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ategories
Review

이번 달은 이것 : 포미닛 – Name Is 4minute (2013)

이 음반은 포미닛의 ‘시즌 2’를 이끌어낸다. 핏대를 세우며 자기주장을 하던 ‘쎈언니 팝’은, ‘4차원’에 가까운 백치미로 뒤바뀌어 느닷없는 병맛 코드에 접근하는 것이다.

이미지 ⓒ 큐브 엔터테인먼트

쎈언니 팝의 이정표

“이번달은 이것”은 매달 지난 달의 훌륭하고 되짚어볼 만한 아이돌팝을 살펴보는 코너이다. 4월에는 훌륭하고 되짚어볼 만한 아이돌팝이 없었다. 그래서 2013년 4월을 살펴보겠다. 포미닛의 “Name Is 4minute”이다.

포미닛 시즌 2

2007-8년을 2차 아이돌붐이라 규정할 때, 이 세대 초반의 여성 아이돌을 견인한 음악적 특징은 크게 세 가지로 분류할 수 있다. 원더걸스를 중심으로 하는 복고풍과 소녀시대-카라가 형성한 소녀풍, 그리고 2NE1으로 대변될 수 있는 ‘쎈언니 팝’이다. 2NE1과 한 달 터울인 2009년 6월 데뷔한 포미닛은, 보다 섹시한 매력을 발산하며 초기 쎈언니 팝 씬을 이끌었다. 그리고 그런 맥락 위에 이 미니앨범 “Name Is 4minute”이 위치한다.

이 음반은 그야말로 포미닛의 ‘시즌 2’를 이끌어낸다. 단적으로 신사동 호랭이를 주축으로 한 기존의 프로듀서진은 ‘용감한 형제와 그의 친구들’로 부분 교체되었다. 타이틀인 ‘이름이 뭐예요?’는 그 정점에 있다. 전기톱이 날아다니듯 슈퍼쏘우(super saw) 사운드로 살벌하게 찍어누르던 기존과는 차별화되는, 공간감 있는 힙합이다. 커다랗게 덮치던 신스들은 온갖 이펙트를 제거하고 벌거벗은 사인파와 사각파로 빈 공간을 돌아다닌다. 정비공 같은 점프 수트를 입은 적은 있되(‘Huh’) 늘 완연한 ‘무대의상’을 선보였던 포미닛은, 패션에 있어서도 (일종의) 스트리트 스타일로 변신을 꾀한다. 다소 90년대스러운 감성은 있되 (“뻣뻣한 머리로 날 재지 마”, ‘Superstar’) 늘 현실과 한 걸음 거리를 두던 가사는, 느닷없이 현실의 영역으로 훅 떨어진다. (“딱 꽂혀버리고 만 거야”, “술 한잔 하면서 얘기해 봐요”) 미성의 허가윤이 무리한 듯 핏대를 세우며 자기주장을 하던 목소리는, 천진난만한 “랄랄라랄라 랄랄라라”와 이어지는 “이름이 뭐예요ㅓㅓ예요”에서 ‘4차원’에 가까운 백치미로 뒤바뀐다. 다소 이상한 사람처럼 보일 순 있으되 스타로서의 화려함을 놓치지 않던 전작들과는 달리, 터무니없는 후크의 ‘이름이 뭐예요?’는 느닷없는 병맛 코드에 한없이 접근하는 것이다.

내가 병맛이라니…!

