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월 1일~10일에 발매된 아이돌 언저리 신작들에 대한 필진 단평. 빅뱅, 크레용팝, 하트비, 엘시, 로미오, 전효성, 베스티, 장현승을 들어 보았다.
맛있는 파히타: 나에게 빅뱅의 가장 큰 강점을 묻는다면 서정성이라고 대답할 것이다. '거짓말', '하루하루', 'MONSTER'와 같은 곡들로 이어져 온 드라마틱한 서정미를 지닌 곡들은 이번 앨범에서도 'LOSER'로 이어지고 있다. 끝없는 패배의식과 허무주의를 빅뱅과 같은 탑 아이돌이 노래한다는 것은 일견 이해할 수 없는 일이지만 그 일관성을 본다면 그것이 큰 놀라움으로 느껴지진 않을 것이다. 젊은이들의 좌절, 패배, 상처, 저항 등을 가장 잘 다룬다는 점에서 본다면 YG는 한국에서 '반항아'를 가장 잘 표현하는 기획사가 아닐까. 록 음악도 자생하고 있지 않으며, 메이저 씬에서 발라드조차 자취를 감춰버린 시점에서 빅뱅은, 그리고 YG는 대중음악 씬의 가장 큰 니치를 차지하고 있다고 생각한다.
미묘: 'BAE BAE'의 '힙 터짐'은 많은 사람들이 이야기해온 것. 90년대 얼터너티브 분위기 물씬 풍기는 분위기 속에 갑자기 가요적인 멜로디가 삽입된다든지, 후반의 "찹쌀떡"부터는 사실상 다른 곡을 갖다 붙이다 만 것처럼 마감했다든지 하는 점까지, 무국적의 맥락 속에서 무국적을 희롱하는 메타-케이팝이다. 아마도 'Fantastic Baby' 때부터 빅뱅은 일단 당혹감을 안긴 뒤 그것을 무시무시한 설득력으로 뒤바꿈 해 보이는 작업을 꾸준히 해오고 있는데, 이 곡만큼은 후자에 연연함 없이 마음껏 '끼를 부려' 놓는다. T.O.P의 어린이 얼르는 듯한 "특이해 특이해~"만으로 이미 더 바랄 게 없다.
MRJ: 'Loser'는 대조적인 테마들로 가득하다. 음악 요소들은 다소 게으르거나 느긋하게 활용되지만 가사는 무척 우울하면서도 임팩트가 강하다. 브리지에서는 음악적인 방식으로 희망을 엿보게 해준다. 화성 진행이 마치 "모든 게 괜찮아질 거야"라고 하는 듯한 분위기를 조성한다. 하지만 그 시점에서 가사와 스토리라인은 가장 어두운 부분으로 돌입한다. 기본적이면서도 매끈한 드럼 루프, 약간의 피아노, 그리고 하이라이트를 더해주는 어쿠스틱 기타 등의 매력적인 악기 편성은 곡의 메시지를 완전히 벗어나는 분위기를 만들어내는데, 매우 설득력 있고 잘 고안된 방식이다. 이런 대조적인 요소들이 영리하게 조합된, 놀랍도록 흥미롭고 밸런스 좋은 곡이다.
미묘: 베이스에 얹히면서 중저역이 톡톡하게 살아있는 기타 사운드가 인상적이다. 은은하게 백업보컬을 깔고 들어가는 B 파트의 악기 편성과 화성 진행도 정통적이면서도 기분 좋다. 별스럽지 않으면서 상큼한 후렴도 매력적이다. 다만 반복이 조금 지나친 데다 멜로디라인도 매우 전형적인 것에 가까워, 오래 여러 번 듣기에는 다소 질리는 구석이 있다. 언제든 곡을 잘라서 사용할 수 있도록 안배한 듯한 곡의 마무리를 들으면 이 싱글의 의의 자체가 거기까지인가 하는 생각도 든다. 하지만 크레용팝에게서 종종 부족한 부분처럼 여겨졌던 우아한 상큼함을 즐길 수 있다는 측면에서, 비정규 싱글로서 챙겨 들어봄직하다.
