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돌로지 필진 단평. 손동운, 트와이스, 방용국, 베리베리, 엔플라잉, 김희철, 윤지성, 뉴키드, C.A.P, 배진영, 뉴이스트, 지구(GeeGu), 더보이즈, 여고생, 정은지의 음반을 다룬다.
미묘: 보컬리스트로서 손동운의 강점 중 하나는 마치 일단 믿어봐도 되는 선량한 청년처럼 들린다는 것이다. 유재환을 파트너 삼아 크게 과장하지 않으며 서정적인 결을 잘 가다듬은 이 미니앨범에서 그는 그래서 더 진솔하게 들린다. 어쿠스틱 악기들이 질감도 잘 살아있고 효과적으로 사용됐다. 드라마 OST 풍의 질감이기도 한데, 에디 히긴스를 듣는 감성을 충족할 법도 한 몇몇 순간이 특히 드라마를 위해 작곡된 OST보다는 드라마 속에서 흐르는 음악처럼 들리며 꽤 연극적 상상력을 자극한다. 그래서 음색이 그려내는 인물상이 보다 생생하게 살아난다. 가사는 대체로 익숙한 케이팝 발라드의 범주 내에 머무는 편인데 일단 이 미니앨범의 담백함에는 잘 어울린다. 놓치기 아까운 수록곡은 꼭 적당하게 파문을 일으키며 곱게 흐르는 멜로디가 근사한 호흡을 이끌어내는 ‘Decrescendo’.
미묘: ‘Girls Like Us’나 ‘Hot’을 비롯한 몇 수록곡은 시대감마저 조금씩 이질적인 데가 있다. 그러나 가장 큰 차이라면 과거의 수록곡들이 매우 특정한 ‘트와이스 월드’의 맥락 속에 머물며 조금씩 변주를 보이던 것에서 동시대 댄스팝으로 큼직한 걸음을 떼었다는 데 있다. 오히려 케이팝에서 멀어지는 듯한 느낌마저 있는데, 단지 레퍼런스를 달리했다기보다 트와이스의 음색 팔레트를 활용하는 다른 맥락을 찾아낸 듯한 인상이다. 파워 보컬과 고음도 곡을 열심히 끌고 나가기보다는 적재적소에서 터지고, 사근사근하거나 달콤한 음색, 말하는 듯한 창법 등 트와이스의 ‘귀여움’을 주로 담당하던 요소들도 자신감 있게 제자리를 차지한다. ‘Fancy’ 역시 이런 양상이 잘 느껴지는 트랙으로, 기세 좋게 넘실대며 촘촘하게 찔러대는 리듬 위에서 멤버들이 활개치고 다니는 모습이 선연하다. ‘그래, 돌이켜보면 트와이스의 히트곡들은 늘 화려하고 기운 찼지’하는 상념도 든다. ‘예쁜 트와이스’에서 ‘신나는 트와이스’로 넘어가는 한 순간이자, 그 과정으로서 매우 흥미로운 한 순간이다. 고전 케이팝을 묘하게 연상시키며 비트는 ‘Turn It Up’이나, 기존 트와이스 수록곡들의 다정한 순간들을 변모시킨 ‘Strawberry’도 귀기울여 들어봄직하다.
