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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 엑소, 레드벨벳, 빅스의 작곡가 안드레아스 오버그 ①

엑소의 ‘Stronger’, 레드벨벳의 ‘7월 7일’, 샤이니의 ‘Romance’ 등을 작곡한 스톡홀름 출신의 작곡가 안드레아스 오버그(Andreas Oberg)를 만났다. 작곡가가 직접 털어놓는 음악 작업 후기, 그리고 아이돌 음악과 케이팝에 대한 여러가지 흥미로운 이야기들.

스웨덴 스톡홀름 출신의 작곡가 안드레아스 오버그(Andreas Oberg)는 엑소의 ‘Stronger’, 레드벨벳의 ‘7월 7일’, 샤이니의 ‘Romance’, f(x)의 ‘Glitter’등 수없이 많은 곡들을 작곡해 한국 아이돌 음악 팬들에게 친숙한 이름이다. 현재 유럽, 미국, 한국과 일본 시장에서 동시에 활동하는 그와 대중음악평론가이자 아이돌로지 필진인 김영대가 이야기를 나누었다. 작곡가가 직접 털어놓는 음악 작업 후기, 그리고 아이돌 음악과 케이팝에 대한 여러가지 흥미로운 이야기들을 들을 수 있었다.

김영대: 음악작업으로 바쁠 텐데 인터뷰에 선뜻 응해주어 고맙다. 본격적인 이야기를 나누기 전에 먼저 당신에 대해 조금 더 알면 좋을 것 같다. 어떻게 음악을 시작했고, 그리고 어떤 음악을 듣고 영향을 받았는지 등등. 어린 나이에 기타를 배운 것으로 들었는데.

오버그: 일곱 살 때 처음 기타를 선물 받아 연습하기 시작했다. 부모님은 비록 뮤지션이 아니었지만, 할아버지는 기타나 피아노를 치고 하모니 같은 것을 만드실 수 있을 정도로 끼가 있는 분이셨으니까 아마도 한 세대를 건너서 재능이 전해진 게 아닌가 싶다. 처음에는 클래식 기타 곡으로 시작했지만 기타 선생님 덕에 당시에 LA에서 유행하던 블루스, 퓨전 같은 대중음악을 배웠고, 그 이후로는 대중음악의 매력에 빠졌다. 16살에 음악학교에 입학했는데, 이를테면 고등학교와 대학교의 중간정도의 느낌이라고 보면 된다.

김영대: 북유럽은 음악 교육 시스템이 미국이나 아시아와는 많이 다른 것으로 들었다.

오버그: 그렇다. 스웨덴에만 있는 독특한 시스템이라고 할 수 있다. 아무튼 그곳에서 비로소 정통 재즈를 공부하게 되었다. 웨스 몽고메리(Wes Montgomery)나 조지 벤슨(George Benson)은 물론이고 펫 메시니(Pet Metheny)나 리 릿나워(Lee Ritenour)같은 현대적인 퓨전 재즈 뮤지션들도 함께. 졸업 후에는 스톡홀름에 있는 왕립 음악학교에 진학해 더 전문적으로 음악을 배웠고 그 시절부터 연주자로서 꽤 만족스러운 10년간의 커리어를 보낸 것 같다. 레스 폴(Les Paul), 투츠 틸레망(Toots Thielemans) 등 위대한 뮤지션들과 공연을 했고 이탈리아의 유명 팝 가수인 에로스 라마조티(Eros Ramazzotti)와도 작업했다.

김영대: 작곡가로서 재즈가 아닌 팝 음악 쪽에 본격적으로 입문하게 된 것은 언제인가?

오버그: 2010년 즈음이었는데, 슬슬 공연 생활이 지루해진 시점이었다. 전세계를 돌아다니며 매일 곡을 연주하고 생활하는 그런 삶에 지쳐 그만둘 생각을 하던 차에 한 회사로부터 제안을 받아 TV 광고를 위한 배경음악을 작업하게 된 것이 발단이었다. 지인을 통해 제이팝 쪽으로 연결되었는데, 재즈 뮤지션으로서 내가 구사하는 음악적인 스타일, 가령 하모니와 코드 등을 복잡하게 다루는 방식 등을 맘에 들어하는 것 같았다. 서서히 내 작업도 늘어 갔고, 일본 내에서 만든 곡들이 히트곡의 반열에 오르기 시작했다.

안드레아스 오버그 공식 홈페이지

김영대: 당신 홈페이지를 들어가보면 영어와 함께 바로 밑에 한국어와 일본어로 이름을 표기해 놓은 것이 인상적이었다. 언뜻 봐도 동아시아 팝 시장에 대한 당신의 관심을 쉽게 내비치는 것 같은데 케이팝에는 언제 처음으로 발을 들여놓게 되었나.