맛있는 파히타: '심장을 울리는 발라드'를 표방하는 보컬그룹으로 데뷔한 하트비의 포부에는 어울리지 않게 데뷔곡 'REMEMBER'는 상당 부분 통속적이다. 노래의 내러티브를 꿰뚫는 키워드를 찾기 힘들고 무엇이 감정을 일으켜 눈물을 흘리게 했는지도 불분명하다. 뮤직비디오 시작 부분의 식사장면은 god의 '어머님께'가 떠오를 정도로 구차한 부분이 있다면, 이후 분위기를 바꿔 담담하게 노래하는 부분에서는 차라리 드라마타이즈 했으면 할 정도로 가사가 귀에 잘 들어오지 않는다. 곡은 정석적인 발라드의 드라마틱한 진행을 보여주지만 그 외에는 귀가 번쩍 뜨이는 순간을 주는 부분이 없다.
유제상: 남성 4인조 그룹 하트비의 데뷔 EP. 인스트루멘탈 포함 총 6곡으로 구성되어 있다. 타이틀 '밥 한공기'의 경우, 곡의 기조는 다비치의 그것과 상당히 닮아 있고 2AM의 분위기도 난다. 다만 가사의 스토리텔링은 대단히 한국적인 것으로 밥집 아주머니가 같이 밥 먹던 이쁜 친구 어디 갔냐고 물어보는 내용으로 시작된다. 임창정의 '소주 한 잔'을 연상시키는 이런 한국적 정황의 가사가 아이돌 노래에 사용된 것이 조금 황당하기도 하지만, 어찌 되었건 듣는 이의 머릿속에 자리 잡는 데에는 이만한 전략도 또 없을 것이다.
조성민: 멤버 4명 모두 대체로 듣기 좋은 음색에 담백한 창법을 사용하고 있어서 들으면서 쉽게 '나쁘다'는 생각을 하기는 어려울 것 같다. 그러나 똑같은 이유로 꽤나 심심하게 들리기도 한다. 곡 자체에 다이내믹이 부족한 것 같진 않은데, 평이하게 뻗는 미성의 보컬이 문제인 듯싶다. 음반 전체적으로 보컬 간의 개성이나 트랙별 특색이 크게 도드라지지 않아서 듣는 이가 즐길 거리가 그다지 많지 않다는 인상이 있다. 지아가 피처링한 마지막 트랙도 앞의 트랙들과 큰 차이를 느낄 수 없어, 전체 앨범이 유기성은 있으되 다이내믹은 느껴지지 않는다. 기획자의 역량보다는 멤버들의 능력치가 더 부각될 수밖에 없는 장르인 만큼, 분발할 필요가 있어 보인다.
맛있는 파히타: 곡을 듣고 뮤직비디오를 보며 느껴지는 고심이 마음 아팠다. 티아라의 은정은 ELSIE라는 이름으로 솔로 데뷔했는데 뮤직비디오는 두 차례에 걸쳐서 유튜브에 업로드되었다. 4월 30일에 업로드된 버전은 2분 23초의 짧은 버전으로 은정은 등장하지 않는데, 5월 7일에 업로드된 오리지널 버전은 더 길어졌고 은정이 등장하며 안무도 포함된 버전이다. 아마도 티아라나 은정을 조심스럽게 노출하기 위한 시도였으리라 생각한다. 티아라라는 이름은 이젠 볼드모트 같은 존재가 되어버린 것인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을 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노래는 만들다 만 것 같은 인상을 받고, 케이윌의 보컬도 은정과 너무 질적인 차이를 보여서 마치 케이윌이 주인공인 것처럼 느껴진다. 왜 그랬을까...
미묘: 결국 '혼자가 편해졌어'의 솔로 버전은 '흔해빠진 여성 솔로'의 범주 안에 그대로 들어간다. 이에 차이점을 두고자 케이윌을 섭외했다면, 확실히 케이윌이 부르는 부분은 다른 풍으로 들리긴 한다. 그러나 듀엣곡으로 쓰이지도 않은 곡에서 듀엣 이하인 엘시의 비중은 의문을 갖기에 충분한 선택이다. 청승으로 어필한 뒤 다음 트랙('눈물비')에서 최소한의 자존심을 유지하는 형태는 지연의 공식 그대로다. 엘시의 음색과 캐릭터를 보여줄 수 있는 곡은 서비스처럼 삽입된 '혼자가 편해졌어'의 솔로버전 정도로, 평이하지만 분명 매력 있으나 좀처럼 활용되고 있지 않다. 나쁘지 않은 곡들이지만, 꽤 오래 기다린 것에 비해서는 'Love Effect'에서 반복되는 엘시의 '약간 영국풍' 영어 발음 정도가 들을 거리일까.
