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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산 2021 : ④필자별 개인 리스트

〈아이돌로지〉의 결산 2021 경쟁 부문은 올해의 신인 8선, 올해의 노래 10선, 올해의 앨범 10선으로 마무리되었다. 그러나 경쟁 부문에 미처 담기지 못한 곡들도 존재하는 법. 이에 9인의 필진이 필자별 개인 리스트를 작성했다. 개인 다양한 테마의 수록곡 플레이리스트부터, 기억에 남는 후속곡, 퍼포먼스, 문제작에 이르기까지. 다채로운 리스트를 통해 2021년이 더욱 풍성히 기억되기를 바란다.

〈아이돌로지〉의 결산 2021 경쟁 부문은 올해의 신인 8선, 올해의 노래 10선, 올해의 앨범 10선으로 마무리되었다. 그러나 경쟁 부문에 미처 담기지 못한 곡들도 존재하는 법. 이에 9인의 필진이 필자별 개인 리스트를 작성했다. 다양한 테마의 수록곡 플레이리스트부터, 기억에 남는 후속곡, 퍼포먼스, 문제작에 이르기까지. 다채로운 리스트를 통해 2021년이 더욱 풍성히 기억되기를 바란다.

산책 메이트 수록곡 by 마노

나는 산책을 즐긴다. 건강을 위해서도 있지만, 산책만큼 오롯이 자기 자신에게 집중하며 동시에 음악에 몰입하기 좋은 시간이 없다고 생각하기 때문이기도 하다. 그러다 문득 귀가 뜨여 무심결에 플레이리스트를 확인하게 만드는 곡을 발견하곤 한다. 산책의 든든한 벗이 되어준 명-수록곡들을 모아보았다. 순서는 발매 순.

청하 ‘Lemon (Feat. Colde)’

압도적인 볼륨만큼이나 각양각색 매력적인 수록곡으로 넘치는 앨범 중에서 단연 ‘최애’로 꼽고 싶은 곡. 라틴풍 댄스곡이 이렇게나 산뜻하고 사랑스러울 수 있다니. 콜드(Colde)의 ‘열일’을 적극적으로 응원하고 싶다.

위클리 ‘나비 동화’

이렇게나 티 없이 해사하고 우직할 만치 정직하게 순수를 노래하는 곡에 마음을 빼앗기지 않을 수 있을까. 부디 그들의 이야기도, 우리의 이야기도 “영원히 행복했”다 적히기를.

백현 ‘Love Scene’

첫 소절, 나지막이 “회색빛” 하며 운을 떼자마자 ‘끝났다’며 전율에 떨게 했던 순간을 아직도 잊지 못한다. 백현이라는 보컬리스트를 재발견하게 해준 숨은 보석 같은 곡.

아이유 ‘아이와 나의 바다’

아이유가 무심히 툭툭 던지듯 꺼내놓는 단어와 문장에 몇 번인가 목이 메곤 했다. 지겨울 만큼 숱한 “마음이 가난한 밤”을 건너온 이라면 더더욱 이 곡을 그저 지나치기 어려울 것이다. 자칫 뻔해지기 쉬운 곡을 특별하게 만드는 ‘작사가 아이유’의 마법 같은 저력을 느낄 수 있는 곡.

김세정 ‘집에 가자’

때마침 늦은 저녁에 산책을 하던 참이었다. 어둠 속에서 홀로 걷는 귀갓길이 외롭지 않도록 곁에서 속삭여주는 목소리는, 흔해 빠진 표현이지만 따스한 위로 그 자체였다. 김세정이 얼마나 좋은 싱어송라이터인지 알 수 있는 곡.

온앤오프 ‘여름의 끝’

매해 여름의 끝자락, 뜨거웠던 계절을 뒤돌아볼 때 반드시 찾게 될 곡. 계절과 계절 사이, 특히 여름이 저물 즈음에 느끼곤 하는 모든 정서와 심상을 집약적으로 담아냈다. 덕분에 내년에 맞이할 여름의 끝이 덜 쓸쓸할 듯하다.

위키미키 ‘One Day’

아티스트 본인이 직접 참여한 작업물에서, 좋은 의미로서의 ‘자의식’을 읽게 되는 순간이 있다. 멤버 지수연이 참여한 이 곡 역시 꿈이나 소망과 같은 자기 자신의 내면에 집중하는 모습을 보이는데, 왠지 모르게 뭉클해짐과 동시에 진심으로 그런 꿈과 소망을 응원하게 된다. 지수연이 앞으로 써내려 갈 다른 이야기도 무척 궁금해진다.

이 시국의 여행 by 예미

어딘가로 떠나 본 기억이 아득해지는 이 시국에도 여행을 다룬 케이팝은 꾸준히 나왔다. 씁쓸한 시국을 잠시 잊게 해 주는 청량감과, 떠날 수 없는 시국에도 즐거움을 놓지 않으려는 노력이 돋보였다. 순서는 발매 순.

온앤오프 ‘누워서 세계 속으로’

침대에서 뒹굴거리며 휴대폰으로 세계를 일주하는 가사와, 세계 각지의 팬들이 보내준 사진과 영상에 한국에 있는 멤버들을 겹쳐놓은 뮤직비디오가 절묘하게 맞아떨어졌다. “집 밖은 위험한” 시국에 소소한 재치가 위안이 됐다.

오마이걸 ‘Dun Dun Dance’

제주도를 배경으로 힘껏 춤추는 모습에 우주적 요소가 덧대어졌다. 외계인의 눈처럼 기묘한 카메라워크로 신나게 노는 모습을 담으니, 일상 탈출이 더 즐거워 보였다.

