들어가며
2020년 나는 당시 막 부상하고 있던 4세대의 흐름을 정리해보고자, 그리고 “케이팝의 역사를 꿰어보는 유용한 축”으로서 세대론을 정립하고자 “2020 아이돌팝 세대론 : 1세대에서 4세대까지”를 작성했다. 돌이켜 볼수록 부족함이 많은 글이었기에, 언젠가 5세대가 도래했다고 느껴지는 순간이 온다면 훨씬 더 심도 있게 새로운 세대에 대해 논하리라 마음 먹고 있었다. 그리고 2025년과 2026년 상반기를 지나오며 나는 마침내 때가 왔음을 체감했다. 이에 4세대에서 5세대까지의 흐름을 정리한 “2026 아이돌팝 세대론 : 4세대에서 5세대까지”를 발행한다. (“2020 아이돌팝 세대론” 글에서 이어지므로, 이를 먼저 읽어보기를 권한다.)
① 4세대 이후의 케이팝
분량 관계 상 3편에 걸쳐 발행되는 “2026 아이돌팝 세대론 : 4세대에서 5세대까지”는 차례대로 4세대 이후의 케이팝, 4세대 이후의 팝, 5세대의 도래를 상세히 검토한다. 본 글은 그 중 첫 번째, 4세대 이후 케이팝의 흐름에 대해 이야기한다.
2023년, ‘5세대론’의 첫 등장
본격적으로 5세대 아이돌에 대한 이야기를 하기에 앞서, ‘5세대론’이 처음 등장한 때를 살펴볼 필요가 있다. 2023년 상반기, 엠넷의 보이그룹 오디션 서바이벌 프로그램 〈보이즈 플래닛〉은 데뷔조 결성을 앞두고 “글로벌 5세대 K-POP의 포문을 열게 될 K-POP 보이그룹”이라는 수식어를 동원하기 시작했다. 이후 더윈드와 같은 보이그룹 역시 ‘5세대론’에 편승했다. 대뜸 선언된 세대 전환에 당시 많은 사람들은 의문을 표했다. 2020년대 초 4세대라는 수식어가 널리 퍼진지 그리 오래 지나지 않은 시점이었기 때문이다. 프로덕션 측면에서 기존 보이그룹과 특기할 만한 차별점이 없었음은 물론이다. 오디션 프로그램을 통한 그룹 결성은 〈보이즈 플래닛〉의 모태라 할 수 있는 3.5세대(3세대에서 4세대로 넘어가는 전이기)의 엠넷 〈프로듀스〉 시리즈 이래로 줄곧 널리 채택되어온 제작 방식이며, 추후 공개된 제로베이스원의 데뷔 앨범 역시 케이팝의 익숙한 공정법을 따른 작품임이 자명했다. 일전에 나는 세대를 논함에 있어 “아이돌의 기획과 결성 과정”이 “시장 논리의 변화를 가장 명확하게 확인할 수 있는 준거”라고 논한 바 있는데, 이 관점을 따른다면 이 당시 호기롭게 5세대를 부르짖은 이들은 사실 3.5~4세대의 모델을 그대로 고수하고 있었던 셈이다. 그렇다면 난데없이 이러한 ‘5세대론’이 등장했던 배경은 무엇일까.

2022년, 걸그룹 센세이션
2023년 상반기의 시대적 맥락은 이에 대한 실마리를 제공한다. 2021년 말부터 2023년 상반기까지 엔데믹 전후 시기는 신인 걸그룹의 약진이 유독 두드러진 때였다. 2021년 12월 데뷔한 아이브를 시작으로, 2022년 2월 엔믹스, 5월 르세라핌, 그리고 7월 뉴진스와 11월 피프티 피프티에 이르기까지 데뷔 초부터 단숨에 대중의 이목을 끈 걸그룹들이 다수 등장했다. 해외에서의 성취 역시 두드러졌는데, 특히 2023년 초 뉴진스의 ‘Ditto’와 ‘OMG’는 별다른 해외 프로모션 없이도 빌보드 핫100 차트에 진입하며 이들을 향한 세계적인 관심을 짐작케 했고, 피프티 피프티의 ‘Cupid’ 역시 빌보드 핫100 차트에 진입해 최고 17위까지 올라 화제를 모았다. 이는 케이팝의 충성도 높은 팬덤 참여보다도 곡 자체의 대중적 확산에 따른 결과였다는 점에서 더욱 회자되기도 했다.