유제상: 타이틀 '혼자가 편해졌어'의 경우 머리로 만든 노래라고 해야 되나, 가사나 멜로디가 진실되게 들리지 않고 귀에 겉돈다. 케이윌의 파트가 시작되면 새로운 노래를 듣는 것처럼 신선한 기분이 들지만 그뿐. 곡의 안무는 미묘하게 야한 편인데 청순과 섹시의 언밸런스함이 딱 티아라의 그것이다. 수록곡의 절반 이상이 의미 없는 타이틀 뻥튀기인 것도 그렇고, 레디메이드의 진한 향이 풍기는 무미건조한 미니앨범.
조성민: 전체 트랙의 분위기는 은정의 1집이라기보단, 지연의 2집을 듣는 느낌이다. 심지어 '혼자가 편해졌어'의 퍼포먼스도 상당한 기시감을 준다. 문제는 은정의 보컬과 춤 모두 지연보다 밋밋하고 평이해 보인다는 점이다. 그 와중에 케이윌의 보컬 비중이 작지도 않아서, 상대적으로 약한 은정의 표현력이 그대로 부각된다. 지연이 '1분 1초'에서 조금 벅차더라도 온전히 혼자만의 힘으로, 심지어 어느 순간에는 남자 댄서를 리드하기까지 하는 적극성을 보여 주목을 이끌어냈던 것과는 사뭇 대조된다. 지연과의 비교우위를 따질 생각은 없었는데, 비슷한 작품을 내놓으니 자연스럽게 머릿속으로 연상되어 나란히 놓고 비교할 수 밖에 없게 되었다. 이것이 바로 아티스트가 자신만의 독창성을 가져야 할 이유겠다.
맛있는 파히타: 로미오의 'LOVESICK'은 그대로 인피니트가 떠오르는 곡이고 이는 나 혼자만의 느낌은 아닐 것 같다. 게다가 바로 그 "스윗튠"의 곡이란 점에서 이는 의도한 바인 것 같다. 어떤 아이돌 그룹도 무에서 창조되진 않고 각자의 레퍼런스를 갖는다는 점에서 그 레퍼런스가 해외가 아닌 국내가 되어가는 것은, 케이팝이 하나의 장르가 되어가고 있음을 보여주는 것이라고 하겠다. 다만 이 팀은 인피니트가 데뷔 때부터 보여줬던 박력과는 달리, 로미오라는 팀명이 내포하는 것처럼 순수하고 로맨틱한 콘셉트를 지향하는 듯하고 그런 콘셉트가 인피니트라는 레퍼런스와 어떻게 엮이는지 지켜봐야 할 것이다.
유제상: 오마이걸, 큐피트의 경우처럼 최근 데뷔하는 그룹들은 이름을 단순하게 짓는 경향이 있는데, 로미오 또한 이에 속한다. 남자그룹=로미오라니 이 얼마나 직관적인 작명인가. 타이틀 '예쁘니까'는 인피니트풍의 곡으로 적당한 절규와 만화영화 주제가스러움을 함께 내포하고 있다. 멜로디는 듣기 좋지만 목소리에 지나치게 에코가 들어있는 점이 쪼금 마이너스. 열정적인 무대를 보니 이후 활동을 기대해 보아도 좋을 듯.