프로미스나인 ‘WE GO’

세탁기 앞에 앉아 있어도 비행기 타는 설렘은 여전하다. 포토샵으로 여행 사진을 창조하듯, 노래가 있다면 여행의 즐거움도 창조할 수 있을 것 같다.

조이 ‘안녕’

여행지에서 여러 사람을 만나 환대받고 교류하는 경험은 삶을 더 행복하게 해준다. 그 경험이 힘들어진 이 시국은 이 곡을 자꾸 맴돌게 한다.

위클리 ‘Holiday Party’

친구와 여행을 떠나 숙소에서 속닥속닥 이야기하며 추억을 쌓았던 경험이 떠올랐다. 지금의 청소년들도 이런 추억을 다시 쌓을 수 있었으면 좋겠다.

주목할 만한 아이돌 일본 발매 곡 by 에린

코로나 19로 일본 시장 진출은 이전보다 위축된 듯 보이지만, 아이돌에게 일본 시장은 여전히 중요한 시장이다. 일본 발매 곡이 때때로 아이돌 팀의 디스코그래피를 더욱 풍성하게 만드는 만큼 2021년에 발매한 곡 중에서 꼭 짚고 넘었으면 하는 다섯 곡을 꼽아봤다. 순서는 발매 순.

드림캐쳐 ‘Don’t light my fire’

곡의 도입 건반 소리에서부터 울려 퍼지는 음산함에 드럼과 일렉 기타 소리는 비장함을 더한다. 드림캐쳐의 주축이 되는 정서를 확실하게 보여주는 곡.

씨엔블루 ‘ZOOM’

한국에서 발매한 ‘싹둑’은 캐치함을 담는 데에 집중했으나, 일본 발매 곡 ‘ZOOM’은 훨씬 담백하다. 꼼꼼히 채운 정교한 기타 소리가 만들어내는 선율은 일본 팝 밴드에 더 가깝다. 한국과 일본 활동의 차이를 선명하게 보여주는 발매 곡이다.

트와이스 ‘Good at Love’

묵직한 베이스 위로 트와이스의 저음 위주의 보컬이 돋보인다. “Taste of Love”의 수록곡 ‘Conversation’, ‘Scandal’과 “Formula of Love: O+T=<3″의 ‘Scientist’ 사이의 징검다리 격인 곡으로, 트와이스의 여유 있는 무게감이 드러난다.

이달의 소녀 ‘Hula Hoop’

‘PTT’ 활동으로 이달의 소녀의 카리스마를 느낄 수 있었지만, “&”의 수록곡 ‘WOW’에서는 쉼 없이 교차하는 코러스에서 이달의 소녀의 생기 넘치는 장난스러움을 발견할 수 있었는데, 이 연장선상에서 ‘Hula Hoop’ 역시 유쾌한 에너지를 뽐낸다. 빼곡히 곡을 채우고 있는 추임새들이 통통 튀는 분위기를 살린다.

투모로우바이투게더 ‘Ito’

‘Ito’는 투모로우바이투게더가 인연의 실로 묶인 상대방을 만나고자 하는 소망을 노래한, 아련한 감성이 담긴 곡이다. 2021년 이모 록을 차용한 ‘0X1=LOVESONG’과 ‘LO$ER=LO♡ER’가 처절한 감성으로 가득했던 가운데, 연말에 발매한 ‘Ito’는 따뜻한 온기를 채워 넣으며 한 해의 활동을 갈무리한다.

아이돌 록 페스티벌 by 하루살이

팝 신(scene)에서 벌어지는 록/펑크 리바이벌 흐름 탓일까? 2021년에는 짜릿한 기타 사운드를 쉽게 들을 수 있었다. 그런 의미에서 한 해 동안 아이돌팝에서 발견한 록으로 자그마한, 그러나 충분히 시원하고 묵직한 록 페스티벌을 꾸려 보았다. 순서는 발매 순.

바비 ‘DeVil’

“‘DeViL’의 리얼 드럼과 기타에 기반한 사운드는 앞서 록이 없던 ‘RocKstaR’의 증거가 되고, 이는 이야기의 회귀와 함께 앨범을 처음으로 돌려 다시 듣게 만든다.” (Monthly : 2021년 1월 – 앨범 中 일부 발췌)

드림캐쳐 ‘시간의 틈 (New days)’

일본식 멜로딕 펑크 스타일로 착실한 드럼, 베이스 위에 일렉 선율이 선명하게 뻗어 나간다. 확실한 기승전결 구조까지 갖춰 여정은 더 흥미진진하게 전개된다.

원위 ‘베로니카의 섬’

상쾌한 스트링 신스 리프와 유려한 기타 솔로가 “둘만의 universe”를 지탱한다. 가볍게 갈무리된 목소리 아래 해맑고 아기자기한 디테일이 빼곡하다.

투모로우바이투게더 ‘디어 스푸트니크’

걸걸한 오버드라이브 기타와 과감히 내지르는 보컬은 록이 밴드의 전유물이 아님을 입증한다. 프리-코러스의 서늘한 분위기 전환으로 케이팝 문법 또한 놓치지 않았다.

LUCY ‘동문서답’

악기별로 펜타토닉 스케일 릭을 제시하며 운을 뗀다. 제각기 답을 찾아 달려 나가다 다시 메인 리프로 수렴하기를 반복하고, 그 사이 투명한 마음은 어느 한 곳 엉킴 없이 펼쳐져 있다.