이런 급격한 변화는 많은 사람들을 당혹게 하였다. 물론 그것은 “이름이 뭐예요?”라는 간단한 구절이 이렇게 중독성 있는 후크로 꽂힐 수 있다는 경이에서도 비롯됐다. 그러나 전성기를 구가하던 신사동 호랭이의 탄탄한 프로덕션과 포미닛의 완벽해 보이는 궁합을 내려놓은 것 또한 의아할 수밖에 없었다. 그에 대한 해답은, 후렴인지 프리코러스(pre-chorus)인지 애매한 멜로디 파트(“문이 열리고 멋진 그대가 들어오네요”)에서 찾을 수 있다. 직설적으로 속마음과 용건을 쏘아대던 가사는 갑자기 상대방의 모습을 묘사하기 시작한다. 상세하진 않지만 충분한 정보를 담은 가사이다. 화자는 술집 안에 있고, 문이 열리며 상대가 들어온다. 화자는 그가 마음에 든다. 자연스레 말을 걸며 추근대듯 술을 권한다. 그리곤 분위기가 무르익자 느닷없이 내숭을 부린다. (“나 쉬운 여자 아니에요”) 정신없이 에너지를 발산하는 클럽이나 파티의 풍경과는 거리가 멀다. 이름과 나이, 사는 곳부터 물으며 시작하는 유혹의 방식도 예스럽다. 그리고 그것은 질척대는 감성을 풀어내는 멜로디라인의 “얘길 해봐요”에서 고음을 찍고 내려오며 신파적인 싸구려의 향취를 물씬 풍긴다.

용감한 형제의 이유

바로 이 지점이, 신사동 호랭이가 아니어야 할 이유였다. 그는 의심의 여지 없이 훌륭한 프로듀서지만, 저속함은 그의 팔레트에 없었던 것이다. 그것을 갖춘 것은 이 곡에서 야비한 웃음을 터뜨리며 게걸스럽게 랩을 하는 용감한 형제였다. 정리하자면 이 곡은 저속함의 미덕을 가져오기 위해 선택되거나 혹은 만들어졌다. 데뷔로부터 만 4년간 포미닛은 무대 위에서 관중을 압도하는 입장에 전력을 다했다. 더 훌륭한 디바가 가능했을지는 모른다. 그러나 한계점 또한 다가오고 있었다. 그것은 어쩌면 시대의 흐름이었고, 어쩌면 특정 멤버의 과도한 존재감이었다. 적어도 기존의 방식을 고수해서 단기간에 돌파하긴 어려운 벽이었을지 모른다. 그래도 이미 검증된 것을 이어갈 수도 있었겠지만, 포미닛은 급선회를 선택했다.


포미닛
Name Is 4minute (2013)

1. What’s My Name?
2. 이름이 뭐예요?
3. Whatever
4. Gimme That
5. Domino

완충지점은 있다. 한켠에선 비교적 기존 프로듀서진과 인접한 인물들이, 또 한켠에서는 새로운 프로듀서들이 중간지점을 탐색한다. 오프닝 트랙 ‘What’s My Name?'(서재우, 서용배)은 일렉트릭 기타 중심의 선동적인 사운드 속에 목에 핏대 세우는 허가윤을 여전히 활용하여 전작들과 유사한 결을 유지한다. (반면 타이틀인 2번 트랙으로 넘어가는 순간은, 공간감의 긴장으로 기대감을 준 뒤 강렬하게 달리는 전작들과는 정반대의 양상을 띤다.) ‘Gimme That'(임상혁, 손영진)은 날 선 고음의 브라스 계통의 신스가 화려하게 뿌려지며 쎈언니 팝을 선보이지만, 리듬 섹션과 랩 파트는 기존에 비해 훨씬 힙합스럽게 연출되어 교차한다. 기존의 프로듀서진도 ‘용감한 형제의 친구들’도 아닌 D3O와 에일린 데 라 크루스(Aileen De La Cruz)의 ‘Whatever’는 수퍼쏘우 사운드와 중음역대를 비워내는 사운드를 보다 극명하게 대비시키며 신구의 조화를 꾀한다. 그리곤 Glory Face의 작업인 ‘Domino’가 리얼한 가사와 강렬한 흐름을 시원하게 몰아치는 가운데 예의 저속한 매력을 되살리며 미니앨범을 마무리한다. 차기작 “4minute World”(2014)와 그 타이틀 ‘오늘 뭐해’까지 듣고 난 지금에야 할 수 있는 이야기인지 모르나, 조심스러운 균형을 꾀하며 변화를 시도하고 있는 것이다. 그 이행은 올해 들어서 완료되었다.