조성민: 지향점이 명확하다 못해 노골적이라서 외려 당혹스러운 신인. 사운드와 비주얼은 인피니트를 빌려오되, 퍼포먼스와 콘셉트는 보이프렌드에서 가져온 듯하니, '광역 저격'이 이럴 때 쓰는 말일까 싶다. 타이틀곡 '예쁘니까'의 거창한 곡 소개를 읽고 나면 더더욱 크나큰 의문이 자리 잡게 되는데, 도대체 이 곡의 어디에서 '순수한 소년의 아름답지만 슬픈 첫사랑의 순결한 감정'과 '찬란한 슬픔'을 느껴야 하는지 알 수가 없기 때문이다. 아직 능숙할 리가 없는 신인에게 너무 큰 미션을 떠넘긴 것은 아닌지.
김윤하: ‘반해’가 지난 솔로작 ‘Good Night Kiss’에 비해 흐릿한 인상인 이유를 찾기는 그리 어렵지 않다. 같은 작곡가의 곡을 받고는 있지만, 그것이 아티스트의 캐릭터나 작업의 연속성에 대한 고민의 결과가 아닌 단지 ‘타이틀곡’을 채우기 위한 방편으로 작용하고 있기 때문이다. 귓가에 닿을 듯 말 듯 긴장감을 유지하는 비음 섞인 목소리와 여자 아이돌치고는 굵은 선의 무대 퍼포먼스 등 전효성이 솔로로서 지니고 있는 장점들은 이 앨범을 통해 아무런 심화도 발전도 이루지 못한 채 색만 바래간다. 밋밋한 곡임에도 불구하고 그간 보기 힘들었던 그녀의 사랑스러운 면모를 살짝 스치고 지나가는 마지막 곡 ‘5분만 더’가 그나마 숨통을 트인다.
미묘: 'Good-night Kiss'는 확실히 과감한 곡이었다. '날 보러와요'와 '반해', 'Taxi Driver'는 모험요소들을 좀 덜어내고 더 정통적으로 조여지면서 보다 본격적으로 고혹적인 섹시미를 더했다. 각곡은 탄탄하게 호흡을 쥐었다 풀었다 하여 꽤 좋은 맛을 낸다. 전효성이 커버아트만큼 작정하고 '흐드러지면서도' 이 정도의 퀄리티와 품격을 유지할 수 있다는 것은 매우 인상적이다. 그러나 정작 타이틀에서 전효성의 목소리는 주인공의 자리를 차지하기보다 반주에 얹혀 있는 듯 들린다. 음색이 가장 성격을 강하게 드러내는 것은 'Taxi Driver'일 텐데, "에라 나도 모르겠다 이젠 술이나 한잔 해야지", "슬픈 영화 속 여주인공처럼 걸어도"를 비롯해 지나치게 깊숙한 신파 코드가 지금까지의 아슬아슬하던 품격의 균형을 뒤흔든다. 청승 부리며 비 내린 길바닥을 뒹굴어야만 섹시할 수 있는 게 아니란 걸, 전효성 정도면 알아줘도 좋지 않은가.
유제상: 작년 5월의 첫 솔로앨범 "TOP SECRET"에 비하면 노래도 전효성도 모두 볼륨업 되었다. 타이틀곡 '반해'는 효민의 'Nice Body'와 거의 동일한 구조의 곡이지만(두 곡은 심지어 안무도 닮았다), 상대적으로 건강한 느낌이 강하다. 이것은 노래를 부르는 사람의 캐릭터 차이일 수도 있겠지만, 평자는 그보다도 '반해' 쪽이 좀 더 안전한 지점을 지향했기 때문 아닌가 생각된다. 나머지 멤버의 기운이 전효성에게로 들어와 전효성 혼자서도 시크릿의 활동을 거뜬히 해내는 것 같은 그런 느낌의 EP.
조성민: '1인 시크릿'을 보는 느낌이 강하다. 그러니까, 시크릿 멤버 중 한 명이 아니라, 시크릿 멤버 4명을 합쳐 놓은 사람을 보는 느낌이랄까. 전효성의 전작 "TOP SECRET"이 아닌 기존의 시크릿 앨범과 더 상통하는 듯한 트랙들도 그렇고, 최대한 다양한 이미지를 보여주려 한 뮤직비디오도 그렇다. 분명 1명인데 4명을 보는 것 같은 이 느낌은, 트랙 중간중간에 랩 파트가 등장할 때마다 더욱 강렬하게 느껴진다. 솔로 앨범에서 시크릿과는 차별화된 스스로의 아이덴티티를 강하게 구축하고 있는 송지은과는 판이한 행보인데, 전작을 고려해 보면 어느 정도는 의도적으로 선택한 방향성이지 않을까 싶기도.
