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ategories
Monthly

Monthly : 2022년 10월 – 앨범

2022년 10월 아이돌팝 발매작 중 정규앨범을 중심으로 주목할 만한 앨범을 다룬다. 슬기, 스트레이키즈, 드림캐쳐, 권은비, 케플러, (여자)아이들, 르세라핌, 이펙스, 트리플에스 등.

2022년 10월 아이돌팝 발매작 중 정규앨범을 중심으로 주목할 만한 앨범을 다룬다. 슬기, 스트레이키즈, 드림캐쳐, 권은비, 케플러, (여자)아이들, 르세라핌, 이펙스, 트리플에스 등.

28 Reasons
SM 엔터테인먼트
2022년 10월 4일

비눈물: "28 Reasons"를 관통하는 키워드는 이중성이다. 앨범은 '28 Reasons'의 뮤직비디오에서 흑백으로 묘사되는, 한 사람 속 선악의 두 자아가 서로를 인식하고 갈등하는 이야기를 그리고 있다. 고독과 방황, 야경 등 일관된 키워드로 황량한 분위기를 유지하면서 최종장에서 두 자아의 존재를 받아들인 화자가 홀로 밤을 지배하는 단일의 엔딩('Crown')으로 갈무리되는 서사는 EP 볼륨에서 실현하기 어려운, 깔끔한 미감과 완결성을 보인다. 다만 앨범 속 세계관과 달리 현실의 타자(他者)를 내세우면서 핍진성을 잃은 'Bad Boy, Sad Girl'는 트랙의 통속적인 매력과는 관계없이 앨범의 흐름에 작은 흠을 남긴다.
한편 앨범의 메타적 측면에서도 이중성을 찾아볼 수 있는데, 레드벨벳 슬기와 솔로 가수 슬기라는 두 자아 사이에서 고민한 흔적이 나타난다. 좀 더 쉽게 접근할 수 있는 대중적인 타이틀곡 후보 대신 어렵더라도 다양함을 잘 표현할 수 있는 길을 선택하고, 그룹 활동에서 선보이기 어려웠던 슬기만의 장점, 슬기라서 가능한 면모를 부각하고자 한다. 특히 'Dead Man Runnin''과 '28 Reasons'의 퍼포먼스 비디오에서는 속에서부터 끌어올린 깊은 보컬과 손끝부터 표정까지 섬세한 무대 연기 등 이전에 보지 못한 슬기의 모습을 뚜렷이 구현하고 있다. 이는 새로움을 보여주고자 하는 가수 본인의 의지가 강하게 반영된 결과인데, 때문에 기존의 캐릭터성을 확장해서 브랜딩하는 지난 레드벨벳 멤버들의 솔로작이 각자의 상징색을 시청각 미디어에 전방위로 활용했던 것과는 달리 슬기의 주황빛 상징색이 앨범의 서사에 맞춰 제한적으로 사용될 수밖에 없던 점은 조금 아쉬운 점이다. 또한 슬기의 연기와 영화 같은 장면으로 신선함을 줬던 트레일러 장면이 본편에는 거의 사용되지 않았는데, 이를 기반으로 하는 스토리 버전 영상이 따로 발행되었으면 어땠을까 생각하게 된다. 그러나 이러한 아쉬움들은 결국 슬기가 보여줄 수 있는 모습이 많이 남아있음을 의미하기도 한다. 과연 슬기의 다재다능함이 어떤 방식으로 펼쳐질지, 더 많은 상상과 기대를 품게 만드는 앨범. 수록곡 중에서는 무게를 덜고 무심하게 툭 흘리는 슬기의 매력적인 보컬이 극대화된 'Anywhere But Home'을 추천한다.

