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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달은 이것 : 오렌지캬라멜 – 까탈레나

이미 ‘병맛’이라 할 단계를 넘어선 ‘까탈레나’는 ‘메타-아이돌 팝’이라 해도 좋을 것이다. 유로 디스코의 뻔뻔한 엑조티즘으로 당당히 빛나는 이 곡은 ‘원본’을 초월하는 ‘사본’의 선언이다.

하이퍼의 하이퍼

개인적으로 관심을 두는 팀은 아니었음을 고백해야 할 것 같다. 노골적인 오타쿠 코드와 신경 쓰이는 목소리, 뽕끼 멜로디와 코믹한 콘셉트, 그 어느 것도 나의 마음을 근본적으로 잡아끄는 것들은 아니었다. 그러나 지난달 발매된 ‘까탈레나’만큼은 도저히 그냥 넘어갈 수 없었다. 도처에 의미불명인 것투성이기 때문이었다. 이를테면 직접 촬영하지 않은 (것으로 보이는) 유일한 컷이 <미스터 초밥왕>적으로 연상하는 바닷속이며, 그것이 하필 참치도 아닌 백상아리라는 식인 것이다. (혹시나 해서 찾아봤지만 백상아리 밑의 작은 물고기도 상어의 먹이 찌꺼기를 받아먹는 전갱이과의 동갈방어(pilot fish)로 추정되며, 일본어 위키피디아에 의하면 “식용이 되기도 하지만, 맛은 좋지 않다”고 한다.)

잘 보면 보이는 동갈방어

뮤직비디오 감독 디지페디는 최근 <아이즈>와의 인터뷰에서 이 비디오가 딱히 심각한 의미가 없다고 말했다. 그러나 “까탈레나” – “착할래나?”의 라임에 무릎이 풀린 이상, (과잉해석을 경계하면서) 이 희한한 텍스트를 요모조모 뜯어보며 시시한 의미들을 캐보고 싶은 욕망을 어찌 참을 수 있을까.

메타-아이돌 팝?

이 곡은 언뜻, ‘아이돌에 관한 아이돌 팝’, 곧 ‘메타-아이돌 팝’처럼 들리고 또한 그렇게 보인다. 어떤 이는 여성을 동경하는 여성의 마음을 담은 가사에서 유사-동성애적 코드를 읽기도 하는 모양이다. 여성 아이돌들이 자신을 예쁘고 섹시하고 핫하고 잘 나간다 외칠 때, ‘다른 여자’를 “멋있다”고 감탄하는 것은 분명 이례적이다. 그러나 가사의 행간은 노래의 내용이 음악과 직접 연관되어 있음을 보여준다. 화자는 “춤추는 작은 까탈레나”와 “함께 춤 추고파”하며 그곳에 “한 시간 두 시간”을 넘어 “뼈를 묻고 싶어” 한다. 그녀에게 바라는 것은 “흔들흔들 손 흔들고, 네 목소리가 쉴 때까지 소리 질러”로 표현되며, 그녀와의 접촉은 “스쳐 가는 두 손”이다. 클럽, 혹은 공연장을 떠올리기에 충분한 표현들이다. 즉 화자가 동경하는 까탈레나는 보이쉬한 학교 선배나 미모의 학생회장이 아니라, 최소한 클럽의 ‘댄싱 퀸’, 혹은 공연장의 스타로 묘사되는 것이다.

“녹-녹-녹-녹아든다”는 그래서 더 재미있다. 녹음된 보컬을 편집해 반복시키는 것은 케이팝의 대표적인 소리 풍경 중 하나라 할 수 있다. 그런데 그 이펙트를 입으로 재현해 “농농농녹아든다, 노롱농롱녹아든다”가 되어버린 이 구절, 제법 유쾌한 패러디처럼 들린다. 거기에, 뮤직비디오에 등장하는 자연산 문어와 양식 인어의 은유, 그 가격의 변동, 액자 속에서 키취하게 빛나는 인어의 이미지 등을 포함시키면, ‘까탈레나’는 완연히 아이돌 팝에 관한 은유 덩어리로 보인다. (디지페디가 “기획사에 대한 비판적 시선”이 아니라 했음에도 말이다.)

“주띠 메리”가 대체 뭔가?

그러고 보면 이 곡의 무국적성도 우리가 한국의 아이돌 팝을 말할 때 곧잘 접해온 것이다. 가장 눈에 띄는 “주띠 메리”는 어떠한가. 펀자브 민요를 샘플링한 이 부분은, 단편적으로 삽입하고 넘어가기 쉬운 “오이호이호이”의 길게 늘어지는 끝 부분을 집요하게 살려 신비감을 더한다. 대체 무슨 뜻일지 궁금해 잠을 설친 게 나 뿐은 아닐 것이다. 찾아본 바에 의하면 ‘주띠 메리’는 결혼식 때 부르는 민요라 하며, ‘주띠Jutti’는 펀자브 전통의상의 여성용 신발을 말한다고 한다. “주띠 메리”는 힌두어로 “내 신발”이란 뜻이며, “알 게 뭐냐”는 의미의 다소 거친 표현이라는 증언도 접수했다. (“파울라 메라”는 “몰라”란 뜻이라고.)