맛있는 파히타: 적어도 나에겐 베스티의 'Excuse Me'는 EXID의 '위아래'를 다분히 의식한 곡처럼 들린다. 절제된 멜로디에 쫀득쫀득한 리듬감, 그리고 감각적인 색소폰이 곁들여진 버스(verse)와 내지르는 가요 후렴은 마치 다른 곡인 것처럼 큰 대조를 이루는데 이는 EXID의 '위아래'에서도 그대로 보였던 것이다. 게다가 공교롭게도 이 두 그룹은 원래 한 팀이었다! 그러나 그런 유사점에도 불구하고 이 곡은 매력적이고 즐길 만하다. 무엇보다도 베스티라는 팀 자체의 매력이다.
미묘: 베스티는 어떤 포지션을 지향하는지 알기 어렵다. 하지만 'Excuse Me'는 어쨌든 매력적이다. EXID를 연상시킨다고 한다면, 그보다는 좀 더 미성 위주로 가볍고 맑은 '아가씨' 느낌을 살리고 있다. 보다 멜로디감이 있는 가운데 살짝 음정이 나가는 색소폰으로 인상을 강화하고, 서서히 밀어붙이는 브라스와 함께 후렴에서 본격적으로 달린다. 시원하고 근사한 곡이다. 'Hush Baby'도 어른스러우면서도 청량한 디스코 하우스를 선보이는 가운데, 타이틀곡의 사운드와 화사한 가요 사이의 접점을 만든다. 이후의 트랙들은 타이틀의 이미지 변신에 따른 부담을 의식한 듯 무난한 곡들로 이뤄졌다. 결국 베스티의 포지션은 더욱 애매해지지만, 다소 애매한 성향으로 지금까지 온 마당에 서두르는 것만이 답은 아닐지도 모른다. 한치 앞을 모를 흥행 여부는 잠시 잊고, 첫 두 곡만큼은 한번쯤 들어보길 권하고 싶다.
MRJ: 무척 의외이면서도 인상적인 곡이다. 베스티는 어마어마한 보컬 실력과 재능을 이미 보여준 바 있고, 이 곡은 이를 화음과 리드 모두에서 완벽하게 뽐내주고 있다. 곡 자체로도 매우 즐길 만한데, 최근 팝 트렌드에 맞춰 보컬 없는 파트에서 솔로 색소폰 라인을 사용하면서도 단순히 트렌디한 사운드의 재활용에 그치지 않는다. 브라스 신시사이저/샘플의 활용 또한 무척이나 흥미롭다. 리얼 브라스를 연출하기보다는 다른 종류의 사운드를 써서 '비현실적'인 타입의 브라스 사운드로 곡을 빛내고 있다. 비트업 하는 후렴은 조금 의아한데 그 방식이 썩 마음에 들진 않지만, 아이디어 자체는 좋으며 후렴 내내 강렬한 운동감을 끌어올려주고 있다.
김윤하: 비스트 멤버들 가운데 가장 팝(pop)한 매력을 가지고 있는 장현승의 매력을 살린 타이틀곡 ‘니가 처음이야’의 느낌이 좋다. 가볍지만 나풀거리지는 않는 장현승의 보컬과 후렴구 내내 반복적으로 울리는 경고음, 무언가 비었다 싶은 순간 참을 수 없다는 듯이 하이 노트를 찍는 "예!"하는 탄성까지. 최근 준수한 유행가들을 뽑아내고 있는 블랙아이드필승 고유의 훵키(Funky)함과의 궁합이 썩 괜찮다. 하지만 이 곡을 제외한 앨범의 전체적인 구성과 콘셉트에 대해서는 온통 물음표만 찍힌다. ‘걔랑 헤어져’ 같은 괜찮은 서브 타이틀의 대척점에 ‘야한 농담’이나 ‘사랑한다고’ 같은 의미 없는 19금 곡들을 배치한 의도는 무얼까. 아이돌로서의 금기를 깨보겠다는 패기에서 비롯된 시도일지도 모르겠지만 '잘하는 게 있는데 굳이'라는 생각을 멈추기 힘들다.
