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세대 아이돌들에게 두 가지 콘셉트의 병행은 거의 기본공식이었다. 한 번은 카리스마 있는 강한 곡을 선보이면 후속곡은 귀엽고 밝은 곡을 한다든지, 그 반대의 순서로 한다든지 하는 식이었다. 아이돌 산업이 숙성되고 팀 컬러의 중요성이 부각됨에 따라 이제는 그런 일이 많지 않으나, 지난 해 데뷔한 12인조 괴그룹 하모니즈는 달랐다. 소속사 아이돌로지 엔터테인먼트는 상반되는 분위기의 곡들을 내놓으며 “우리가 K-아이돌의 정통성을 계승한다”는 캐치프레이즈를 내걸어, 모 위키 사이트에 “고만해 미친놈들아”라는 문구가 붙기도 했다.
장조와 단조
장조와 단조는 어떤 곡의 표정이라고 할 수 있다. 음악이론 중에서는 비교적 익숙한 개념이다. 장조는 ‘밝다, 기쁘다’, 단조는 ‘어둡다, 슬프다’ 같은 느낌으로 이해되는데, 사실 꼭 그렇지만은 않다는 것이 함정이기도 하다. 악덕 기획사 아이돌로지 엔터테인먼트를 욕하시면 된다. 예를 들어 AOA의 ‘사뿐사뿐’, 마마무의 ‘피아노맨’은 단조 곡이지만, 유쾌하고 신나기만 한 것이다.
분명 ‘밝다/어둡다’의 이분법만으로는 쉽게 다가오지 않는 영역이 있다. 그러니까 우리는 음악 교과서를 멀리하고 아이돌 콘셉트를 가까이 하는 것이 좋다. 이를 아이돌 콘셉트에 비유한다면, 여전히 빈 틈은 남지만, 그래도 조금은 간극을 좁힐 수 있다. 한없이 해맑고 밝으며 귀엽고 사랑스럽기만 한 곡들은 장조에 어울린다. 너무 청춘이라 당혹스럽기까지 했던 인피니트F의 ‘가슴이 뛴다’ 같은 곡이 그 예가 되겠다. 반면, 강한 이미지를 선보이는 곡들은 단조에 어울린다. 또한 우리가 “음이냐, 양이냐”를 따져봤을 때 ‘음’에 해당하는 이미지도 대부분 관계된다. 어두움, 집착, 반항, 슬픔, 섹시 등이 그것이다. 빅스의 ‘Error’, 걸스데이의 ‘Something’의 이미지를 생각해 보자.
하모니즈는 장조의 곡으로도 활동하지만 단조의 곡으로도 활동한다. 곡의 콘셉트에 따라 참여하는 멤버도 달라지고, 일부 멤버는 포지션이나 의상에 변화를 주기도 한다. 장조와 단조의 느낌 차이는 여기에서 비롯된다. 위의 음원은 잘 알려진 어떤 곡을 장조와 단조로 연주한 것이다. 보다 선명하게 비교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해, 완전히 똑같은 음원을 만든 뒤 멤버 구성에만 변화를 주었다. 같은 곡이어도, 다른 멤버가 참여하면 이만큼이나 달라진다.
꼭 유별난 용어를 만들어 쓰면 팬들이 더 깊게 덕질할 것이라 믿는 아이돌로지 엔터테인먼트는, 멤버 라인업에도 별도의 용어를 쓴다. ‘스케일 (scale)’이다. 위의 악보와 음원은 장조와 단조의 ‘스케일’을 표현한 것이다. 보이고 들리는 바와 같이, 하모니즈가 밝은 콘셉트를 소화할 때 구성되는 장조 구성은, 우리가 익히 알고 있는 ‘도레미파솔라시도’와 똑같다.
그 뒤에 이어지는 세 가지 예는 모두 단조 구성이다. 그 중 ‘내추럴 마이너’를 보자. 얼굴은 다 똑같아 보여도 3번째, 6번째, 7번째 멤버가 액세서리를 달고 있는 것을 알 수 있다. ‘b’ 모양을 한 ‘플랫’이란 이름의 이 액세서리는 키가 조금 작아 보이게 해준다. 3, 6, 7번째 멤버가 키가 조금 작아짐에 따라 음악은 무척 다르게 들린다. ‘하모닉 마이너’는 7번째 멤버의 키가 다시 커졌다. ‘멜로딕 마이너’는 6번째 멤버도 키가 커졌지만, 음원에서 확인할 수 있듯, 내려오는 멜로디일 때는 ‘내추럴 마이너’로 바뀐다. 단조의 세 가지 구성을 너무 어렵게 생각할 필요는 없다. 당장은, 장조와 단조에 분명히 멤버 구성(스케일)의 차이가 있다는 것만 이해하면 족하다.
지난 시간에 우리는 곡마다 달라지는 하모니즈의 리더를 찾는 연습을 해보았다. 잠시 복기해 보자면, 후렴의 마무리 단계는 리더에 해당하는 토닉 음으로 멜로디가 마치는 경우가 많고, 또한 반주를 포함해 전체에서 들리는 가장 낮은 음도 토닉인 경우가 많다는 것이었다. 우연히도, 지난 시간에 살펴본 다음의 네 곡은, 조옮김을 하면 모두 Am 코드에 ‘라’ 음으로 마무리되는 단조 곡들이었다.
