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신진 걸그룹 시장에 변화의 낌새가 보인다. 무엇이 달라지고 있는지 알아보기 위해 세 명의 필자가 세 장의 걸그룹 앨범을 살펴보았다.
CLC도 햇수로 3년 차 그룹이 되었다. 그간 멤버의 증원, 콘셉트의 전환 등 흥미로운 시도를 많이 해왔는데, 이는 달리 말하면 기획이 갈팡질팡했다는 얘기일 수도 있다. 큐브 엔터테인먼트는 포미닛을 통해 이미 ‘badass’ 걸그룹 프로듀싱 경험이 있었다. 하지만 좀 더 어리고 상큼한 느낌을 지향하는 취지로 만든 CLC는 런칭을 해놓고도 실험에 실험만을 거듭하고 있었다. 그 과정에서 쌍둥이 콘셉트의 발랄한 브라스 곡 ‘Pepe’, 현아의 직계임을 보여주는 스트리트 갱 스타일 ‘도깨비’, 일본식 AOR의 영향을 받은 ‘어디야?’ 등 좋은 트랙들이 나오기도 했다. 그러나 안타깝지만 이 그룹이 씬의 어디쯤에 위치하는지 쐐기를 박을 계기가 되지는 못했다.
‘Black Dress’는 ‘이번에야말로’라는 기대감을 갖게 하기에 충분하다. 제목과는 달리, 의상의 주 콘셉트가 블랙 수트이다. 최근 눈에 띄는 걸그룹 노래 중 상당수가 ‘남성을 유혹하는 매력적 여성’을 그리면서도 비주얼 콘셉트로는 반항아적 스트리트 룩이나 수트 등 공격성이 느껴지는 패션을 택하고 있다. 지난 몇 년간 유행하던 일본 서브컬처 영향의 수동적으로 대상화된 패션과는 다르다. 90년대 커리어우먼의 모습조차 ‘OL 룩’ 등으로 대상화하던 시절의 반복은 아닌 것 같다. 문화계 소비층에서 절대적 힘을 발휘하는 여성 팬층을 의식하며 조금씩 변화하고 있는 것이라는 짐작이 가능하다. 그러나 이 순서를 ‘블랙드레스를 입고 유혹하는 척했지만 수트와 힙합 비트에 너를 압살해 버리겠다’라는 것으로 해석할지, ‘쎈 척하지만 결국은 남성을 위해 단장하는 여자일 뿐이다’로 해석할지는 리스너의 몫이겠다.
돋보이는 멤버들을 꼽아보자면, 뮤직비디오를 통해 긴 머리를 단발로 자른 과정을 공개한 예은에 가장 먼저 눈이 간다. 직캠 조회 수가 특히 높은 것을 보니 이번의 스타일 전환이 아주 잘 먹혔다고 보아야겠다. 예은은 CLC 초기부터도 놀랍도록 정확한 딕션과 (무슨 곡을 들어도 가사지가 필요 없다) 앳되지만 성깔 있는 톤으로 인상적인 랩을 들려주었다. 평소처럼 본인이 가사를 쓴 이번 곡의 랩에서는, 아예 박자를 슬쩍슬쩍 밀고 타며 노래에 텐션을 더한다. 마지막 후렴을 앞두고 악기가 모두 빠지는 브레이크 직전의 랩은 무대를 숨죽이고 지켜보는 모두가 가장 기다리는 순간이라고 확신한다.
특히 평소에 많은 파트를 소화하며 센터 역할을 하던 승연은 댄스브레이크에서 자신을 확실하게 각인시킨다. 워낙 작고 동안인 탓에 첫눈에는 티가 안 날지 모르나 본래 무게 중심이 아래에 있는 힙합 댄스에 능한 재원이다. ‘Black Dress’에서는 곡의 콘셉트에 맞게 스텔레토 킬힐을 신고 그 무게 중심을 위태롭게 놀려 긴장감 있는 무대를 만든다.
나머지 멤버들도 각자의 역할을 소화하며 곡과 퍼포먼스를 튼튼하게 받치고 있다. 이번 곡이 CLC의 본격적인 히트작이 되길 바라는 마음은 이런 합과 완성도가 보다 많은 사람들에게 알려지길 바라는 마음과 같다. 평소 비투비의 발라드곡 등을 제공하던 조성호 등의 드문 힙합 트랙으로, “Crystyle” 미니앨범 중 돋보이는 수록곡이었던 ‘Meow Meow’에 이어 또 이런 괜찮은 노래를 만들어냈다. 무대에 감탄하며 속으로 또 한 번 외쳐본다. ‘이번에야말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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One reply on “CLC – Black Dress (2018)”
가사가 남성을 위해 단장하는 내용 정도라서 아쉽긴 한데, 수트와 힙합 비트로 압살해버려서 가사는 중요하지 않은 것인지도…? 미유미유-BAE-블랙 드레스 이렇게게 왔으면 확실했을 텐데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