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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스너를 위한 화성학 ④

리더(토닉)이 안정을 추구한다면 메인 보컬(도미넌트)은 긴장을 만든다. 사실은 편안한 성격이지만 무대에서만은 강한 긴장을 일으켜 리더를 달려오게 만드는 메인 보컬의 이야기.

메인 보컬 : V (도미넌트)

지금까지 하모니즈의 이야기를 따라오면서 다소 헷갈리는 독자들도 있을 것이다. 간단히 정리하자면, 하모니즈의 멤버들은 C, C#, D, D#… 등 12명의 멤버로 구성돼 있다. 이들은 각자 하나의 음정(C=’도’)인데, 코드는 이들이 어떤 표정을 짓느냐에 따라 결정된다. (C→C 메이저, C 마이너) 하모니즈는 곡에 따라 다른 유닛을 결성하는데, 멤버들은 곡에 따라 서로 다른 포지션을 취한다. 첫 시간에는 리더(토닉)를 찾는 연습을 해보았는데, 12명의 멤버들 중 그 누구라도 리더가 될 수 있다. 오늘은 포지션 이야기를 해보도록 한다.

긴장을 만드는 ‘도미넌트’

리더는 ‘집으로 돌아온 듯한’ 성격을 띤다고 했다. 그렇다면 집을 떠난 것은 어떤 것일까. 갈등과 긴장의 상태라고 할 수 있다. 나쁜 게 아니다. 이 긴장이야말로 음악이 앞으로 나아가게 하는 힘이기 때문이다. 즉, 다른 멤버들이 열심히 일을 저질러 놓으면 마지막에 리더가 등장해 뒷수습을 하고 평화를 되찾는 식이다.

그럼 가장 큰 긴장을 빚는 건 누구일까. 아무래도 목소리 크고 주장이 강한 녀석이 시끄럽게 마련이다. 메인 보컬이다. 아이돌로지 엔터테인먼트는 팬들을 상대로 설정집이라도 팔아먹으려는 것인지 쓸데 없는 설정을 자꾸 만드는데, 메인 보컬을 ‘도미넌트 (dominant)’라고 명명했다. 오늘은 ‘V’로 표기하는 장조의 도미넌트를 알아보겠다.

토닉을 ‘I’라고 표기했던 것을 기억하는가. ‘도레미파솔라시도’ 계이름에서 토닉인 ‘도’에서부터 5번째 자리에 ‘솔’이 위치하는데, 이 ‘솔’이 도미넌트이다. 5번째라서 로마 숫자로 ‘V’이다. ‘반짝반짝 작은 별’ 노래를 안다면, 첫 “반짝”은 토닉, 두 번째 “반짝”은 도미넌트에 해당한다. 혹은 ‘도레미파솔파미레도’를 부르는 발성연습 멜로디를 생각해도 좋다. 첫 음이 토닉, 가장 높은 음이 도미넌트이다.

앞서 우리는 하모니즈의 각 멤버가 곡에 따라 포지션을 바꾼다고 했다. 리더(토닉)가 누구냐에 따라 메인 보컬(도미넌트)이 바뀌는 것이다. 아래의 표에서 5칸씩 세어보면 답이 나온다. 토닉이 ‘도’(=C)일 때 도미넌트는 ‘솔’(=G)이다. 토닉이 ‘레’(=D)라면 도미넌트는 ‘라’(=A), 토닉이 ‘미’(=E)라면 도미넌트는 ‘시’(=B)… 같은 식으로 토닉이 ‘파’일 때, ‘솔’일 때 각각 도미넌트가 누구인지 말해보자.

우리는 아직 ‘음정 (interval)’을 세는 법을 배우지 않았다. ‘완전 5도’란 말을 들어본 일이 있을 것이다. 2도, 3도 등은 그 거리가 서로 다른 경우들이 있지만, 다행히 5도는 늘 일정한 간격이기에 ‘완전’이란 말을 붙인다. 아래 그림의 건반에서 토닉과 도미넌트 사이에 몇 개의 건반이 있는지 세어보자. ‘도’에서 시작해 ‘솔’까지 가려면 흰 건반 5개와 검은 건반 3개를 지난다. ‘미’가 토닉일 때 도미넌트는 ‘시’라고 했다. ‘미’부터 ‘시’까지도 흰 건반 5개와 검은 건반 3개를 지난다. ‘완전 5도’는 8개의 건반을 의미한다.

namedpiano

그렇다면 여기서 퀴즈. ‘미b’이 토닉일 때, 도미넌트는 누구일까. ‘미b’을 포함한 8번째 건반은 ‘시b’. 즉, ‘시b’이 도미넌트이다.