MAXIDENT
JYP 엔터테인먼트
2022년 10월 7일

스큅: 힘은 덜되 더욱 단단해졌다. 'Case 143'는 5년여간의 활동곡 중 처음으로 '사랑'을 소재로 한 곡으로, 사랑에 빠진 것을 "사건 발생"이라 표현하는 가사 콘셉트 면에서나, 반음씩 하강하는 스케일을 따라 처음 느끼는 감정의 혼란스러움을 표현하다 별안간 "1, 4, 3, I love you!"를 외치는 악곡 면에서나, 뮤직비디오의 형식을 메타적으로 요리조리 가지고 노는 뮤직비디오 면에서나, 전에 없이 밝고 가벼워진 톤에 특유의 익살을 효과적으로 풀어놓고 있다. "치기 어린 패기 (혹은 패기 어린 치기)"라 표현한 바 있는, 프리-데뷔 때부터 줄곧 나타나던 절치부심의 객기에 긴장감이 한층 풀어지니 유쾌함은 한껏 배가되었다. 우악스러운 전자음으로 유희를 펼치는 'Give Me Your TMI', 'SUPER BOARD'는 물론, 공격적인 드릴 장르 가운데서도 여유로운 스왜거("작업물의 양이 자랑이 됐던 그때와는 다르게 / 양과 질로 승부 / 막연한 허황된 꿈? / 우리가 잡은 건 아니던데 뜬구름")가 돋보이는 '3RACHA', 이별 상황을 담담하고도 후련하게 풀어낸 '식혀'까지, 앨범 전반에 걸쳐 그러한 기조를 일관적으로 감지할 수 있다. 궤도에 올라선 그룹의 여유와 노련함이란 이런 것이겠다.

[Apocalypse: Follow Us]
드림캐쳐 컴퍼니
2022년 10월 11일

마노: 드림캐쳐는 "Apocalypse" 연작을 통해 직설적이고 강렬한 사회적 메시지를 던지고 있는데, 이번에는 세상의 결속과 발 빠른 행동을 촉구하기 위해 제목 그대로 어떤 '비전(Vision)'을 사람들에게 제시하고자 한다. 전작 'MAISON'에서 펼쳐낸 기후위기에 대한 경고라는 메시지를 이번에는 일렉트로닉의 색을 더한 묵직한 메탈 사운드에 담아냈는데, 마치 군부대처럼 칼같이 열 맞춰진 각 잡힌 퍼포먼스와 어우러져 짜릿한 시청각적 만족감을 선사한다. 케이팝을 열렬히 사랑하는 이라면 '별안간 벅차오르지' 않을 수 없을 얼터너티브 록 넘버 'Fairytale', 그루브감 넘치는 기타 리프가 돋보이는 'Some Love', 아련하고 서정적인 발라드 넘버 '이 비가 그칠 때면' 등 팀이 꾸준히 잘 해온 것들을 성심껏 담아냈는데, 앨범 자체의 유기성이 다소 흐릿한 점은 못내 아쉽게 느껴진다. 그럼에도 이렇게나 뚝심 있게, 그 어떤 타협 없이 본인들만의 메시지를 계속해서 이어나가고 있다는 점에서 좀 더 주목받을 필요가 있는 한 장이라 하겠다. 앞으로도 계속 이어져 나갈 드림캐쳐만의 메시지와 음악적 세계관을 기대한다.

Lethality
울림 엔터테인먼트
2022년 10월 12일

비눈물: 'Underwater' 속 기저에서 서서히 깨어나 미끄러지는 두꺼운 베이스와 거침없이 정박으로 고막에 부딪치며 거친 파도처럼 위협하는 신시사이저는 여름 바다의 청량한 푸르름이 아닌, 미지의 심해 속 서슬 퍼런 섬뜩함을 품고 있다. 청각적 요소로 시각적 심상을 묘사하는 것은 전작과 닮아있지만, 차이점 역시 나타난다. 'Underwater'는 앞선 두 활동곡에서 비교적 덜 드러났던 파워풀한 보컬을 앞세워 권은비의 장점을 부각하고자 했다. 싱글 단위로서 'Glitch'의 파격적 사운드는 덜하지만, 기량을 충분히 발휘할 수 있는 익숙한 뭄바톤 장르를 활용하며 곡 전체에 안정감을 부여하였다. 또한 "Lethality"는 지난 앨범 "Color"의 몇몇 트랙에서 보여준 높은 완성도를 앨범 단위로 확장함으로써 뚜렷한 서사를 갖게 된다. 그 일환으로 수록된 'Croquis'은 지난 활동곡 'Glitch'의 공식 후속작으로, 앨범 내 흐름과도 어우러지면서 동시에 두 앨범을 서로 잇는 역할까지 수행한다. 앨범 청취에 덧붙여, 한번 원작자가 의도한 순서대로 들어보는 것을 추천한다. 특별하고 색다른 경험을 맛볼 수 있을 것이다. ('The Color of Light' - 'Glitch' - 'Croquis')
두 앨범의 관계성은 이뿐만이 아니다. "Color"의 앨범아트부터 바다의 수면 아래(underwater) 모습을 형상화하고 있으며 파란, 중력, 그림 등 같은 키워드 및 소재가 겹치기도 한다. 또한 이번 앨범의 제목인 '치명적임'에서는 'Glitch'의 뾰족하고 예민한 성질이 떠오르기도 한다. 두 앨범이 하나로 합쳐져 정규 앨범으로 발매되거나 순서가 서로 바뀌었더라도 어색하지 않을 만큼 같은 성질을 띠고 있다. 하지만 "Lethality"는 전작과의 유사함에 그치지 않고 앨범의 자체 완결성 및 퀄리티 면에서 발전하면서 아티스트만의 음악관을 확고히 하고 있다. 이는 분명히 고무적인 일이지만, 지금은 단순히 좋은 음악만으로 성공할 수 없는 시대이다. 앞으로의 활동은 단순히 가수 개인의 기량에 기댈 것이 아니라 치열한 여성 솔로 가수 시장을 분석하고 차별점을 만들 수 있는 기획과 적극적인 프로모션 등 회사 차원의 지원이 뒤따라야 할 것이다.