엔플라잉 ‘Video Therapy’

“일렉 기타가 날카롭게 자기주장을 펼치는 ‘Video Therapy’는 쫀쫀한 베이스 슬랩에 스크래치 샘플과 랩이 속도감 있게 질주한다. 감상자를 노래의 구성원으로 끌어들이며 앨범은 방향을 되찾고 다시 ‘Moonshot’을 향해 비행한다.” (Monthly : 2021년 10월 – 앨범 中 일부 발췌)

씨엔블루 ‘99%’

말끔한 멜로디와 경쾌한 디스코 리듬이 답답한 일상에 숨통을 틔운다. 특유의 청량감과 밀도 높은 내공이 엿보여 라이브를 기대할 수밖에 없는 곡.

나의 콘서트 세트 리스트 by 심댱

올해 주목한 수록곡에 가깝지만, 애써 ‘콘서트 세트 리스트’로 정한 이유가 있다. 2021년에 관람한 아이돌 콘서트는 대부분 온라인 콘서트였는데, 공연이 끝날 때마다 이 화려함을 눈앞에서 보고 싶다는 아쉬움을 많이 느꼈다. 언젠가 코로나 19가 잠잠해지고 방역 수칙이 완화되면 마스크를 벗고 볼 수 있는 오프라인 콘서트에 꼭 참여하고 싶다. 작년 단독 콘서트를 열지 못한 그룹의 곡은 애착을 조금 더 담아 세트 리스트에 채워보았다.

위클리 ‘Weekend’

기다려온 대면 콘서트 전날의 설렘과 닮은 곡. 공연 전날, 우리는 아티스트만큼 분주해진다. 공연을 위한 드레스코드도 챙기고 날씨도 봐 두고, 누굴 만나서 뭘 할지 스케줄 플랜도 체크해야 하니까 말이다. 공연도 대부분 금요일부터 일요일이니, 이 곡을 선곡하지 않을 수 없었다. ‘손꼽았던 날짜 위로/웃고 있는 우리가 보일’ 그때가 너무나 기다려진다. 그리고 공연장에 도착하면 공연 시작 전까지 수록곡이 배경음악으로 깔리는데, 공연 시작 직전에 들릴 마지막 곡처럼 느껴진다.

아이유 ‘라일락’

조금 뻔해 보여도 어쩔 수 없다. 콘서트는 그해 발매 곡을 고루 들을 수 있는 몇 안 되는 이벤트이니까 말이다. 작년에 만날 수 없었던 아쉬움을 가장 크게 해소해 줄 무대는 잘 알려진 타이틀곡일 것이다. 여러 타이틀곡 중 콘서트를 가장 화사하게, 그리고 확실하게 물들일 곡을 선택했다. 지난 20대의 나날과 다가올 30대에게 보내는 안녕을 담은 ‘라일락’은 관객에게 근사한 인사가 될 것이다.

시그니처 ‘Climax’

가장 애정하는, 최애 수록곡을 무대로 보는 시간은 참 소중하다. “나는 나일 뿐 그 누구도 아니야”부터 시작하는 프리-코러스부터 후렴구까지 부드럽게 클라이맥스로 치닫는다. 몽환적인 분위기 때문에 보랏빛 조명이나 키네틱 전구가 어울릴 것 같다. 개인적으로 “I YA E YA E YA E YA AH”를 부를 때 안무가 궁금해서 무대로 보고 싶다.

빅톤 ‘Unpredictable’

심댱 배 2021 올해의 곡 리스트에 오른 곡. (익히 올해의 곡 후보로 밀었지만, 강력한 후보들에 밀려 눈물을 훔치고 말았다.) 후렴구에서 “Un-pre-dic-t-able”을 발음할 때의 치찰음, 5음절로 팽팽히 늘인 텐션과 베이스의 조화가 매력적이었다. 왜 당시 타이틀곡이나 후속곡으로 나오지 않았는지 모르겠는데, 무대로 직접 봐야 이 분노가 사그라들 것 같다.

디오 ‘다시, 사랑이야’ & ‘Si Fueras Mía’

열기를 살짝 환기하는 의미로, 멤버들의 솔로 무대가 이어진다. 방송에서 흔히 볼 수 없기에, 절대 놓치지 말자! 디오의 미니 앨범에는 동일 곡의 영어 혹은 스페인어 버전이 있는데, 앨범을 들으면서 매시업을 소망하게 되었다. 이 곡을 부를 때 1절은 한국어로, 그리고 2절은 스페인어로 부르면 좋겠다. 저음도 그의 유려한 스페니쉬 발음도 놓칠 수 없는 짬짜면 같은 무대를 기다려본다.

둘째이모 김다비, 있지 ‘얼음깨’

스페셜 게스트와 흥겹게 만들어내는 무대가 기대된다. 멋진 퍼포먼스를 수행하던 있지가 김다비와 함께 춤추면서 활짝 웃어버리는 모습을 보고 싶다. 텐션을 여유롭게 가져가기 위한 환기용 트랙으로 넣을 수 있지만, 본 콘서트 투어보다는 앵콜 콘서트에서 서프라이즈 무대로 하기에 적절한 선곡일 수도.

