이틀곡 ‘Make A Wish’ 활동에서 문화적 전유 관련 문제 제기를 받았었습니다.

“문화 전유”란 문화 다양성 침해를 비판하는 쟁점 중 하나로, 문화를 경제적 자원으로 인식하는 세계적 가치변화에 대응해 이에 대한 보존 및 올바른 활용을 촉구하고자 정립된 개념입니다. Oxford Reference에서는 비서구/비백인 양식에 대한 서구의 전용을 지적하는 개념으로 소개되고 있으며 해당 문화에 대한 이해 혹은 경의가 없이 타 문화를 사용하는 행위는 제국주의적 착취와 지배의 연장선에 있음을 명확히 합니다. 문화 전유의 개념은 국내에서는 문화 도용, 문화적 차용, 문화 전용 등의 의미를 포괄하는 넓은 의미로 사용되고 있습니다. 관련 논의에서 “문화”는 유전자원(generic resource), 전통 지식(traditional knowledge), 전통 문화 표현물(TCEs/EoF) 이라는 관점으로 다뤄집니다.

하지만 제국주의를 경계하고자 형성된 문화 전유 논의가 아시아 문화의 특수성을 반영할 수 있을까요? 예를 들어 미국의 비백인이 형성한 하위문화를 동아시아인이 전유했을 때, 이것을 식민주의의 폭력에 대한 미화라고 비난할 수 있나요? 단순히 나쁜 창작의 사례가 될 뿐 아닐까요?

케이팝의 정체성, “혼종성”

전유의 개념이 현대사회에서 함의하는 부정적 시각은 서구 창작자들이 비서구의 문화양식을 쉽게 가공 가능한 원자재로 대함으로써 그것을 희생시켰다는 입장에 기반하고 있습니다. 이것은 제국주의적 역사가 전제되기에 성립하는 비판입니다. 때문에, 비판의 대상이 케이팝이 된다면 이 전제를 사용하는 것은 부적절해집니다. 서구의 문화 유통이 미국을 비롯한 서구 자본주의 국가들로부터 주변국으로 전파되는 일방적 흐름이었다면, 동아시아의 문화교류는 서구 대중문화에 대한 수용과, 비슷한 문화 자본을 보유한 인접 국가 간 상호 변용·번역이 동시에 일어나 혼종화된 결과이기 때문입니다. 일본이 수용한 서구의 문화는 한국 내에서 서구의 방종성이 아니라 일본의 세련미로써 수입되었고, 이미 한국에 전파되어 있던 미국문화와 결합해 중화권으로 수출되었습니다. 상호 간의 이해를 위한 노력과 관심으로 다국적 정체성을 보유한 “혼종적” 장르를 구축한 것입니다.

그렇다면 혼종적 정체성을 근거로 케이팝에 대한 문화 전유 비판은 모두 부적절하다고 볼 수 있을까요? 케이팝에 대한 관련 논의는 장르의 핵심 정체성인 지역성을 세계화가 탈피시키면서 발생하였습니다. 통신의 발달과 국제소비자의 의식 성장은 케이팝이 가진 혼종성에 대한 윤리적 검토를 초래하였고, 검토 결과 창작물을 구성하는 요소의 생산자 중 한쪽이 가진 “문화적 소수성이 명백히 무거울 때”, 케이팝의 이 “이질적 문화 공존상태”는 문화 다양성을 침해한다는 비판을 받게 됩니다. 타당한 이유 없이 감각적 강렬함을 위해 타 공동체의 정체성을 전유하는 것은 무례한 행동이며 특히, 전유한 문화가 국제사회의 억압으로 당사자에게 허용되지 않는 경우 해당 창작물은 인종적 우위와 창작자라는 특수성으로 획득한 제국주의적 수혜임을 간과할 수 없습니다. 이것은 혼종성을 핵심으로 하는 케이팝도 예외가 될 수 없습니다. 케이팝의 영향력은 단순 서구사회에 국한되지 않기 때문입니다.

케이팝에서의 “문화 전유”, 더 좋은 콘텐츠를 고민하기

저는 문화자원 침해에 대한 국제사회의 우려를 수용하는 동시에 케이팝의 역사적 특이성을 고려하여 문화 전유 논의의 기틀을 마련하고자 기존 논의에서 제기되던 비판적 쟁점들을 선별하고, 비판의 범위를 조정하였습니다. 케이팝 내의 문화 전유 비판에서 장르의 특성을 간과하지 않으면서 문제를 검토하기 위한 쟁점은 다음과 같습니다.