‘5도’에 ‘V’라고 표기하면서 왜 건반은 8개인지 불만일 것이다. 그것은 나를 원망하지 말고 피타고라스를 욕해야 한다. 하모니즈의 세계관은 실로 거창해서 무려 피타고라스를 끌어온다. 도미넌트는 피타고라스가 가장 먼저 찾아낸 음정들 중 하나였다. 교회를 다니는 독자라면 연세가 있으신 교인들이 묘한 음정으로 찬송가를 부르는 걸 들어본 적 있을 것이다. 이 분들이 부르는 음정은 원래 음정과 도미넌트 관계에 있는 경우가 많다. (물론 단순히 음치인 분들도 계시겠지만.) 이런 현상이 벌어지는 것은 도미넌트가 토닉과 너무나 잘 어울려서, 사람에 따라서는 잘 구별하지 못하기도 하기 때문이다.

이처럼 원래 도미넌트는 익숙하고 무던한 성격을 가진 녀석이다. 하지만 화성학의 무대에서 메인 보컬인 도미넌트는 변신한다. 훌륭하게 부패한 독자라면 ‘도미넌트’란 명칭을 듣는 순간 흠칫하기에 충분했을 것인데, 상상하는 그대로의 의미이다. 도미넌트는 가장 강렬한 존재감으로 가장 큰 긴장을 만들어낸다. 안정을 지향하는 리더 토닉은 즉각적으로 달려와 긴장을 수습하게 된다. 물론 다른 포지션의 멤버가 수습할 수도 있고, 수습이 안 되는 무대도 있다. 그러나 도미넌트가 토닉으로 이어질 때 우리는 무척 자연스럽게 곡이 연결된 기분을 느낀다. 매우 유명한 다음의 곡은 도미넌트 화음이 토닉 화음으로 ‘해결’되는 전형적인 예를 보여준다.

idologykr · 도미넌트는 토닉이 해결한다!

러블리즈의 ‘안녕’의 후렴에도 도미넌트의 전형적인 활용이 등장한다. 후렴의 전반부가 끝나는 “그러니 솔직하게 얘길 해줘”는 C코드로서 이 곡의 도미넌트(V)에 해당하고, 이어지는 “우리 만날래”는 다시 F 코드로서 토닉(I)으로 이어진다. 그러나 이런 식으로 아예 곡을 끝내버리면 너무 뻔하게 들리기 쉽기 때문에 요즘 케이팝에서 자주 보이는 진행은 아니다. 이 곡 또한 노래를 끝낼 때는 변화를 준다. 후렴의 마지막인 “널 많이 사랑해”가 도미넌트로 이뤄지지만, 뒤에 토닉을 생략하고 과감하게 조바꿈을 함으로써 긴장이 해결되지 않고 공중에 매달린 채로 2절로 넘어가게 된다. 위에 올라온 오디오 샘플이 주는 명쾌한 해결감과는 거리가 있다.

에이핑크의 ‘Mr. Chu’ 역시 그렇다. 후렴의 전반부를 마무리하는 부분에서 “I’m falling, falling”에 이어지는 “for you love hey”는 D 코드로서 이 곡의 도미넌트이다. 뒤를 잇는 “you! 입술 위에” 부분은 G 코드로서 이 곡의 토닉이다. 역시 후렴의 마지막에서 “넌 나만의”는 도미넌트지만, 이어지는 “Mr. Chu”는 토닉이 아닌 다른 화음 진행을 삽입하여 긴장을 연장하며 여운을 남긴다.

하지만 하나의 무대에서 한 멤버가 단 한 번만 등장하라는 법은 없다. 메인 보컬이어도 주 멜로디만 부르고 사라지는 게 아니라, 종종 다른 멜로디를 부르기도 한다. 도미넌트 역시 곡의 이곳 저곳에서 등장한다. 아래의 표는 장조 진행을 보이는 몇 곡의 후렴 부분 코드를 적어보았다. 따로 표시된 도미넌트의 위치를 신경 쓰면서 곡을 들어보자. (곡의 제목을 클릭하면 코드표가 열린다.)

