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월 중순에 발매된 아이돌 새 음반들에 대한 아이돌로지 필진 단평. 방탄소년단, B.I.G, 장준&영택, 빅플로, 멜로디데이, 김준원&크리스탈, 베리어스, 카드, 어썸, 시크엔젤, 첸, 써니플레이, 로즈퀸, L.A.U, VAV, 포커즈, 트와이스를 다룬다.
박희아: 인털류드(Interude)에서 아우트로(Outro)로 나아가기 위해 어떤 '한 끗'을 추가했는지 알 수 있는 두 곡의 존재가 반갑다. 'Not Today'는 이제껏 방탄소년단이 보여주고자 했던 모든 에너지의 총합이다. 그리고 이 과정에서 사운드는 거침없이 터져 나오며, 메시지는 보다 미래지향적이다. "~하자!"라고 외치는 식의 워딩은 이전 가사들에 비해 정돈된 자아로 그려졌고, 따라서 교조적인 태도의 것이 아니라, 나의 도약을 위한 자극제 정도로 읽힌다. '봄날'은 방탄소년단이 일본에서 발표했던 곡인 'For You'와 비슷한 온도를 지닌 곡. 그러나 보다 직설적이며, 애타는 정서가 담긴 곡이다. 평범한 언어("보고 싶다")의 반복이 갖는 감정적 쓰임새를 잘 알고 있는 듯하다. 청음으로도 모난 곳 없이 따뜻하게 감기는 느낌이 좋지만, 백미는 퍼포먼스에 있다고 봐도 될 것 같다. 사실상 안무가 없어도 될 곡인데, 동작 하나하나에 힘을 싣고 푸는 부분을 명확하게 집어 완성한 안무가 눈에 띈다. 가사에 들어있는 "Friend"라는 단어가 함께 추는 춤에 완결성을 부여한 게 아닌지. 마무리 차원에서 "화양연화" 시리즈부터 '봄날'과 'Not Today' 뮤직비디오까지 쭉 훑다 보니 부러움이 생긴다. 가장 고통스러우면서도 생동감 넘치던 시기가 평생토록 네모난 프레임 안에 담긴다는 것은, 어떤 기분일까.
돌돌말링: 전작 "Wings"에 네 곡을 추가한 리패키지. 해외 성적을 보면 한 곡의 히트가 아니라 앨범이 고루 사랑받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룹의 네임밸류를 인정받고, 해외에도 한국만큼 충성도 높은 팬덤이 결집하고 있다는 의미일 것이다. 상반된 분위기의 '봄날'과 'Not Today'는 이제까지 방탄소년단이 선보여온 멜로우한 노선과 강렬한 노선의 새로운 대표곡이 될 법하다. 특히 '봄날'은 방탄소년단 역대 활동곡 중 거의 유일한 메이저 멜로디 곡으로, 그리움과 희망을 말하는 가사와 어우러져 신선한 느낌을 준다.
'Not Today'의 "유리천장" 이슈를 어떻게 이해해야 할까. 이들의 가사 세계는 데뷔 초부터 한결같이 "남의 틀에 갇혀 살지 마", "부딪힐 것 같으면 더 세게 밟아 인마", "네 멋대로 살어" 등 청자에게 무언가를 종용해왔다. 그 형식이 '유리천장', 그러니까 방탄소년단이 남성으로서 더 이상 당사자성을 가질 수 없는 여성 문제와 맞닥뜨렸을 때, 이 종용은 응원으로서 기능하지 못하고 다수의 여성 청자로부터 튕겨져 나왔다. 아이돌이 환상을 파는 직업이라면, 방탄소년단이 파는 환상의 종류는 '함께라면 해낼 수 있다'는 종류의 나이브함일지 모른다. 이것이 유해하지 않으려면 함께하고자 하는 이에 대한 정확한 이해가 필요하다. 가사에서 지속적으로 소수자를 다루려 한다는 점은 분명 고무적이다. 그러나 이런 언급이 또 다른 편견을 만들지 않도록, 각별히 주의를 기울여 더 나은 작품을 만들어야 할 시점이다.