스큅: ‘Likey’부터 ‘Yes Or Yes’까지 이르는 오랜 준비운동 끝에 ‘Fancy’는 본격적인 전진의 신호탄을 쏘아올린다. “여자가 쉽게 맘을 주면 안 돼”라며(‘Cheer Up’) “눈치를 주”기만 하던(‘Signal’) 트와이스가 “좀만 더 용기를 내 더는 망설이지 마”(‘Heartshaker’)라는 다짐을 거쳐 “내가 먼저 좋아하면 어때”라고 외칠 수 있게 되기까지 얼마나 오랜 시간이 걸렸는가. 물론 이러한 진일보의 역사 역시 ‘소녀에서 숙녀로’라는 수사로 대표되는, 남성의 시선과 기호에 맞추어 재단된 선을 벗어나지 않는다는 점을 부인할 수는 없다. (애초에 ‘Knock Knock’을 제외한 모든 한국 타이틀곡의 작사가는 줄곧 남성이다.) 그러나 CLC의 ‘No’가 가사와 불화하는 스타일링으로 비판받았음에도 ‘예뻐지게’와 ‘아니야’와 같은 넘버를 부르던 시절을 지나 방향성 확립에 난항을 겪어온 그룹 서사 위에서 폭발적인 기의를 획득했듯, ‘Fancy’ 역시 마찬가지로 이해될 수 있을 것이다. 퍼포먼스를 확인한다면 이들의 변화를 더욱 긍정하게 된다. ‘우아하게’의 댄스브레이크에서 보여준 에너지를 3분 내내 쏟아내는 듯한 안무부터 멤버들의 제안으로 완성된 수트 스타일링까지. 멤버들의 출중한 기량을 ‘이 세상의 모든 굴레와 속박’에 가둬두었던 지난날과 확연히 다른 모습이 나타난다. 앞으로 더욱 많은 도전과 성취를 이어나갈 트와이스를 기대해도 좋을 것 같다. (그리고 뒤이은 일본 활동곡 ‘Breakthrough’에서 이들의 진전을 곧바로 확인할 수 있게 되었다!) 그래도 미심쩍은 시선을 거두지 못하는 이들에게는 꼭 수록곡까지 일청해보기를 권하고 싶다. 한층 더 시원시원한 기세를 맛보고 싶다면 ‘Stuck In My Head’를, 'Fancy'의 내러티브가 못내 아쉬웠다면 Charlie XCX가 작곡에 참여하고 지효가 단독작사한 ‘Girls Like Us’을 놓치지 마시길.
미묘: 임시정부 수립 100주년 기념 기획 방송의 OST다. 설정에서 연상되는 전형을 방용국이 했다면 조금 버거웠을지도 모르겠지만 근사한 반전이다. 자유와 해방의 미래지향적 메시지는 그의 평소 주제와도 충분히 맞닿아 있어서 그냥 하던 걸 가져와서 할 뿐이란 느낌도 든다. 다만 이를 매우 낙관적이고 싱그러운 곡으로 담아냈다. 방용국의 음색도 껄렁한 맛이 잘 살아나면서 그것이 특히나 기분 좋게 느껴져서, 곡의 속도감이 간혹 너무 서둘러 넘어가는 게 아닌가 하는 기분이 들 때조차 얽매이는 것 없는 홀가분한 무드의 표현처럼 다가온다.
마노: 전작에 이어 일관적으로 올드스쿨 장르를 내세우고 있다. 한껏 업템포로 흥청거렸던 전 타이틀곡 ‘불러줘’와 본 타이틀곡 ‘딱 잘라서 말해’의 차이점이라면, 묵직하게 출렁이는 베이스로 중심을 잡아 깊이감을 더한 사운드 위에 조금은 안절부절 못하는 소년의 말간 얼굴을 덧씌웠다는 점. 프롬 파티의 ‘블루스 타임’에 흐를 법한 발라드곡 ‘나 집에 가지 않을래’마저도 90년대 영미권 보이밴드의 향취가 물씬 풍기는 점이 인상적. 서브 타이틀곡이기도 한 ‘밝혀줘’가 가장 이질적으로 트로피컬 하우스를 표방하고 있는데, 올드스쿨과 컨템포러리라는 양극단(?)의 장르가 한 미니앨범 안에 공존하고 있음에도 일관성과 유기성이 느껴지는 점이 꽤나 만족스럽다. 보는 이로 하여금 어떠한 본능적인 ‘쾌감’과 ‘만족감’을 느끼게 하는, 깔끔하게 잘 떨어지는 퍼포먼스 역시 변함없이 탁월하다. 다시 말하건대, 이 그룹은 올해의 신인으로 주목받아 마땅하다. 점점 ‘다음’을 기대하게 하는 슈퍼루키.
스큅: 데뷔 타이틀곡 ‘불러줘’와 동일 작곡진이 만든 ‘딱 잘라서 말해’는 “당대 뉴잭스윙 특유의 활기를 21세기 케이팝의 형태로 내놓으며 ‘아이돌미’를 강조”하는 책략을 유지하되 전보다 탄산의 함량을 확 높여 청량감을 증폭시킨다. ‘불러줘’가 해사한 청초함이었다면 ‘딱 잘라서 말해’는 박력있는 청량함. 회를 거듭할수록 다양한 멤버에 눈길이 가는 것 역시 긍정적인 부분. ‘불러줘’에서 강민이 그룹 이미지의 핵으로 주목받았다면, ‘딱 잘라서 말해’에서는 땡땡한 보컬로 그룹 사운드를 이끄는 메인보컬 연호가 눈에 띈다. 수록곡의 면면 역시 훌륭하다. 90년대 청춘물을 떠올리게 하는 ‘집에 가지 않을래’와 레트로 장르가 아닌 트로피컬 하우스를 꺼내들며 베리베리의 변주를 넘보게 되는 ‘밝혀줘’를 특히 추천. 작곡, 작사를 포함 작업 전반에 걸쳐 멤버들의 높은 기여도가 나타나는데, 이전보다도 균일한 퀄리티 컨트롤을 보여주고 있어 ‘DIY돌’이라는 다소 거창한 명목을 이제야 시인하게 된다. 데뷔 4개월 차 단 두 장의 EP만으로 기틀을 확고히 다져 이 그룹의 장래에 기대를 넘어 믿음을 품어도 좋을 듯하다. 그룹을 향한 애정과 지지를 담아 데뷔 미니앨범에 이어 다시금 Discovery를 부여한다.
