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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onthly : 2023년 1월 – 싱글

2023년 상반기를 돌아보며, 월별로 기억에 남는 케이팝 발매작에 대한 리뷰를 3주간 발행한다. 해당 포스트에서는 1월 발매된 싱글 중 뉴진스, 하이키, 아일리원, 허윤진, 드림캐쳐, XG, 메이브, 비비지의 싱글을 다룬다.

2023년 상반기를 돌아보며, 월별로 기억에 남는 케이팝 발매작에 대한 리뷰를 3주간 발행한다. 해당 포스트에서는 1월 발매된 싱글 중 뉴진스, 하이키, 아일리원, 허윤진, 드림캐쳐, XG, 메이브, 비비지의 싱글을 다룬다.

뉴진스 ‘OMG’

OMG
ADOR
2023년 1월 2일

비눈물: 음원 차트와 여러 미디어 매체를 휘어잡은 뉴진스의 거대한 유행 사이에서, 작지만 재밌는 흐름이 포착되고 있다. 유튜브와 사운드클라우드에 그룹의 음악을 리믹스한 2차 콘텐츠가 눈에 띄게 늘고 있는 것인데, 단순한 반짝 유행으로 여기기 어려울 만큼 의미 있는 수치를 보인다. 또한 힙합부터 트로트까지 장르를 가리지 않는 넓은 포용력도 엿보이는데, 이는 뉴진스 음악 특유의 0부터 시작하는 미니멀리즘이 외부 해석이 개입할 공간을 물리적으로 넓혀준 덕분이다. 그리고 급증한 개체수 역시 'Ditto'와 'OMG' 두 곡이 공통으로 리믹스에 적합한 댄스 음악에 뿌리를 두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하지만 이런 표면적인 설명 외에, 뉴진스의 음악이 리믹스와 같은 미시 영역까지 주요한 영향을 끼칠 만큼 광범위한 공감을 끌어낼 수 있던 것에는 좀 더 근본적인 이유가 숨어있다.
앞서 'Hype Boy'와 Attention'이 이국적인 공기 아래 티 없이 쨍한 한여름의 하이틴을 그렸다면, 'Ditto'는 그 배경을 한국의 학교로 옮겨, 추억 속 교실의 푸르스름한 색감을 재현해낸다. 학교의 고동빛 정경, 흙먼지 날리는 운동장과 복작이는 매점 등 뮤직비디오 속 현실적인 묘사는 많은 사람들의 향수를 일으켰다. 하지만 동시에 상상 속 친구로 분한 뉴진스 멤버들, 환상의 매개체인 캠코더가 부서지며 뒤바뀌는 시점 및 화면비와 같이 꿈과 현실의 경계를 깨는 요소들이 영상 안팎으로 교차하며, 보는 이로 하여금 이것은 실재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의식적으로 혹은 무의식적으로 깨닫게 만든다. 이러한 허구의 자각은 언뜻 리얼리티를 해칠 것 같지만, 역설적으로 더 깊은 몰입감을 이끌 수 있다. 사람들은 지난 과거가 막연히 아름답다고 여기지만, 막상 '추억 보정' 없는 날것의 기억을 마주하면 상처 입곤 한다. 그렇기에 뉴진스는 모두가 안심하고 각자의 기억을 대입할 수 있도록 자연스러움을 가공하여, 모두가 경험했다고 느끼지만 사실 존재한 적 없던 과거에 대한 막연한 그리움, 이른바 ”가상의 향수”를 꾸며낸다. 이를 통해 뉴진스는 ‘Ditto’라는 단어가 음악의 영역을 넘어 아련한 추억 속 과거를 지칭하는 일종의 고유명사로 활용될 만큼 세대를 관통하는 폭넓은 공감을 이끌어 낼 수 있었다. 리믹스와 같은 2차 콘텐츠의 유행 역시 곡에 담긴, 자유롭게 변형하기 좋은 정서적 여백이 아티스트들의 창작욕을 자극했다고 볼 수 있다.
'OMG' 역시 'Ditto'처럼 현실과 비현실을 교차하고 있다. 다만 'Ditto'의 경우 개개인의 이미지를 수렴해서 현실적인 과거를 재현해냈다면, 'OMG'는 메타 상황과 의식의 흐름에 따른 초현실 기법 등을 통해 '환상'에 조금 더 치우치도록 조형함으로써 해석의 여지를 더 많이 남겨둔다. 뉴진스가 4세대 걸그룹 사이에서 주로 신선하다고 평가받는 것은 개성 있는 프로모션과 음악이 주된 요인이지만, 시청각 미디어 측면에서 보편적인 공감을 만들어 낸 것 역시 적지 않은 영향을 끼쳤다. 하지만 결국 좋은 음악이 우선될 때 이 모든 크고 작은 기획이 설득력을 가질 수 있다. 지금까지 뉴진스는 그 명제를 지켜왔으나, 이번이 데뷔 후 첫 컴백이었던만큼 다음 단계에서는 더 큰 볼륨의 작업물을 통해 대중성과 더불어 그룹의 독자성을 키우고 증명해야겠다. 그룹에게 주어진 강력한 영향력과 대중의 부푼 기대를 앞에 둔 시점에서, 이번 'OMG' 뮤직비디오의 쿠키 영상과 같이 제작자 입장에서 먼저 분란의 여지를 얹는 것은 오히려 혼란을 가미할 뿐이다. 뉴진스는 그 이름에 앞서 음악이 가진 매력을 자체적으로 증명했으며 이미 커다란 관심의 중심에 서 있는 만큼, 그룹을 대변하지 않는 불필요한 철학을 덧대기보다는 좋은 프로듀싱으로 우직하게 힘을 실어주는 것이 마땅할 것이다. 언제나 예상을 빗나가며 트렌드를 만드는 뉴진스의 다음 행보는 과연 어디로 향할지, 어떤 재밌는 음악이 우리를 기다리고 있을지 즐거운 상상과 함께 기다릴 일만 남았다.