오요: 'Wings 외전'이라고는 하지만 사실상 리패키지 음반이라 봐야 한다. 새로이 추가된 4곡('봄날', 'Not Today', 'Outro : Wings', 'A Supplementary Story: You Never Walk Alone')은 외전이라는 측면에서 보자면 아쉽다. "Wings" 앨범의 연장선상에서 전작의 곡들이 갖고 있었던 소리의 변주를 들려주는 것도 아니며, 방향을 틀어 후속작에 대한 단초 혹은 새로운 소리에 대한 힌트를 던지는 트랙들도 아니다. 본 앨범에 수록되지는 못했으나 작업은 해뒀던 곡들 중 이대로 버리기 아까운 곡들을 추려서 실은 것만 같다.
미묘: 적절하게 힘 있는 긴박함을 꾸준히 유지하면서, 후렴에서 보컬의 화성감이 청량하게 에너지를 살짝 흘려낸다. 무겁게 치고 빠지는 저역의 신스나 흩뿌리는 브라스, 기타 등이 곡의 흐름을 주도하지 않는 장식적 요소로 한정되면서 약간 페티시적인 존재감을 보이는데, 개인적인 취향에서는 꽤 애정이 가지만 아주 조금 더 절제되어도 좋았을 것 같다. 뮤직비디오가 '세련', '비글미', '힙' 지향, 큐트, 섹시의 노림수들 사이를 빠르게 떠도는 것이 아쉬움을 남긴다.
오요: 시작부터 짧은 스트로크로 몰아치는 기타 소리로 쌓아 올린 긴장감을 브리지의 애매한 빌드업과 다소 촌스러운 후렴이 어그러뜨리는 모양새다. 레트로한 사운드를 의도했다면 악기 구성이라도 다르게 갔어야 하지 않았을까. 전자음을 노골적으로 써서 후렴의 '뽕끼'를 담은 멜로디라도 확실하게 부각시켰다면 이것보다는 더 강한 인상을 남겼을 것이다.
박희아: 인피니트H의 그림자가 스멀스멀 올라오는 래핑은 반갑기도 하고 아쉽기도 한 부분이다. 특히 '가뭄'은 인피니트H가 2013년에 발표했던 "FLY HIGH" 수록곡인 '니가 없을 때'를 대번에 연상시키는데, 도입에 당시 자이언티가 썼던 비트와 멜로디를 참고한 것처럼 어느 정도 유사성을 띠고 있다. 다만 좀 더 직접적으로 분노를 표출하는 느낌, 업된 기운은 있다. 아무튼 곡 전체 구조에 차이가 있기는 하지만, 하필이면 같은 회사라 여러모로 아쉬움이 남는 게 사실이다.
미묘: 랩 파트의 사운드는 무난에서 조금 더 억센 축, 후렴은 꽤나 우악스러운 편이다. 다른 파트들의 연결이 조금 더 그럴듯했다면 훨씬 좋은 곡으로 완성될 수 있었다고 생각한다. 갑자기 느끼해지면서 긴장감 역시 날려버리는 멜로디 파트나, 에너지를 표출하려다가는 이내 다른 이야기로 넘어가 버리는 후렴이 그렇다. 뮤직비디오는 8비트 게임과 VHS 화면을 엮었는데, 1990년대 MTV 새벽 방송을 보는 것과 다소 비슷한 감상을 남긴다. 마지막에 스타덤에 올랐음을 표현한 뒤 화면에 들어오는 "Stardom"이란 글자가 서울 외곽의 LP바 같아서, 이 서사가 깨지는 것 같기도 하고, 적절한 K인 것 같기도 하고.
오요: 애매하다. 캐치한 힙합 트랙이라기엔 훅이 너무 밋밋하고 케이팝이라 하기엔 인상적인 멜로디 구절 하나가 없다. 강렬한 인상을 심어주고자 비트에 브라스를 적극적으로 사용했으나 그것도 받쳐주는 훅이 빈약하다면 무용지물이 된다.
미묘: 랩 파트의 몰입도가 확 떨어지긴 하지만 꽤 설득력 있는 곡이다. '라틴풍' 가요가 유행하던 시절의 향취로 다져진 후렴은 반복적인 가사로 부담을 줄이고, 아주 댄서블하기보다는 뭉근한 사운드와 은근한 음색의 보컬을 선보인다. 시각적으로도 이전에 비해 섹시한 연출이 많고 곡풍도 다소 야한 편인데, 음악의 기조가 만만치 않게 품위를 유지해준다. 보컬 중심의 걸그룹으로서 멜로디데이가 지금껏 보여줬던 노선들의 중구난방이 조금 더 심해진다는 인상도 있지만, 이 정도의 곡이라면 환영이다. 미니앨범의 수록곡도 함께 중구난방이 되지만 않았다면 더 좋았을 것 같다.