스큅: FT아일랜드와 씨앤블루가 아이돌팝의 바운더리 내에서 각각 통상적인 가요와 팝을 댄스튠이 아닌 밴드 형태로 선보이는, ‘밴드하는 아이돌’로서 의의를 가졌다면, 엔플라잉은 역으로 여느 밴드들이 ‘유치하다’거나 ‘낯간지럽다’는 이유로, 혹은 ‘진정성’을 운운하며 기피할 ‘아이돌미’ 가득한 음악을 밴드 형태로 천연덕스럽게 소화해내는, ‘아이돌스러운 밴드’로 그룹을 꾸려나가는 듯하다. 굳이 세션 편성에 연연하지 않는 듯 다양한 스타일과 장르를 오가는 것 역시 아이돌팝의 문법에서 빌려온 차별점. 돌이켜보면 밴드에서나 아이돌에서나 이만큼 스쿨밴드의 펄떡이는 활력을 구현해내는 그룹이 있었나 싶을 정도다. 그러나 이를 구현하는 가운데 결코 미숙함은 없어 밴드 음악 팬과 아이돌팝 팬 양쪽 모두를 만족시킬 수 있을 듯하다. 생각 이상으로 엔플라잉은 꽤나 독보적인 위치를 점하고 있을지도. 라이브로 듣고 싶은 곡은 유회승의 시원시원한 보컬이 돋보이는 ‘놔’와 다채로운 구성이 돋보이는 ‘Preview’.
하루살이: “Fly High” 프로젝트의 중간 결산격 앨범이다. 시집이라는 앨범 콘셉트를 충실히 이행하는 타이틀 ‘봄이 부시게’, 최소한의 악기로 최대한 달리는 ‘놔’, ‘힙합 섞어 Rock’이라는 이 밴드의 정체성과 본질을 유지하는 ‘불놀이’, 가벼운 재즈 사운드를 띄는 ‘Preview’까지 각각 개성 강한 트랙들이 엔플라잉의 영역을 넓힌다. 다양한 가능성과 음악을 전한다는 프로젝트의 취지가 드디어 빛을 발한다. 좋은 성적을 목표로 하기보다 ‘옥탑방’이 우연히 잘 만든 곡이 아님을 증명하려는 듯하다. 멤버들의 충분한 실력과 프로듀서로서 반짝이는 이승협의 재능이 만나 이루는 시너지가 앞으로의 활동을 더 기대하게 한다.
스큅: 유구한 ‘후회공’ 감성의 남성향 노래방 애창곡 스타일로 가창자가 아이돌(출신)이라는 점을 제외하면 아이돌팝의 내음을 전혀 감지할 수 없을 정도. 슈퍼주니어 그룹으로 묶이지 않는 이상 그의 작업을 아이돌로지에서 다루는 게 맞는가 하는 생각마저 든다. 맞다. 제목 말마따나 그는 참 옛날사람이다. 사실 본인도 그를 정확히 인지하고 발매한 곡같아 그의 절창이 통째로 사카즘처럼 느껴지기도.