하이키 ‘건물 사이에 피어난 장미’

Rose Blossom
GLG
2023년 1월 5일

예미: 데이식스의 커리어를 대표하는 송라이터 홍지상과 영케이가 합작한 ‘건물 사이에 피어난 장미’는 멜로디와 가사를 통해 멤버들의 면면을 부각하는 곡이다. 기승전결이 뚜렷한 선형적 전개는 힘주어 발화되는 가사를 조명한다. 그룹의 그간 입지와 절묘하게 들어맞는 가사의 서사는 몰입도를 높인다. 가사 속 고난이 우여곡절을 거쳐 온 멤버와 청자의 현실을 연상케 하여, 청자가 곡을 듣는 자신과 곡을 부르는 하이키를 함께 돌아보고 응원하게 만든다.
위로나 공감을 담은 노래에서 보기 어려웠던 요소들은 곡에 의외성을 부여한다. 서정적인 인상이 강하지만 이 곡은 최저 C4 이하, 후렴구도 C5를 넘어가지 않는다. 중저음 위주의 멜로디를 부르는 네 멤버의 개성 강한 음색이 매우 뚜렷하게 들리며 곡에 에너지를 부여한다. 고난을 묘사하는 가사 속에서도 자기 자신을 ‘장미’로 지칭하는 자기 확신은 절박함보다 여유로움이 앞서는 무대 매너에 눈이 가게 한다. 이러한 의외성이 가창자 하이키의 멤버들을 각인시키는 데로 수렴한다는 점에서, ‘건물 사이에 피어난 장미’는 그룹 하이키를 기억하고 응원하게 했다.