AB6IX ‘앵콜(ENCORE) (Feat. ABNEW)’

이 세트 리스트를 만들게 한 곡. 온라인 콘서트가 못내 아쉬운 이유는 객석을 가득 메운 함성이 없기 때문일 것이다. 이심전심, 아티스트도 마찬가지인가 보다. AB6IX는 아예 팬덤을 피처링진으로 세워 아티스트 역시 팬덤만큼 대면 콘서트를 기다리고 있음을 노래로써 표현했다. 음원으로 들을 게 아니라 객석에서 ‘앵콜’ 연호를 직접 부르고, 그 함성을 듣고 싶다.

놓치기 아까운, 취향 저격 걸그룹 수록곡 모음 by 비눈물

싱글 위주로 돌아갈 수밖에 없는 케이팝 산업이지만, 그 뒤편에서는 여전히 앨범의 퀄리티를 높이기 위해 명품 수록곡을 깎는 장인들이 존재한다. 무심히 지나치기엔 정말 아쉬운, 당신의 귀를 즐겁게 해줄 다양한 매력의 걸그룹 수록곡을 뽑아보았다. 순서는 발매 순.

드림캐쳐 ‘시간의 틈 (New days)’

이제 ‘애니 주제가’스럽다는 말은 더 이상 폄하의 의미가 아니라 오히려 ‘드림캐쳐’스럽다는 대표 수식어가 된 게 아닐까. 근래 들어 조금씩 옅어지던 초창기의 밴드 사운드를 확실하게 불러오면서 오타쿠 감성도 놓지 않는 가사까지, 오랜 팬들에게 가슴 벅찬 향수를 안겨다 주는 ‘드림캐쳐’다운 팬 송이라고 할 수 있겠다.

위클리 ‘Uni’

위클리가 가진 에너지를 가장 밀도 높게 압축하여 화려하게 터트리는, 그야말로 다이내믹의 끝. 팝핑 캔디처럼 시도 때도 없이 폭발하는 아찔한 생동감 속에서도 치밀하게 짜인 곡 구성과 멤버들이 티키타카 주고받는 화음과 코러스가 빈틈없이, 조화롭게 어우러지며 마지막 절정부에 도착한 청자의 고양감을 한계까지 밀어붙인다.

오마이걸 ‘나의 인형 (안녕, 꿈에서 놀아)’

꿈속 낡은 인형과 마주치면서 펼쳐지는 동화풍 이야기는 〈토이 스토리〉의 장난감들 혹은 〈인사이드 아웃〉의 빙봉처럼 모두가 한 번씩 가져본 동심의 세계를 눈앞에 불러온다. 보컬을 왜곡하는 필터나 목소리를 여러 겹으로 쌓는 등의 실험적 장치들이 드림팝의 아른하고 몽롱한 분위기를 강조하면서 그 현실감 (혹은 비현실감)에 한층 힘을 실어준다.

공원소녀 ‘I Can’t Breathe’

달의 뒷면이라는 앨범 제목처럼 여태 드러나지 않은, 공원소녀의 시리어스한 면을 제대로 볼 수 있었던 트랙. 컨셉에 잘 어울리는 멤버를 알맞게 기용하여 과감한 무대 퍼포먼스를 선보임으로써, 그룹이 쌓아온 신비하고 몽환적인 이미지와의 큰 갭에도 불구하고 이질감 없이 청자들을 설득시키고 또 매료시킬 수 있었다.

이달의 소녀 ‘WOW’

거친 카리스마나 칼군무로만 이달의 소녀를 알던 사람에게 ‘HULA HOOP’와 함께 주저 없이 추천해주고 싶은 곡. 캐치한 멜로디와 두근거리는 비트 위로 이달의 소녀는 ‘걸크러쉬’의 껍질을 깨부수고 나와 명랑하고 해사한 매력과 그룹의 특색을 살린 다양한 레인지의 음색을 맘껏 선보이면서 쉴 틈 없이 긍정의 에너지를 뿜어낸다.

에스파 ‘자각몽 (Lucid Dream)’

온통 ‘Savage’ 했던 앨범에서 오롯이 다른 결로 빛을 낸다. 이달의 소녀의 ‘위성’ 혹은 레드’벨벳’에서 느낀 부드러움과 ‘Black Mamba’의 날카로운 금속성이 공존하는 이 트랙이야말로 ‘광야’ 기믹이 먼저 강조되고, 리메이크·커버 곡이 적지 않은 비중을 차지한 그룹의 현재 대외적 행보에서 쉽사리 파악할 수 없는, 에스파만의 오리지널이 아닐까.

빌리 ‘the eleventh day’

빌리의 또 다른 장기인 세심한 보컬 플레이를 재즈풍으로 멋들어지게 꾸며낸 90년대 네오 소울 장르에 자연스럽게 녹여내어, 듣는 이로 하여금 노랫말이 그려내는 미스테리한 세계(관) 속으로 푹 빠져들게 만든다. 일순간 리듬이 변하면서 보컬 하모니의 매력이 극대화되는 브릿지는 문득 레이디스 코드의 ‘Galaxy’를 떠오르게 한다.

인상적인 후속곡 by 조은재

결산 2021 : 필진 대담에서 언급한 바 있듯, 최근 케이팝에서는 후속곡 프로모션 전략을 택하는 흐름이 두드러지게 나타나고 있다. 타이틀곡과는 또 다른 인상을 남긴 후속곡들을 한 데 모아보았다.

AB6IX ‘그 해 여름(DO YOU REMEMBER)’

노스텔지어를 자극하는 제목과 가사의 무드를 극대화하는 서정적인 멜로디가 돋보이는 곡이다. 펑키한 팝 댄스곡 위주로 활동했던 그간의 AB6IX의 이미지와 사뭇 다른 듯 하면서도 미성의 보컬과 드라마틱하게 흐르는 래핑 등이 곡과 좋은 합을 보여 AB6IX의 외연 확장에도 큰 역할을 해냈다.

