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탄소년단이 ‘Not Today’가 수록된 리패키지 앨범 “You Never Walk Alone”을 발매한 것은 2월 13일. 나는 의구심을 가졌다. 논란을 일으킨 가사 속 “유리천장”을 비롯해, 곡은 페미니즘의 잘못된 이식으로 보였다. 그리곤 2월 19일, ‘Not Today’의 뮤직비디오가 공개됐다. 나는 위화감을 느꼈다. 가사와 음원으로 접했을 때와는 사뭇 다르게 다가온 것이다. 생각이 달라졌다. 그 이유를 찾아내는 데에는 꽤나 시간이 필요했다.
그것은 우선, GDW의 이 뮤직비디오가, 정말 멋지기 때문일 것이었다. ‘쩔어’(2015)에 이어 다시 한번 담아낸, ‘정교하게 역동적인 몸’이라는 케이팝의 정통적 셀링포인트는, 또다시 해외에서 유난히 폭발적인 반응을 이끌어낸 것에 대한 하나의 설명이 될 수 있을 것이다. 영상 속의 에너지는 선동적인 ‘혁명’의 이미지를 담아낸다. 무엇보다, 매서운 새들처럼 달리는 댄서들이 멋지게 그려진다. 얼굴 노출이나 개개인 클로즈업 없이도 이들이 주는 강렬한 인상은 이들을 조역 이상의, 차라리 콘셉트 그 자체로서의 배경에 가까운 위치로 올려놓는다.
뮤직비디오에 시선을 빼앗긴 사이, 가사는 조금 귀에 덜 들어오기는 것도 사실이다. 브리지의 핵심인 “유리천장 따윈 부숴”를 제외하면, 문제시됐던, 또는 문제시의 근거가 됐던 표현들은 대부분 흩어진다. 이를테면, ‘나는 해냈으니까 너도 노력하면 유리천장 따윈 부술 수 있다’는 맥락의 해석의 빌미가 된 ‘성공한 래퍼의 스왝’ 부분이 그렇다. “Too hot, 성공을 doublin’ / Too hot, 차트를 덤블링”으로 시작되는 이 2절 버스(verse) 전반부는 가사를 텍스트로 읽을 때와 음원으로 들을 때 느껴지는 비중의 차이가 제법 있다. 다른 랩들에 비해 월등히 나직하게 중얼거리다 못해 거의 얼버무리는 것에 가까운 랩몬스터의 목소리는 이어지는 제이홉의 “서로가 서롤 전부 믿었기에”, 진의 “함께라는 말을 믿어”의 배경설명처럼 자리한다.
반면 놓치기 어려울 정도로 귀에 박히는 가사들은 따로 있다. 후렴의 후반부에서 음률을 타고 흐르며 가장 뚜렷하게 각인되는 것은 “죽지 않아 — Not not today”이다. 이는 1절 후반 랩몬스터의 또박또박 짚어가는 “오늘은 절대 죽지 말아”와도 이어지는, 이 곡의 핵심 주제이자 결론이다. 물론, 곡의 다른 디테일들에 대한 논점을 전부 무시할 이유가 되진 않는다.
내가 느꼈던 위화감은 이 시점에서 어느 정도 교통정리가 되었다. 지금까지 논한 것은 내가 이 곡에 대한 선입견을 거둬야 할 이유들이었다. 반대로, 여전히 문제제기를 해야 할 사항들도 남아있었다.
우선 가장 논란이 된 ‘유리천장’이 그렇다. 랩몬스터는 이 용어를 오용하지 않았다고 입장을 밝혔다. 모든 소수자들에게 해당되는 개념이기 때문이란 것이다. 이는 옳다. 문제는 유리천장이 모든 소수자에게 해당하느냐 그렇지 않으냐가 아니다. 투쟁적 이미지로 가득한 노래 속에서 격하게 강조하는 의존명사 “따위”의 유무조차 아니다. 노래하는 이가 소수자에 해당하느냐 여부다. 작년부터 방탄소년단의 ‘중소기획사 아이돌 신화’가 부각되었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유리천장 개념이 적용되는 소수자의 범주를 가장 협의에서 가장 광의까지 펼쳐 나간다고 할 때, 한국에서 ‘중소기획사’ 남성 아이돌의 입장 순서는 상당히 뒤쪽이란 것이다. 뮤직비디오 후반 다의적으로 해석될 수 있는 지면 위의 세트를 두고 즉각 ‘유리천장 위에서 춤춘다’고 받아들인 사람들도 있었다. 여성의 지위는 아예 지면 아래라고 느낄 만큼 한국 사회의 현실이 처절하다는 뜻일 수도 있겠다. 대부분의 여성은, 바로 그런 연상의 간극만큼, 방탄소년단보다 앞쪽에 서 있다.