오버그: 2012년으로 기억하는데, 빅스라는 신인 그룹이 앨범 작업을 한다고 해서 ‘Starlight’이라는 곡으로 참여하게 되었다. 또 한 명의 성공적인 작곡가이도 한 에릭 리드봄(*Erik Lidbom: 빅스, 샤이니, 동방신기 등과 작업한 바 있는 스웨덴 작곡가)과 함께 작업했는데, 빅스의 팬들이 이 곡을 각별히 사랑해준 나머지 심지어 그들의 팬클럽 이름을 이 곡에서 따왔다고 들었다.

김영대: 빅스의 데뷔 싱글에 있는 노래다. 전형적이지 않고 매우 웰메이드한 트랙이라 인상 깊었다.

오버그: 듣는 이들은 모를지 몰라도 매우 ‘음악적인’ 완성도가 있는 음악이라고 생각한다. 복잡한 코드 체인지도 많고 진행도 상투적이지 않다. 이렇게 조금은 어려운 스타일의 곡이 좋은 반응을 얻는 것을 보고 ‘아, 내 스타일을 케이팝에서 충분히 펼칠 수 있겠다’라는 생각을 갖게 되었다. 이것은 여담이지만, 매번 비슷한 서너 개의 코드만을 가지고 반복적인 느낌의 음악을 만드는 현재 북미 대중음악 시장과는 다른 점이다.

김영대: 케이팝에 미국 대중음악보다도 더 다양한 음악에 대한 요구가 있다고 보는가?

오버그: 내 개인적인 생각에 한국과 일본의 음악팬들의 귀가 보다 세련된 음악에 잘 반응한다고 본다. 그리고 이러한 리스너들의 까다로운 입맛과 요구는 우리 같은 작곡가들이 우리의 작곡 능력과 편곡을 다듬고 발전시키는 데에 자극이 되기도 한다. 특히 케이팝의 다양함과 높은 완성도는 매우 인상적이다. 그들이 보컬 연습을 포함해 마지막 완성품을 만들기까지 들이는 노력은 대단하다. 음악 산업에 쏟는 이들의 돈과 시간을 생각하면 현재 케이팝의 훌륭한 완성도가 결코 이상할 것이 없다. 동시에 이는 음악에 많은 돈을 투자하는 팬들이 있어서 가능한 것이라고 생각한다. 좋은 방향으로 가고 있다고 느낀다.

김영대: 일본과 한국에서 모두 활동해본, 그리고 여전히 활동하고 있는 당신에게 그 두 시장, 혹은 문화의 차이는 각별하게 느껴질 것 같다. 작곡가이자 프로듀서인 당신에게 있어서 제이팝과 케이팝의 가장 큰 차이점은 무엇이라고 생각하나?

오버그: 프레이징(노래를 하거나 연주를 할때 악보상의 음들이 특정한 길이나 리듬으로 구성되어 의미있는 멜로디로 전달되는 방식을 말함)의 차이가 결정적이다. 케이팝의 경우에는 조금 더 리드믹한 음악, 더 많은 16분 음표로 이루어지고 싱코페이션(당김음)이 강하게 느껴지는, 다시 말해 ‘훵키한’ 음악을 더 원하는 경향이 있다. 주변에 케이팝을 만드는 신인 작곡가들이 있으면 그들에게 90년대의 R&B 음악을 듣고 참조하라고 조언하곤 한다. 프레이징의 측면에서 봤을 때 현재 케이팝에 가장 잘 어울리는 음악이기 때문이다. 제이팝을 들어보면 그들은 보다 평이하고 직선적인 프레이징을 선호하는 것을 알 수 있다. 대부분의 전통적인 보이밴드나 아이돌 음악들이 모두 그렇다.

김영대: 프레이징은 특히 언어에 따라 다른 느낌을 주게 마련인데, 한국어와 일본어의 차이가 그런 음악적 차이와 선호를 만든다고 보는가?

오버그: 물론이다. 한국어의 발음은 싱코페이션이 강한 음악들, 훵크나 힙합 등 블랙뮤직에 훨씬 더 자연스럽게 어울린다.