아일리원 ‘별꽃동화’

A Dream Of ILY:1
에프씨이엔엠
2023년 1월 5일

마노: 발매 당시부터 오마이걸의 ‘비밀정원’과의 유사성이 언급되곤 했었는데, 두 곡 모두 스티븐 리가 작업했기에 당연하다면 당연한 결과일지도 모르겠다. 개인적으로는 (역시나 스티븐 리가 작업한) 오마이걸의 ‘비밀정원’과 “The Fifth Season”의 수록곡인 ‘소나기’를 적절히 섞은 느낌이라는 생각도 들었는데, 코러스 파트의 코드 진행이 ‘소나기’와 매우 유사한 데다 특유의 서정적인 분위기까지 더해져 더더욱 엇비슷하게 느껴지는 부분이 있다. 오마이걸의 전성기를 견인한 바 있는 프로듀서가 이번에는 아일리원의 데뷔 초창기부터 지속적으로 작업을 해오고 있고 그 와중에 전작과 비슷한 결과물을 보여준 셈인데, 현재 서정성을 앞세운 걸그룹이 공석인 상황에 의도적으로 아일리원에게 이 자리를 부여하려 했던 것으로 봐야 할지, 아니면 단순히 프로듀서의 자가복제로 봐야 할지는 듣는 이가 판단할 몫이 아닐까. 어쨌거나 상기했듯 서정성을 콘셉트로 내세운 걸그룹이 사실상 공석인 상황에 상당히 반갑게 느껴지는 싱글이기도 하다. 이전에도 ‘사랑아 피어라’ 등을 통해 비슷한 행보를 보여준 적이 있었기에, 이 이후의 행보는 또 어떨지 궁금해진다.

허윤진 ‘I ≠ DOLL’

I ≠ DOLL
쏘스뮤직
2023년 1월 9일

에린: ‘I ≠ DOLL’의 가사는 아이돌을 바라보는 고질적인 시선을 직설적으로 꼬집고, 애니메이션으로 제작된 뮤직비디오는 아이돌로서의 고단함을 표현한다. 특히 팝 보컬과 록 사운드는 “Idol doesn’t mean your idol to fuck with” 가사와 호응하며 직업인으로서의 아이돌의 존재를 선명하게 내세운다. ‘Raise y_our glass’에서부터 자신의 가장 진솔한 내면을 내비치는 솔로 아티스트로서의 행보를 이어 나가면서도, 현재 아이돌 르세라핌의 멤버로서의 이야기를 솔직하게 드러낸 점에서도 특기할 만하다. 제일 높은 곳에 올라가려는 열망과 그곳에서 떨어져도 두려움 없이 나아가리라는 의지적인 메시지(‘Fearless’, ‘ANTIFRAGILE’)를 줄곧 노래한 르세라핌의 모습과 맞물리며 ‘I ≠ DOLL’은 솔로 아티스트 허윤진의 텍스트를 더욱 풍부하게 형성한다.

드림캐쳐 ‘REASON’

[REASON]
드림캐쳐 컴퍼니
2023년 1월 13일

에린: 2022년은 드림캐쳐가 데뷔 5년 만에 음악방송 1위를 차지하고 케이팝 아이돌로서는 최초로 유럽 최대 규모의 페스티벌인 ‘프리메라 사운드’에 출연하며 오랜 기간 동안 팀의 개성을 유지한 시간이 빛을 본 해였다. 2023년 데뷔일 1월 13일에 발매한 팬 송 ‘REASON’은 6년간의 활동을 담아낸 뮤직비디오를 통해 지금까지의 성과를 정리하면서 팬들과 함께 축하하는 의미를 담고 있다. 공격적인 전자기타와 점점 고조되며 폭발하듯 쏘아내는 드럼 사운드는 특유의 저음으로 내리꽂는 랩 퍼포먼스와 시원하게 내지르는 보컬과 어우러지며 드림캐쳐의 뿌리인 비장미를 강조한다. 특히 관객 함성과 같은 코러스 부분들은 콘서트에서 다 함께 부르는 모습을 자연스레 상상하게 되는데, 가수와 관객이 함께 축하하며 나아가는 팬송의 역할을 충실하게 수행한다.