에이티즈 ‘Eternal Sunshine’

앨범 발매 전 투표를 통해 ‘Deja Vu’가 타이틀곡으로 선정되면서 후속곡이 되었지만 음원 사이트에는 더블 타이틀곡으로 표기되어 있다. 이전 활동곡이었던 ‘WAVE’의 결을 이어가는 곡으로, ‘해적’을 모티브로 카리스마 있는 퍼포먼스를 펼쳐온 에이티즈가 청량한 ‘바다’ 또한 훌륭히 소화해낼 수 있음을 보여준다.

크래비티 ‘VENI VIDI VICI’

커플링곡으로 공개됐던 ‘VENI VIDI VICI’는 데뷔 때부터 이어져 온 크래비티의 서늘한 소년미를 잘 보여주는 곡으로, 타이틀곡보다도 높은 인기와 지지에 힘입어 후속곡으로 활동이 연장된 케이스다. 티저로 공개된 ‘YOUTH’ 버전 콘셉트 필름에서 일렉 기타 솔로 파트가 일부 나온 바 있었는데, 무대에서는 기타 솔로를 댄스 브레이크 구간으로 활용해 곡의 하이라이트로 연출해 ‘퍼포비티’로서의 명성 또한 놓치지 않았다.

엔하이픈 ‘FEVER’

나른한 무드에 중저음과 팔세토를 오가는 보컬이 인상적인 ‘FEVER’는 이들의 세계관인 ‘뱀파이어’ 콘셉트를 설명하기에 가장 적확한 곡이다. 대체로 무거운 세계관은 타이틀곡에 담고, 대중적인 호응을 얻을만한 곡은 후속곡으로 활동하는 최근의 전략과 달리 ‘FEVER’는 ‘Drunk-Dazed’의 심화판처럼 타이틀곡에서 못다 한 이야기를 좀 더 자세히 풀어내는 역할을 하고 있다는 점이 흥미롭다.

ITZY ‘SWIPE’

‘SWIPE’는 ‘달라달라’의 하이틴 이미지와 ‘Not Shy’의 경쾌함이 어우러진 곡으로, 최근에 발표된 곡 중에서는 있지의 아이덴티티를 가장 탁월하게 표현해낸 곡이다. 특히 뮤직비디오에서 “Swipe”라는 가사에 맞춰 화면을 밀어내는 장면은 4세대 아이돌이 대표하는 시대상을 직관적으로 드러냄으로써 있지가 케이팝 4세대의 대표 주자임을 자신 있게 표방한다.

스트레이키즈 ‘DOMINO’

스트레이키즈는 ‘新메뉴’ 이후로 무거운 메시지를 그대로 내놓기보다는 특유의 재기발랄한 감성을 더한 위트로 풀어내기 시작했다. ‘DOMINO’는 ‘新메뉴’의 연장선에 있는 곡으로, 메뉴가 중국집에서 피자로 바뀌었다는 점 뿐만 아니라 “도미노”를 키워드로 여러 스토리를 변주하는 가사가 인상적이다. 이러니 저러니 해도 밀가루를 끊기는 어려운 법이다.

투모로우바이투게더 ‘Magic’

‘Magic’은 한국 정규 2집에 처음으로 수록된 영어 곡으로, 정규 2집 타이틀곡 ‘0X1=LOVESONG’과 커플링곡 ‘No Rules’가 강한 메시지성을 갖고 있다면, ‘Magic’은 메시지보다 투모로우바이투게더의 아이덴티티에 좀 더 주목한 곡이다. 청량한 팝 댄스곡에서 제 기량을 십분 발휘하는 그룹답게 경쾌하면서도 에너제틱한 퍼포먼스를 통해 고유의 소년성을 유감없이 드러낸다.

올해의 문제작 by 심댱, 랜디

아무리 케이팝이 세련되었다 해도 케이팝을 더욱 케이팝스럽게 만드는 건 ‘특이함’이다. 이 특이함은 대중이 이해하기에 너무 난해하거나 나태한 제작자의 시야를 반영한 결과물이기에, 어떤 작품을 문제작으로 치부해버리게 한다. 그런데도 특이함은 케이팝의 다양성을 부여하는 한편 이를 비틀어 볼 여지를 만들어 준다는 점에서 미워할 수 없다. 당신이 이 특이함을 어찌 받아들일지 궁금한 마음을 담아, 심댱과 랜디가 2021년 올해의 문제작을 꼽아보았다. 순서는 발매 순.

싸이퍼 ‘안꿀려’

심댱: 2021년 들었던 케이팝 중 가장 희한한 믹싱. 개인 파트에는 비트가 산뜻하게 얹어져서 그런대로 들을 수 있지만, 프리-코러스부터 후렴구까지 단체 보컬 편곡이 심상치 않다. 오토튠처럼 납작하고 오묘하게 엮은 보컬 멜로디는 7명이나 되는 인원보다 훨씬 더 단출하게 들려 생경함을 자아낸다. 그리고 뮤직비디오 막바지에 김태희가 이들의 노래를 따라 부르는 장면은 버즈를 위한 참 쉽고 빤한 수처럼 읽힌다. (참고로 이들의 소속사는 레인 컴퍼니다.) 싸이퍼의 차별점은 ‘비가 제작하는 아이돌 그룹’과 작사·작곡에 능한 멤버들의 역량인 듯한데, 후자의 잠재력을 훨씬 더 돋보이게 하는 것이 어떨까 싶다.