김영대: 본격적으로 당신이 만든 아이돌 음악을 이야기해 보도록 하자. 가장 최근에 작업한 곡들부터 시작해 볼까. 먼저 엑소의 ‘Stronger’. 내 첫 인상을 말하자면, 유독 재즈적인 혹은 소울풀한 색채가 강하다는 것이다. 각종 재즈적인 코드 진행과 화성, 매우 릴렉스한 템포에 얹은 12비트 패턴 등이 굉장히 세련되지만 동시에 어찌 보면 케이팝 치고는 너무 재지한 느낌이 아닌가 싶다는 생각도 했는데(웃음). 어떻게 처음 이같은 스타일의 음악을 엑소에게 주려고 구상하게 되었는가?

오버그: SM과의 작업은 보통 송캠프(song camp, 혹은 writer’s camp) 라는 시스템을 통해 이루어진다. 우리 쪽 팀의 작곡가 몇몇이 1-2주동안 함께 모여 SM 엔터테인먼트의 요청에 따라 특정한 스타일의 곡을 함께 만들거나 하는 작업인데, 종종 한국의 현지 작곡가들과 함께 하기도 한다. 이번에는 엑소를 위해 발라드 계열의 곡을 하나 써줄 것을 부탁 받았다. 그래서 나와 구스타프 칼스트롬(Gustav Karlström), 그리고 한국 작곡가 이주형이 함께 피아노와 기타로 즉석 연주를 하며 곡을 써 나가기 시작했다. 우리가 의도한 것은 굉장히 음악적이면서도 어렵지 않은 그런 곡을 만드는 것이었다.

김영대: 말처럼 그리 쉽지는 않은 일일 텐데 말이다. 그것도 임팩트가 강한 음악이 주가 되는 아이돌 음악에서는.

오버그: 가령 굉장히 많은 작곡적인 기교나 어려운 코드진행 같은 것을 활용할 때는 그대신 최대한 심플하고 듣기 좋은, 혹은 기억하거나 따라하기 쉬운 멜로디를 입혀 균형을 맞추는 것이 좋다. 예를 들면 (직접 노래를 부르며) “feeling stronger” 라고 반복되는 부분처럼 임팩트가 있으면서 쉬운 부분을 반복하는 것이다. “Everytime I fail, Everytime I fall”처럼 ‘fail’과 ‘fall’의 단어를 두운으로 매칭해 작사를 한 것도 같은 이유이다. 듣는 이들에게 어려운 구성을 조금 더 쉽게 접근하도록 하기 위함이다. 70년대 스티비 원더(Stevie Wonder)의 음악을 떠올려보면 음악적으로는 나름 난해하지만 단순히 어렵게 만들기 위해 그런 곡을 만든 게 아니고, 좋은 멜로디와 매우 자연스러운 진행을 가지고 있었다.

김영대: 이 곡은 무엇보다도 보컬적인 측면이 강조될 수 밖에 없는 노래다. 기교라든지 감정이라든지 가수 입장에서는 여러 면에서 부르기가 만만치 않았을 듯한데.

오버그: 얼마전 한 TV쇼에서 엑소가 나와 이 곡을 라이브로 부른 동영상을 보았다. 애드립이라든지 R&B적인 기교라든지 하는 부분에서 매우 인상적이었다. 여태까지 그들이 보여준 가장 훌륭한 보컬 퍼포먼스 중 하나가 아니었나 생각한다. 나 스스로도 이 곡에 대해 뿌듯함을 느끼고 특히 100만장이 넘게 판매된 앨범의 수록곡이라는 사실 역시 자랑스럽다.

김영대: 뒤에 또 비슷한 언급을 할 예정이지만 종종 당신의 곡에서 보이는 어쿠스틱한 면, 단촐하면서도 서정적인 전개가 인상적이다.

오버그: 우리 작곡가 세명이서 정말 작은 방에 모여 간단하면서도 평범한 구성으로 만든 곡이다. 피아노, 신스 베이스 약간, 그리고 다양한 보컬 하모니로 구성되어 있다. 화려한 편곡이라든지 에지 있는 반주같은 것을 전혀 고려하지 않고 그저 평범하면서도 아름다운 멜로디를 만들려고 노력했다.

김영대: 이런 재즈적인 분위기와 보컬이 강조된 음악을 떠올리다 보니 역시 당신이 만든 ‘밤과 별의 노래 (Starry Night)’에 대해 물어보지 않을 수 없다. 온유와 이진아가 듀엣으로 부른 노래 말이다. 매우 아름답고, 또 한편으로는 회고적이며, 편곡에 있어서는 재즈적인 느낌이 조화되었다. 가령 정통 재즈라기 보다는 어쿠스틱한 느낌 위에 GRP 레이블의 퓨전 재즈와 같은 느낌을 접목해서 마치 데이브 그루신(Dave Grusin)이나 데이비드 포스터(David Foster)가 종종 그랬던 것과 같은 팝적인 분위기를 낸 것을 알 수 있다.