미묘: 어쿠스틱 기타 위주의 오가닉한 사운드로 꾸려진 달콤한 R&B나 피아노가 가세해 발라드의 함량을 높인 R&B 발라드는 최근 몇 년간 차트 인디의 주류였다. 음반의 전반부는 공교롭게도 이 영역 근처에 방향성을 마련한 듯한데, 아이돌의 대립항으로 여겨지기도 하지만 사실 아이돌 멤버들의 솔로 프로젝트로 자주 활용된 스타일이기도 해서 충격적일 것은 없다. 중반부터 음반은 훨씬 더 가요적인 접근을 선명히 보여주는데 적어도 전반부보다는 안착된 흐름이 느껴진다. 솔로 가수로서 반드시 ‘아이돌팝’을 할 필요도 없고 한국 대중음악의 스펙트럼 안에서 걸맞은 노선을 만들어내는 것이 중요할 텐데, 대단한 신선함보다는 ‘윤지성이 한다’는 것이 가장 큰 특징인 셈이고 그 이상의 의미를 크게 뽑아내고 있지는 않다. 물론 그것이 스타의 힘이기도 하지만. 일단 확인할 수 있는 것은 음악적인 욕심 정도로, 조금 더 지켜보는 게 좋을 것 같다.
스큅: 어딘가 ‘까리’해보이는 것들을 이것저것 끼얹다 이도저도 아닌 잡탕이 되어버렸다. 신인 때 가장 저지르기 쉬운 치명적인 실수. 멜로우한 (가혹하게 말하면 흔한) 봄내음을 풍기는 기타 트랙 ‘첫번째 봄’과 퓨처 사운드에 스페인어 가사를 끼얹은 ‘Tu Eres’까지. ‘뉴키드’라는 이름이 무색하다. 사실 사운드의 마감 자체는 나쁘지 않고 우후죽순으로 쏟아지는 아이돌 데뷔 싱글 중에서는 꽤 괜찮은 퀄리티를 지녔지만, 범작 이상의 인상을 받으려는 순간마다 정돈이 덜 된 듯한 보컬이 감흥을 끌어내린다. 앞으로 조금 더 특색있는 무언가를 보여주기를 바라본다.
스큅: 작년부터 엇비슷한 몽롱한 힙합-트랩 싱글을 계속해서 내놓고 있는데, 취향이라면 별 할말이 없지만서도 별다른 성취도 의의도 없이 관성적으로 곡을 남발하는 것이 아닌가 조금 걱정이 된다. “그녀는 날 갖고 놀지”, “가끔 보면 넌 백여우같아”, “대사들은 뻔하지 걱정 마 친한 오빠” 같은 가사들이 계속되는 데에서 넌지시 느껴지는 ‘쎄함’ 역시 돌이켜볼 필요가 있다.
하루살이: 천천히 덤덤하게 뱉어낸다. 다듬어지지 않은 목소리가 절절하지는 않지만 쓸쓸하다. 전형적인 발라드 형식이 조금 지루하지만 새로운 팀 합류를 앞두고 지난 추억을 잠시 되새김질하기에는 충분하다. 여전히 서툴지만 보컬리스트로서 한 곡을 끌어가는 배진영의 성장에 박수를 보낸다.
스큅: 뉴이스트W는 ‘여왕의 기사’와 ‘Love Paint’ 때 구축한 그룹관을 벼르고 또 벼르는 과정과도 같았다. 사운드 면에서는 계범주와 함께 정립한 금속성의 사운드를 요리조리 해체해 ‘Where U At’에서는 찌르르 울리는 전도체의 감각을, ‘Dejavu’에서는 차가운 표면감을, ‘Help Me’에서는 묵직하고 웅장한 사운드의 확장을 탐구해왔고, 세계관 면에서는 판타지 스토리텔링을 현실의 이별 서사와 결합시키며 정교하게 제련해왔다. ‘Bet Bet’은 이러한 과정을 거치며 단단히 합금처리가 된 뉴이스트를 선보인다. 단호하게 내리찍는 플럭 사운드와 리듬은 금속성 사운드에 박력을 더하고, 렌과 백호를 탄탄하게 이어주는 민현의 합류로 보컬의 완결성 역시 높아졌다. 어느 때보다도 ‘여왕의 기사’와의 접점을 분명히 제시하는 뮤직비디오는 두말할 필요 없다. 어찌됐건 인정할 수밖에 없는 결과물. 추천 수록곡은 후렴구로 넘어가는 드롭이 선명한 족적을 남기는 ‘Different’.