  1. 전형화: 가장 대표적인 문화 전유의 형태로 감각적 차용에 치중한 경우입니다. 단순히 강렬함만을 위한 특징의 부각·강조는 집단에 대한 단순화를 유발하여 소수자성을 강화하고, 나아가 희화화로 연결되기도 합니다. 인도라는 거대한 문화권을 단순화 및 희화화했다는 비판을 받았던 노라조의 곡 ‘카레’와 이의 뮤직비디오가 해당 사례입니다.
  2. 탈맥락: 가장 심각한 문화 전유의 형태로 대상의 상징성과 역사성, 용도를 왜곡한 경우입니다. 타 문화 구성원의 정체성과 밀접한 관련이 있는 상징물들을 전유하고자 한다면, 사용이 엄격히 적절한 경우에만 허락되어야 하며 대상에 관한 충분한 조사와 존중의 메시지가 함께 보여야 합니다. 인도의 신 가네샤의 이미지를 삽입했다가 비판받았던 블랙핑크의 ‘How You Like That’ 뮤직비디오가 해당 사례입니다.
  3. 배제: 가장 넓게 받아들여지고 있는 문화 전유의 형태로 원형의 출처가 왜곡된 경우입니다. 출처를 밝히지 않고 사용하거나 출처 정보가 잘못된 경우, 그리고 원 문화의 생산자가 창작 및 분배 과정에서 소외되는 경우 등이 있으며 이는 집단의 것을 개인이 사익화했다는 비판을 피할 수 없습니다.

케이팝에 대한 배제적 문화 전유 비판에서 유의해야 하는 지점은 이것이 제국주의적 접근으로 발생하는 타 장르의 전유와 달리 장르가 보유한 혼종성의 연장에서 발생한다는 점입니다. 따라서 본 관점의 적용을 위해서는 원본 생산자가 케이팝에 비해 “압도적으로 무거운 문화적 소수자성”을 보유하였는가를 먼저 판단해야겠습니다. 예를 들어 케이팝에서 나타나는 서구 대중문화 요소 및 동아시아 문화의 전유는 배제적 전유보다는 미학적 차용으로 규정되어야 합니다. 반면 국제사회에서 충분히 조명되지 못하고 있는 지역·집단의 문화에 대한 전유가 있었다면 창작물의 생산 및 제공 과정에서 해당 요소의 조명이 충분했는지를 고민해봐야겠습니다.

논의에서 한발 더 나아가자면, 저는 디아스포라2) 소비자에 대한 고민을 추가하고 싶습니다. 인종 배경이 다양한 팬층이 유입되고 있다는 점에서 케이팝이 가져야 할 전형화에 대한 경계는 타문화가 형성한 수준보다 더 강화되어야 합니다. 글로벌 대중문화에서 단순화되어 소비되는 요소들에 대해 케이팝이 취할 수 있는 더 나은 태도는 원본 생산자의 입장뿐 아니라 해당 문화권에서 타 문화권으로 이주한 소비자의 입장까지도 살펴보는 것입니다. 미국에서 인종차별적으로 과장되던 아시안의 “찢어진 눈”을 패션화하고자 비아시안 사이에서 유행했던 ‘Fox Eye 메이크업’이 예시가 될 수 있겠습니다. 이는 한국 거주 한국인에게는 문제로 간주 되지 않았지만, 미국 거주 아시안에게는 일상적 폭력에 대한 은폐 시도로 받아들여졌습니다.

2) 세계 각지에 산재하면서 정체성과 민족성을 상실하지 않고 세대교체를 반복하여 온 공동체

저는 다시 눈이 내리던 바다 위 휴게소로 돌아가서, 나누었던 대화에 대해 생각해보았습니다. NCT U의 ‘Make A Wish’에 제기된 문제들은 제가 케이팝의 팬이 되고 나서 가장 처음 접했던 문화 전유 논란입니다. 당시 그룹은 ‘알라딘’ 콘셉트로 활동을 했고, 양손을 가슴 앞에서 모으는 포인트 안무와 아랍문화를 연상시키는 패턴으로 장식한 무대를 통해 이를 표현 했었습니다. 곡이 공개된 당시 제가 확인했던 논란들은 다음 세 가지였습니다.

  1. 뮤직뱅크, 인기가요 무대에 배경으로 사용된 이슬람 성지 ‘Imam Hussein Shrine’ 이미지 비판
  2. 소재 ‘알라딘’이 상징하는 오리엔탈리즘의 재생산 우려
  3. 남부 아시아의 전통춤을 연상시키는 포인트 안무 문제 제기

저는 제기된 문제들을 앞서 정립한 세 가지 기준을 적용하여 검토해 보았습니다.