비눈물: 드림캐쳐의 데뷔 6주년을 기념하는 세 번째 팬송이면서, 멤버 전원의 재계약 이후 첫 음원이기도 하다. 그룹과 팬덤 모두에게 특별한 의미를 갖는 만큼, 'REASON'은 디스코그래피를 통틀어 가장 날카롭고 밀도 높은 사운드를 선보인다. 도입부의 질주하는 기타 리프 등을 통해 "악몽" 시리즈의 예리함과 속도감을 구현하면서 동시에 "디스토피아"와 "아포칼립스" 시리즈를 거치며 그룹의 새로운 기조로 자리 잡은 웅장함과 무게감까지 표현하고 있다. 또한 라이브 세션과 동일하게 밴드 악기로만 구성된 트랙 구성은 드림캐쳐의 근간을 일깨우고, 쉴 틈 없이 교차하며 벅찬 마음에 박차를 가하는 고음 파트는 멤버들의 성장을 보여준다. 한편 특유의 비장함은 간직하면서 현실을 직시하고 팬들과의 유대와 공감을 더하는 가사는 보다 성숙해진 그룹의 스탠스를 내보인다. 드림캐쳐가 앞으로 나아갈 이유가 되어준 팬들에 대한 고마움과 책임감을 꾹 눌러 담은 싱글. 

XG ‘SHOOTING STAR’

SHOOTING STAR
XGALX
2023년 1월 25일

스큅: 멤버 코코나의 벌스를 필두로 유튜브와 틱톡에서 폭발적인 반응을 불러일으켰던 싸이퍼 영상 이후 첫 컴백, XG는 약간의 변화구를 택했다. 타이틀곡 ‘SHOOTING STAR’는 이목을 집중시키는 강렬한 비트와 랩, 분주한 퍼포먼스로 여느 때와 비슷한 시작을 보이지만, 비트가 걷어지는 프리-코러스에서부터는 유려한 멜로디가 주도권을 잡으며, 레이백된 그루브의 후렴구에 다다르면 우아하고 고혹적인 분위기가 곡을 휘감는다. 보컬 주도의 커플링 곡 ‘LEFT RIGHT’ 역시 이러한 후렴구의 기조를 공유한다. 여러 모로 레드벨벳의 ‘Bad Boy’가 떠오르는데, 캐치(catchy)한 훅이나 퍼포먼스, 화려하고 치열한 기교 부림보다 고혹적인 분위기로, 곡 전반의 흠결 없는 프로덕션 자체로 주목받고 있다는 점이 그러하다. 초국적의 케이팝을 지향하는 그룹으로서 다분히 개연성 있고 또 적확한 선택이다. 여기에 더해진 비리얼, 구글 등 다양한 인터넷 플랫폼을 자유자재로 가지고 노는 현란한 비주얼은 이들의 초국적성과 동시대성을 강화한다. 기존에 주목받았던 주린, 하비 등의 랩 멤버 외에 치사, 쥬리아 등 보컬 멤버까지 다양한 멤버들을 고루 조명하고 있는 것 역시 긍정적으로 평가할 만한 부분이다. 뉴진스와 더불어 케이팝의 관성적인 프로덕션 포맷을 적극적으로 탈피하고 있는 대표적인 4세대 걸그룹으로 꼽을 만하다.

메이브 ‘PANDORA’