햄촤: 임팩트가 강한 곡은 아니지만 쉽게 익숙해지는 후렴구와 부담 없는 멜로디는 장점이라 하겠다. 여전히 그룹만의 개성이 확연하게 다가오진 않지만, 이전까지의 곡들보단 좀 더 대중적으로 어필할 수 있는 지점을 찾아낸 듯하다. 뮤직비디오 속 남미 해안가의 석양을 표현이라도 하듯 역광을 비추어 얼굴이 보이지 않는 상태에서 군무를 추는 장면은 꽤나 인상적.
오요: 글렌체크의 프론트맨이자 언더그라운드 전자음악 씬에서 주목받고 있는 신예 음악가 크루 얼터 이고(Alter Ego Seoul)의 Juneone과 크리스탈의 협업이기에 상당히 많은 기대를 모았던 트랙이다. 매끈한 얼터너티브 R&B 위에 날카롭고 섬세한 크리스탈의 목소리가 얹힌다. 다만 이 조합이 최선이었는지에 대한 의문이 남는다. 몇몇 로파이 질감의 소리 요소와 둔탁하고 묵직한 서브베이스가 곡의 전체 분위기를 이끌어 나가는데, 크리스탈의 목소리가 의외로 잘 안 묻는다는 인상을 받았다. 기대했던 것에 비해 여러모로 아쉬움이 남는 트랙이다.
햄촤: 몽환적 사운드에 크리스탈의 목소리가 어울리지만, 음원보다는 뮤직비디오를 함께 보아야만 의미가 완성되는 하나의 영상작업이라는 생각이 든다. 어쩐지 영화 〈렛 미 인〉이 떠오르기도. 단번에 뚜렷한 맥락이 짚이기보단 크리스탈을 중심으로 한 영상화보에 가깝다는 인상인데, 혹시나 모를 속편이 있다면 좋겠다는 희망사항을 보탠다.
미묘: 매우 인상적이었던 전작에 이어 이번에는 감정의 깊이를 더했다. 그런데 찬탄하게 되는 것은 씹어뱉는 "절대 보내고 싶지 않아"마저도 스타일리스틱하기만 하게 들린다는 점이다. 말하자면 '랩이란 게 이렇게 하면 멋있게 들리지?'라는 듯, 어느 목소리도 진심을 호소하는 것처럼 들리지 않는다. 섹슈얼한 분위기와 동물적 촉감의 베이스, 반전 없이 음악적 장치들만으로 쿨렁거리며 앞으로 밀고 나가는 편곡, 마지막 변주에서 정신 차리고 보면 어느새 아련하게 깊어져 있는 감정선. 인류 멸망의 순간에 이 곡이 울려퍼지는 걸 듣고 싶다. 한 가지 아쉬운 것은 어떤 식으로라도 돈을 쓰고 싶어지지만 디지털 싱글이라 CD를 살 수도 없다는 점이다.
돌돌말링: 앞서 게재한 햄촤님과의 대담에서 이미 밝혔지만, 카드는 2017년 현재 케이팝 씬에서 혼성 그룹이라는 포맷이 약점이 되리라는 예상을 기분 좋게 깨뜨린다. 지난 싱글에 이어 주비터 사운드가 작업한 이번 곡 'Don't Recall'은 마이너 멜로디를 매칭한 트로피컬 하우스 곡으로 역시 주비터 사운드가 만든 베리굿의 '안 믿을래'와 한 세트 같은 느낌이 든다. 카드는 그룹 내부에서 서로 어우러지는 대비를 보는 것이 재미있는 그룹이다. 허스키한 지우와 새침한 소민의 보컬, 깊고 낮은 BM의 톤과 좀 더 높은 음역대에서 내뱉는 제이셉(J.Seph)의 톤을 비교하며 들어보시길. DSP는 유튜브 채널에 포인트 댄스를 티저 영상으로 올리거나 뮤직비디오 해설 팬 계정의 영상을 게재하는 등, 방송 출연을 자제하는 것만 빼면 2010년대 들어 가장 적극적인 콘텐츠 기획을 보여준다. 추가적으로 공개된 히든 트랙은 같은 곡의 영문 버전으로, 해외 활동을 염두에 두고 있는 것을 짐작할 수 있다.
