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널 끝까지 책임질게
‘좋아했던 것을 창피하게 만드는 사람은 죽어야 한다’는 명언(!)이 트위터의 아이돌 팬덤 사이에서 유행한 적이 있었다. 듣기에 따라 상당히 격한 언사라고 생각할 수도 있겠지만, 그만큼 격렬하게 대상, 그것도 실존 인물을 응원하는 입장에서는 공감할 수밖에 없게 되는 면이 있기에 자주 회자되고 ‘명언’의 지위까지 얻게 됐을 것이다. 이 명언은 아이돌이 그들을 좋아해 주는 누군가, 즉 팬들이 그동안 응원해온 시간을 창피해하는 일이 없도록, 대중이 보내온 호감과 호의에 대해 책임감을 느낄 필요가 있다는 의미를 담는다. 일방적인 호감에 대한 직접적인 책임은 없을 수도 있되, 책임감은 느낄 필요가 있다는 뜻이다.
5월 7일 일지아트홀에서 세 번째 미니 앨범 “A New Journey”의 쇼케이스를 개최한 남우현은 신보에 바로 이런 책임감을 담아냈다. 입대를 앞두고 연이은 뮤지컬 출연 중에 앨범 활동까지 병행하게 된 남우현은 ‘안 힘들었다고 하면 거짓말이다. 하지만 앨범을 준비하면서 빨리 팬분들에게 노래를 들려드리고 싶은 마음에 굉장히 열심히 작업했다’며 뮤지컬을 병행하면서도 즐겁게 음악 작업을 했다는 후기를 남겼다. 8개월 만의 빠른 컴백이 팬들에게 큰 선물이 될 것을 짐작할 수 있는 대목이었다.
첫 무대로 ‘Flower’의 라이브를 선보인 남우현은 팬 송이기도 한 곡을 앨범 중 ‘최애곡’으로 꼽으며 ‘앨범에 항상 팬들에게 감사하는 마음을 곡으로 표현했다. 백번의 말보다는 아티스트로서 직접 노래 가사로 표현하면 어떨까 해서 늘 감사하는 마음을 담아왔다’고 밝혔다. 팬클럽 인스피릿을 ‘빨간 장미도 좋지만, 해바라기에 비유하고 싶다’는 남우현은 팬들이 늘 자신을 바라보고 있음을 충분히 잘 알고 있었고, 그에 대해 애틋해 하는 마음 또한 갖고 있음을 은연중에 내비쳤다.
타이틀곡 ‘Hold On Me’ 또한 팬들의 기대를 십분 충족하는 곡이다. 그동안의 솔로 앨범을 모두 발라드 트랙으로 채웠던 것과 달리 이번에는 댄스곡을 타이틀곡으로 선택했다. 남우현은 ‘Hold On Me’에 대해 ‘발라드뿐만 아니라 다른 음악도 할 수 있다는 점을 봐달라’며 자신감을 내비쳤다. 이어진 라이브 무대에서도 인피니트 안에서도 메인 댄서 장동우와 함께 리드 댄서의 역할을 수행해온 만큼, 안정적인 보컬과 퍼포먼스를 보여주었다. 특히 피처링을 위해 무대에 함께 선 골든차일드 태그와는 마치 한 팀의 유닛 같은 케미스트리까지 뽐냈다.
앨범 작업에 대해 ‘과제를 하는 느낌’이라고 소회를 밝힌 남우현은 앨범 제작에 참여하면서 겪는 어려움에 대해 토로하기도 했다. 완성도에 대한 고민과 함께 ‘정답이 없는 것 같다’며 제작 중에 겪게 되는 불안이나 걱정에 관해 설명한 남우현은, 그러나 곧이어 ‘계속해서 성장해나가고, 새로운 시도를 할 것’이라는 의지를 드러내기도 했다. 마치 모범생과 같은 고민과 답변을 연달아 내놓은 그에게서 10년 차 아이돌의 내공이 느껴지기도 했다.
수록곡 ‘Rain’의 작사를 맡은 남우현은 가사 중 ‘영원함을 모두 갈망하고 있듯이 / 되돌릴 수 없다 돌아갈 수 없어’라는 부분을 언급하며 ‘인피니트로서 10년 생활해왔고 다시 그 시절로 돌아갈 수 없다. 누군가에게 파란만장한 청춘이 있듯이 저도 저만의 전성기가 있었고 청춘들이 있었다. 그 가사에는 되돌릴 수 없는 현실을 받아들이라는 메시지가 있다’고 설명했다. 남우현의 말마따나 전성기를 지난 아이돌을 여전히 지지하는 팬들에게는 걱정이나 아쉬움보다 외려 안도감으로 다가갈 한 마디였다.
팬덤과의 유대감이 유독 높은 것으로 유명했던 남우현의 “새로운 여정”은, 결국 그를 아끼는 사람들을 ‘언젠가 다시 돌아올 집’으로 설정해두고 떠나는 길인 듯했다. 가지고 있는 다양한 매력을 최대한으로 활용해 많은 사람을 만족시키려는 목표 의식은 아이돌이 갖는 애티튜드로서는 최고의 미덕일 것이다. 그 목표 의식의 기저에는 언제나 자기가 받아온 사랑에 대해 보답을 하고자 하는, 모종의 책임감이 깔려있으리라. 가수는 노래를 따라간다던가. 남우현의 쇼케이스는 벌써 8년이나 된 히트곡의 한 구절 ‘내가 널 끝까지 책임질게’가 자연스럽게 떠오르는 무대였다.
취재, 사진: 조은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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