반면 같은 시기 신인 보이그룹들은 고전을 면치 못했다. 세븐틴, NCT 드림 같은 중견 그룹들이 뒤늦게 최전성기를 맞이하고, 스트레이키즈, 에이티즈, 투모로우바이투게더, 엔하이픈 등 4세대 초에 데뷔한 그룹들이 해외 팬덤을 탄탄히 다지는 등, 연차가 어느 정도 쌓여 안정화된 보이그룹들이 소기의 성과를 내곤 했지만 신인 보이그룹이 주목 받는 경우는 거의 없었다. 단적으로 아이돌로지의 연말 결산에서 2020년 올해의 신인으로 선정된 7팀 중 5팀이, 2021년에는 8팀 중 6팀이, 2022년에는 12팀 중 9팀이 걸그룹이었다. 미래소년, ATBO, 나인아이 등 나름 당 시대의 주요 신인 보이그룹으로 꼽히던 이들마저도 현 시점 해체를 발표했거나 사실상 해체 상태인 경우가 적지 않다.
신인 보이그룹 쇠퇴에는 여러 맥락이 있었을 테지만, 2018년 버닝썬 게이트로 인한 보이그룹 팬덤 대거 이탈을 무시하기 어렵다. 보이그룹 팬덤에 집단 트라우마를 안긴 버닝썬 게이트 이후, 2018년 이전 데뷔해 다년 간 어느 정도의 검증을 거쳐 이미 탄탄한 기반을 확보했던 보이그룹에게로 팬덤 쏠림 현상이 일어난 것은 어찌 보면 당연하다. 국내에서 세븐틴, NCT 드림, 투모로우바이투게더 등 소위 ‘청량계’ 보이그룹이 득세했다는 점 역시 그러하다. 계보도 상 버닝썬 게이트의 주축이었던 승리(빅뱅), 용준형(비스트)의 직계 후손이라 할 수 있는 거친 힙합 기반의 보이그룹들은 해외를 중심으로 천천히 팬층을 쌓아갔다.

이전까지의 케이팝 역사에서 통상 보이그룹이 걸그룹보다 앞서 세대 교체를 이뤄왔다는 점(관련하여서는 “2020 아이돌팝 세대론” 글을 참조)을 상기한다면 이는 커다란 변화다. 4세대 태동기 보이그룹과 걸그룹의 세대 교체 시간차가 완전히 좁혀졌다면, 2022년에는 마침내 걸그룹이 보이그룹을 완전히 앞질러 시대의 주도권을 잡기에 이른 것이다. 그러한 점에서 2023년 ‘5세대’라는 난데 없는 수식어가 엠넷이 논란의 〈프로듀스 X 101〉 이후 4년 만에 내놓은 보이그룹 데뷔 서바이벌에서 시작되었으며, 이후에도 한동안 거의 신인 보이그룹에게만 동원되었다는 점은 결코 우연히 아닌 듯 보인다. ‘5세대’는 필시 신흥 걸그룹들이 약진하는 가운데 맥을 추리지 못하던 보이그룹의 역사를 덮고 새 시대를 열어젖히겠다는 야심찬 선언이었을 테다. 그러나 이는 역설적이게도 보이그룹의 도태를 더욱 선명하게 드러냈을 뿐이다. 보이그룹이 역사적인 주도권을 가지는 것을 당연시하는 사고방식은 다분히 시대착오적이다.
5세대는 도래했는가?