TROUBLESHOOTER
WAKEONE
2022년 10월 13일

비눈물: 'We Fresh'는 데뷔부터 쌓아온 '소란함'을 여러 갈래로 활용하는 기조를 유지하고 있다. 그룹 특유의 에너지는 여전하지만, 소란함을 아이덴티티로 삼아 신인의 당참과 신선함으로 치환했던 전작과는 달리 'We Fresh'에서 나타나는 소란함은 3등분된 후렴구 위에서 이리저리 흩어지면서 특이점을 만들지 못하고 결국 산만함으로 귀착된다. 그 탓에 곡의 구조와 후렴구가 어떤 포인트에 집중하고 싶은 건지 의도를 파악하기 어렵다. 또한 뮤직비디오 역시 멤버들의 개성과 강점을 어떻게 활용할지 뚜렷한 기준을 정하지 못하고 각자에 부여한 얕은 설정의 오브제들을 어지러이 교차하는 것으로 그친다. (덧붙여 뮤직비디오 음원의 베이스 믹싱이 유독 깨지고 뭉개져, 감상에 악영향을 끼치기도 했다)
하지만 이어지는 앨범 "TROUBLESHOOTER"는 높은 완성도의 수록곡으로 채워져, 앞선 아쉬움을 모두 날려 보낸다. 특히 'Downtown'은 변주 없이 정직한 구성으로 미지를 향하는 불안함과 막연함을 뚫고, 케플러의 디스코그래피를 통틀어 가장 통쾌하고 시원한 해방감을 안겨준다. 또한 'Dreams'는 지난 앨범의 'LE VOYA9E'와 같이 다인원의 다양한 음색과 화음을 적극 활용하여 신비하고 몽환적인 트랙까지 소화해낼 수 있는, 그룹의 새로운 가능성을 확장하기도 한다. 전작에서 흐름에 어긋나 수록하지 않았던 경연곡 'THE GIRLS'을 클로징 트랙으로 활용하여 앨범에 유기성을 더한 것 역시 적절한 안배이다.
케플러는 데뷔곡 'WA DA DA'에서 쌓은 그룹의 이미지를 널리 각인시키기 위해서라도 '신인의 패기'라는 전략을 유지해야만 했다. 그러나 그 마지노선은 이번 앨범까지다. 케플러는 끊임없이 발산하는 에너지로 4세대 걸그룹 내에서 일정한 캐릭터성을 구축했으나 더 이상 신인이 아니게 된 이 순간, 앞으로의 안주(安住)는 허용되지 않을 테다. 뚜렷한 기획 아래 변화의 물꼬를 틀 수도, 오리지널리티를 믿고 한 번 더 깡으로 밀어붙일 수도 있을 테다. 어떠한 모습이든, 케플러는 지금까지 자신감 넘치는 태도로 재밌는 결과물을 만들어왔기에 기꺼이 그들의 여정이 일궈낼 즐거움을 기다려도 좋겠다.