미묘: 필터 머금은 스트링과 금속성 칼칼한 브라스의 인트로부터 '니가 처음이야'는 성격을 분명히 한다. 약간의 레트로 터치로 냉정을 표현하면서도 화려함을 절대 놓치지 않겠다는 것이다. 구조적으로 좀 더 스피디하게 몰아쳐도 좋았을 거란 생각은 들지만, 앙칼진 보컬과 함께 찌르면서 밀고 나가는 기세가 근사하다. 다만 보컬이 조금 힘에 부친다는 인상이 남는데, 보컬 실력의 문제라기보다는 곡의 방향성 차원으로 보인다. 음원으로 듣기에 다소 아쉬움은 있으나 무대에서는 충분히 만회할 수 있을 만한 부분. 매끄러운 음색으로 애절함과 맑음을 함께 보여주는 '걔랑 헤어져', 호소력과 달콤함을 오가는 '야한 농담' 등, 장현승의 (야한) 캐릭터와 보컬을 여러 가지로 가지고 놀아보는 음반이라 할 수 있다. 한편 욕설이 쏟아지는 '사랑한다고'는 아예 노골적으로 올드한 블루스 분위기를 가져와 감정을 과장되게 증폭한다. 랩 씬에서의 그것에 비해 욕이 달라붙거나 효과적으로 활용된다는 인상은 덜한데, (그냥 말로 내뱉을 때의 자연스러움에 비하면) 표현력의 문제라기보다는 가사와 멜로디의 결합 단계에서 생겨나는 어색함으로 보인다. 이런 형태의 곡을 앞으로 더 듣게 될지는 알 수 없으나, 재미있는 시도라 생각한다.
유제상: 1. 함께 활동하는 것도 아닌데 장현승은 갈수록 현아를 닮아간다. 물론 트러블메이커 이전에도 장현승은 이뻤다. 2. 이 EP를 통해 비스트를 다시금 생각해본다. 타이틀 '니가 처음이야'에서도 들을 수 있는 '후렴구의 강렬함'은 비스트의 전매특허인 것을. 남미의 비스트 팬들은 이 느낌에 매료된 걸까. 3. 뮤직비디오가 상당히 야하다. 다만 다른 어떤 뮤직비디오보다도 등장인물들의 날씬함이 강조되어 있어 때에 따라서는 불편하게 느껴지기도. 4. 어찌 되었건 요모조모 따져보아도 우수한 EP임은 분명하다. 현승 개인의 매력, 곡의 인상 깊음, 프로모션의 세심함 등 이제 어느 정도의 경지에 이른 관계자들의 능수능란함이 빠짐없이 전해진다. Pick!을 받아 마땅하다.
조성민: 비스트와 트러블메이커에서의 활약상이 인상적이었기에 상당한 기대를 하고 있었는데, 앨범 하나를 혼자 끌고 가기에 조금 무리인 것처럼 느껴진다. 비스트의 장점이라면 역시 대중적으로 쉽게 어필 되는 트렌디한 가요적 색채를 꼽을 수 있겠는데, 반 박자 정도 트렌드에서 뒤처진 듯한 느낌이 영 석연치 않게 들린다. 게다가 트랙이 지나갈수록 안정적인 보컬은 단조롭게 들리고, 설상가상 아웃트로에 해당하는 '사랑한다고'에서는 감정을 억지로 끌어낸 듯한 어색한 비속어 가사가 당황스럽다. 가장 기대했던 부분은 역시 퍼포먼스였는데, 피처링을 맡은 기리보이에 씬 스틸 당하는 것은 둘째 치고서라도, 후반의 댄스 브레이크 독무를 제외하면 시종 백업댄서와 함께 3인 혹은 5인 대형을 유지하고 있어서, 완전체 그룹으로 활동할 당시와 퍼포먼스상의 차이를 느끼기가 어려워 여러모로 기대를 충족해주지 못했다는 인상을 준다. 기대가 컸던 만큼 여러모로 아쉬운 점이 많은 앨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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