그렇다면 현 시점, 과연 5세대는 도래했을까? ‘5세대론’이 처음 부상한 지도 벌써 3년이 지났다. 부인할 수 없는 4세대의 도래를 알렸던 투모로우바이투게더, 있지도 어느덧 7주년을 넘겨 재계약을 체결한 상황이다. 이러한 시점에 다음 세대를 논하지 않는 것이 오히려 부자연스러워 보이기도 한다. 그렇다면, 진짜 ‘5세대’가 온 것이라면, 이들은 4세대와 어떤 차이점을 가지는가? 그리고 이런 차이점은 어디에서 비롯되는가? ‘5세대’만의 새로운 패러다임이 있다면 과연 무엇인가?
나는 앞선 세대론 글에서 “3세대가 케이팝의 국경을 허무는 ‘케이팝의 탈영토화’ 시기였다면 4세대는 완전히 평평해진 지대 위에서 다시 새로운 영역을 형성해가는 ‘케이팝의 재영토화’ 시기”라고 언급한 바 있다. 케이팝은 아시아 권역을 넘어 빌보드 차트로 대변되는 북미 시장에까지 녹아들었고, 케이팝 아티스트들이 데뷔 때부터 북미를 중심으로 한 세계 무대를 염두에 둔지도 오래되었다. 그렇기에 4세대 이후의 흐름을 보기 위해 우리는 케이팝 산업 내부와 글로벌 팝 시장을 동시에 살필 필요가 있다. 케이팝이 글로벌 팝 시장에서 본격적으로 존재감을 드러내면서 케이팝 세계와 팝 세계의 상호작용이 더욱 활발해졌고, 이에 따라 케이팝에 대한 해외의 인식 역시 변화해왔기 때문이다.
4세대 ‘케이팝의 재영토화’ 이후 케이팝: “케이팝이 예전 같지 않다”?
다음은 세븐틴, V8의 버논이 2026년 8월 공개된 ⟨더 할리우드 리포터(The Hollywood Reporter)⟩와의 인터뷰에서 근래 케이팝의 변화에 대해 이야기한 내용이다.
인터뷰어: 데뷔하신 이후로 업계의 트렌드라든가 사운드가 어떻게 바뀌어왔다고 보시는지 궁금해요.
버논: 케이팝이 케이팝 대신 점점 미국 팝처럼 들린다고 느껴요. 다른 많은 사람들도 그렇게 말하고 있는 것 같고요. 그래서 제가 초등학생 때였던 2000년대나 2010년대 초로 돌아가고 싶게 돼요. 원더걸스, 빅뱅, 2NE1 같은 분들 있잖아요. 케이팝 프로듀서들은 늘 미국 사운드를 케이팝으로 가져와서 자기만의 것으로 만들려 했다고 생각해요. 그리고 지금은 그들이 그걸 너무 잘해버리는 지경에 온 것 같고요. 케이팝과 팝을 구분할 수 없어요. 아니 할 수는 있지만, 그 갭(gap)이 점점 얇아지고 있는 거죠. 그리고 그게 많은 사람들이 예전 케이팝으로 돌아가고 싶게끔 하는 것 같아요.
인터뷰어: 저는 케이팝이 너무 인기를 얻게 된 것과도 분명 관련이 있는 것 같아요.
버논: 해외에서요? [인터뷰어: 해외에서요] 그쵸 그쵸.
인터뷰어: 그리고 그게 (케이팝에) 미국 프로듀서들의 새 바람을 몰고 오기도 했고요.
버논: 맞죠. 미국 프로듀서들이 그냥 곧바로 케이팝을 하고 있으니까요. 그러니 그런 결과가 나올 수밖에요.
위 내용은 최근 “요즘 케이팝이 예전 같지 않다”, “옛날 케이팝이 그립다”는 원성이 커져가던 해외 케이팝 팬덤의 큰 공감을 얻었다. (X에서 확산된 인터뷰 클립 포스트는 2026년 8월 18일 기준 7.5만 좋아요, 1.9만 리트윗을 기록했다.) 버논의 감상이, 그리고 해외 케이팝 팬덤의 호소가 과연 정말일까. 우리는 위 인터뷰 내용을 차근히 되짚어볼 필요가 있다.