오버그: 공교롭게도 ‘Stronger’와 같은 주에 있었던 송캠프를 통해 만들었던 노래다. (웃음) 올해 4월에 작업했다. 온유에 대해선 이미 잘 알고 있었지만 이진아에 대해서는 아무런 정보가 없던 상황이었다. SM쪽에서 이진아와 우리 쪽 유럽 작곡가들이 함께 곡을 만드는 것에 대한 계획을 먼저 제안했다. 첫 날은 이진아가 〈케이팝 스타〉라는 프로그램에 나와 공연하는 모습만을 계속 보았는데, 자작곡으로 노래를 부르며 피아노를 치는 모습이 대단히 인상깊었고 매우 재능 있는 뮤지션이라 생각했다. 며칠 후 그녀가 우리 스튜디오로 방문했고, 나와 공동작곡가인 사이먼 페트린(Simon Petren), 그리고 이진아 세 명이서 함께 곡을 쓰기 시작했다. 진아는 영어를 전혀 할 줄 몰랐고 우리는 따로 통역도 없었기 때문에 그저 몇 가지 단어와 음악으로만 대화를 이어 나가야만 했다. 가끔 구글 번역기의 힘을 빌리기도 했지만 말이다. (웃음)

김영대: 음악을 깊이 이해하고 있는 사람들 사이에서라면 연주만으로도 충분히 대화가 가능할 것이다.

오버그: 재능 있는 뮤지션이고 코드진행이라든지 그런 음악적인 디테일을 잘 이해하고 있어서 어렵지 않게 작업할 수 있었다. 셋이 앉아 자연스럽게 연주하거나 노래하면서 멜로디 하나하나를 완성해 갔고 이틀 째에는 몇가지 수정을 거치면서 우리가 완벽하다고 생각한 마지막 버전이 완성이 되었다.

김영대: 멜로디가 참 아름답다. “모두들 잠드는 침묵의 밤 너머에”라며 떨어지며 진행하는 부분에서는 아련함도 느껴진다. 이진아는 물론이고 온유의 목소리도 나긋나긋하고 순수한 느낌을 잘 살렸다.

SM 송캠프, 2016년 4월
SM 송캠프, 2016년 4월

오버그: 곡을 완성하고 나서 스튜디오에 놀러 온 모든 이들이 그 곡의 후렴구에 꽂혀 계속 그 부분을 흥얼거리고 다녔다. (노래를 부르며) “내가 어두운 밤이 되면…”(웃음) 전체적으로 약간 노라 존스(Norah Jones)의 음악같은 분위기를 내고 싶었다. 곡을 완성하고 나서 내 기타 솔로와 진아의 피아노 솔로를 더했다.

김영대: 보컬 위주의 음악은 무엇보다 보컬 편곡이 중요하다. 당신은 혹시 직접 보컬 디렉팅을 하기도 하는가? 언어가 달라 어려움이 있을 법도 한데.

오버그: 보컬 편곡에 굉장히 관심이 있고 또 중요하게 생각한다. 나는 아티스트와 직접 만나 녹음하는 경우는 거의 없기 때문에 보컬 디렉팅을 직접 하진 않고 스튜디오에서 데모 버전 보컬리스트와 작업할 때 자세한 가이드를 만들어 보내는데 대부분의 경우 한국에서 내 편곡을 그대로 사용한다. 주로 여러 멜로디로 화음을 쌓을 수 있는 편곡을 좋아하는데, 아이돌 음악의 경우 대개 여러 멤버가 함께 부르는 형태이기 때문에 그런 식의 방식이 도움이 되기도 한다. ‘Stronger’처럼 원곡은 대부분 영어 가사로 작업되기 때문에 일단 곡을 보내고 나면 한국에서 한글 가사에 맞는 방식으로 보컬 편곡을 조정하고 바꾸기도 한다. 종종 데모의 영어 가사를 그대로 쓰기도 하고 몇 부분만을 살리거나 번역해서 싣기도 한다. ‘밤과 별의 노래’는 애초에 영어 가사가 없이 이진아가 스튜디오에서 직접 한글 가사를 붙인 경우에 해당한다.

②편으로 이어진다.

김영대

By 김영대

음악평론가. 계간 [문학동네] 편집위원. [한국힙합] [90년대를 빛낸 명반 50]의 저자. 번역서 [미국 대중음악] (한울)이 새로 나왔습니다. 미국 Lewis & Clark 대학교에서 대중문화강의. [email protect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