I love
큐브 엔터테인먼트
2022년 10월 17일

마노: 생각해보면 (여자)아이들의 행보는 파격과 특유의 '발칙함' 위에서 이루어져 왔다. 그리고 감히 단언해보건대 'Nxde'는 그 파격의 정점이 아닐까. 시작부터 "상자 밖에서 생각해보길(Think outside the box)"이라며 일갈을 놓고는 무언가를 기대하는 청자의 기대를 갈기갈기 찢어발기며 약을 올리는 솜씨에는 도저히 당해낼 재간이 없다는 생각이 든다. 프리-코러스에서 빌드 업을 이어가다 드롭에서 보란 듯 공백을 두고 선언하듯 "Yes I’m nude"라 속삭인 뒤, 그 유명한 '하바네라'의 샘플링(개인적으로 올해 유행한 '클래식 샘플링 케이팝' 중 가장 자연스럽고 유기적인 트랙이었다고 생각한다)으로 이어가는 순간에는 두 손 두 발 다 들며 순순히 항복을 외치게 되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한 방을 날려버리는 "변태는 너야"까지. 케이팝 사상 가장 발칙하고 도발적인 다섯 글자가 아닐까 하는 생각까지 든다.
제목은 "I love"이지만 그 '사랑'의 모양은 마냥 아름답지만은 않다. 지나간 사랑으로 인해 오히려 스스로를 긍정하게 되다가도('LOVE') 모진 이별만을 안겨준 옛 연인에게 깊은 애증의 감정을 느끼기도 하고('Reset') 사랑하는 이를 위해 기꺼이 깎여나가는 조각품 같은 삶을 선택하기도 하는 등('조각품') 다양한 모습으로 존재하는 사랑의 여러 가지 감정을 노래하고 있다. 전작에 이어 이번에도 모든 트랙의 크레딧에 소연을 비롯해 민니와 우기가 이름을 올리고 있다는 점 역시 상당히 고무적으로 읽힌다. 팀의 추구하는 파격과 도발이 과연 어디까지 멀리 갈 수 있을지 내심 기대하게 되는 한 장.

ANTIFRAGILE
쏘스뮤직
2022년 10월 17일

예미: 3개 국어 내레이션의 인트로 'The Hydra'에서 짐작할 수 있듯, EP "ANTIFRAGILE"은 전작 "FEARLESS"와 같은 구도로 짜여 있다. 앨범 내 각 트랙의 역할 분배와 이를 통해 만들어내는 흐름이 동일한 만큼, 절제미가 돋보이던 전작과 달리 화려한 사운드와 다양한 음색을 통해 에너지를 표현하고자 하는 의도가 드러난다. 뎀보우 리듬 위에 정신없이 몰아붙이는 보컬로 하이라이트를 꾸민 동명의 타이틀곡 'ANTIFRAGILE', 팝 록 사운드에 선명하게 내지르는 목소리를 살린 'No Celestial'이 전작과의 방향성 차이를 단적으로 보여준다. 멤버의 음색이 보다 선명하게 구별된 동시에 사운드가 겨냥하는 장르 역시 명확해졌는데, 훌륭한 마감에도 불구하고 레퍼런스의 첫인상이 멤버의 퍼포먼스를 간혹 압도한 것은 약간 아쉽다.
반면 “ANTIFRAGILE” 속 메시지는 활동 이력이 쌓여 큰 폭발력을 가진다. 전작 'FEARLESS'의 애티튜드가 그 실체 없음으로 인해 그를 둘러싼 여타 요소에 쉽게 휩쓸렸던 반면, 데뷔곡 활동 중 겪은 일들과 이전 활동을 통해 알려진 멤버들의 캐릭터, 멤버들의 높아진 참여도는 "ANTIFRAGILE"을 지탱하는 구체적 맥락이 되었다. 이러한 맥락 하에서 곡 내내 반복되는 슬로건과 "잊지 마 내가 두고 온 토슈즈"처럼 각 멤버의 인생 궤적을 거론하는 가사, "떨어져도 돼" 같은 콘셉트 대비 비관습적인 표현, 대담한 스타일링과 에너제틱한 안무가 설득력을 얻는다.
르세라핌은 데뷔작 "FEARLESS"부터 가사에 힘을 준 그룹이었지만, 그룹이 전하는 메시지가 처음부터 온전히 받아들여지기까지는 시간이 필요했다. 그룹의 정체성과도 같은 메시지를 단 두 작품 만에 각인시켰다는 점에서 본작은 의미를 갖는다.