버논이 지적했듯, 한국의 케이팝 프로듀서들은 언제나 미국을 중심으로 해외 음악을 적극적으로 참조해왔다. 예컨대 빅뱅과 2NE1은 분명 프로듀서 테디가 원타임 시절부터 미국 힙합을 자신의 자양분으로 적극 흡수해온 역사 위에서 성립된 그룹이다. 00년대부터 10년대 초까지 지속된 댄스 팝 디바 융성기의 자장 아래서 탄생한 숱한 케이팝 디바/걸그룹들의 작업들은 어떠한가. 단적으로 티아라의 대표작 중 1/3 가량은 브리트니 스피어스가 없었다면 존재하지 않았을 것이다. 그러나 (역시 버논이 지적했듯) 이러한 작업에서는 대개 변용의 흔적이 아주 분명했다. 테디는 한국적 코드를 적극적으로 동원하는 ‘재미교포적’ 방법론에 천착했었고(관련해서는 “Weekly : 2026년 6월 1주차”의 미야오 “BITE NOW” 평을 참조), 티아라의 브리트니-팝은 ‘뽕끼’로 설명되곤 하는 신랄한 해적판의 미학을 갖추고 있었다. ‘한국적 코드’, ‘뽕끼’라는 설명에서 단적으로 드러나듯 이러한 특성은 우선 작곡가들이 한국 배경을 지닌 이들이었기 때문인 것으로 생각해볼 수 있다. 그리고 사실 테디, 유영진, 켄지, 스윗튠, 황현, 라도, 최규성, 용감한 형제 등 1~2세대 때부터 지금까지 활동 중인 한국의 케이팝 프로듀서들은 저마다의 발전 과정을 거쳤을지언정 대체로 그들 특유의 작법을 계속해서 유지하고 있다.

그렇다면 케이팝의 송캠프 시스템을 통해 유입된 해외 작곡가들은 어떠한가. SM은 00년대 후반 북유럽 작곡가를 기용한 송캠프를 시범적으로 도입해 동방신기 ‘주문’, 소녀시대 ‘소원을 말해봐’과 같은 히트곡을 탄생시키고 10년대 초반 이를 확립했으며, 이는 이후 케이팝 음악 제작의 표준적인 루트가 되었다. 조금만 정보를 찾아보더라도 알 수 있는 부분이지만, 사실 이러한 송캠프 시스템이 근본적으로 ‘서구 친화적’ 사운드를 만들고자 생겨난 것은 아니다. 북유럽 작곡가의 영입은 새로운 사운드를 찾아다니던 SM이 90년대 S.E.S. ‘Dreams Come True’ 때부터 시도했던 것으로, 케이팝이 산업적인 기틀을 갖추게 된 이후 이를 비로소 확장하게 된 것으로 보는 것이 더 자연스럽다. 더구나 초창기 케이팝에 참여했던 북유럽 작곡가들은 북미 팝보다 오히려 제이팝과 연결된 경우가 적지 않았다. (디자인 뮤직(DSign Music) 사단이 대표적인 예시다.)

할리우드 리포트의 인터뷰어가 지적한 미국 프로듀서들의 케이팝 제작 참여 역시 북미 시장 진출을 위해 시작된 것이라 단언하기는 어렵다. 2018년 롤링스톤즈의 취재 기사 “어떻게 미국 R&B 작곡가들은 케이팝에서 새로운 터전을 찾았는가”는 반복적인 루프 중심의 랩/힙합 곡이 미국 주류 시장을 점령하며 복잡한 멜로디와 화성에 특화되었던 미국 R&B 작곡가들이 점차 케이팝 시장으로 눈을 돌리게 되었다고 보고한다. 즉, 많은 미국 작곡가들이 케이팝으로 흘러들어온 것은 오히려 북미 시장에서 더 이상 통하지 않는 것을 케이팝에서는 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스웨덴의 작곡가 안드레아스 외베리(Andreas Öberg)는 제이팝과 케이팝을 섬세하게 구분하며 케이팝이 보다 블랙뮤직과 상성이 잘 맞는다고 언급한 바 있기도 하다. 다음은 2016년 아이돌로지를 통해 발행되었던 그의 인터뷰 내용이다.