온리원오브 ‘libidO’

심댱: 상의를 탈의하는 모습의 연속을 담은 티저 사진부터 타이틀곡까지 모두 한 단어, “Instinct”를 향한다. 앞섶이나 등을 노출하는 의상, 얇은 끈을 활용한 안무 등으로 곡의 야릇한 무드를 적극적으로 연출하는데, 그 화룡점정은 멤버 러브와 나인의 페어 안무(2:10~2:30)다. 너무도 아찔한 섹스 어필에 눈이 질끈 감기곤 하지만 “참지 말고 받아들여 libidO”라는데 어찌 당해낼 재간이 있을까. 개인적으로 멤버 사이의 섹슈얼한 긴장감을 담은 본편보다 길티 플레져 버전을 추천한다. 안무 영상이지만 추위에 하얗게 질린 피부와 검은 착장의 조화가 말 그대로 길티 플레져를 자극하기 때문이다.

있지 ‘마.피.아 In the morning’

랜디: ‘마.피.아 In the morning’의 중독성을 부정할 수는 없다. 그러나 그 중독성이 매끈함이나 기분 좋은 특이함보다는 애매한 구성이 일으킨 ‘뽕끼’에서 왔다는 점에서 화제작 혹은 문제작으로 꼽아보았다. 비트는 F#-C-C#(라-레#-미) 모티브를 반복하며 트라이톤(F#-C)의 어둡고 느와르적인 이미지를 강조해 나가는데, 프리-코러스(“Baby 헷갈려 헷갈려 헷갈리겠지 넌…”)부터 들어오는 멜로디는 왜인지 영 다른 하모닉 마이너 스케일이라 (맥락에 따라 멜로딕 마이너처럼 들리기까지 한다) 묘하게 촌스럽고 신파적인 느낌이 난다. “습.니.다.”나 “마.피.아.” 같은 정박은 이 느낌을 더욱 강화한다. (그나마 맛깔나게 소화하는 리아의 보컬 덕분에 함정을 겨우 헤쳐나가는 모습이다.) 바로 다음 구간으로 풍성한 볼륨의 코러스가 듣는 이를 압도하며 예의 프리 코러스를 잠시 잊게 해주지만, 이내 2절 버스에서 들어오는 “배우보다 더 배우 / 늑대 가지고 노는 여우” 따위의 세기말에나 통했을 구식 가사가 전 구간의 신파적 느낌을 다시금 상기시키고 만다. 있지는 풍성한 비트나 탁월한 퍼포먼스로는 꾸준히 인정받으면서도, 때마다 한 번씩 이런 ‘아재’ 감성 가사 등을 내놓아 안타까움을 자아내왔다. 대중들도 처음엔 질색하다가 그 구식 감성을 밈(meme)화해 즐기는 지경에 이르렀다. 비의 ‘깡’ 같은 경우다. 물론 통속성과 중독성은 가요의 중요 요소지만, 있지가 이런 걸 굳이 필요로 하는 팀인지는 생각해볼 필요가 있겠다. 있지의 멋짐에 걸리적거리는 사족이 된다.

스테이씨 ‘색안경’

랜디: 여성 청소년 화자의 입장에서 부르는 가사의 단어 선택에 좀 더 신중할 수는 없을까. 주제 선정은 아주 좋았다. 당사자가 시선의 폭력에 대해 한마디 한다는 콘셉트는 최근 여성 청소년 또래의 큰 관심사다. 그러나 그 주제를 표현하는 방식이 심히 빗나가고 말았다.

가사는 나이 어린 여성(아마도 미성년)을 화자로 한다. 그는 상대에게 “색안경”(편견)을 쓰고 보지 말라며 호소하는데, 그 편견의 내용은 어린 여자아이가 예쁘게 꾸미고 상대방을 “당돌”하게 “유혹”한다는 내용이다. 결론적으로는 그게 오해라는 뜻이지만, 편견을 묘사하는 단어가 청소년 당사자의 입장을 반영하지 못하고 있다. ‘당돌하다’의 정의를 생각해보면, 성인과 미성년처럼 위계가 있는 관계에서 약자가 답지 않게 맹랑한 기세를 보일 때 강자가 약자를 내려다보며 베풀듯 쓰는 말이다. ‘당돌하다’는 단어가 등장하는 순간, 이 노래가 내포하는 상대방이 성인이라는 사실이 드러난다. 스스로를 ‘당돌하다’고 자칭할 청소년은 거의 없으므로 현실성이 부족한 가사다. ‘유혹’이라는 표현도 그렇다. 성인 앞에서 나는 당신을 ‘유혹’한 게 아니라며 호소해야 하는 청소년이라니, 정상적인 어른이라면 여기서부터 이미 머릿속 경광등이 울려야 한다. 오히려 요즘의 사회면 기사를 보자면, 여성 청소년과 성인 남성 간 관계 속 ‘유혹’이란 단어는 성인 가해자가 청소년을 그루밍하는 상황을 묘사하는 데에 더 적합하다. 피해자 청소년이 성인인 자신을 ‘유혹’했다며 적반하장으로 나오는 가해자들도 있다. 이 단어를 여성 청소년 화자가 발화했다고 가정하기에는 안전이 위협되는 지경이다. 역시 현실적이지 않다.