사랑의 서 챕터 1. ‘Puppy Love’
C9 엔터테인먼트
2022년 10월 26일

마노: "불안의 서"와 "사랑의 서"라는 상반된 콘셉트를 교차적으로 선보이며 독자적인 세계관을 쌓아가고 있는 이펙스의 "사랑의 서" 첫 번째 챕터. 주로 "불안의 서"를 통해서는 청소년이 느끼는 세상의 부조리함을, "사랑의 서"를 통해서는 풋풋한 사랑의 감정을 노래하는 등 10대로서의 동시대성 혹은 당사자성(멤버 대다수가 아직 미성년자다)을 꾸준히 가져가는 모습에서 소싯적 1세대 아이돌의 잔상이 스쳐가기도 한다. 어떤 의미로는 고전적인 정공법이라고 할 수 있을지도 모르겠다. 한편 "MBTI도 모조리 다 반대", "마스크 아래로 좋아한다 되뇌 보지만"('첫사랑의 법칙') 같은 가사에서는 소위 'MZ세대'나 '코시국'이라는 용어로 대표되곤 하는 현시대성을 발견하게 되기도 한다. 인트로에서 거슈윈의 'Rhapsody In Blue'를 샘플링한 타이틀곡 '사랑歌'는 그러한 현시대성으로 고전 텍스트를 번역해낸, 말하자면 'Z세대판 춘향전'이라고 할 수 있을 것 같다. 트랩이라는 가장 현시대적인 장르 위에서 이루어지는 동양 고전 텍스트와 서양 클래식 음악의 이색적인 만남은 결국 팀이 추구하고자 하는 동시대성 내지는 현시대성을 강조하는 역할을 하며, 아이돌팝의 어떤 불변의 가치에 대해 생각해보게 한다. 잘 풀리지 않는 첫사랑에 대해 한참 투정을 늘어놓다('첫사랑의 법칙') 주체할 수 없이 설레는 감정을 이내 토해내고('고백 Bomb') 무르익어가는 사랑에 한껏 환희를 느끼다('사랑歌') 영원한 사랑의 서약을 나눈다('작은 언약식')는 일련의 서사에서 앨범 제목 그대로 '풋풋함'을 느끼지 않을 수 없는데, 이 다음에 이어질 "불안의 서"에서는 또 어떤 이야기를 하게 될지 기대해보게 된다.