쎈언니 팝

쎈언니 팝의 자장 안에 위치했던 그룹들은 대부분 이 시기에 변천을 겪었다. 섹시-쎈언니 계통의 씨스타는 ‘Give It To Me'(2013년 5월)로, 힙합-쎈언니 2NE1은 ‘I Love You'(2012년)에 이어 ‘Falling In Love'(2013년 7월)로, 뭔가-쎈언니 애프터스쿨도 ‘첫사랑'(6월)으로 저마다 신파 코드를 강조했다. 쎈언니의 가장자리에 걸쳐 있던 레인보우는 2월과 6월의 ‘Tell Me Tell Me’와 ‘Sunshine’으로 신인에 가까운 소녀가 되었고, 때론-나름-쎈언니 카라도 9월의 ‘숙녀가 못돼’에서 성숙한 여성의 리얼리즘을 선보였다. 그나마 덜 누그러진 것은 f(x)의 ‘첫 사랑니'(7월)와 브라운아이드걸스의 ‘Kill Bill'(7월), 그리고 활동이 없었던 미쓰에이뿐이었다. 어떤 이들은 성공했고, 어떤 이들은 어떻게든 현상을 유지했으며, 어떤 이들은 비교적 부진한 결과를 냈다. 결과론일 수 있으나, 화두는 쎈언니 팝의 변화였다.

포미닛 – 물 좋아? (2013)

포미닛은 가요의 어떤 극단적인 전형들을 흡수하며 저속함의 팝으로 달려들었다. (알고 있거나 눈치챘겠지만, 팝에서 저속함이란 결코 단점이 아니다.) 그 결과, 수직적인 무대 위에서 빛이 나던 그들은 신파와 구어가 혼재하는 수평적인 파티의 영역으로 내려왔다. 그 덕분일까, 무대는 멤버들이 골고루 비중을 차지하며 각자의 매력을 선보이게 되었다. 또한 이들은 초현실의 아이돌에서 현실의 연예인으로 안착했다. 그들은 여전히 무척 섹시하지만, 그것을 더 이상 비현실 세계의 것으로 변명하지 않는다. 오히려 저속한 날것의 이미지를 통해 더 ‘야하게’ 다가온다.

이 음반, 혹은 이 음반의 선회가 흥미로운 것은 그 부분이다. 성을 박탈당한 ‘가요계의 요정’이 아니면 ‘저속한 싸구려’여야 했던 여성 가수 시장에서, 저속한 친숙함을 취하면서도 ‘군대 전용’의 함정에 빠지지 않는다는 점이다. 성녀/창녀 프레임을 비켜나는 이 마법 같은 선택은 간단히 설명되지 않는다. 우버 섹시와 백치미를 오가는 현아의 매력 때문인지, ‘시즌 1’ 4년간의 커리어의 힘인지, 시장의 변화인지 우리는 단언하기 힘들다. 1년 만에 ‘호구조사 송’들이 벌써 지겹다는 볼멘 반응도 나오고 있어, 결국 장기적인 성공 여부는 더 지켜보는 수밖에 없다. 그러나 이 미니앨범은 쎈언니 팝이 일단락되고 아이돌팝이 가요로 전환되는 시점에서, 아이돌의 금기와 한계를 뛰어넘는 놀라운 한 수를 보였다. 이것은, 꼭 기억해 둬야 할 음반이다.

호구조사의 결말

“이번 달은 이것”은 미묘가 매월 한 장, 혹은 한 곡의 아이돌팝을 골라 심층 분석하는 연재이다. 바로 전 달에 발매된 음반이나 곡을 대상으로 하며, 특별한 의미가 있는 경우를 선정하여 아이돌계의 흐름도 함께 짚어보고자 한다.

미묘

By 미묘

가식과 내숭의 외길 인생. 음악 만들고 음악 글 씁니다.
f(x)는 시대정신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