주띠 Jutti (CC BY World Around Richa)

중요한 것은 이 샘플이 가사의 의미 때문에 가져온 것은 아마도 아닐 것이란 점이다. 물론 “도도한 콧대 까탈레나 / 에라 나도 모르겠다 / 홀려 들어가”라고 이어붙여도 말이 되기는 한다. 그러나 “오이호이호이”의 발음과 “홀려 들어가”가 보이는 두음 “호”의 반복이 “떠-떠-떠-떨려온다”와 같은 패턴을 보이는 음성적 효과를 위해 선택됐다고 보는 것이 합리적일 것이다. ‘진정한 의미’를 무시하고 외형만을 가져오는, 전형적인 엑조티즘의 예이다.

그리고 그것은 우연하게도, 디스코의 특성과 맞아 떨어진다. 과장된 스타일로 번쩍이던 디스코 컬쳐는 세계 각지의 모습을 마구 끌어들였는데, 당연히도 문화인류학적 접근이나 상대주의와는 그다지 관련이 없었다. ‘이곳만 아니라면 어디든지’라는 느낌에 가까웠던 디스코의 엑조티즘은, 고대 이집트의 이미지와 곧잘 결합하는 디스코의 스테레오타입을 떠올리면 이해가 빠를 것이다. 그리고 ‘까탈레나’는 미국에서 발생한 디스코를 대서양 건너 가져다 제멋대로 버무린 유럽의 유로 디스코를, 다시 유라시아 대륙 반대편으로 가져와 다시 제멋대로 버무리면서, 파키스탄의 민요를 섞어 넣은 것이다. 그야말로 물고 물리는 엑조티즘의 연쇄다.

초밥왕의 소중한 와사비

그렇게 엉망진창의 엑조티즘을 체화하고 내면화하기까지 한 문화를 우리는 알고 있다. 일본이다. ‘아이돌 종주국’인 일본은 극동 아시아의 아이돌 시스템과 정서, 감상법까지 모든 것을 만들어냈다. 한국의 1세대 아이돌들은 쟈니스와 헬로 프로젝트, 오키나와 액터즈 스쿨이란 거인의 어깨 위에 앉은 새들이었다. (그러고 보면 일본에서 애프터스쿨이 선보이는 훵크-디스코와 오렌지캬라멜의 유로 디스코도 묘한 대칭을 이룬다.) 일각에서 ‘왜색’이란 소리를 들었다는 ‘까탈레나’의 뮤직비디오는 그래서, 또 하나의 층위를 더한다.

그 후 와사비의 운명은…

그러나 그 층위가 진정 흥미로운 것은, ‘까탈레나’가 ‘원본’으로서의 일본을 재현하는 데에 그치지 않기 때문이다. 유튜브를 떠도는 일련의 “일본 엽기 예능” 류의 비주얼을 가볍게 뛰어넘는 파격적인 콘셉트는, 이미 ‘병맛’이라 형용할 단계를 넘어섰다. ‘쓸 데 없이 고퀄’로 점철된 수많은 디테일과 섬세한 감각으로 조율된 성적 코드 속에 의미불명의 이미지들이 갖은 상상을 쏟아내게 만든다. 그중 가장 강렬하게 모든 이미지를 감싸 안으며 이 비디오를 한 차원 위로 끌고 올라가는 것은, 아이돌로서의 ‘자학 개그’의 연상이다. (다시, 디지페디의 인터뷰에도 불구하고 말이다.) 그리고 그 비디오 속에서 오렌지캬라멜은 간장 그릇에 와사비를 던져 넣고 발로 휘저어버린다. 일본에서는 어떻게 먹거나 말거나, “우리는 이렇게 먹는다”는 듯이.

원본과 사본

뻔뻔해서 당당한 엑조티즘의 얼굴로 까탈레나는 거만한 웃음을 지어보인다. “그래서 뭐?” 인어로 분한 오렌지캬라멜은 ‘진짜 여성’이고, 그럼에도 ‘양식 인어’이다. 또한 인어임에도 불구하고 (가짜) 연어, 새우, 고등어가 되어 초밥 벨트 위에 오른다. ‘가짜’보다 ‘가짜’ 같은 ‘진짜’의 ‘가짜’ 모습이다. 반면 문어로 분한 까탈레나 김대성은 ‘여장 남자’이고, 그럼에도 ‘자연산’으로서 알을 흩뿌리며 ‘여성’으로서의 매력을 과시한다. ‘진짜’보다 ‘진짜’ 같은 ‘가짜’. 그리고 그(녀)를 “따라따라 따라 하고파” 하는 ‘진짜’ ‘가짜’. 그야말로 ‘원본을 초월하는 사본’, 아니, ‘원본의 원본’을 초월하는 사본의 자신감 넘치는 자기선언이다. 이것은 하이퍼의 하이퍼다.

사족 : 케이팝을 본 성룡이 한국에서 ‘무난한 케이팝’으로 더블제이씨(JJCC)를 데뷔시킨 요즘, <어벤져스 2> 촬영현장을 본 심형래 감독은 ‘<어벤져스>를 능가하는’ <디 워 2>를 만들겠다고 말했다고 한다(경향신문, 4월 5일).

오렌지캬라멜의 ‘까탈레나’에 관한 아이돌로지 필진들의 단평은 1st Listen : 2014.03.11~03.20에서 확인할 수 있다.

“이번 달은 이것”은 미묘가 매월 한 장, 혹은 한 곡의 아이돌팝을 골라 심층 분석하는 연재이다. 바로 전 달에 발매된 음반이나 곡을 대상으로 하며, 특별한 의미가 있는 경우를 선정하여 아이돌계의 흐름도 함께 짚어보고자 한다.

미묘

By 미묘

가식과 내숭의 외길 인생. 음악 만들고 음악 글 씁니다.
f(x)는 시대정신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