Pandora's Box
메타버스엔터테인먼트
2023년 1월 25일

마노: ‘PANDORA’는 신인 아이돌의 데뷔곡이라는 딱지를 떼어놓고 봐도 그 자체로 매우 준수한 곡이다. 퍼포먼스 역시 빈틈없이 잘 짜여 있으며 이를 수행하는 멤버들 역시 능력치가 상당히 우수한 것으로 보인다. 여기서 주목하고자 하는 것은 이 ‘멤버들’에 관한 부분이다. 메이브는 ‘메타버스 아이돌’을 지향하고 있는데, 3D로 매핑된 캐릭터를 전면에 배치하고 (‘덕후’들 사이에서는 흔히 ‘안에 있는 사람’ 혹은 ‘뒷사람’으로 칭해지곤 하는) 실가창자 및 퍼포머가 따로 존재한다는 점에서 필자는 소싯적의 ‘사이버 가수’를 떠올리지 않을 수 없다. 사이버 가수의 존속을 위해 역설적으로 ‘뒤에서 노래 하는 사람’인 본인의 존재는 철저히 숨겨야 했다는 웃지 못할 후문 역시 전해지지 않았는가. 허울 좋은 사업 모델에 의해 또 다른 착취의 희생자를 낳는 것은 아닌지 우려가 되는 것이 솔직한 심정일 뿐더러, 사업 모델 자체의 지속가능성에 대해서도 크게 의문이 든다. 케이팝 아이돌은 필수적으로 많은 횟수의 음악방송 출연을 해야 하는데, 메이브 같은 신인의 경우 4주 안팎까지도 음악방송 활동을 해야 한다는 점에서 과연 그 많은 횟수의 출연을 감당할 수 있는지 근본적인 의문이 들지 않을 수 없는 것이다. 여러 가지로 착잡한 생각이 머리를 잔뜩 헤집는 와중에 딱 한 마디로 이 글을 마무리해 보고자 한다. ‘기둥 뒤에 사람 있어요’.

조은재: 촘촘히 잘 짜인 기획과 캐릭터, 그리고 3D 모델링 만큼이나 'PANDORA'의 곡조는 훌륭하게 잘 짜여 있다. 후렴에서 웅장하게 터져 나오는 사운드는 이 프로젝트의 규모감을 반영하는 듯 듣는 이를 압도하고, 수준급의 보컬과 래핑 또한 곡이 가진 에너지에 전혀 밀리지 않고 좋은 시너지를 보인다. 특히 숏폼 콘텐츠에서의 바이럴을 노린 듯 분명한 포인트를 보여주는 안무는 정교한 CG 기술을 자랑함과 동시에 이들이 케이팝 아이돌로서의 매력을 충분히 가지고 있음을 드러낸다.
그러나 이토록 잘 만들어진 '케이팝'이 상당한 퀄리티에 비해 큰 반향을 이끌어낼 수 없는 이유는 결국 '케이팝'의 매력이 단순히 곡과 퍼포먼스에만 있지 않다는 것을 의미하겠다. 방대한 콘텐츠로서의 '케이팝'은 음악과 비주얼 퍼포먼스뿐만 아니라 살아 움직이는 인격체가 갖는, 가변적이고 불안정하지만 생동감이 넘치는 캐릭터가 필수적으로 요구된다. 그리고 각 캐릭터 간의, 혹은 캐릭터와 오디언스 사이의 유기적 소통, 공동체 의식과 같은 것들이 케이팝 팬덤을 유지하는 원동력이 된다. 수많은 아이돌이 준수한 작품을 들고 나오지만, 어떤 팀은 각광받고 어떤 팀은 팬덤을 형성하지 못한 채 잊혀지는 이유도 이러한 음악 외적인, 그러나 매우 주요한 요인에 기인할 때가 많다.
메이브 또한 이 부분을 의식한 듯 상당히 섬세하고 자세히 짜인 캐릭터 설정을 갖고 있기도 하지만, 실시간으로 실존함을 증명할 수 있는 인격체가 만들 수 있는 콘텐츠의 볼륨을 따라가는 것은 아직 역부족으로 보인다. 쉽게 말해, 메이브가 현실의 4인조 아이돌이었다면 실시간 라이브 방송과 버스킹, 미니 팬미팅 등 여러가지 활동을 통해 멤버 간, 그리고 팬덤과의 상호작용을 보여주며 그것이 곡과 퍼포먼스의 매력과 어떻게 결합하고 변주될 수 있는지를 설명할 수 있었겠지만, 이미 방대한 볼륨의 콘텐츠에 익숙해진 케이팝 소비자에게 메이브가 가질 수밖에 없는 '빈칸'은 한참 부족하고 허전하게만 느껴질 수밖에 없겠다는 것이다.
대중의 호응이 특정 인격체의 매력을 향한다는 사실은 케이팝을 포함한 모든 연예 산업에 근본적으로 깔려 있는 부조리이기도 하지만, 결국 대중문화가 처음 생겨날 때부터 작동해온 기본 원리이기도 하다. 그래서 이 원리를 원론적으로 해결하려는 시도도 역사적으로 꾸준히 있어왔고, 그중 하나가 인격을 제외한 콘텐츠만 분리해내 유통하고자 하는 '가상 아이돌'과 같은 형태로 나타났다. 물론 일부는 성공적이기도 했지만, 앞으로도 이런 실험이 완벽히 성공하기란 적어도 케이팝을 소비해온 기존 소비자층 안에서는 불가능할 것으로 본다.