장조와 단조를 구별하는 가장 정석적인 방법은, 리더를 찾아 그 중심으로 멤버들을 쭉 재배열한 뒤, 어느 스케일에 해당하는지를 보는 것이다. 복잡해 보이지만 사실 몸에 익으면 거의 본능적으로 이뤄지는 일이다. 특히 3번째 멤버의 키를 확인하는 것이 유용하다. 장조와 단조의 스케일을 가장 대표적으로 나누는 것이 3번째 멤버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번 시간에는 그것을 권하지 않는다. 왜냐면, 대부분의 화성학 책에서 맨 처음 다루고 넘어가는 음정(interval)을 우리는 아직 다루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럼 어떻게 할까. 또 ‘느낌’으로 돌아온다. 너무 ‘느낌적 느낌’에만 의존하는 게 아니냐고 할지 모른다. 그러나 결국 화성학은 복잡한 이론과 숫자 놀이를 다 할 수 있어도 몸으로 느끼지 못하면 소용 없는 것이다. 그래서 트레이닝이 중요한 분야이기도 하다. 아래에, 몇몇 곡을 장조와 단조로 나눠서 적어보았다. 단조 멜로디가 반드시 ‘어둡고 슬픈’ 것은 아니고, 장조가 반드시 ‘밝고 기쁜’ 것은 아님을 알 수 있다. 멜로디만 입으로 흥얼거리면서 느낌을 받아들여보자. 그리고 그것을 위에 표기한 멤버 구성(스케일)의 느낌과 비교해 보자.
- 장조 : 걸스데이 – Darling | 규현 – 광화문에서 | 씨스타 – Touch My Body | 앤씨아 – Coming Soon | 인피니트F – 가슴이 뛴다 | 위너 – 컬러링 등
- 단조 : 보이프렌드 – Witch | 블락비 – HER | 송지은 – 예쁜 나이 25살 | 시크릿 – I’m In Love | AOA – 사뿐사뿐 | 오렌지캬라멜 – 까탈레나 등
여기까지 써놓고는 맥 빠지는 이야기를 하자면, 사실 장조와 단조를 구별하는 것은 그리 중요하지 않다. 장조와 단조는 20세기 이후로 매우 희미해진 개념이고, 특히 지금의 대중음악에서는 장조의 특징과 단조의 특징을 한데 버무려 놓은 곡들도 많다. 장조인 듯한 단조, 단조인 듯한 장조도 있고, 장조에서 단조로 바뀌거나 단조에서 장조로 바뀌기도 하고, 장/단조의 틀에서 벗어난 곡도 있다. 말하자면, 섹시하면서도 귀여운 곡도 있고, 신나면서도 슬픈 곡도 있는 것이다. 비스트의 ’12시 30분’의 경우도 곡 전체의 결론은 단조라 해야겠으나 수시로 장조를 가져와 삽입해 두었다. 음악 시험에 나오는 게 아니라면, “이 노래는 사장조, 이 노래는 내림마단조”라고 특정할 필요가 별로 없다.
그럼에도 장조와 단조를 이렇게나 설명한 것은, 그것이 화성의 기초가 되기 때문이다. 또한 장조, 단조에 따라 멤버의 구성이 다르다는 점은 화성학에 깊이 들어갈수록 반드시 알아야 하는 기본기가 된다. 그러니 어떤 노래가 장조인지 단조인지를 구별하려고 지나치게 애를 쓰기보다는, 장조/단조의 특징이 잘 드러나는 곡들을 통해 각각의 느낌을 몸에 익혀두는 것으로 일단은 족하다.
지금까지 우리는 하모니즈 멤버들의 얼굴 원판을 위주로 살펴보았다. 다음 시간부터는 표정을 살펴보기로 한다. 그야, 섹시한 곡의 무대를 한다면 섹시한 표정 위주로 돌아갈 것이라 생각하기 쉽다. 그러나 내내 섹시한 표정만 짓고 있어서는 좀 이상한 사람처럼 보이지 않겠는가. 또, 카리스마 있는 곡의 무대라고 해서 내내 인상만 쓰고 있지는 않는다. 곡의 콘셉트가 장조인지 단조인지를 이해했다면, 이번에는 매순간 각 멤버들이 어떤 표정을 짓고 있는지 살펴보겠다. 이를 위해서는, 멤버마다 콩나물 머리를 3개씩 얹어놓은 악보를 봐야 한다. 아유레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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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replies on “리스너를 위한 화성학 ②”
일반인에게는 너무나 어려운 화성학..인데도 불구하고 흥미롭게 읽고 있습니다. 감사합니다 :)
세상에 제가 매번 누군가 써주길 바랬던 기획을.. 비평 에서는 화성학이나 코드진행에 대한 이야기가 늘 포함되어 있는데, 정작 비평을 읽는 사람들은 그걸 이해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았거든요. 너무 잘 읽었습니다. 기사가 너무 짧게 느껴져 아쉬울 정도에요.
정말 알찬 기사네요. 다음 회도 기대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