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HH OOP!’은 이른바 ‘~척하는’ 남자를 비꼬는 것으로 스토리텔링한다. 남자를 비꼬는 것을 넘어서 완전히 깔아뭉개기를 시도하는데 ‘AHH OOP!’에 등장하는 남자들은 수준이 맞질 않아 대화가 안 통하는 대상, 멍청하고 귀찮은 존재, 스킨십에만 집착하는 비이성적 존재, 가르침을 받아야 할 어린아이로 묘사된다. 마마무는 이 같은 ‘문제적’ 남성들에게 구체적인 지침을 내린다. 얌전히 있으라(“Behave yourself”)고 지시하고 감정 노동을 요구(“화풀이할 때 다 들어줘”)하는데 사실 이는 여성에게 요구되는 성역할들이다.
‘AHH OOP!’의 성별구조 뒤틀기는 뮤직비디오에서 선명하게 나타난다. 뮤직비디오는 욕망하는 여성과 잔뜩 겁먹은 남성을 교차해서 보여주는 방식으로 극명하게 대비시킨다. 특히 상징적인 것은, 햄버거를 탐욕스럽게 베어 먹는 여성의 입과 긴장한 남성의 모습이 반복 교차하고, 흘러나온 케첩이 남성의 그림 위에 핏방울처럼 뚝뚝 떨어지는 장면이다.
흔히 식욕은 성욕과 연관되며 이 같은 욕망을 내보이는 여성은 통념적인 여성성의 파괴로 이해된다. 이 장면은 여성의 욕망이 남성에게 위협적으로 느껴지며 그래서 금기시된다는 것을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그 때문에 마마무는 욕망을 노래하면서 남성들을 향해 “이대로 가면 너만 다칠 것 같은걸. 저만치 떨어져 있는 게 좋을걸”이라고 충고한다. 반면 남성은 얌전히 손을 모으고 앉아 침만 꿀꺽 삼키며 모든 상황에 순응한다. 곱상한 얼굴에 순박해 보이는 바가지 머리까지, 우리가 흔히 생각하는 ‘남성성’과는 동떨어져 있다.
사실 성별권력구조를 뒤집자는 건 꽤 철 지난 주장이다. 젠더 문제에는 더 근본적 모순이 있기 때문이다. 성별이라는 잣대로 인간을 범주화하고 남성이라는 정상 모델을 규정하고 있는 것이 ‘진짜’ 문제이다. 즉 여성이 권력을 잡는다고 문제가 해결되는 것이 아니라 성별권력구조 자체가 사라져야 하는 것이다.
하지만 권력 가진 자를 비꼬는 형태의 ‘풍자’로 이해한다면 ‘AHH OOP!’을 의미 있게 볼 수 있다. 소설 〈이갈리아의 딸들〉(브란튼베르그)에서도 성 역할 체계가 완전히 뒤집힌 가상 세계를 보여주는 것으로 가부장제의 모순을 풍자하고 있다. 이런 작업들은 성별권력구조를 유지하기 위해 여성이 치러야 하는 대가가 있다는, 비가시화된 사실을 지적하는 것이다.
신랄하고 공격적인 어투로 여성의 주체성을 강조하던 ‘AHH OOP!’은 옥에 티를 남기고야 만다. ‘남자다움’에 대해 한참 힐난하다가 급선회해 ‘남자다움’을 요구하는 아이러니가 그것이다. (“남자가 돼야지 안 그래?”, “남자답게 다가와 봐. 답답하잖아.”, 뮤직비디오에 등장하는 ‘Real man’이라는 메시지) 여기에 전제된 ‘진정한 남성성’은 필연적으로 ‘진정한 여성성’과 직결된다. 남성과 여성이 본질적으로 다르다는 대립적 사고는, 남성성과 여성성이라는 것이 사회적으로 ‘만들어진’ 것임을 철저하게 가린다. 그래서 논의를 개인적, 본성적 문제로 옮기는 한계를 가져온다. 이를 넘어서려면 남녀의 차이보다는, ‘차이에 대한 믿음은 어디서 기인했으며 어떤 기능을 하는가?’라는 질문을 통해 문제의 틀을 구성적인 것으로 만들어볼 필요가 있다.
이런 한계에도 ‘AHH OOP!’이 의미 있는 이유는 여기부터이다. 성별구조 뒤틀기를 넘어 여성의 자기결정권을 주장하기에 이르는 것이다. “Just look, don’t touch”라는 일갈은 내 외모, 내 옷차림은 결코 ‘너’를 위한 것이 아니니 ‘네’ 맘대로 만지지 말라는 경고라는 점에서 슬럿워크(slut walk, 잡년행진)를 연상시킨다. 2011년 캐나다에서 비롯된 슬럿워크는 ‘어떤 옷차림이든 성폭력을 허락하는 건 아니다’라고 주장하며 ‘나는 내가 원하는 것을 입을 수 있다’는 사실을 강조했다. ‘AHH OOP!’은 ‘남자들이 여성의 몸을 어떻게 보는가’에서 벗어나, 여성이 성적 대상이 아닌 성적 주체라는 점을 강조한다. 자기결정권을 강조하는 동시에, 그러니 여성을 존중하라(“Gotta respect a girl”)는 요구로 이어진다.
여성에게 주체성과 의존성은 동전의 양면과도 같다. 많은 여성들은 주체성 획득에 대한 열망과 동시에 사회적으로 불가피한 의존성 사이에서 필연적으로 딜레마를 겪는다. ‘AHH OOP!’에서는 거창하진 않지만 이벤트도, 비싼 선물도 거부하는 구체적 방안을 제시한다. 여성들이 의존성에서 벗어나는 것은 주체성을 가지고 독립성을 획득하는 과정과 직결된다. 그래서 그녀들의 선언은 비록 개인적 차원에 그쳐있지만 의존성과 독립성의 딜레마를 인지했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
‘센 언니’로 분한 마마무 멤버들은 남성의 스타일을 이리저리 구미에 맞게 바꾸어댄다. 뒤집힌 성별권력구조를 시각화하면서 여성의 주체적인 모습을 수동적 태도의 남성과 대비시켜 유머러스하게 표현한다.
뮤직비디오는 ‘내’ 맘대로 만들어낸 남자의 사진을 실종 포스터에 붙이면서 끝난다. 그녀들의 요구에 맞아 떨어지는 (얌전하고 자존심 내세우지 않는) 남자는 현실에 없다는 것을 우회적으로 표현한 건 아닐까? ‘이 장면은 ‘눈 떠보니 꿈이었더라’는 식의 허무한 결말이 아니라 그만큼 냉정하게 현실을 꼬집고 있다는 의미로 보인다. 세상의 ‘뻔한 얘기’에 끝까지 ‘냉소와 비꼬기’로 맞선 마마무 ‘언니’들의 뻔하지 않은 이야기는 그래서 날카로우면서도 유쾌하다.
글: silverai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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