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ategories
Review

이번 달은 이것 : 소녀시대 – Mr. Mr.

소녀시대는 어떻게 태티서를 통해 ‘아이돌 제 3의 길’을 개척했는가

소녀시대의 “Mr. Mr.”(2014)는 소녀시대의 ‘보컬 라인’으로 구성된 유닛 소녀시대 태티서의 “Twinkle”(2012)과 무척 닮아 있다. 곡들의 면모를 살펴보면 지난해 “태티서의 신보가 준비 중”이란 루머가 돌았던 것도 이 음반과 어쩌면 무관하지 않을 것이라는 상상도 하게 된다.

  1. Twinkle
  2. Baby Steps
  3. OMG
  4. Library
  5. 안녕
  6. 처음이었죠
  7. 체크메이트
Mr. Mr. (2014)
  1. Mr. Mr.
  2. Goodbye
  3. 유로파
  4. Wait a Minute
  5. 백허그
  6. Soul

“Twinkle”은 강하고 화려한 타이틀 곡 ‘Twinkle’로 시작해 ‘Library’를 중앙에 배치하고, 포근한 R&B 발라드 ‘처음이었죠’를 지나, 다시 강한 사운드의 ‘체크메이트’로 마무리한다. 소녀시대의 “Mr. Mr.”의 경우 ‘Mr. Mr.’가 ‘Twinkle’에, ‘유로파’가 ‘Library’에, ‘백허그’가 ‘처음이었죠’에, ‘Soul’이 ‘체크메이트’에 각각 해당한다. ‘Goodbye’와 ‘안녕 (Good-bye, Hello)’, ‘Wait A Minute’과 ‘OMG’ 사이의 분위기의 유사성까지 보면, “Mr. Mr.”가 “Twinkle”의 모델을 참조하여 구성되었다는 가설을 세워보게 된다.

연애 감정을 도서관에 비유한 ‘Library’는 빈티지 신스 사운드를 전면에 내세우며 긴 당김음의 베이스 리듬을 강조하는 달콤한 곡이다. ‘유로파’는 똑같은 리듬의 베이스를 사용하고 연애 감정을 목성의 위성에 비유한 곡으로, 역시 인트로부터 빈티지 신스 사운드를 사용하고 있다. (사족이지만 이 신스는 롤랜드(Roland) 사의 제품인 쥬피터(Jupiter)를 연상시키는데, 쥬피터는 목성의 영어 이름이다. 프로듀서 켄지(Kenzie)의 깨알 같은 신스+천체+소녀시대 덕후 드립이라 하겠다.)

중간을 채우는 (그러나 ‘시간 때우기’가 결코 아닌) 트랙들 중에서도 유사점은 속속 발견된다. ‘Goodbye’의 ‘브리티쉬 풍’ 밴드 편성은 ‘안녕’으로 연결되고, 특히 ‘Goodbye’의 가사 내용은 영어 제목도 “Good-bye Hello”인 ‘안녕’의 시퀄이라 할 만하다. ‘Wait A Minute’의 경우는 유쾌하고 강렬한 ‘OMG’의 스윙 리듬과 가사 “Oh, my gosh”를 가져와 서글픈 미드템포의 ‘Baby Steps’의 분위기를 섞어 넣은 듯한 모습이다.

무엇보다, 화려한 타이틀 ‘Twinkle’과 ‘Mr. Mr.’, 어두운 성향의 클로징 ‘체크메이트’와 ‘Soul’은 또 다른 연결점을 갖는다. 온전하고도 노골적인 댄스 브레이크의 삽입이 드물어지고 있는 요즘, ‘체크메이트’의 2절 뒤에 이어지는 ‘유사-드럼 솔로’와 ‘Mr. Mr.’의 댄스 브레이크가 갖는 유사성은 그냥 지나치기 어렵다. 그러나 정말 중요한 공통점은, 이 네 곡이 화성에 대한 의존도가 낮다는 점이다. ‘Twinkle’은 버스(verse, A)와 후렴(chorus, C) 전체가 하나의 코드로 이뤄져 신스 브라스의 메인 리프로 진행되고, ‘Mr. Mr.’의 버스는 화성 진행을 기록할 수도 있겠으나 실질적으론 리프에 의해 진행되는 것으로 봄이 옳다. ‘체크메이트’는 버스와 프리코러스(pre-chorus, B)가 베이스와 일렉트릭 기타 리프의 원코드로 이뤄져 있으며, 역시 베이스와 기타가 두드러지는 ‘Soul’은 버스가 원코드로 이뤄진 상태에서 후렴 또한 절반 가량을 하나의 코드로 길게 끌어나간다.


 
탈-가요의 길

이런 요소가 중요한 것은, 그것이 탈-가요적이기 때문이다. ‘가요’의 정체성은 흔히 탈-장르와 ‘4개 코드 진행’으로 이야기된다. 따라서 장르 음악을 융합하면서, 좋은 팝이면서, 동시에 가요적이지 않는 것은 쉬운 일만은 아닌데, 그 열쇠 중 하나가 화성일 수 있다. 예를 들어 ‘Goodbye’가 갖는 ‘브리티쉬’ 분위기의 비밀은, 악기 편성만이 아니라 I도 화성(이 곡에서는 A)이 메이저 7th(AM7)가 아닌 7th(A7)로 이뤄진 데에서도 기인하는 것이다. (또한 이 곡이 선보이는 30초에 달하는 반주 위주(!)의 페이드 아웃을 한국 주류 대중음악에서 들어본 것은 얼마만의 일인가.) I7의 사용은 태티서의 ‘안녕’에서도 마찬가지여서, 한번 성공한 모델을 의도적으로 가져왔다는 추론을 가능하게 한다.