그러니 “유리천장 따윈 부숴”는 의심을 살 수 있는 표현이다. 이 곡 속에서 방탄소년단이 소수자들과 동일시되지 않는다고 보는 이라면, 소수자를 향해 유리천장 따윈 부수라고 쉽게 말하는 사람을 볼 수도 있다. 반면, 방탄소년단이 소수자들과 동일시되고 있다고 보는 이라면, 이들이 ‘소수자 코스프레’를 하고 있다고 볼 수도 있다. 그리고 이러한 의심은, 남성으로서 여성의 싸움을 (또는 이젠 성공한 아이돌로서 약자의 싸움을) 지지하고 연대하겠다고 할 때 굳이 롤 모델이나 리더를 자처해야 했는가, 가창자와 대상 청자 사이에 설정된 권력 우열은 무엇을 의미하는가, 같은 질문들로 이어지게 된다.
한국 주류 대중음악에서 ‘약자’란 대체로 십 대였다. 그러나 따져보면 서태지와 아이들의 ‘교실 이데아’도 너희가 “왜 바꾸지” 않느냐는, 교육 시스템을 이미 벗어난 자의 목소리였다. H.O.T.나 젝스키스는 십 대 동료의 목소리를 보여줬지만 등가교환이라도 하듯 그 메시지는 훨씬 피상적인 것으로 물러났다. 이후 케이팝에서는 ‘약자’란 주제 자체가 거의 등장하지 않았다. 클리셰화한 ‘못난이 정서’나, 남성의 자기연민 정도가 고작인 경우가 대부분이었다. 투쟁적 이미지의 케이팝 남성 아이돌과 소수자에 대한 연대의 메시지 사이에 어떤 관계 모델이 가능할지는 그 해답이 아직 우리의 손안에 있지는 않다. ‘Not Today’가 말해주는 오늘이란 딱 그만큼이다.
가장 긍정적으로 바라본다면, ‘Not Today’는 오해의 여지를 남기기는 하나 이만큼 직접적이고 구체적으로 약자, 특히 여성을 호명했다는 점을 짚을 필요가 있는 작품이다. 곡의 논쟁점들은 이들이 청년세대의 절망에 대해 예리하게 노래했던 것처럼 향후 적확하고도 통렬한 작품을 낳을 시행착오일 것이다. 가장 부정적으로 바라본다면, 이들이 소수자 이슈에 대해 들일 용의가 있는 노력량의 상한선과, 코어 팬덤 및 해외 케이팝 팬덤이 결집할 만한 적정선이 이곳에서 만난 것일 테다. 오늘 어떤 관점을 택할지는 독자에게 맡긴다. 여전히, 앞으로의 관점에 대한 열쇠는 물론 방탄소년단에게 있다. 방탄소년단이 내린 오늘의 선택은 공론의 장에 들어서는 것이니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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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 replies on “방탄소년단, ‘Not Today’가 말하는 오늘”
덧붙이고 싶은 얘기가 있는데, ‘유리천장’이라는 개념은 한 개인 혹은 집단이 사회유동성을 얼마나 가지느냐의 문제에서 비롯된 개념이기 때문에, 단순히 ‘주체가 소수자냐 아니냐’의 문제라기보다는 ‘주체가 사회유동성을 얼마나 많이 가졌느냐’의 문제로 보여집니다. 방탄소년단이 ‘한때 어려웠던’ 중소회사의 아이돌 그룹이었다 하더라도 현재 1위를 달리는 인기그룹으로 부상할 수 있었던 사실 자체가 다른 소규모 회사 아이돌보다도 사회유동성을 많이 가진 주체라는 증거이고, 따라서 ‘유리천장을 깨부수자’는 말이 가진자의 여유로 비춰질 확률이 높겠죠. 무엇보다도 ‘유리천장’이라는 개념 자체가 뛰어넘을 수 없는 불가능함을 전제로 한 개념이기 때문에 ‘유리천장을 깨부수자’라는 말 자체가 개념을 충분히 인지하지 못한 채로 쓰여진 문장이라 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덧붙이고 싶은 얘기가 있는데, ‘유리천장’이라는 개념은 한 개인 혹은 집단이 사회유동성(social mobility)을 얼마나 가지느냐의 문제에서 비롯된 개념이기 때문에, 단순히 ‘주체가 소수자냐 아니냐’의 문제라기보다는 ‘주체가 사회유동성을 얼마나 많이 가졌느냐’의 문제로 보여집니다. 방탄소년단이 ‘한때 어려웠던’ 중소회사의 아이돌 그룹이었다 하더라도 현재 1위를 달리는 인기그룹으로 부상할 수 있었던 사실 자체가 다른 소규모 회사 아이돌보다도 사회유동성을 많이 가진 주체라는 증거이고, 따라서 ‘유리천장을 깨부수자’는 말이 가진자의 여유로 비춰질 확률이 높겠죠. 무엇보다도 ‘유리천장’이라는 개념 자체가 ‘개인/집단의 노력과 상관없이 사회계급을 뛰어넘을 수 없는 불가능함’을 전제로 한 개념이기 때문에 ‘유리천장을 깨부수자’라는 말 자체가 개념을 충분히 인지하지 못한 채로 쓰여진 문장이라 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비회원 수정이 안되어 다시 남깁니다;)
공부가 됩니다. 감사합니다.
아이돌로지는 갈수록 시사사이트와 구별이 안되네요.
이렇게 일상이 모두 여성에게 유리천장이신 분들이 과연 정상생활이 되시는지 궁금하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