작사를 맡은 블랙아이드필승과 전군의 입장에서는 이런 문제 제기가 억울할 수도 있겠다. 지금까지 이보다 더한 케이팝도 많았는데, 심지어 그 노래들은 이 작품처럼 그런 편견이 오해라며 바로잡으려 하지도 않고 그대로 전파하기에 바빴는데 하고 말이다. 그러나 이런 비평 역시 기대를 담은 아쉬움에서 비롯됐다는 걸 전하고 싶다. 특히나 전작 ‘ASAP’이 Z세대의 애창곡으로 자리매김하며 ‘청소년 눈높이에 맞춘 실력파 그룹’이라는 캐릭터를 막 만들어가고 있던 스테이씨에게는 이미지 빌딩의 기세에 손해를 입었다. 조금만 더 사려 깊었다면 더할 나위 없이 좋은 작품이 나올 수 있었을 주제라 더욱 아쉽다.

NCT 127 ‘Sticker’

랜디: 일명 ‘네오함’이라는 새로운 시도를 하는 과정에 야기된 논란이라 해야 할 것 같다. 구간마다 유영진의 크리에이티브 선택에 혼란과 기대를 오가게 된다. 그간 SM이 잘해온 방식은 매니악한 사운드에 대중에게 익숙할 만한 무언가를 접붙여 설득력 있는 작품을 만들어내는 일이었다. 곡은 테마로 울려 퍼지는 피리 같은 신스 하나에 의지해 위태롭게 쌓은 구조물이다. 베이스가 거의 없고 드럼 비트도 최소화했다. 그 낯섦이 NCT 127이 고수해온 예의 ‘네오함’이라면, 코러스의 유영진식 멜로디가 이 긴장을 해소해줄 익숙한 무언가다. 그러나 ‘Sticker’의 코러스 탑라인은 ‘무한적아’처럼 화려한 화성으로 뒷받침되지도 않고, ‘Cherry Bomb’처럼 시그니처 안무와 시너지를 내지도 못한 채 의미를 알기 어려운 가요적 구성짐으로 달려간다. “골 아픈 세상은 신경 꺼” 구간이 모티브 피리 리프를 모사하며 합치를 시도하지만 전 구간에 별안간 터진 가요적 ‘뽕’의 맥락을 완전히 이해시켜주지는 못한다. 요한 일렉트릭 바흐는 아예 이 탑라인을 뽑아내 구성진 한국식 발라드 강자 임창정과의 매시업을 선보이기도 했다. 아티스트의 기지를 보는 것은 즐거웠지만, 안타깝게도 원 후렴 멜로디 자체는 내게 불호로 남았다. 내가 장인의 깊은 뜻을 못 알아듣는 걸까 하는 자문이 급기야는 ‘네오함’ 자체에 대한 의구심으로 자라날 무렵, 레코딩 비하인드 영상 속 유영진이 직접 디렉팅한 녹음본을 들으며 마침내 약간의 실마리를 얻었다. 이것은 송라이터 본인이 절창이라 발생하는 맹점이었다는 걸… 유영진 보컬 특유의 진한 색깔이 해당 멜로디의 구성짐을 포장해버리는 것 같았다. 실은 동일 작곡가의 가장 최근 문제작으로 GOT the beat의 ‘Step Back’이 대두되고 있으나, 2022년으로 넘어가 발표된 이유로 이번에는 다루지 않았다.

도한세 ‘TAKE OVER’

심댱: 정석적인 문제작. 사실 문제작에 ‘정석’을 논한다는 것부터 모순적일 것이다. 그 이유는 아무래도 도한세가 지드래곤이라는 아이콘을 쉽게 연상시키기 때문일 텐데, 스큅 역시 먼슬리 리뷰에서 이 지점을 언급했다. (“도한세의 캐릭터는 “One Of A Kind”에서부터 “쿠데타”, “권지용”에 이르는 지드래곤의 그것을 떠올리게 한다.”) 2000년대의 아이코닉한 탕아를 접해본 대중에게 있어 도한세는 “One of Them”으로 보일 수도 있겠지만, 2018년 이후 악동 이미지를 취하려는 숱한 남성 아이돌 중 독보적인 재현도를 가지고 있다. 비트를 넘어 청자의 고막을 찌르듯 까랑까랑한 그의 래핑과 도발적인 가사, 그중 “Who’s Next? Me”라며 직접적으로 호명하는 자신감은 그 누구도 퇴색할 수 없을 것이다. 의심 어린 눈초리 앞에 그에게 주어진 미션은 자신이 특정 아이콘의 재현이 아닌, 제1의 도한세임을 증명하는 것일 테다. 그냥 넘어가기엔 아쉬운 뾰족함에 응원을 담은 눈길을 보내본다.

올해의 퍼포먼스 by 스큅

케이팝의 정수는 뭐니 뭐니 해도 퍼포머들의 구슬땀이 녹아든 퍼포먼스에 있다. 2021년 개인적으로 가장 큰 감흥이 일었던 5개의 퍼포먼스들을 한 데 모아보았다.

선미 ‘꼬리’

‘꼬리’의 퍼포먼스는 선미 특유의 입체성(Monthly : 2021년 2월 – 싱글 참조)을 가장 치밀하게 응축해낸 수작이다. 플로어를 기어 다니기도 의자 위에 올라서기도 하며 넓은 운신 범위를 보이는 동작은 물론, 호기심에 찬 고양이의 꼬리로 시작해 좌중을 현혹하는 구미호의 꼬리를 내비치고 날카롭게 곤두선 전갈의 꼬리로 마무리되는 안무의 흐름, 그리고 카메라를 입체적으로 운용하는 구도까지. 선미의 무대는 그 어느 때보다도 입체적으로 조직된다. 그러나 이 퍼포먼스에 가장 큰 입체감을 부여하는 것은 결국 선미의 표현력이다. 그 어떤 화려한 동작과 구도보다도 기억에 남는 것은 선미의 광기에 찬 헤드뱅잉, 그리고 그의 섬찟한 눈빛이었다.