오요: 여성 멤버들의 보컬이 DSP에서 근래 내놓은 보컬 중 가장 탁월하고 매력적인 데에 비해 남성 멤버들의 랩은 평범한 수준에서 그치고 말아 아쉽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현재 케이팝 내에서 혼성 그룹이 내놓을 수 있는 가장 최선의 결과물이 아닌가 싶다.
햄촤: 아마 카드의 노래를 안 들어본 사람은 있어도 한 번만 들어본 사람은 없을 것이다. 이국적인 멜로디와 비트에 탄탄한 보컬과 맛깔나는 래핑, 이별을 앞둔 남녀의 심리 차이를 심플하면서도 질척거리지 않게 표현한 가사까지, 전작 'Oh NaNa'에 이어 'Don't Recall' 역시 노래를 둘러싼 모든 요소가 탄탄하며 강한 중독성을 띠고 있다. 히든 트랙이었던 영어 버전도 공개되었고 유튜브의 뮤직비디오 조회수는 도합 1천만을 돌파했다. 해외에서 더 열띤 러브콜이 쇄도하고 있는 카드는 어쩌면 국내 콘서트보다 남미 투어부터 도는 그룹으로 성장할지도 모르겠다. 설마 DSP 제3의(?) 중흥기가 오려는 걸까. 더 늦기 전에 카드의 음악을 두 귀와 눈으로 확인해보시길.
미묘: 편집에 의해 의상이 바뀐다든가 대형의 이동에 따라 카메라워크가 연동(하려)하는 등의 트릭으로 안무 영상을 뮤직비디오화했다. 레트로의 기호를 많이 가져와서 유머러스하고 상냥한 분위기를 연출하는데, 멜로디의 호흡이나 화성감 등이 나쁘다고 생각진 않는다. 다만 '저예산 걸그룹'들에게서 흔히 발견되는 약점들은 대부분 그대로 적용된다. 보컬이 뻣뻣하면서 밋밋하고, 이를 믹스가 가꿔주지 못하며, 음악적 장치들을 짜임새 있게 전달해내지 못한다.
미묘: 이 곡을 들으며 시간이 어떻게 갔는지 모르겠다. 곡 구조가 귀에 심하게 안 들어오기 때문이다. '모든 섹션이 훅'인 것도 아니고, 그저 각각의 섹션이 제 할 일을 하지 못한다. 곡의 정서와 화법은 2009년의 신사동 호랭이가 2009년의 용감한 형제 곡을 리메이크하는 것을 시뮬레이션한 듯한 풍인데, 당시의 것을 대충 가져온 데다가 양자 중 어느 쪽의 퀄리티를 따라가는 것도 (물론) 아니다. 무려 기타 솔로가 등장하는데, 바로 앞과 뒤가 후렴이라는 걸 알려주는 역할을 한다.
박희아: 도입부를 들으면 첸의 목소리라는 것을 짐작하기 어려울 정도로 단순한 소리가 들리는데, 과거 MBC 〈복면가왕〉 1차전에서 팬들을 속인 그 소리와 비슷한 느낌을 받았다. 하지만 '단순한 소리'라고 해서 그것이 '밋밋하다'는 의미는 아니다. 첸은 목소리에 감정을 녹이는 기술이 탁월한 보컬이고, 이번에는 드라마 OST에 적합하게 물기가 풍부하게 묻은 소리를 들려준다. 곡이 아주 평범한 발라드라는 점을 논외로, 보컬리스트 첸은 저음부터 고음까지 충실히 소리를 바꿔가며 대중적으로 사랑받을 만한 '가수'의 역할을 잘 수행하고 있다. 그리고 이런 능력을 지닌 아이돌 보컬들에게 OST는 좋은 PR 수단이다. 그런 차원에서 첸은 블락비 태일과 함께 주목할 만한 'OST형(OST까지 잘 소화할 수 있는)' 남성 아이돌 보컬 중 하나다.