김영대: 일본과 한국에서 모두 활동해본, 그리고 여전히 활동하고 있는 당신에게 그 두 시장, 혹은 문화의 차이는 각별하게 느껴질 것 같다. 작곡가이자 프로듀서인 당신에게 있어서 제이팝과 케이팝의 가장 큰 차이점은 무엇이라고 생각하나?
안드레아스 외베리: 프레이징(노래를 하거나 연주를 할때 악보상의 음들이 특정한 길이나 리듬으로 구성되어 의미있는 멜로디로 전달되는 방실을 말함)의 차이가 결정적이다. 케이팝의 경우에는 조금 더 리드믹한 음악, 더 많은 16분 음표로 이루어지고 싱코페이션(당김음)이 강하게 느껴지는, 다시 말해 ‘훵키한’ 음악을 더 원하는 경향이 있다. 주변에 케이팝을 만드는 신인 작곡가들이 있으면 그들에게 90년대의 R&B 음악을 듣고 참조하라고 조언하곤 한다. 프레이징의 측면에서 봤을 때 현재 케이팝에 가장 잘 어울리는 음악이기 때문이다. 제이팝을 들어보면 그들은 보다 평이하고 직선적인 프레이징을 선호하는 것을 알 수 있다. 대부분의 전통적인 보이밴드나 아이돌 음악들이 모두 그렇다.
김영대: 프레이징은 특히 언어에 따라 다른 느낌을 주게 마련인데, 한국어와 일본어의 차이가 그런 음악적 차이와 선호를 만든다고 보는가?
안드레아스 외베리: 물론이다. 한국어의 발음은 싱코페이션이 강한 음악들, 훵크나 힙합 등 블랙뮤직에 훨씬 더 자연스럽게 어울린다.

그의 주장에 따르면 케이팝은 한국어의 언어적 특성상 90년대 R&B를 비롯한 블랙뮤직과 잘 어울린다. 과학적인 연구에 따른 주장은 아니지만, 오랜 기간 케이팝과 제이팝 프로듀싱에 깊이 관여해온, 한국어-일본어-영어 모두 모국어가 아닌 스웨덴 작곡가의 관찰은 분명 귀담아 들을 만하다. 외베리의 의견에 비춰본다면 미국 R&B 작곡가들이 케이팝에 이끌린 것은 극히 자연스러운 흐름일 것이다. 블랙뮤직에 이끌리는 케이팝 회사와 본국에서 갈 곳을 잃은 미국 작곡가들의 이해관계가 적절히 맞아떨어진 셈이다. 그렇기에 미국 작곡가의 기용을 단순히 북미 시장 현지화 전략의 일환으로 이해하기에는 분명 무리가 있다. 정리하자면 “케이팝이 미국 팝 같아진 것”은 한국 작곡가가 너무 미국 팝을 잘 구현하게 되었기 때문이라고도, 미국을 위시한 해외 작곡가가 케이팝에 대거 참여하게 되었기 때문이라고도 보기 어렵다. 그렇다면 많은 사람들이 공감을 표하고 있는 케이팝의 음악적 변화는 과연 어떻게 설명할 수 있을까?
4세대 ‘케이팝의 재영토화’ 이후 케이팝: 케이팝과 팝의 동기화
작곡가의 문제가 아니라면, 이는 청중의 변화로 이해하는 것이 온당할 것이다. 일찍이 케이팝은 해외 진출을 시도해왔지만, 오랜 기간 케이팝의 1차 타깃은 국내 대중이었다. 폐쇄적인 일본 시장의 경우 현지 회사와의 합작을 통해 일본 오리지널 곡을 발매하곤 했으나, 이외 지역의 해외 진출은 결국 한국 발매반을 바탕으로 이루어졌다. 00년대 후반에서 10년대 초반에 걸쳐 보아, 세븐, 원더걸스 등이 일본에서와 같은 현지화 전략을 통해 미국 진출을 시도하기도 했으나 기대 만큼의 성과를 거두지 못했기에, 한국 발매반을 중심으로 아시아 권역의 팬덤을 공략하는 것이 일반적이었다.