Acid Angel from Asia
모드하우스
2022년 10월 28일

비눈물: 트리플에스는 총 24인조로 예정된 걸그룹으로, 앞서 순차적으로 공개된 8명이 유닛으로 프리-데뷔하는 과정에 있다. 그 첫 번째 유닛 Acid Angel from Asia의 데뷔곡 'Generation'은 철저하게 틱톡을 겨냥하여 구성된 곡이다. 후반 벌스와 빌드업을 모조리 생략하여 러닝 타임을 2분 50초 미만으로 끊고, 하나의 코러스를 총 4번 반복하면서 한번 곡을 스친 청자의 머릿속에 그 파트를 깊숙이 박아넣는다. 어쩌면 진정한 의미의 '후크 송'에 가장 가까운 형태가 아닐까. 또한 따라하기 쉬운 후렴 안무와, 'MZ'라는 키워드를 언급하지 않고 신세대의 감성을 담은 뮤직비디오 역시 숏폼 비디오에 최적화된 형태로 구현되어 있다. 또한 가사는 '데카당스'와 같은 키워드를 통해 스와이프 한 번으로 무한히 반복되는 알고리즘과 같은 가상 공간에서 고전을 거부하고 비현실적 퇴폐미를 추구하는 신세대의 모습을 함축해서 표현하며 곡 감상에 새로운 의미를 부여한다. 이는 뚜렷한 의도와 목표를 가진 기획이 뒷받침했기에 가능한 결과이다. 또한 'Dimension (AAA Ver.)’를 통해 그룹의 세계관과 음악색을 뚜렷하게 표현하고 아웃트로 '+ (82)'를 통해 다음에 등장할 유닛을 예고하는 등 서사적 연계를 구축하는 점에서 ""는 마땅한 (프리-)데뷔 앨범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좋은 프로듀싱과 기획으로도 미처 가리지 못한 문제점이 발견된다. 이는 디멘션과 그래비티라는 그룹의 시스템에서 비롯되는데, 유닛(디멘션)의 구성원 조합을 팬덤의 투표(그래비티)로 직접 결정하게 된다. 유닛 역시 무대를 꾸며야 하는 독립된 그룹임에도 기획자가 최종 조율 없이 후보 선정까지만 개입하기 때문에, 자칫 포지션의 균형이 맞춰지지 않아 그룹의 최종 완성도에 차질이 생길 우려가 있다. 실제로 이번 앨범 역시 조합 내 뚜렷한 보컬 포지션이 부재한 탓에 타이틀곡의 후반 고음 파트를 가이드 보컬 버전 그대로 사용하고, 'Rolex' 등 수록곡에서 단단한 보컬로 포인트를 줘야 할 몇몇 순간을 흘려보내는 등 아쉬운 순간이 포착되기도 한다. 물론 첫 유닛인 만큼 아직은 이러한 점들이 크게 단점으로 부각되지 않고, 유닛을 구성하는 인재 풀이 지속적으로 확장되기 때문에 개선될 여지는 충분하다. 하지만 근본적인 문제는 트리플에스의 현 체제 그 자체에 있다.
디멘션의 대표 규칙은 활동 내 앨범 10만 장을 판매하지 못하면 유닛이 소멸한다는 것이다. 하지만 이 시스템에서 '소멸' 자체는 기획상 중요한 사실이 아니다. 해당 수치는 현 시점에서 불가능하기에 소멸은 기정사실이며 이 규칙의 진의는 하나의 조합이 반복되지 않도록, 즉 매 유닛마다 새로운 가능성을 만들기 위함이다. 또한 소멸한 유닛의 멤버들은 새로운 유닛으로 다시 활동할 수도 있기 때문에, 그룹의 모토인 '모든 가능성의 아이돌'에 부합하는 이상적인 규칙처럼 보인다. 하지만 한 가지 간과한 점이 있다. 이름을 붙여주는 것은 생명을 부여하는 행위와 같다. 유닛은 한번 결성된 순간 고유한 정체성과 항상성을 갖게 되기에, 단순히 멤버들이 흩어지고 새로운 조합으로 나타난다고 해서 바로 팬들의 의식에서 잊힐 수는 없다. 특히 본인이 직접 유·무형의 재화를 투자하고 영향력을 행사해서 디멘션을 구성한 만큼 팬덤은 남다른 유대감과 애정을 갖게 되는데, 그 유닛이 짧은 활동 이후 단지 판매량이 부족하다는 이유만으로 강제 소멸한다면 허망함 또는 죄책감을 느끼지 않을까. 초반에는 매번 새로운 조합에 신선함을 느낄 수도 있지만, 내 의지와는 관계없이 사라진다는 결과가 정해져 있고 이러한 경험이 반복된다면 팬덤 역시 피로감을 느낄 수밖에 없을 것이다. 문득 트리플에스와 같이 그룹 내부에 여러 유닛을 가진 NCT의 사례가 떠오른다. 유닛 NCT DREAM은 7명의 멤버가 전부 청소년으로 데뷔하였으며, 성인이 되면 졸업하는 로테이션 시스템을 가지고 있었다. 이후 팀 내 리더인 마크가 성인이 되어 팀에서 빠지게 되고, 무수한 반대에도 불구하고 소속사는 6인 체제를 강행한다. 하지만 7인 고정 팀에 대한 요구는 더욱 거세졌고, 팬덤은 압도적인 판매량과 성적으로 유닛의 존속 필요성을 증명하면서 끝내 DREAM은 변동 없는 정규 유닛으로 고정되게 된다. 이처럼 멤버 1명의 변동만으로도 아주 민감하게 반응하고 오리지널에 집착하는 케이팝 씬에서, 한 번 결성된 팀이 소멸한다는 사실을 팬덤과 대중들이 받아들이기는 어려울 것이다. 덧붙여 24명의 인원수를 고려하면 완전체가 한 곡이나 한 무대에 전부 참여하는 경우는 많지 않을 것이고, 결성 과정에서 생성된 유닛 위주로 그룹이 운영될 것이기에 기껏 쌓아놓은 벽을 허물고 재시작하도록 강제하는 시스템에 대해 더욱 의문을 품게 된다. 결국 '모든 가능성'이라는 명제는 아무것도 정해지지 않은 '모든 불확실성'이기도 하다. 현 체제가 지속된다면 불확실한 미래, 불합리함과 불균형에 따른 반발이 뒤따를 수밖에 없다. 첫 유닛 AAA가 충분히 의미 있는 지표를 남기고 있는 지금, 높은 이상주의를 설득하려는 고집보다는 낮고 유연한 자세로 그룹의 시스템을 현실적으로 살피고 조정하는 결단이 필요한 시점이다.

By Editor

idology.kr 에디터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