카라 – Pretty Girl harm4-kara-prettygi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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빅스 – 대.다.나.다.너 harm4-vixx-gr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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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피니트 – 함께 harm4-infinite-wit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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씨스타 – Touch My Body harm4-sistar-touchmybod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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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양 – 새벽 한시 harm4-taeyang-1a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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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PM – 이 노래를 듣고 돌아와 harm4-2p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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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크릿 – YooHoo harm4-secret-yooho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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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미넌트 관계

도미넌트는 한 곡에서 특정 코드를 의미하기도 하지만, 멤버들 사이의 관계를 묘사하는 표현으로도 사용된다. 어떤 두 개의 코드가 ‘완전 5도’(8개의 건반) 차이를 보이면, 이를 ‘도미넌트 관계’라고 부른다. 앞에서 우리는 토닉을 정하고 그에 따른 도미넌트를 찾아보았는데, 실은 토닉이 아니어도 각각 자신의 도미넌트를 갖는 것이다. 즉, 한 곡의 리더인 토닉이 ‘도’일 때 그 곡의 메인보컬인 도미넌트는 ‘솔’이지만, ‘레’에게 ‘라’는 ‘도미넌트 관계’가 된다.

namedpiano

도미넌트 코드는 토닉 코드가 해결한다고 했다. 도미넌트 관계는 한 명이 사고를 치고 다른 멤버가 이를 수습하는 관계다. 메인 보컬이 리더를 불러내듯이. ‘라’와 ‘레’가 도미넌트 관계라는 것은, ‘라’에 해당하는 A코드는 ‘레’에 해당하는 D코드로 넘어가는 것이 자연스럽다는 의미이다. 그렇다면, ‘레’는 누구의 도미넌트인가. 그렇다, ‘솔’의 도미넌트이다. 그렇다면 ‘레’에 해당하는 D코드가 나와서 사고를 쳤을 때 누가 이를 수습할까. 그렇다. 도미넌트인 ‘솔’에 해당하는 G코드이다.

잠깐, 도미넌트는 토닉으로 이어진다고 하지 않았나. 그럼 D코드가 나오면 자연히 도미넌트가 나오고, 자연히 토닉이 나온다는 뜻인가. 그렇다. 반드시 그래야만 한다는 것은 아니지만, 이런 진행은 우리에게 매우 익숙하게 느껴진다. I인 토닉을 기준으로 두 번째 음인 ‘레’를 II라고 쓰면, 이것이 그 유명한 ‘II – V – I’(‘투파이브원’) 진행이다.

idologykr · II-V-I의 전형적인 예
5도권 진행

V가 I에게 도미넌트라면 V에겐 II가, II에겐 VI이 각각 도미넌트 관계이다. 이처럼 물고 물리는 관계를 이어가다 보면 하모니즈 12명의 멤버 모두를 한 바퀴 돌 수 있다. 이것을 그리면 화성학 책에 많이 나오는 엄청 복잡해 보이는 원형 도표가 된다. 이를 ‘5도권’이라 하며 ‘Circle of fifth’라 부르기도 한다. (굳이 그리진 않겠다. 구글에서 ‘5도권’을 이미지 검색하면 바로 나오는 바로 그것이다.) 전공자들은 이 5도권 도표를 외우고 있는 경우가 많은데, 코드와 코드가 서로를 불러내는 관계 때문이다. 도미넌트가 토닉을 부르듯, II가 도미넌트를 부르듯 말이다. 다시 말하지만, 이런 관계가 있다고는 해도 반드시 해당하는 코드로 연결돼야 한다는 의미는 절대 아니다. 다만 이 ‘5도권 진행’을 따라가면 화성 진행이 자연스럽게 느껴지기 때문에 편리하게 이용될 뿐이다. 예를 들어 특정한 코드를 꼭 사용하고 싶은데 연결이 어려울 때 그 코드와 도미넌트 관계인 코드를 집어넣는다든지 하는 식이다. 워낙 흔해서 ‘머니 코드’라 부르는 진행들도 곰곰이 따져보면 5도권 진행이나 그 변형인 경우가 많다. 5도권 진행에 관해서는 다음 기회에 더 자세히 알아보기로 한다.

도미넌트 : 세련됨 vs 시원함

메인 보컬 도미넌트는 많은 곡에서 핵심적인 역할을 한다. 그러나 워낙 존재감이 강하고 명쾌하기 때문에 자칫 곡이 유치하게 들리는 역효과를 빚기도 한다. 이상하게 세련되게 들리는 곡들은 화성 진행의 도미넌트 관계를 배배 꼬아 놓아 신선한 인상을 주는 경우가 많은데, 특히 도미넌트인 V를 잘 처리하는 게 관건이 되기도 한다. 반대로, V가 명쾌하게 등장하는 선명함이 곡을 시원하고 직선적으로 들리게 해주기도 한다. 그런 애물단지 같은 매력덩어리 V가 언제 어떻게 나타나는지, 멤버들 사이의 도미넌트 관계가 어떤지를 귀기울여 들어보면 어떨까.

미묘

By 미묘

가식과 내숭의 외길 인생. 음악 만들고 음악 글 씁니다.
f(x)는 시대정신입니다.

One reply on “리스너를 위한 화성학 ④”

내가 본 글 중에 제일 쉽게 설명이 되있네요.
많이 배우고 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