위클리 ‘After School’

의자, 스케이트보드, 스마트폰 등 아기자기한 소품 활용도 인상적이었지만, 개인적으로 가장 기억에 남는 건 멤버들이 일상적인 티키타카를 연기하는 순간들이었다. 재희가 의자에 앉은 소은의 무릎을 장난스레 두드린다거나, 조아가 무대 뒤편으로 가던 중 재희에게 빨리 오라고 손짓을 한다거나, 무대 도중 단체 셀카를 찍는다거나 하는 순간들. 일순간 무대에 제4의 벽을 친 채 멤버들끼리 복닥거리는 장면에서 상투적인 ‘하이틴’의 이미지를 단순 전시하거나 박제해내는 것이 아닌 구현해 보이려는 그룹의 방향성을 감지할 수 있었다. 이들이 무대에 가져온 많은 소품도 결국 그를 떠받치기 위한 장치였을 뿐이다. 위클리만의 생동하는 ‘하이틴’을 지지한다.

호시 ‘Spider’

‘Spider’의 퍼포먼스는 거미집을 형상화한 듯 줄지어 놓인 철봉을 가로-세로로 조명하며 수직적인 깊이감과 수평적인 개방감을 오간다. 무당거미처럼 공간을 부유하고 가로지르며 스크린 너머 관중의 시선을 가두는 호시는 이 거미집의 주인으로 자리한다. 앵글 중앙에서 좀처럼 이탈하지 않으면서도 다채로운 구도 연출과 낭비 없는 무대 장치의 활용으로 흡인력 있는 퍼포먼스를 완성해냈다. 과연 세븐틴 퍼포먼스 유닛의 리더라는 직함에 걸맞은 퍼포먼스였다.

조이 ‘Day By Day’

주로 댄스 퍼포먼스를 조명하는 리스트에 굳이 이 곡을 수록해야 할지 많이 고민했지만, 보컬 역시 엄연히 퍼포먼스의 차원에서 조명할 가치가 있다고 생각해 포함하게 되었다. 읊조리는 듯한 창법의 보컬이 흐드러지게 퍼지는 신스 사운드와 고정적인 리듬 위에 얹어져 횡적으로 흘러가는 느낌을 주는 애즈원의 원곡과 달리, 리메이크의 편곡은 반주를 후경으로 물린 채 오롯이 조이의 목소리가 기승전결을 쌓아가도록 한다. 큰 비중을 떠안은 조이는 맑은 음색에 애수 어린 잔떨림이 섞인 보컬로 새로운 사랑 앞에서 번민하는 ‘Day By Day’의 드라마를 완전히 체화해낸다. 특히 유약한 듯 하지만 곧은 심지로 한 자 한 자 힘주어 부르며 나아가던 가창이 브릿지의 “지친 내 맘 열어준 사랑 / 너 하나였다는 걸”이라는 벅찬 고백과 함께 전조되는 후반부는 원곡과는 다른 종적인 압도감을 선사하는 이 리메이크만의 백미다. 케이팝에서 이처럼 목소리 하나만으로 감동받는 체험을 하기란 어렵기에, 주저 없이 ‘Day By Day’를 올해의 퍼포먼스로 꼽고 싶다.

있지 ‘Loco + 마.피.아. In the morning’ (〈2021 MAMA〉 中)

케이팝은 ‘별안간’의 연속이다. 별안간 곡조를 뒤틀고, 별안간 말도 안 되는 가사를 붙이고, 별안간 춤을 춰대기 시작한다. 그 때문에 케이팝은 치졸해지기도 하고, 통쾌해지기도 한다. ‘마.피.아. In the morning’은 엄밀히 말해 전자에 가까운 곡이었다. (Monthly : 2021년 4월 – 싱글 참조) ‘Loco’ 역시 강렬한 퍼포먼스에 대한 강박이 앞선 듯 들리는 아쉬운 트랙이었다. 그러나 두 곡을 엮어낸 있지의 〈2021 MAMA〉 무대는 이를 180도 뒤집어 보인다. 별안간 배우 허성태가 등장해, 별안간 류진에게 멤버들을 살해하라는 지령을 내리면, 별안간 채령이 폴댄스를 추고, 별안간 “넌 날 미치게 만든다”는 ‘Loco’를 열창하다, 별안간 류진과 예지가 대립하고, 별안간 류진이 화려한 스턴트 액션을 선보이더니, 별안간 허성태에게 총구를 겨눈다. 방아쇠를 당긴 류진이 별안간 “I’m the Mafia”를 외친 뒤 별안간 ‘마.피.아. In the morning’의 록 버전이 흘러나오는 순간, 이 퍼포먼스가 어떠한 경지에 다다랐음을 깨닫게 된다. 그리고 이는 분명 시원시원하게 퍼포먼스를 이끌어나간 멤버들의 덕이다. 케이팝의 ‘별안간’이 빛날 수 있는 이유는 단연 퍼포머에게 있음을 실감할 수 있는 퍼포먼스.

By Editor

idology.kr 에디터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