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년 상반기를 돌아보며, 월별로 기억에 남는 케이팝 발매작에 대한 리뷰를 3주간 발행한다. 해당 포스트에서는 2월 발매된 앨범 중 키, 트라이비, 라임라잇, 황민현의 앨범을 다룬다.
마노: 언뜻 더 위켄드 같은 이름을 떠올리지 않을 수 없는 비정하고 차가운 질주감의 신스팝 넘버 ‘Killer’, 역시나 기시감을 일으키는 묵직한 사운드의 록 댄스 넘버 ‘Heartless’, 왠지 모를 향수가 묻어나는 ‘Easy’ 등의 신곡이 수록된 리패키지 풀 렝스 발매작. 신곡을 중간중간 끼워 넣은 것을 제외하고는 트랙 순서 재배치 같은 안배를 딱히 하지 않았는데, 본 리패키지가 본래 의도했던 형태의 발매작이었기에 그런 것인지, 혹은 트랙 재배치를 하지 않아도 유기성을 살릴 수 있을 것이라고 판단했기에 그렇게 한 것인지 궁금해지도 한다. 전작의 트랙 간 유기성이 워낙 좋았기에 이를 해치고 싶지 않았던 듯도 한데, 신곡 파트와 기수록곡 파트가 다소 겉도는 느낌이 없지 않아 못내 아쉽다. 늘 아이코닉하고 독특한 콘셉트를 고수하는 아티스트가 지나칠 정도로 레퍼런스가 뚜렷한 타이틀곡을 내세우게 된 것도 다소 의아해지는 부분.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러 내외적 상황에 굴하지 않고 준수한 결과물을 내놓은 것에 대해서는 박수를 보내고 싶어진다. 앞으로의 활동에 기대를 걸어본다.
에린: 트라이비의 이전 타이틀곡 ‘둠둠타’, ‘KISS’가 후렴구의 캐치프레이즈가 각인되도록 의도적인 낙차를 만들어낸 것이 특징이었다면, ‘WE ARE YOUNG’은 외부로 향했던 시선을 그룹 내부로 옮겨 현재의 트라이비를 담아내는 데에 집중한다. 낙차로 인해 뚜렷했던 널뛰는 에너지는 비교적 매끄럽게 정돈된 활력으로 치환되며, 트라이비의 젊은 활력과 생동감을 자연스럽게 내비치고 있다. 그룹의 강점인 역동성을 활력 넘치는 젊은 하이틴으로 해석해낸 ‘WE ARE YOUNG’과 콘셉츄얼한 서사를 덧입혀 어두운 긴장감을 조성하는 수록곡 ‘WITCH’를 통해 향후 다양한 가능성을 기대하게 된다.
비눈물: 라임라잇의 프리 데뷔 앨범 "LIMELIGHT"가 이전 세대의 음악적 유산을 계승하고 더불어 고유성과 확장성을 추구한 것과 같이, 데뷔 앨범 "LOVE & HAPPINESS"는 지난 더블 타이틀곡과 동일한 프로듀서를 기용해 그 만듦새를 유지하며 확고한 계승의 의지를 나타내고, 단순히 전작을 되풀이하는 대신 악곡·가사의 주제나 보컬 퍼포먼스 등 여러 요소를 교차·조합하면서 새로움을 이끌어낸다. 이를테면 타이틀곡 'Honestly'는 전작의 'Eye To Eye'의 설레고 몽환적인 무드를 이어가지만, 고음역대 보컬의 비중을 줄이고 멤버들의 음색을 조명하여 곡에 부드러움을 더한다. 또한 수록곡 'Blanc Noir'는 곡의 극적인 구성과 애상적인 멜로디가 'StarLight'와 닮아있지만, 주저 없이 절정으로 내달리는 '아이즈원 스타일'에 반전을 주는 안티-드롭을 활용, 색다른 청취 경험을 제공한다.
라임라잇은 두 앨범을 통해 과거의 트렌드나 장르 등 광막한 역사가 아닌 특정 그룹을 핀포인트로 삼아 그 음악색을 이어받고, 단순한 분량 채우기가 아닌 곡의 풍부한 (재)해석을 가능케 하는 촉매로서 인스트루멘탈과 아카펠라 파일을 함께 수록하는 등 그룹의 독특한 음악적 기반을 쌓았다. 앞으로는 라임라잇만의 특색을 더 살릴 방안을 마련해야 하지 않을까. 꼭 거창한 세계관이 아니더라도 팀 컬러를 꾸밀 수 있도록 곡 단위의 새로운 스토리텔링이 수반되어야 한다. 또한 케이팝에서 보기 드문, (유닛이 아닌) 3인조 구성을 더욱 활용할 방법도 필요하다. 이미 저번 'StarLight'에서 교차할 수 있는 보컬 다양성이 부족하다는 우려를 이번 'Honestly'에서 각 보컬의 매력에 집중하고 그 밀도를 높여 장점으로 치환한 것처럼, 차후 안무 측면에서 3인조이기에-3인조만이 꾸릴 수 있는 무대 위 퍼포먼스까지 함께 고민한다면 치열한 4세대 속에서도 각광받는(limelight) 그룹으로 성장할 수 있을 것이라 믿는다.
에린: “Truth or Lie”는 보통 마지막으로 배치하는 발라드 트랙(‘Honest’)으로 시작해 이어지는 타이틀곡 ‘Hidden Side’와 뚜렷한 대비를 이룬다. 얇은 미성 보컬의 연약함이 극대화된 ‘Honest’는 이전 그의 솔로곡인 ‘Earphone’과 ‘별의 언어’를 연상케 하는데, 뒤이어 나오는 무거운 리듬과 냉정한 태도의 ‘Hidden Side’와 대비되어 기존 그룹 내에서의 ‘황민현’과 솔로 ‘황민현’을 압축적으로 선보인다. 이후 퍼커션 리듬과 아기자기한 악기 소리로 채운 ‘Crossword’와 묵직한 베이스가 특징인 ‘Perfect Type’은 각각 담백함과 서늘함으로 가창자가 가진 보컬을 달리 해석하여 다양한 캐릭터의 가능성을 보여준다. 솔로 가수로서 첫발을 내딛는 “Truth or Lie”는 다소 밋밋할 수 있는 구성을 보컬에 대한 세심한 분석으로 보완함으로써 다채로운 모습을 보이고자 했던 앨범의 목표를 준수하게 달성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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