그러나 2010년대 중반부터 방탄소년단은 물론, 카드, 이달의소녀(프리-데뷔 시기 포함), 드림캐쳐 등 해외에서 더 선풍적인 인기를 끄는 그룹들이 늘어나기 시작했고, “대륙과 국가의 경계에 일절 구애받지 않는 케이팝의 새로운 지평”이 열린 4세대부터 본격적으로 데뷔 때부터 국내보다 해외를 먼저 공략하는 그룹들이 등장했다. 스트레이키즈, 에이티즈, 엔하이픈, 피원하모니 같은 그룹들이 그 예시다. 이른바 “케이팝의 재영토화”의 세대, 4세대다. 이 가운데 케이팝의 대형 그룹과 대형 그룹 워너비가 가장 초점을 맞춘 것은 단연코 최후이자 최대의 개척지였던, 그리고 한국 대중음악계의 오랜 인정욕구 대상이었던 미대륙 시장이다.

이에 따라 본격적인 북미 시장 현지화의 시도도 나타났다. 가장 극적인 예시를 꼽자면 아무래도 2020년 방탄소년단의 ‘Dynamite’일 것이다. ‘Dynamite’는 방탄소년단에게 첫 빌보드 1위를 안겨준 대표작으로 꼽히지만, 사실 이들의 디스코그래피에서 가장 이질적인 곡이었다. 한국어 가사를 고수하던 기존의 지향과 달리 영어 가사를 앞세웠고, 에너제틱한 댄스 퍼포먼스에 강세를 보였던 과거 타이틀곡들과 달리 살랑이는 디스코 트랙 위 가창에의 강조점을 더 높였다. (‘DNA’, ‘Boy With Luv’ 등 이전에 선보였던 섬세하고 부드러운 트랙들과 비교하더라도 차이는 분명하다. 더구나 이 곡들에는 육중한 퍼포먼스의 커플링 트랙 ‘MIC Drop’, ‘Dionysus’가 동반되었다는 점도 짚어야 할 것이다.) 사실 ‘Dynamite’는 이들의 과거 작업보다는, 부드럽고 무해한 이미지로 폭 넓은 사랑을 받았던 영미권 ‘보이밴드’의 유산, 그리고 팬데믹 시기 디스코 리바이벌 트렌드와 묶어볼 때 더 자연스럽게 이해된다. 팬데믹 시기 전세계 사람들을 위로한다는 명목이 있긴 했으나, 팀의 역사를 고려했을 때 ‘Dynamite’의 발매는 분명 북미 시장에 확실한 눈도장을 찍고자 하는 전략적인 움직임이었다. 이미 충분히 역사적인 성적을 거둔 상황이지만, 한국어 곡으로 미국 현지 라디오의 장벽을 뚫는 데에는 한계를 느끼고 있었기 때문이다. 결국 방탄소년단은 ‘Dynamite’로 빌보드 핫 100 차트 1위를 거머쥐었고, 2021년 비슷한 지향의 ‘Butter’, ‘Permission To Dance’를 내놓으며 기록 행진을 이어간다.