예미: 넷마블 자회사 메타버스엔터테인먼트가 카카오엔터테인먼트와 협력하여 제작한 가상 걸그룹 메이브는 제작사 및 참여진들의 이름값에 걸맞게 훌륭한 무대를 보여준다. 신인 그룹의 패기를 세계관 컨벤션에 잘 녹여낸 가사와 이를 뒷받침하는 웅장한 사운드, ‘적당히’가 없는 듯한 힘 있는 보컬과 고난도 안무가 돋보인다. 레퍼런스는 매우 명확하나, 음악방송 무대에서 방송국마다 달라지는 의상과 자연스러운 동작을 보며 제작사의 높은 기술력을 엿볼 수 있었다.
다만 이들의 무엇을 갖고 ‘덕질’해야 할지 잘 모르겠다. 기획사에서는 모회사의 게임 ‘파라곤: 디 오버프라임’과의 연관성을 내세우고 세계관 웹툰을 런칭하는 등 다른 컨텐츠 분야와 연계된 사업을 진행하려는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그간 아이돌 산업에서 세계관 및 관련 부가 사업의 영향력이 멤버의 매력과 팬덤의 역동이 가진 파급력을 넘어선 적은 아직 없었다. 역사적으로 케이팝 아이돌 팬덤이 가장 사랑해온 것은 미리 제작된 픽션 속 캐릭터의 서사가 아니라, 실제 사람이 팬을 만나 보여주는 매력이라서 그렇다. 지금까지 메이브의 활동에서 무대 외적인 매력을 알 수 있는 방법은 마땅치 않고, 이를 보여줄 기회가 있을지는 알 수 없다. 메이브의 무대가 많은 이들의 관심을 끌 수 있을 만큼의 만듦새를 가진 것은 분명하지만, 현재로서는 이들이 기술력 및 퀄리티의 영역을 넘어 아이돌로서 깊은 인상을 남기기는 어려워 보인다.

비비지 ‘Pull Up’

VarioUS
BIGPLANETMADE, 스윙 엔터테인먼트
2023년 1월 31일

마노: 단순히 ‘걸크러시’, ‘성숙미’라는 납작한 언어로는 설명할 수 없고, 그렇게 수식해서도 안 되는 곡이라는 생각이 든다. 시크한 캣워크를 꼭 닮은 단정한 브라스 사운드, 복잡하고 자잘한 손동작으로 포인트를 준 안무 등 모든 요소들이 비비지의 숨겨진 잠재력을 최대한으로 끌어올리는 역할을 하며 여태까지의 싱글에서 엿보지 못한 새로운 가능성을 점쳐보게 한다. 이제야 비로소 그룹이 자리를 잡고 완성된 느낌이랄까. 전신 격인 여자친구와 다른 노선으로 출발했음에도 여자친구의 유닛 격이라는 세간의 오해를 씻어내지 못한 부분이 여전히 존재해왔는데, 오롯이 비비지라는 팀으로 우뚝 설 수 있는 기반을 다지는 초석으로 자리잡을 듯한 기념비적인 싱글이다.

By Editor

idology.kr 에디터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