미묘: 카메라 앵글과 연동되는 안무 대형, 역광을 받는 교복, 약간의 백합향, 낡은 건물과 흐릿한 교외 풍경, 숏컷 헤어,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 3부작"이란 콘셉트... 참 많은 것을 깨알 같이 참고했다는 생각이 든다. 다만 완성도에 허점이 너무 많아서 동아리 영상처럼 보인다는 것이 서글프다. 곡은 무척 착하면서 조금 서글픈 기운이 있어 무척 '애니송 취향'으로 들리기도 하는데, 조금씩 에너지가 새기는 해도 예쁜 종류의 멜로디라서 간혹 '이 부분은 좋... 좋은지도...' 하게 된다.
미묘: 가끔 이런 곡이 나올 때마다 작은 회의감을 느끼곤 한다. 아이돌로지의 비평행위는 이런 음악에 관련해 어떤 기여를 할 수 있는가 하는. 어떤 의미에선 '그래 EDM이란 게 이런 거지' 싶어지기도 하는데, 사운드 편성이 다소 우격다짐이어서 에너지를 정돈하지 못한다. 그러나 행사 중심의 시장 여건과, 행사형 아이돌-EDM이 케이팝-EDM과 변별되어 양식화돼가는 것을 증언하는 곡 구조를 감안할 때, 딱히 부정하게 되지는 않는다. 어쩌면 누군가 행사형 아이돌 음악을 보다 선명하게 규정하고 그 특성과 변화의 추이를 따로 살펴야 할 필요도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도 해본다.
미묘: 후렴의 결론이 이조 되는 것 정도를 제외하면 사뭇 평이한 곡이다. 어쿠스틱 기타 반주로 불렀다면 흔하고 흔한 노래가 되었을 것. 그래서 (사실 잘 들리지도 않는) '퓨처'가 추가된 것 같은데, 애절하지만 업템포인 것만으론 여전히 흔한 상황에서 조금은 차별화를 해내기도 한다. 적어도, '애절한 댄스곡'이 되지 않는 선에 머무는 것도 그렇고, 곡이 그려내는 공간감 자체는 한결 시원하다. 하지만 그런 걸 좋아할 만한 사람들이, 워낙 가요 발라드에 맞춰진 이 멜로디의 온도를 매력적으로 느끼는 일은 아마 흔치 않을 것이다.
오요: 아무리 '퓨처'가 요새 케이팝에서 만능의 마법 주문처럼 사용되고 있어도 이런 트랙에까지 '퓨처'사운드라는 수식을 붙이는 건 좀 너무했다는 생각이다.
박희아: 오랜만에 시작부터 끝까지 시원하고 상쾌한 팝을 만났다. 음악이 특별히 무게를 잡고 있지 않아서, 이 그룹이 괜찮은 캐릭터들의 집합이란 것을 예상케 하는 부분이 참 좋다. 이런 식으로 부담감 없이 뮤직비디오와 무대를 보게 만드는 팀은 생각보다 흔치 않다. 하지만 보컬 디렉팅에서 발음에 힘을 줘야 할 부분을 세세하게 잡아줬더라면 좀 더 멋지게 완성되었을 것이다. 예를 들어 "압도적인 스타일과 비주얼까지 뛰어나"라면 '스타일'과 '비주얼'에 포인트를 주는 기본적인 것들 말이다. 그것까지 컨트롤이 어려웠다면 믹싱과 마스터링 과정에서 보컬을 더 튀어나오게 했어도 좋지 않았나 싶다. 래핑 부분은 강하게 도드라지지만 보컬이 인스트루먼트에 묻히는 느낌이 종종 있다. 그러나 이는 아직 신인이라 자신의 목소리와 '끼'를 컨트롤하는 능수능란함이 부족한 탓이 있을 터이니, 앞으로를 기대해본다.
오요: 곡을 이끌어가는 화려한 브라스와 쌓아 올리는 화성의 진행, 확실한 존재감을 드러내는 베이스 리프까지 사운드 측면에서 보면 짜임새도 탄탄하고 곡의 구성도 안정적이다. 이 정도의 완성도를 갖춘, 좋은 '팝' 곡을 오랜만에 듣는다. 다만 '팝'에 대한 멤버들의 이해도가 살짝 아쉽다. 이런 곡은 좀 더 여유를 부릴 때와 긴장감을 유지한 채 소리를 당길 때를 확실히 알고 자유자재로 목소리를 부려야 그 매력을 온전히 전달할 수 있다. 사실 그런 것까지 아이돌에게 기대하는 것은 너무 큰 욕심일 테고, 멤버들의 곡 수행 측면에서 아쉬운 점이 있긴 하지만 충분히 즐겁게 들을 수 있는 곡이다.