뿐만 아니라 루프/리프나 원코드 진행은 전형적으로 장르 음악에서 오는 속성인 동시에, 탈-조성적인 도구이기도 하다. 위에 언급한 ‘Twinkle’, ‘체크메이트’, ‘Mr. Mr.’, ‘Soul’이 이에 해당하는데, 이 두 음반의 탈-조성적 요소는 그 외에도 있다. 평행 진행(‘OMG’), 11th 화성의 평행 진행(‘유로파’), 페달 진행(‘안녕’) 등은 모두 서양 음악에서 탈조성의 역사를 논할 때 등장하는 항목들이다.

잠깐, 소녀시대가 음악 혁명을 이루고 있다는 주장을 하는 것은 아니다. 화성에 의한 진행을 탈피하는 움직임들이 이미 한국의 아이돌팝 곳곳에서 목격되고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것은 확실히 어떠한 ‘진보’에 해당한다. 이 음반이 반드시 음악사적 진보를 담고 있다고 판단할 필요는 없고, 일정 부분은 아이돌계의 경향이라 볼 수도 있다. 그러나 적어도 이 음반이 화성적으로 탈-가요를 노리고 있다는 것만은 분명해 보인다. 또한 훵크의 장르 색채를 많이 노출한 “Twinkle”에 비해, 이번에는 보다 덜 장르적인 융합체로서의 팝을 만들어내면서도 그 목표를 이뤄냈다는 점에 눈길이 간다.

‘Mr. Mr.’는 진보적인가

이쯤에서 (소속사가 카메라워크에 적극적으로 개입하는 것으로 이야기되는) ‘Mr. Mr.’의 무대를 살펴본다. 등장과 퇴장도 보이지 않는 남성 댄서들이 그야말로 소품으로 활용되고 있음을 느낄 수 있다. 항간에선 “‘The Boys’에 이어 남성을 격려하는 곡”이라 표현하기도 하지만, 티파니의 발길에 차여 무대 앞으로 굴렀다가 통나무처럼 뒤로 빠지는 남성 댄서를 이 무대의 주인공이라 할 수 있을까. 멤버들만으로 무대와 화면을 확실히 채우면서 남자의 모양을 한 소품을 휘두르는 모습은, 남성 랩퍼/댄서의 서포트를 ‘필요로 하는’ 여성 아이돌의 클리셰를 떠올리게 한다. 그에 비하자면 얼마나 진보적인 연출인가. 가사 속의 “미스터rrr” 또한 “나를 빛내줄” 만한 존재기에 자신의 “선택(을) 받은”, 그렇기에 “최고의 남자”이다. 화자는 여성으로서 관계의 완벽한 주도권을 쥐고 있는 모습이다.

“Mr. Mr.”가 복고적, 정통적 성향을 지닌다는 몇몇 전문가들의 판단도 수긍은 간다. 그러나 이 음반의 탈-가요적 성향을 묵과하고 “빈티지”, “레트로” 등의 워딩의 표면을 애매하게 훑는 모습은 유감이 아닐 수 없다. 물론 이 음반이 극단적인 스타일을 담고 있지는 않다. 같은 소속사의 샤이니, f(x)는 더 급진적인 사운드를 활용하고, 화성적으로도 이미 완전히 원코드로 이뤄진 시크릿의 ‘Magic’ (2010) 같은 선례도 있었다. 여성으로서의 주체적인 모습도 보아의 ‘Girls On Top’에 비해 진일보하였으나 여전히 안정적인 은유와 SM 엔터테인먼트 특유의 오글미가 있는 게 사실이다.

그러나 현재 가장 폭넓은 대중을 상대로 하는 소녀시대가 과격한 음악적 실험을 하기는 쉽지 않다는 점도 염두에 두어야 옳을 것이다. 유닛인 소녀시대 태티서를 통해 실험을 행하고 그 모델을 조심스럽게 적용한 점이 의미심장해지는 지점이다. 그런 행보의 결과는 두 가지 축에서의 진보로 드러난다. 팝으로서의 완결성을 놓치지 않으면서 탈-가요를 도모하는 것, 그리고 섹시함을 전시하기보다 (섹시함을 기본으로 갖춘) 주체적인 근사한 여성상을 제시하는 것. 아이돌의 한계점들을 차례차례 격파해 나가는, 가히 ‘(여성) 아이돌 제 3의 길’이다.

“이번 달은 이것”은 미묘가 매월 한 장, 혹은 한 곡의 아이돌팝을 골라 심층 분석하는 연재이다. 바로 전 달에 발매된 음반이나 곡을 대상으로 하며, 특별한 의미가 있는 경우를 선정하여 아이돌계의 흐름도 함께 짚어보고자 한다.

미묘

By 미묘

가식과 내숭의 외길 인생. 음악 만들고 음악 글 씁니다.
f(x)는 시대정신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