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작 “Love Yourself”를 마무리하고 새로운 시리즈를 시작하는 EP의 타이틀. 국내외의 다양한 레퍼런스가 먼저 눈에 띈다. 앨범 제목 “Map of the Soul: Persona”에서는 에픽하이의 “Map of the Human Soul” 시리즈가, 타이틀곡 ‘작은 것들을 위한 시(Boy with Luv)’는 넉살의 ‘작은 것들의 신’과 방탄소년단의 초기작 ‘상남자(Boy in Luv)’가, “Come be my teacher” 같은 가사에서는 요즘 활동 중인 미국 아이돌그룹 프리티머치(PrettyMuch)가 코믹하게 불러낸 ‘Teacher’가, 또 “Oh my my my”가 반복되는 가사에서는 트로이 시반(Troye Sivan)의 2018년 곡 ‘My My My!’가 떠오른다. 과거의 한국 힙합과 동시대의 미국 틴팝을 모두 가로지르며 방탄소년단의 지금을 쌓아올렸다.
곡 전체에 흐르는 타이트한 리듬 기타가 디스코 시대의 심상을 자아낸다. 찰랑이는 소재의 오버사이즈 수트나 고전 영화를 오마주한 세트 등도 레트로의 유행을 충실히 반영했다. 뮤직비디오의 컬러 팔레트는 푸른 하늘과 황금빛 햇살, 춤추는 방탄소년단의 핑크색 착장 정도로 좁힐 수 있고, 케이팝 씬 전반에서 인기였던 80년대를 지나 이제는 선샤인팝이나 디스코가 유행한 6~70년대까지 거슬러 올라갔다는 인상을 준다. 가사에 어울리게끔 춤추기 좋고, 사소하고, 긍정적이다.
주 테마는 거의 마이너 펜타토닉 음계 안에서 놀지만 도, 미, 솔을 많이 써서 메이저 같은 느낌을 준다. 메시지 역시 그렇다. “이제 여긴 너무 높아 / 난 내 눈에 널 맞추고 싶어”나 “높아버린 sky 커져버린 hall / 때론 도망치게 해달라며 기도했어” 같은 가사에서는 높은 인기의 부담감을 말하지만 그 솔루션으로 제시하는 방향은 청자(좀 더 정확히 표현하자면 팬)와의 시시콜콜한 교류다. (그게 실제로 가능한지 여부를 떠나.) 마지막 트랙 ‘Dionysus’를 제외하고는 모두 ‘팬송’이라고 부를 만한 가사다. 팬을 대상으로, 언제나 당신이 궁금하고 애틋하며 고맙다는 내용 일색이다.
방탄소년단이 해외에서 여타 케이팝 그룹과 차별화되며 공고한 팬층을 쌓기 시작한 것은 ‘아이돌 그룹은 완전히 남에 의해 프로듀스된 상품’이라는 편견에서 조금 벗어난, 가사에서 자기 이야기를 하는 그룹이라는 이유에서였다. 아이돌의 역사가 오래된 국내에서는 어차피 아이돌에게서는 그런 것을 기대하지 않는 소비자가 많고, 그래서 초기의 방탄소년단은 그런 면에서 ‘촌스러운’ 취급을 받기도 했다. 그러나 해외에서는 아이러니하게도 그 점이 가장 큰 어필 요소가 되었다.
그리고 지금처럼 큰 성공을 거둔 시점에 방탄소년단이 할 수 있는 자기 이야기란 대체로 이런 것이다. ‘팬들의 사랑에 감사하며 위로가 되는 노래로 보답하는 일’. 많은 것을 얻었기 때문에 자칫하면 복에 겨운 소리로 보일 것이고, 일부러 부리는 스왜그(swag)가 아닌 이상 전체적인 메시지는 상기한 포인트에 초점이 맞춰질 것이다. 이미 빌보드에서 제일가는 ‘빌런’ 포지션은 빌리 아일리쉬(Billie Eilish)나 카디 비(Cardi B) 등 젊은 여성 아티스트들이 점했다. (코닥 블랙(Kodak Black) 등은 캐릭터로서의 ‘빌런’이 아니라 진짜로 욕먹는 난봉꾼의 위치다.) 방탄소년단이 현재의 빌보드 상에서 쐐기를 박을 수 있는 포지션은 ‘굿보이’다. 그 ‘굿보이 메시지’의 내용을 어떻게 다양화할 것인지가 앞으로의 과제로 보인다.
‘작은 것들을 위한 시(Boy with Luv)’를 피처링한 할시(Halsey)는 미국 텔레비전 무대와 프랑스 콘서트 등에서 함께 무대에 올랐다. 오디오로 들으면 할시의 지분이 생각보다 많지 않다. 이 작업의 주된 협업 요소는 무대에 함께 올라 춤을 추는 그 자체였다. 방탄소년단과 인종이 다른 ‘외국인’으로서, ‘나도 방탄소년단과 함께 춤추고 싶다’는 마음을 할시에 투영하는 팬들도 많았을 것으로 보인다. 한국 위주의 프로모션에서는 볼 수 없었던 모습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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