미묘: 한때는 아이돌로지의 모 필자가 "꺼진 아이돌도 다시 보자"고 하게 했던, 더 오래전에는 모 필자가 모 프로듀서의 덕질을 하다 세련되게 비틀린 튠들을 발견하게 됐던 포커즈인데 왜 이렇게 됐는지. 타이틀인 '가짜'는 무미건조한 하우스에 기계적인 피아노로 '감성'을 더했는데 그것이 종종 묻힌다는 점이 미덕이다. 무난한 수록곡 R&B인 'Tonight'은 멤버들이 채 소화하지 못하는 가성을 무리하게 사용하여 조금 괴롭다. 올해부터 '리부트'를 선언했는데, 왜 곡 퀄리티를 리부트했는지 묻고 싶다.
오요: 정확히 정박을 때리는 킥과 무한히 반복되는 동일한 구조의 가사, 사이드체인을 잔뜩 건 신시사이저까지 오랜만에 들어보는 완벽한 헬스장 튠이다.
미묘: 록적인 사운드로 씩씩한 느낌을 내는 'Knock Knock'. 그러나 마치 혹시나 누군가가 위협적이라고 느낄까 우려돼 참을 수 없었다는 양 침수됐던 합주실 같은 사운드로 마무리해놨다. 전작의 'Ponytail'이 비슷한 사운드로 아쉬움을 남겼다면, 이번엔 동요 그 자체인 멜로디까지 더해 절망을 안긴다. 이 곡에 참여한 작곡가들 중 누구도 '이것밖에 못 하는' 사람들이 결코 아니다. 차라리 이 곡의 문제점들을 의식할 필요조차 없었던 디스코그래피를 가진 사람들이라 하는 게 낫다. 하물며 트와이스의 격에도 맞지 않는 곡이다. 지금 트와이스의 음반에서 받을 수 있는 거의 최대치의 실망감이다.
돌돌말링: 특정 작곡가 의존도를 줄이기로 결정한 걸까. 새로운 싱글 'Knock Knock'은 '우아하게'-'Cheer Up'-'TT' 3연속 히트를 함께 한 블랙아이드필승이란 카드를 내려놓고 박지민의 'Hopeless Love' 등을 작곡한 이우민을 집어 든 결과물이다. 첫 소절부터 두 마디나 이동 없이 연타 되는 G#는 퉁명스러운 소녀의 모습을 표현하려던 것 같지만 결과적으로는 버스를 어지럽게 만들고, 이 맺힘을 풀어줘야 할 후렴은 멜로디가 지나치게 동요스럽다. 전작보다 록적인 요소가 강해져서 통쾌하게 터지는 맛은 있지만. 같은 깜찍 라인이더라도 마이너 멜로디와 사운드 요소요소에 신경을 써 약간의 트위스트를 주었던 'TT'와 비교할 때 더 많은 부분을 유아성 캐릭터에 기대고 있다는 인상을 준다. 동요적 멜로디와 록 사운드의 결합으로 히트한 아이돌 곡의 고전이라면 카라의 'Pretty Girl'이 있을 텐데, 가사에서 청자를 불특정 다수로 상정한 (아니 어쩌면 청자 따위 아랑곳 않고 대단한 '나'를 자랑하는 것이 주제였던) 'Pretty Girl'에 비해 이 곡은 여성에 대한 오해를 전파한다는 점에서 같은 기분으로 들을 수 없음이 아쉽다. 새로이 추가된 '녹아요'는 원더걸스의 '미안한 마음' 때부터 이어온 JYP표 아이돌 R&B 계보를 잇는다. 달라진 점은 음역대가 대단히 높아졌다는 점. 이 역시 같은 회사였던 원더걸스보다는 오히려 카라와 닮아가는 모습이다.
오요: 'Knock Knock'은 어찌 되었건 트와이스가 갖고 있는 특유의 이미지, 발랄하고 건강한 치어리더 소녀들의 이미지의 연장선상에 놓여있는 곡이지만 그것을 곡에서 풀어내기 위해 기타를 (별로 놀랍지도 않다) 전면에 배치한 전략은 너무 진부하다. 그간 전력질주를 해온 트와이스가 한숨 고르는 건지는 몰라도 여기서 멈추지는 말았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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