방탄소년단 이후 미국 진출을 시도하던 아티스트들 가운데 ‘Dynamite’의 궤적을 따르는 경우가 적지 않았다. 데뷔 초부터 미국 시장을 염두에 두었던 투모로우바이투게더 역시 2020년 비슷한 무드의 타이틀곡 ‘5시 53분의 하늘에서 발견한 너와 나’를 발매했고, 2021년 막 미국 진출을 시도하던 트와이스도 영어 가사로 채운 디스코 트랙 ‘The Feels’를 리드 싱글로 내세웠다. 그때 그때 트렌디한 튠을 적극적으로 번안해낸 르세라핌(‘ANTIFRAGILE’, ‘Perfect Night’, ‘Easy’, ‘Smart’ 등)이나, 손색 없이 매끄러운 팝 사운드를 표방한 엔하이픈(‘Bite Me’, ‘Sweet Venom’, ‘XO (Only If You Say Yes)’ 등) 역시 큰 방향성 측면에서는 이 궤적 위에서 이해해볼 수 있다.
케이팝이 북미 대중을 주된 타겟으로 설정하고 음반을 보다 서구 차트 친화적인 형태로 다듬은 것은 분명 4세대에 이르러 시작된 주요한 변화이다. 오해를 방지하기 위해 미리 덧붙이자면, 이전 세대들과 마찬가지로 모든 기획사의 모든 케이팝 아티스트들이 새로운 세대의 조류에 따랐다는 것은 아니다. 애초에 북미 대중 타겟팅은 엄두조차 내지 않았던 이들을 포함해, 이전 세대의 전통적인 프로듀싱 방식을 고수하는 기획사와 그룹은 계속해서 존재해왔다. 아마 단순히 수로만 따진다면 이러한 이들이 훨씬 많을 수도 있다. (그렇기에 어쩌면 “케이팝이 변했다”고 푸념하는 이들 가운데 일부는 애초에 케이팝을 넓게 접하지 않은 것일지도 모르겠다.) 현지화 전략을 몇 차례 시도했던 그룹이라 해도 그를 그들의 음악적 정체성 전부로 이해하는 것은 곤란하다. 또한 다른 방식의 진보를 타개한 이들도 분명히 존재했다. 예컨대 4세대에서는 언더그라운드 댄스 뮤직 장르를 적극적으로 포섭한 뉴진스(물론 이는 “PinkPantheress를 위시한 수줍은 댄스 음악 유행”과 맞닿아 있기도 했지만, ‘Ditto’, ‘ETA’ 같은 트랙은 단지 이로 묶어보기 어려운 댄스 장르 날것의 에너지를 품고 있었다), “케이팝의 혼종성을 극한으로 가져가려” 한 엔믹스 등 굳이 특정 지역의 대중이나 메인스트림 차트를 타겟팅하지 않고 단지 케이팝의 공정법을 한 단계 끌어올려 성취를 이룬 이들도 있었다. 그러나 북미 시장을 개척한 주요 그룹들의 사례를 중심으로 무시할 수 없는 현지화의 흐름이 새로 형성된 것은 분명하다.
이러한 케이팝의 북미 시장 현지화 전략은 효과적이었다. 보이밴드와 걸그룹의 명맥이 끊긴 팝 시장에서 케이팝은 잘 다듬어진 그룹 퍼포먼스라는 형식미만으로 차별점을 갖추고 있었고, 특히나 케이팝 보이그룹은 서구권에서 마초이즘에 반(反)하는 ‘대안적 남성성’, ‘부드러운 남성성’으로 칭송되었다. (물론 다분히 서구중심적인 ‘대안적 남성성’ 개념에 대해서는 여러 비판적 고찰이 뒤따랐다. 관련해서는 페미니스트 연구 웹진 〈Fwd〉의 “케이팝 아이돌의 다목적 남성성: 대안도 혁명도 아닌”을 참조) 그러나 방탄소년단과 블랙핑크를 위시해 서구 시장이 본격적으로 케이팝을 인식한 지도 거의 10년이 되어가는 현재, 케이팝의 룩(look)은 더 이상 서구 시장에서 낯선 무언가가 아니다. 그리고 룩의 신선함이 잦아든 상황에서 서구 차트와 동기화되고자 하는 지향은 케이팝의 근본에 대한 질문을 낳고 있다.
이어지는 2편 글에서는 케이팝과 연관된 4세대 이후 팝의 흐름에 대해 이야기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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