미묘: 2017년 10월 데뷔한 지구(Gate9)가 지구(GeeGu)로 이름을 바꾸고 1년 반만에 돌아왔다. 라틴 리듬과 여성의 중저음, 황야와 숲속의 마술적인 서사 등이 최근 트렌드 속 참조점들을 선명히 한다. 흠은 아니지만, 뮤직비디오의 묘한 빈한함이 의미심장한 장면들에 대한 호기심을 썩 불러일으키지 않는다. 그것은 단지 ‘저예산 필’ 같은 것이라기보다는 뮤직비디오 속의 비중과 편집이 서사나 상징에 의미가 있을 것이라고 감상자를 설득하는 데 실패하기 때문인 듯하다. 버스(verse)는 저음을 많이 사용하고 프리코러스에는 5도씩 뛰어오르는 도약음이 지배적으로 사용되어 부르기에 썩 쉽지 않은 곡이다. 보컬 수행이 썩 잘 되고 있지는 않은데 멤버들의 실력이 문제라기보다는 디렉팅을 비롯한 스튜디오 작업의 불완전함으로 보인다.
마노: 참으로 ‘정직’하고도 건실하기 짝이 없는 ‘소년미의 정석’을 전면적으로 내세웠다. 한창 봄이라는 계절적 배경을 한껏 노린 것이 분명한 활기차고 눈부신 사운드가, 제목 그대로 화사하게 꽃처럼 꾸밈없이 피어난다. ‘Butterfly’와 ‘Clover 등 수록곡들을 통해 ‘봄’하면 떠올릴 법한 소재들을 그리 길지 않은 러닝타임 내에서 오밀조밀 예쁘게 엮어냈다. 다소 묵직한 변화구를 구사했던 전작들과 달리 이번에는 제법 솔직하게 직구를 던져왔다는 느낌인데, 이번 활동을 통해 얻은 소기의 성과를 보아하니 그것이 통한 것 같기도 하다. 대책없이 해맑은 에너지가 돋보이는 ‘Clover’ 역시 추천한다.
스큅: 더보이즈는 줄곧 준수하게 청량한 곡들을 선보여왔으나 활동곡에서만큼은 일종의 ‘가오’를 저버리지 않는 것이 멤버들의 역량과는 별개로 종종 어색하게 다가오기도 했다. ‘Bloom Bloom’은 끝내 이를 완전히 날려버리며 부담없이 상쾌한 고양감만을 취한다. 회를 거듭할수록 그룹 이미지를 멤버들과 잘 동기화 해나가는 것으로 보여 마음 한 켠에 자리하던 미심쩍음을 내려놓게 된다. ‘지킬게’의 아기자기함과 ‘Right Here’의 날렵한 활기를 한 데 잘 녹여내 그룹을 향한 신뢰 역시 저버리지 않는다. 조금 욕심이 있다면 이제는 단발적인 싱글을 넘어 꽉찬 볼륨의 앨범을 보고싶다는 점.
하루살이: 더보이즈는 날렵한 소년의 이미지를 다채롭게 피워낸다. 극도로 세련된 트랙 위에 12명의 목소리가 투명수채화처럼 각자의 색을 간직한 채 중첩되어 곡을 완성한다. 그 덕에 스포트라이트를 독식하는 멤버 없이 골고루 눈에 띈다. 이상적인 소년상을 선명하게 그려내기 위한 A&R 팀의 노고가 엿보인다.
미묘: 초기 2NE1 같은 스타일을 굳이 지금 들고 나오는 것도 의아하지만 그 퀄리티도 모든 면에서 함량미달이다. 랩의 비중이 높은데 특별히 랩을 잘해서나 노래를 못해서라기보다는 노래를 만들다 보니 적당한 길이가 안 나와서 덧대 놓은 것처럼 들린다. 사실 여고생이라는 그룹 이름 자체도 문제적이지만, 여고생이란 이름의 그룹이 “너의 touch / 걱정은 마 집엔 안가도 돼” 같은 가사를 부르다니 해도 너무하지 않은가.
미묘: 낙천적인 무드의 달콤한 곡으로, 다분히 연극적인 연출들이 재미있다. 그것은 편곡이나 디렉팅보다 작곡 단계에서 만들어진 것들이다. 할 말이 길어진다는 듯 끝 부분이 꼬리를 남기는 버스와 그로 인해 마치 숨을 가다듬는 것 같은 프리코러스의 시작, 한창 이야기하다가 말로 안 해도 안다는 듯이 대뜸 허밍으로 얼버무리는 대목 등이 그렇다. 곡의 기조 자체는 봄이면 봄이라서, 다른 시즌에는 봄이 지났기 때문에 또 나오는 꼭 그런 스타일이다 보니 지루해지기도 쉬운데, 아기자기하게 장면을 그려내는 요소들이 알콩달콩한 느낌을 더해 꽤 즐거움을 준다. BEOMxNANG과 정은지의 작곡 파트너십에 조금 더 기대하게 하는 싱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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