  1. 무대장치에 대해, [KBS와 SBS는 무슬림 문화를 탈맥락적·배제적으로 전유하였다]
    • 사용된 종교 건축물은 이라크 카르발라시에 위치한 이슬람 성인들의 영묘로, 해당 건축물이 상징하는 종교적 의미는 ‘Make A Wish’라는 곡의 제목 혹은 내용과 무관합니다. 이는 타 문화권의 종교 상징물이 가지는 문화적 맥락을 탈락시킨 채 시각적 강렬함으로만 소비한 전형적인 ‘탈맥락적 문화 전유’입니다. 동시에 기획, 송출 및 수익분배 과정에서 관련 문화의 소유자가 배제되었기 때문에 ‘배제적 문화 전유’입니다. 해당 방송사들은 문제 제기 이후 별다른 조치 없이 영상을 삭제하였다는 점에서 명백한 문화적 실책을 저질렀습니다.
  2. 소재에 대해, [NCT U는 안 좋은 미학적 차용을 하였으나, 문화를 전유하지는 않았다]
    • 많은 고민이 필요했습니다. ‘알라딘’은 그 자체로서는 “보존이 필요한 소수집단의 문화”로 간주되지 않기 때문입니다. 동시에 이 소재는 문화 제국주의를 상징하는 대표적인 사례로, 원문은 서구의 지배자적 시각을 통해 아랍 문화권을 단순화, 전형화, 대상화하여 서술하고 있습니다. 따라서 본 소재를 다루었던 최근의 창작물들은 원문이 지닌 한계들을 적극적으로 수정하는 노력을 기울여 왔습니다. 반면 ‘Make A Wish’에 차용된 요소들은 전형화된 미적 이미지들뿐입니다. 따라서 이것은 문화 전유보다는 ‘트렌드를 반영하지 못한 실패한 차용’입니다.
  3. 포인트 안무에 대해, [NCT U는 문화적 전유를 하지는 않았으나 디아스포라 소비자에 대한 고려가 이루어졌다면 더 좋은 창작물을 생산할 수 있었다]
    • 가슴 앞에서 양손을 마주 대는 안무의 사용에 있어, 당시 문제 제기 과정에서 언급된 국가의 안무가들이 직접 “전통춤과 무관하므로 문화 전유로 볼 수 없다”라는 입장을 밝혔던 것으로 기억합니다. 하지만 해당 문화권의 “허가”가 있으면 제기된 문제에 대해 고민하지 않아도 될까요? 다수의 소비자가 특정 문화권을 연상하였다면 이것은 전형화된 이미지에 대한 차용이 이루어졌다고 판단됩니다. 따라서 문화 전유로는 볼 수 없겠지만, 문제를 대하는 과정에서 해당 문화권과 유관한 이주민, 즉 전형화된 이미지의 전파로부터 더 취약한 소비자에 대한 고민이 가능했을 것으로 보입니다. 세심함의 확대는 더 좋은 콘텐츠의 생산으로 이어집니다. 가시 적인 대응이 없었다는 점에서 아쉬움이 남습니다.

더 세심한 케이팝이 될 수 있기를

타 문화에서 영감을 얻어 경의와 존경의 뜻을 전달하는 태도는 그 문화가 지닌 가치를 높게 평가한다는 뜻이며 문화 간 융합을 활성화할 수 있는 훌륭한 수단입니다. 핀란드의 밴드 나이 트위시는 아메리카 원주민의 전통음악 요소를 활용한 곡 ‘Creek Marys Blood’의 창작을 위해 해당 문화권 내의 전통 음악 창작자와 협업을 진행했었습니다. 이 사례는 문화 간 격차를 극복하고 문화 다양성에 기여했던 훌륭한 사례입니다.

문화적 전유는 문화가 가진 확장성과 연쇄성의 결과이자 오랜 인류사적 현상이었지만, 대중문화의 탈영토화 이후로는 전유의 수행에서 의식 있는 태도가 요구되게 되었습니다. 글로벌 대중문화의 획일화라는 흐름 안에서 문화 다양성 보호는 인간 존엄과 분리 불가능한 윤리적 책임입니다. 케이팝 역시 이러한 흐름에서 더 큰 성장을 이루어 왔으며, 특히 장르의 근간을 이해와 소통에 둔다는 점에서 어떤 대중문화보다도 다양성이라는 가치를 상징하고 있습니다. 우리가 사랑하는 케이팝을 케이팝이게 하는 가치와 상징을 잃지 않으면서도 장르 내에서 문화윤리에 대한 책임감 있는 분위기가 형성되어 실책의 반복을 멈추고, 더 다양한 소비자에게 더 안전하고 더 상냥한 경험을 제공할 수 있게 되기를 바랍니다.

*본 글은 푸코 애호가 H, SM의 아카팬 S, 선천적 이방인 H, 디즈니가 키운 애니메이터 Y, 게임시나리오 라이터 Y와의 대담을 기반으로 작성되었습니다.

참고문헌

  • 제 2차 유네스코 문화 다양성 협약 이행 국가보고서, 문화체육관광부, 2018
  • 동아시아 대중문화물의 수용과 혼종성의 이해, 김수정, 2022
  • 다름과 다양성을 듣는 음악학, 김수진, 2021
  • Cultural Appropriation in Contemporary Fashion, Selee Lee, 2019
  • 현대 패션에 나타난 문화적 전유와 문화 다양성 가치 추구, 김지은, 2021

글: Mㅏ리모

삶의 대부분을 철학과 독립예술, 인권운동에 쏟아부었으나 별안간 삶에 22명의 대단하신 분들이 난입함.

By Editor

idology.kr 에디터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